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언젠가부터 사람 이름을 딴 법이 자주 회자된다. 길고 어려운법의 정식 명칭 대신 짧고 쉬운 사람 이름으로 부르는 게 편리하다지만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법률명과 그 내용을 부르는 대신 입법의 계기가 된 누군가의 이름으로 법을 부르면, 자연스럽게 그 법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법이라고 하면 무뚝뚝하고 건조해서 어쩐지 멀게 느껴지지만, 누군가의 삶에 얽힌 이야기를 품은 법은 바로 그 덕에 생기와 표정을 얻어 조금 더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요컨대 사람 이름을 딴 법은 법이 삶과 동떨어진 규율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전문 용어로 다듬은 것이라는 걸 알려준다. - P12
김용균
1994. 12.6.2018. 12. 10.
경북 구미에서 김해기·김미숙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진전문대를 졸업하고 2018년 9월 17일 한국서부발전의 사내하도급 회사인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해 태안화력발전소 환승 타워에서 컨베이어 현장운전원으로 일했다. 같은 해 12월 10일 밤 10시 40분경,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는 사고로 사망했다. 사망 62일째인 2019년 2월 9일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노동자 민주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고, 모란공원에 묻혔다.
김용균법
1990년 이후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을 말한다. 김용균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산업재해 보호 대상 및 원청 책임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으로 2018년12월 27일 국회를 통과해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되었다. - P20
다시 긴 시간을 협상한 끝에 2019년 2월 5일 설날 저녁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고, 스물네 살 청년은 사망 62일 만에야 영면에 들어갈 수 있었다.
"8관련 기사에 달린 한 댓글처럼 나라를 구한 위인도 아닌 한청년 노동자를 우리는 왜 그토록 오래 추모했는가. 그건 나와내 자식이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은 행운에 감사할 뿐 하청 노동자의 위험한 작업 환경을 우리가 오랫동안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법은 김용균이 죽고 나서야 "노동자들의 간과 뇌가 쏟아져서 땅 위로 흩어지고 가족들이 통곡하고, 다음날 또다시 퍽, 퍽, 퍽 소리 나는 그 자리로 밥벌이하러 나가는 사회를 바로잡으려 나섰다.
김용균은 ‘구미에서 나고 자라 발전소 하청업체에 취업했다가 석 달 만에 기계에 끼여 죽은, 누구네 외아들 스물네 살 청년‘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일하다 죽는 매년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있어 혹은 사고가 은폐되어 그 숫자에조차 포함되지 못한 노동자 모두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것이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매년 2000여 명의 ‘김용균‘들이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 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