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언젠가부터 사람 이름을 딴 법이 자주 회자된다. 길고 어려운법의 정식 명칭 대신 짧고 쉬운 사람 이름으로 부르는 게 편리하다지만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법률명과 그 내용을 부르는 대신 입법의 계기가 된 누군가의 이름으로 법을 부르면, 자연스럽게 그 법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법이라고 하면 무뚝뚝하고 건조해서 어쩐지 멀게 느껴지지만, 누군가의 삶에 얽힌 이야기를 품은 법은 바로 그 덕에 생기와 표정을 얻어 조금 더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요컨대 사람 이름을 딴 법은 법이 삶과 동떨어진 규율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전문 용어로 다듬은 것이라는 걸 알려준다. - P12

김용균
1994. 12.6.2018. 12. 10.
경북 구미에서 김해기·김미숙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진전문대를 졸업하고 2018년 9월 17일 한국서부발전의 사내하도급 회사인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해 태안화력발전소 환승 타워에서 컨베이어 현장운전원으로 일했다. 같은 해 12월 10일 밤 10시 40분경,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는 사고로 사망했다. 사망 62일째인 2019년 2월 9일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노동자 민주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고, 모란공원에 묻혔다.

김용균법
1990년 이후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을 말한다. 김용균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산업재해 보호 대상 및 원청 책임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으로 2018년12월 27일 국회를 통과해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되었다. - P20

 다시 긴 시간을 협상한 끝에 2019년 2월 5일 설날 저녁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고, 스물네 살 청년은 사망 62일 만에야 영면에 들어갈 수 있었다.
"8관련 기사에 달린 한 댓글처럼 나라를 구한 위인도 아닌 한청년 노동자를 우리는 왜 그토록 오래 추모했는가. 그건 나와내 자식이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은 행운에 감사할 뿐 하청 노동자의 위험한 작업 환경을 우리가 오랫동안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법은 김용균이 죽고 나서야 "노동자들의 간과 뇌가 쏟아져서 땅 위로 흩어지고 가족들이 통곡하고, 다음날 또다시 퍽, 퍽, 퍽 소리 나는 그 자리로 밥벌이하러 나가는 사회를 바로잡으려 나섰다.
김용균은 ‘구미에서 나고 자라 발전소 하청업체에 취업했다가 석 달 만에 기계에 끼여 죽은, 누구네 외아들 스물네 살 청년‘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일하다 죽는 매년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있어 혹은 사고가 은폐되어 그 숫자에조차 포함되지 못한 노동자 모두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것이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매년 2000여 명의 ‘김용균‘들이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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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는 다음 네 가지 조건을 설정하고 쥐가 어떤 조건에서 손잡이를 더 많이 누르는지 실험했다.

① 고정간격 스케줄: 손잡이를 누르는 것과 관계없이 일정한 시간간격으로 먹이가 나온다.
② 변동간격 스케줄: 손잡이를 누르는 것과 관계없이 불규칙적인 간격으로 먹이가 나온다.
③ 고정비율 스케줄: 손잡이를 누르면 반드시 먹이가 나온다.
④ 변동비율 스케줄: 손잡이를 누르면 불확실하게 먹이가 나온다.

스키너의 실험에 따르면 손잡이를 누르는 횟수는 ④) → ① 순으로 감소한다. 이 결과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손잡이를 누르면 반드시 먹이가 나온다(③)는 조건보다 손잡이를 누르면 불규칙하게 먹이가 나온다(④)는 조건이 쥐에게는 더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결과는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대가의 의미를 생각하면 상당히 의아할지도 모른다. 이는 ‘행동 강화‘에 관한실험으로, 행위는 그 행위로 인한 대가가 반드시 주어진다는 것을알고 있을 때보다도 대가가 불확실하게 주어질 때 더욱 효과적으로 강화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 P91

도파민은 각성, 의욕, 목표 지향 행동 등을 유발하며,
그 대상에는 물질적 욕구만이 아니라 음식이나 이성 등 추상적인 개념, 즉 근사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식견도 포함된다. 한 가지 덧붙이면 최근 실시된 연구에서 쾌락에 관여하는 물질은 도파민보다 오피오이드opioid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생물 심리학자 켄트 베리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욕구계 도파민과 쾌락계오피오이드는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여 사람을 제어하는 엔진과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욕구계인 도파민이 특정 행동을 촉진시키는 반면 쾌락계인 오피오이드는 만족을 느끼게 함으로써 추구 행동을 정지시킨다.
중요한 점은, 일반적으로 욕구계가 쾌락계보다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항상 무언가 느끼고 추구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도파민 시스템은 예측하지 못한 일에 직면하면 자극을 받는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란 스키너 상자 실험에서 네 번째 조건이었던 변동비율 스케줄에 해당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문자 메시지는 예측할 수 없다. 이들 미디어는 변동비율 스케줄로직이기 때문에 사람의 행동을 강화하는, 즉 반복해서 행동하게 하는효과가 매우 크다.
왜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빠지는 것일까? 다름 아니라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최근의 연구가 제시하는 해답이다. - P93

이 물음에 사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하라"라는 답을 제시했다. 앙가주망이라 하면 뭔가 고상한 철학 용어로 들릴 수도 있지만, 결국은 주체적으로 관계한 일에 참여commit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참여하는 것일까? 사르트르는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우리 자신의 행동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행동과 선택은 자유이며, 따라서 ‘무엇을 할까?‘라든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의사 결정에 스스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앞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다룰 때 자유의 괴로움에 관해 고찰했는데, 사르트르 또한 자유를 매우 무거운 것으로 인지해 "인간은 자유의 형벌에 처해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사르트르는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앙가주망에 따라 참여하는 두 번째 대상인 ‘세계‘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시간, 즉 인생 자체를 사용해 어떤 계획을 실현하는데, 이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 계획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르트르는
"사람의 일생에서 ‘우발 사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까지이야기했다. 그 예로 들었던 것이 전쟁이다.
사르트르는 전쟁을 인생의 외부에서 닥쳐온 사건으로 여기는것을 잘못이라 보았다. 전쟁은 ‘나의‘ 전쟁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반전 운동에 몸을 던지거나 병역을 거부하고 도망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자살함으로써 전쟁에 항의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들의 이목을 생각하거나 단지 겁이 많아서, 혹은 가족과 나라를 지키고 싶다는 주체적인 의지로 이 전쟁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른 선택도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받아들인 이상,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실로 냉정한 지적이지만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강조한 ‘자유의 형벌‘에 처해 있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 P94

우리는 외부의 현실과 자신을 각각 별개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를 부정했다. 외부의 현실은 우리가 어떤시도를 하느냐에 따라, 혹은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러한 현실‘이 된것이므로 외부의 현실은 곧 ‘나의 일부‘이고 나는 ‘외부 현실의 일부‘다. 즉 외부의 현실과 나는 결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현실을 자신의 일로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태도, 즉 앙가주망이 중요하다. - P96

세뇌라는 단어는 영어 brain-washing을 중국어 (시나오)로 직역한 말이다. 이 용어는 한국6.25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시행된 사상 개조에 관해 미국 첩보기관이 작성한 보고서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그 후 저널리스트인 에드워드 헌터가 중국 공산당의 세뇌 기법에 관해 쓴 저서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6.25 전쟁 당시 미국은 포로가 된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단기간 내 공산주의에 세뇌당하는 사태에 당황했다. 이때 중국 공산당이 실시한 세뇌 기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오늘날에는 전부 밝혀져 있다.
누군가의 사상과 신조, 또는 이데올로기를 바꾸고자 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반론을 강하게 호소하여 설득하거나 고문을 가하지 않고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이 실제로 행한 방법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포로가 된 미군에게 ‘공산주의에도 좋은 점은있다‘는 간단한 메모를 적게 하고 그 포상으로 담배나 과자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을 주었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미군 포로는 착착 공산주의로 돌아섰다.
이 세뇌 기법은 우리의 상식선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사상이나 신조를 바꾸기 위해 주는 포상은 이를 사들이기 위한 뇌물이므로 대가가 아주 크지 않다면 효과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사후 영혼의 복종을 조건으로 현세에서 인생의 모든 쾌락을 얻는 계약을 맺는다. 영혼의 복종은 결국 사상과 신조를 팔아넘기는 것이므로 그만한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현세의 온갖 쾌락 정도의 포상이어야 적합한것이다. 그런데 미군 포로는 사상과 신조를 바꾸는 대가로 담배나 과자밖에 받지 않았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 P110

이해하기 힘든 이 사태를 인지 부조화 이론으로는 설명 가능하다. 인지부조화 이론의 틀에서 미군 포로들의 심리 변화 과정을 알아보자. 우선 자신은 미국에서 나고 자라 공산주의는 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포로가 되어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메모를 적었다. 이때 호화로운 포상이 나왔다면 포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메모를 적었다는 명분이 성립되므로 사상과 신조에 반하는 메모를 적었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해소된다. 하지만 실제로 받은 것은 담배와 과자 정도의 소소한 포상일 뿐이다. 이래서는 사상과 신조에 반하는 메모를 적었다는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죄책감의 원인은 ‘공산주의는 적‘이라는 신조와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메모를 적었다‘는 행위 사이에 발생하는 부조화이므로, 이 부조화를 해소하려면 어느 한쪽을 변경해야만 한다. 이때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메모를 적은 것은 사실이기에 이를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변경할 수있는 것은 공산주의는 적이라는 신조 쪽이다. 그리하여 이 신조를 공산주의는 적이긴 하지만 몇 가지 좋은 점도 있다고 수정함으로써 자신의 행위와 신조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조화의 강도를 낮추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미군 포로의 뇌 안에서 일어난 세뇌 과정이다. 덧붙이자면 리언 페스팅어가 인지 부조화 이론을 정리한 것은 6.25전쟁 이후의 일이므로, 중국 공산당은 이 세뇌 기법을 독자적으로 고안했다는 말이 된다.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는 능력에 그저 놀랄뿐이다. - P111

사실과 인지 사이에 발생한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인지를바꾸는 일은 인간관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좋아하지도 않는 이성이 이것저것 염치 좋게 부탁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도와주다가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인지 부조화가 빚은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지와 이것저것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은 부조화를 발생시킨다. 자신이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은 변경할 수 없으니대신에 부조화를 해소하고자 좋아하지 않는 감정을 ‘조금은 호의가있을지도‘로 바꿔 버린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는 상대에게 이것저것부탁받아 성가셔 하던 사람이 그 상대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우리는 주위의 영향을 받아 생각이 바뀌고, 그 결과 행동에도변화가 생긴다고 믿는다. 인간은 주체적인 존재로서 의식으로 행동을 다스리는 자율적 이상형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페스팅어는 인간에 대한 이러한 관념을 뒤엎었다. 그에 따르면 사회의 압력이 행동을 일으키고 행동을 정당화, 합리화하기 위해 의식과 감정을 적응시키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 P114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Holocaust다. 앞서 소개한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가 관료제의 특징인 ‘과도한 분업 체제‘ 덕에 가능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아렌트가 이러한 가설을 제시한 1960년대무렵까지는 주로 유대인 학살의 원인을 독일의 국민성과 나치의 이데올로기에서 찾는 해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아렌트는 그 해석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홀로코스트가 나치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가능했다는 논조는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사고관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부정하고 독일 아닌 다른 국가의 국민에게도, 그리고 나치 이외의 다른 조직에도 그러한 비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히틀러 같은 광신적인 지도자가 중추가 되어 깃발을 흔드는 것만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실제로 총이나 독가스를 이용해 자신의 손으로 죄도 없는 사람들을 벌레처럼 죽인 사람들은 나치의 지도자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일반 시민이었다. 이때 그들의 자제심과 양심은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 아렌트는 ‘분업‘에 주목한다. 유대인 명부 작성을 비롯해 검거, 구류, 이송,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많은 사람이 분담하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책임 소재는 애매해지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아주 수월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저는 명부를 작성했을 뿐입니다", "그 당시엔 누구나 협력했지요", "제가 어떻게 하든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죽이지 않았어요. 단지이송열차를 운전했을 뿐이에요" 등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러한 체제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구성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책임 소재가 애매하게 분단된 체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고 술회했다. 그악마 같은 통찰력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밀그램 교수의 실험 결과는 사람이 집단 내에서 어떤 일을 할 때야말로 그 집단이 지닌 양심이나 자제심이 가동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조직 구성원 모두가 제반 법규를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사전적, 상시적으로 통제하고 감독하는 체제-옮긴이) 위반이 속출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밀그램의 실험 결과가 시사하는 바를 더욱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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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학생들에게 소설은 어떤 면에서건 욕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곤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대체로 우리 욕망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게 마련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원하고 원하니까. 아, 우리는 얼마나 원하는가. 우리는 허기로 가득하다. - P273

나에게 연애와 우정이 이다지도 어려웠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고 상대가 원하는 행동을 해야만 누군가가 날 좋아해주고 사랑해줄 거라 믿었다. 스트레스였다. 언제나 최고의친구나 여자 친구가 되기 위한 갖가지 시도를 공들여 했고 그러면서 진정한 나 자신, 즉 따뜻한 심장을 가지긴 했으나 언제나 착하고 좋을 수만은 없는 그 사람과는 점점 더 멀어졌다. 미안해하지 않아야 할 일을 미안해했고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사과했다. 그저 내가 나라는 사실이 죄스러웠다. - P284

나이를 먹으며 자기 인식이, 아니면 자기 인식과 닮은 무언가가 찾아왔고 이런 행동 유형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이 사람 앞에서내가 너무나 노력해야 하지 않기를, 너무 많이 주고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이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서 이대로도 충분하기를 바라는 건 겁나는 일이기도 하다. 당신이 지금 그대로의 당신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 충분할수 있으리라 믿는 건 겁나는 일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늘 불안한 점이 있다. "그러다 잘 안되면?"이라는 질문이 언제나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며 괴롭힌다. 내가 앞으로 영원히 이대로 충분치 못하면 어쩌지? 내가 어떤 사람에게 영영 충분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어쩌지? - P285

그 일이 있고 벌써 2년이나 흘렀다. 왼쪽 발목의 철심은 언제나 그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그래, 이쪽 뼈가 부러졌었지."
나는 치유의 정체가 무엇일지, 몸의 치유뿐만 아니라 영혼의 치유는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늘 궁금했다. 정신과 영혼도 뼈처럼 깔끔하게 붙거나 치료된다는 생각에 매혹되곤 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적절한 조건만 갖춰진다면 원래 갖고 있던 힘을 되찾게 된다는 생각에 끌렸다. 하지만 치유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다. 몇 년 전,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언젠가는 다른이들 때문에 겪은 일들에 대해 느껴온, 조용하지만 끝없는 분노를 그만 느끼게 될 날이 올 거라고.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면 더 이상 플래시백은 없을 것이라고, 눈을 뜨자마자 내가 겪은 폭력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지않는 날이 있을 거라고, 맥주의 맥아 냄새를 잊을 수 있는 날이, 단 몇 초동안이라도, 아니 몇 분, 몇 시간 정도는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잊는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를 괴롭히는 과거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그런 날은 절대 오지 않았다. 아니, 아직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더 이상 그날이 올 것이라고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 P315

내 몸과 이 몸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했던 경험은 나의 페미니즘을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바꾸었다. 내 몸에서 산다는 일은 다른 사람을 향한 공감과 동정의 범위를 넓혀주고 다른 사람들 몸의 진실에 대해 알게해준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다양한 신체의 종류에 대한 (용인을 넘은) 포용과 인정의 중요성을 확실히 가르쳐주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내 몸의 존엄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더 신중한 단어인 사이즈란 말을 사용하는데, 나는 사이즈가 좀 되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될 수 있고 최소한 지난 20년 동안 그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나의 또 다른 정체성도 마찬가지였다. 이 몸이 불러오는 혼란과 수치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존중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몸은 회복탄력성이 크다. 내 몸은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다. 내몸은 존재감이라는 힘을 제공하기도 한다. 내 몸은 강력하다.
또한 내 몸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몸이, 그 몸이 어떻게 각자 다른 능력을 갖고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가는지를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 P332

적어도 나의 일부는 나의 최악의 날들을 지나왔다는 것을 알고 나 자체를 바꾸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내가 지은 이 몸이라는 요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벽의 일부는 파괴해야만 하고 이 파괴가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상관없이, 오직 나만을 위해서 벽을 무너뜨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작업을 무너졌던 나를 되돌리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이제까지 작업했던 그 어떤 책보다 쓰기 어려웠다. 이렇게까지 나를 펼쳐 보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자신과 내 몸이 살아온 인생을 직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나 그래도 꾸역꾸역 한 자씩 써내려간 이유는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작업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내 몸에 대한 고백록을 쓰면서, 내 몸에 대한 이런 진실들을 당신들에게 털어놓으며 나의 진실, 오직 나만 아는 나의 진실을 털어놓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사람들이 그다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듣기 불편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건대, 나는 여기에 내심장을 펼쳐 보였고 여기에 그 심장이 남긴 자국이 남았다. 여기에서 당신에게 나의 강렬한 허기의 진실을 펼쳐 보였다. 마침내 여기에 연약하고 상처받고 지독하게 인간적인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자유가 주는 해방감을 한껏 즐기고 있다. 바로 여기에 내가 무엇에 허기졌는지, 그리고 내 진실이 나로 하여금 무엇을 창조하게 했는지가 있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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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20대 초반에는 주로 엄마와 같이 쇼핑을 하러 갔는데 내 옷을 살 수 있는 유일한 옷 가게에 갈 때마다 엄마의 얼굴은 실망으로 어두워졌다. 나는 딸이 다른 몸을 가졌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을 보았다. 엄마의 좌절감과 수치심을 보았다. 엄마는 가끔 이런 말도 했다. "제발, 우리가 여기서 쇼핑하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다고중얼거렸다. 나도 엄마와 같은 희망을 품었다. 그러면서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나 혼자 적지 않은 불만을 혹은 분노를 품었다. 엄마의 말에, 엄마의 실망에, 더 좋은 딸이 될수 없는 나에게,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소중한 일상인 엄마와 쇼핑하는 즐거움이 허락되지 않은 내 인생에 불만을 품었다. - P205

나도 그런 딸이었으니까. 들어간 매장에 있는 어떤 옷도 입지 못할 정도로 너무 큰 몸을 하고, 그저 어떻게든, 아무거나 나에게 맞기만 하는 옷을 찾아 헤매면서 그 와중에 생각해주는 척하는 사람들의 뾰족하고 무신경한 평가와 잔소리까지 꾹 참고 들어야 하는 그런 소녀. 옷 가게에서그런 소녀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소녀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잘 안아주는 사람이 아니지만 당장이라도 그 소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소녀를 이 나쁜 세상으로부터, 뚱뚱한 사람에게 믿을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이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싶었다. 사실 나도이 세상이 어떤지 알고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내가 그 친구에게 해줄수 있는 건 없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타인의 잔인한 눈초리와 지적질에서, 너무나 좁은 의자에서, 아니 이 너무나 큰 몸에는 너무나 작은모든 것에서 도망쳐버릴 수 있는 안전한 은신처나 안전지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탈의실까지 따라 들어가서 그 소녀에게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실제로 정말 아름다운 소녀였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얼굴 위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와 소녀는 각자마저 쇼핑을 했다. 그 소녀의 엄마 얼굴을 쥐어뜯고 싶었다.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자꾸만 빨려 들어가게 되는자기혐오의 소용돌이에서 나를 꺼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 매장을 불질러버리고 싶었다. 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 소녀는 엄마와 함께 매장을 나갈 때까지 울고 있었다. 내가 너무나 잘 아는 눈빛을 하고 있던 소녀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소녀가 그토록 눈에 띄는 몸에 자신을 구겨 넣으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소녀는 사라지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토록 작은 걸 바라는데도 너무나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걸 참을수가 없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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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대가를 지급하기로 약속한 결과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향상되기는커녕 오히려 저하되었다. 교육 심리학에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실험으로 대가, 특히 ‘예고된‘ 대가가 인간의 창조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현저히 훼손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가운데 유명한 실험을 하나 예로 들자면 에드워드 데시 교수와리처드 리스트너 교수, 리처드 라이언 교수의 연구를 꼽을 수 있다.
그들은 대가가 학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128건의 연구에 메타 분석meta analysis (단일 주제를 조사한 많은 연구물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종합해 고찰하는 연구 기법-옮긴이)을 실시했다. 이 실험의 결과로 그들은 과정의어느 단계에서든 대가를 예고하면 이미 재미를 느껴 몰입해 있는 활동에 대한 자발적 동기가 저하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에드워드 데시 교수의 연구에서는 대가를 약속하면 피험자의성과가 저하되고, 예상 가능한 정신 측면에서의 손실을 최소한도로 억제하거나 또는 성과급이 기대되는 행동만을 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대가를 약속받으면 높은 성과물을 내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많은 대가를 얻기위해서 무엇이든 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스스로 과제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도전적인 과제가 아니라 가장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과제를 선택하게된다. - P64

예정설에 따르면 깊은 신앙심이나 많은 선행은 그 사람이 신에게 구원받는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이러한 사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기‘의 인식과 크게 모순을 일으킨다. 대가와 노력의 관계에서 보면, 대가가 약속되어 있기에 노력하려는 동기가 생겨난다는 사고가 보편적이다. 그런데 예정설에 따르면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대가를 받을 사람과 받지 못할 사람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
이 인과관계를 불교와 비교해 보면 예정설의 이상한 점이 눈에띈다. 불교에서는 모든 일이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이며 원인 없이는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인과율을 중시한다. 전 우주는 인과율에 지배받고 있으며, 석가모니의 큰 깨달음 역시 이 인과율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석가모니는 전 우주를 지배하는 인과율을 ‘다르마dharma‘, 즉 법이라고 명명했다. 당연히 석가모니 이전부터 법은 존재했다. 교조와는 별개로 절대적으로 법이 존재했으므로 이를 ‘법전불후法前佛後‘라고 한다. 반면 예정설은 이를 완전히 뒤엎는다. 신이 모든것을 미리 정해 놓기 때문에 인과율은 적용되지 않는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신전법후神前法後‘인 셈이다. - P78

그렇다면 노력 여부에 관계없이 구원받을 사람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믿음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까? 이 물음에 "그 반대다!"라고 외친 사람이 막스 베버다. 그는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칼뱅파의 예정설이 자본주의를 발달시켰다는 논리를 펼쳤다.
구원 여부도 불확실하고 현세에서의 선행도 의미가 없다면 사람들이 쉽게 허무 사상에 빠져들 수 있다. 혹은 현세에서 어떤 삶을살아가든 구원받을 자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쾌락을 좇으며 사는과감한 선택을 내리기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물론 그런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전능한 신에게 구원받기로 미리 정해진 사람이라면 금욕적으로 천명(독일어로 beruf,
이 단어는 ‘직업‘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됨-옮긴이)을 다해 성공하는 인간일거라 생각하고 ‘자신이야말로 구원받기로 선택된 인간‘이라는 증거를 얻기 위해 금욕적으로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는 것이 막스 베버의 논리다. - P79

로크가 도달한 결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일이든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 즉 현실 세계에 관한 이해는 직접 감각을 통해 얻은 경험에 의해 이끌리든가 아니면 간접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요소가 바탕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아주 당연하게 들린다.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무엇을 긍정하고 있는지보다 무엇을 부정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있다. 철학에서도 이러한 사고방식은 유용하다. 과연 로크는 무엇을 부정했을까? 로크는 두 위대한 철학자의 사고를 부정했다.
한 사람은 데카르트다. 세상을 단순한 사고와 연역으로 이해할수 있다는, 즉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로크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로크가 부정한 또 한 사람은 플라톤이다. 로크는 이데아와 관련해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전생에서 얻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플라톤의 주장을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사람이 태어날 때는 백지 상태이며 그 위에 경험이 채색되면서 점차 현실에 관한 지식과 이해가 구축된다고 믿었다. - P83

시민이 중세 이후 지속된 봉건제도의 예속에서 해방된 시기는유럽은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친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후,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치고 난 뒤다. 시민이 자유를 획득하기까지는수많은 희생이 따랐다. 소위 자유라는 것을 얻기 위해 매우 비싼 값을 치른 셈이다. 그렇다면 그 값비싼 자유를 손에 넣은 사람들은 과연 행복해졌을까?
프롬은 나치 독일에서 발생한 파시즘‘ascism에 주목했다. 왜 비싼대가를 치르고 획득한 ‘자유의 과실‘을 맛본 근대인이 그것을 내던져 버리고 파시즘의 전체주의에 그토록 열광했을까? 날카로운 고찰은 언제나 예리한 질문에서 탄생한다. 이 의문에 대한 프롬의 대답또한 우리의 가슴을 찌를 듯이 날카롭다.
프롬의 분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 이 고독과 책임을 감당하고 견디면서, 더욱이 진정한 인간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끊임없이 갈구함으로써 비로소 인류에게 바람직한 사회가 탄생하는 법이다.
하지만 자유의 대가로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독과 책임의 무게에 몹시 지친 나머지 그들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손에 넣은 자유를 내던지고 나치의 전체주의를 택한다. 특히나치즘을 지지하는 세력의 중심에 소상인, 장인, 사무직 근로자들로이루어진 하층 및 중산 계급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프롬은 자유로부터 벗어나 권위에 맹종하는 길을 선택한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성격 특성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프롬은 하층 및 중산계급 중에서 나치즘을 반기며 맞이한 이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하기 쉬운 성격이며 자유의 무게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존과 종속을 추구하는 성향임을 밝히고 이를 ‘권위주의적 성격‘이라고 명명했다. 프롬에 의하면, 이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권위를 따르기 좋아하는 한편, 스스로 권위를 갖고 싶어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을 복종시키고 싶어 한다. 한마디로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첨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거만하게 구는 인간‘이다. 이 권위주의적 성격이 파시즘 지지의 기반이 된 것이라고 프롬은 강조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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