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20대 초반에는 주로 엄마와 같이 쇼핑을 하러 갔는데 내 옷을 살 수 있는 유일한 옷 가게에 갈 때마다 엄마의 얼굴은 실망으로 어두워졌다. 나는 딸이 다른 몸을 가졌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을 보았다. 엄마의 좌절감과 수치심을 보았다. 엄마는 가끔 이런 말도 했다. "제발, 우리가 여기서 쇼핑하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다고중얼거렸다. 나도 엄마와 같은 희망을 품었다. 그러면서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나 혼자 적지 않은 불만을 혹은 분노를 품었다. 엄마의 말에, 엄마의 실망에, 더 좋은 딸이 될수 없는 나에게,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소중한 일상인 엄마와 쇼핑하는 즐거움이 허락되지 않은 내 인생에 불만을 품었다. - P205

나도 그런 딸이었으니까. 들어간 매장에 있는 어떤 옷도 입지 못할 정도로 너무 큰 몸을 하고, 그저 어떻게든, 아무거나 나에게 맞기만 하는 옷을 찾아 헤매면서 그 와중에 생각해주는 척하는 사람들의 뾰족하고 무신경한 평가와 잔소리까지 꾹 참고 들어야 하는 그런 소녀. 옷 가게에서그런 소녀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소녀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잘 안아주는 사람이 아니지만 당장이라도 그 소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소녀를 이 나쁜 세상으로부터, 뚱뚱한 사람에게 믿을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이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싶었다. 사실 나도이 세상이 어떤지 알고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내가 그 친구에게 해줄수 있는 건 없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타인의 잔인한 눈초리와 지적질에서, 너무나 좁은 의자에서, 아니 이 너무나 큰 몸에는 너무나 작은모든 것에서 도망쳐버릴 수 있는 안전한 은신처나 안전지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탈의실까지 따라 들어가서 그 소녀에게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실제로 정말 아름다운 소녀였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얼굴 위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와 소녀는 각자마저 쇼핑을 했다. 그 소녀의 엄마 얼굴을 쥐어뜯고 싶었다.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자꾸만 빨려 들어가게 되는자기혐오의 소용돌이에서 나를 꺼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 매장을 불질러버리고 싶었다. 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 소녀는 엄마와 함께 매장을 나갈 때까지 울고 있었다. 내가 너무나 잘 아는 눈빛을 하고 있던 소녀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소녀가 그토록 눈에 띄는 몸에 자신을 구겨 넣으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소녀는 사라지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토록 작은 걸 바라는데도 너무나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걸 참을수가 없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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