1장

우리 아버지의 성(姓)은 피립이고 내 세례명은 필립이었는데,
어린아이 적 내 짧은 혀는 이 이름과 성을 핍‘ 이상으로 길게도분명하게도 발음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늘 내 이름이 핍이라고 말했고, 그 결과 나는 핍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 P7

그러면서 그는 덜덜 떨리는 자기 몸을 양팔로 꼭 끌어안은 채— 마치 사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려는 것처럼 꽉 죄어안았다. — 교회의 낮은 담장 쪽으로 절름절름 걸어갔다. 쐐기풀 사이를, 그리고 초록빛 무덤들 주위의 가시덤불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며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내 어린 눈에, 마치 자신의 발목을 움켜잡아 무덤 속으로 끌어당기려는 무덤에서 슬그머니 뻗쳐 나온 죽은 사람들의 손길을 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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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만일 내 소송 의뢰인이 법정비용을 즉각적으로 받아낼 것을 요구한다면 테브 세드는 도저히 그것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그런데 남아프리카에 있는 포르반다르 메만 상인들 사이에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어서, 파산하게 되는 경우에는 차라리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데브 셰드는 3만 8,0000파운드나 되는 비용을 전액 지불할 능력은 없었다. 그는 총액에서 1파운드라도 덜물겠다 하지도 않았고 파산선고를 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오직 하나의길이 있을 뿐이었다. 다다 압둘라가 그에게 적당히 분납하도록 허락하는 길이었다. 그는 그만한 도량이 있었다. 그리하여 테브 셰드에게 장기간에 걸쳐 분납할 것을 허락하였다. 이렇게 분납으로 지불하도록 설득하기가 중재재판에 동의하게 하기보다 더 힘들었다. 그러나 양쪽은 이 결과에 만족했고, 둘 다 공중의 신망을 더 얻게 되었다. 나의 기쁨은 한이 없었다. 나는 법의 진정한 활용을 배웠다. 또한 인간성의 선한 면을 찾아내는 길을 배웠고, 인간의 심정 속에 들어가는 길도 배웠다. 법률인의 진정한 역할은 서로 갈라선 양쪽을 화합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교훈은 도저히 지워질 수 없게 내 속에 낙인 찍힌 것이었으므로, 변호사로서의 20년간의 대부분은 수백 건의 사건을 화해시키는 데 쓰였다. 그로써 내가 손해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으로도 그렇지만 내 영혼으로는 더구나 그렇다.
- P209

이와 같이 나는 기독교를 완전한 종교로도 가장 위대한 종교로도 인정할 수 없었지만, 힌두교 역시 그렇다고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힌두교의 결점은 눈을 감으려 해도 감을 수 없을 만큼 분명했다. 만일 불가촉천민이 힌두교의 한 부분이라면, 그것은 썩어빠진 부분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군더더기일 것이다. 나는 무수한 종파와 계급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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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안 보내면 너무 슬퍼할 것 같으니까.

미타 조지에게 마음껏 뛰놀아, 요코 짱과 미타, 언젠가 소집할 테니까.
- 구로가와 치에

이 정도면 됐잖아. 간단하고, 나답고, 치에 님은 이렇게 쿨하다고,
치에는 엽서를 내려다보다가 빨간 립스틱을 꺼냈다.
꾹 눌러 입술에 발랐다. 서비스 하나 정도는 해 주지 뭐.
엽서에 키스 마크를 찍었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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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깊게 들이쉬어여, 자, 이러분은 사는 곳을 떠나, 개울을 지나요.
강과 바다 너머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질 거예요.
미국 뉴욕 위를 날아가요.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를 날아요.
저기 보이는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갈 거예요.
- P7

여든이 넘은 당신을 보면서 나는 생각합니다. 로자 파크스 정도의 조건을 갖추기 못했기에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야만 했던 여성,
당신은 클로넷 콜빈입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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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의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냐. 인도로 돌아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모욕은 생각 말고 그냥프리토리아로 가서 사건을 끝낸 다음 인도로 갈 것인가? 내가 할 일을하지 않고 인도로 돌아가는 것은 비겁하다. 내가 당한 고통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라는, 깊은 병의 한증상에 지나지 않는다.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고통을 겪으면서라도그 병의 뿌리를 뽑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받은 명예훼손에대한 보상은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데 필요한 한도에서만 바라기로 해야 한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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