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 대가를 지급하기로 약속한 결과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향상되기는커녕 오히려 저하되었다. 교육 심리학에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실험으로 대가, 특히 ‘예고된‘ 대가가 인간의 창조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현저히 훼손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가운데 유명한 실험을 하나 예로 들자면 에드워드 데시 교수와리처드 리스트너 교수, 리처드 라이언 교수의 연구를 꼽을 수 있다.
그들은 대가가 학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128건의 연구에 메타 분석meta analysis (단일 주제를 조사한 많은 연구물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종합해 고찰하는 연구 기법-옮긴이)을 실시했다. 이 실험의 결과로 그들은 과정의어느 단계에서든 대가를 예고하면 이미 재미를 느껴 몰입해 있는 활동에 대한 자발적 동기가 저하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에드워드 데시 교수의 연구에서는 대가를 약속하면 피험자의성과가 저하되고, 예상 가능한 정신 측면에서의 손실을 최소한도로 억제하거나 또는 성과급이 기대되는 행동만을 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대가를 약속받으면 높은 성과물을 내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많은 대가를 얻기위해서 무엇이든 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스스로 과제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도전적인 과제가 아니라 가장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과제를 선택하게된다. - P64

예정설에 따르면 깊은 신앙심이나 많은 선행은 그 사람이 신에게 구원받는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이러한 사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기‘의 인식과 크게 모순을 일으킨다. 대가와 노력의 관계에서 보면, 대가가 약속되어 있기에 노력하려는 동기가 생겨난다는 사고가 보편적이다. 그런데 예정설에 따르면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대가를 받을 사람과 받지 못할 사람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
이 인과관계를 불교와 비교해 보면 예정설의 이상한 점이 눈에띈다. 불교에서는 모든 일이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이며 원인 없이는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인과율을 중시한다. 전 우주는 인과율에 지배받고 있으며, 석가모니의 큰 깨달음 역시 이 인과율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석가모니는 전 우주를 지배하는 인과율을 ‘다르마dharma‘, 즉 법이라고 명명했다. 당연히 석가모니 이전부터 법은 존재했다. 교조와는 별개로 절대적으로 법이 존재했으므로 이를 ‘법전불후法前佛後‘라고 한다. 반면 예정설은 이를 완전히 뒤엎는다. 신이 모든것을 미리 정해 놓기 때문에 인과율은 적용되지 않는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신전법후神前法後‘인 셈이다. - P78

그렇다면 노력 여부에 관계없이 구원받을 사람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믿음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까? 이 물음에 "그 반대다!"라고 외친 사람이 막스 베버다. 그는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칼뱅파의 예정설이 자본주의를 발달시켰다는 논리를 펼쳤다.
구원 여부도 불확실하고 현세에서의 선행도 의미가 없다면 사람들이 쉽게 허무 사상에 빠져들 수 있다. 혹은 현세에서 어떤 삶을살아가든 구원받을 자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쾌락을 좇으며 사는과감한 선택을 내리기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물론 그런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전능한 신에게 구원받기로 미리 정해진 사람이라면 금욕적으로 천명(독일어로 beruf,
이 단어는 ‘직업‘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됨-옮긴이)을 다해 성공하는 인간일거라 생각하고 ‘자신이야말로 구원받기로 선택된 인간‘이라는 증거를 얻기 위해 금욕적으로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는 것이 막스 베버의 논리다. - P79

로크가 도달한 결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일이든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 즉 현실 세계에 관한 이해는 직접 감각을 통해 얻은 경험에 의해 이끌리든가 아니면 간접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요소가 바탕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아주 당연하게 들린다.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무엇을 긍정하고 있는지보다 무엇을 부정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있다. 철학에서도 이러한 사고방식은 유용하다. 과연 로크는 무엇을 부정했을까? 로크는 두 위대한 철학자의 사고를 부정했다.
한 사람은 데카르트다. 세상을 단순한 사고와 연역으로 이해할수 있다는, 즉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로크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로크가 부정한 또 한 사람은 플라톤이다. 로크는 이데아와 관련해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전생에서 얻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플라톤의 주장을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사람이 태어날 때는 백지 상태이며 그 위에 경험이 채색되면서 점차 현실에 관한 지식과 이해가 구축된다고 믿었다. - P83

시민이 중세 이후 지속된 봉건제도의 예속에서 해방된 시기는유럽은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친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후,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치고 난 뒤다. 시민이 자유를 획득하기까지는수많은 희생이 따랐다. 소위 자유라는 것을 얻기 위해 매우 비싼 값을 치른 셈이다. 그렇다면 그 값비싼 자유를 손에 넣은 사람들은 과연 행복해졌을까?
프롬은 나치 독일에서 발생한 파시즘‘ascism에 주목했다. 왜 비싼대가를 치르고 획득한 ‘자유의 과실‘을 맛본 근대인이 그것을 내던져 버리고 파시즘의 전체주의에 그토록 열광했을까? 날카로운 고찰은 언제나 예리한 질문에서 탄생한다. 이 의문에 대한 프롬의 대답또한 우리의 가슴을 찌를 듯이 날카롭다.
프롬의 분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 이 고독과 책임을 감당하고 견디면서, 더욱이 진정한 인간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끊임없이 갈구함으로써 비로소 인류에게 바람직한 사회가 탄생하는 법이다.
하지만 자유의 대가로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독과 책임의 무게에 몹시 지친 나머지 그들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손에 넣은 자유를 내던지고 나치의 전체주의를 택한다. 특히나치즘을 지지하는 세력의 중심에 소상인, 장인, 사무직 근로자들로이루어진 하층 및 중산 계급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프롬은 자유로부터 벗어나 권위에 맹종하는 길을 선택한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성격 특성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프롬은 하층 및 중산계급 중에서 나치즘을 반기며 맞이한 이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하기 쉬운 성격이며 자유의 무게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존과 종속을 추구하는 성향임을 밝히고 이를 ‘권위주의적 성격‘이라고 명명했다. 프롬에 의하면, 이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권위를 따르기 좋아하는 한편, 스스로 권위를 갖고 싶어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을 복종시키고 싶어 한다. 한마디로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첨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거만하게 구는 인간‘이다. 이 권위주의적 성격이 파시즘 지지의 기반이 된 것이라고 프롬은 강조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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