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예방 교육을 한다고 방화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콘돔 사용 실습을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성관계는 피임만잘 하면 되니까 내일부터 콘돔 사자,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물론 초등학교 5, 6학년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호기심에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이것은 알고 있다가 더 조심해야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피임 실습을 통해 피임에 대해 정확히 배운 아이들은 이에 대한 중심이 잡혀서 실제 성관계 시기가 늦어져요. 그러니 부작용을 우려해 피임 실습을 하지 않는 것은 지나친 걱정이라고 봅니다."
- P285

혹 상대를 사랑하더라도그 순간 자신에게 스킨십이나 성관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 상대가 실망할까봐, 싫어할까봐, 헤어지자고 할까봐 어쩔 수 없이 응하는 성행위는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 상대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데 스킨십을 안 해준다고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성행위 요구에 응해주느냐 마느냐를좋고 싫고, 만나고 헤어지고의 잣대로 들이대는 행동을 어떻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스킨십과 성관계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상대가 불쾌해하고 헤어지자고 한다면 그 상대는 날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미련 없이 돌아서야 한다.
- P296

남자친구의 강압적인 스킨십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나 판단에 따라 성적인 행동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전문적인 용어로 ‘성적 의사소통능력‘ 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성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고 원하지 않은 것을 거절할 수 있는 능력‘
을 말한다. 따라서 성적 의사소통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스킨십을 요구하거나 강압적으로 행할 수 있고,
반대로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의 결정만을 기다리거나 일방적으로 지배당하여 성폭력, 원치 않은 임신, 낙태 등에 노출되기 쉽다.
- P301

동등한 관계에서 존중을 받는 것과 무언가 대접을 받고 보호받는 것은 전혀 다르다. 보미처럼 데이트할 때 돈도 내지 않고 남자가 모든 것을 해주고 대접받기를 바라면 이성관계의 균형이 깨진다. 사랑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여자가 남자의 헌신이나 물질을 요구한다면, 남자도 사랑의 증명을 위해 무언가를 요구하게 되는데 그것은 육체적인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훼손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성적자기결정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P311

"현실적으로 아이들에게 야동을 보지 마라, 하지 마라 교육은어렵습니다. 따라서 보지 마라, 하지 마라 교육보다는 봤을 때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저기서 말하는 거짓은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합니다. 그렇게 분별하는 눈이생기면 아이가 야동과 같은 음란물을 봤을 때 그대로 따라하고싶은 욕구나 무비판적으로 그 지식을 학습하는 것을 제어할 수있죠.-이충민 선생님"
성은 저절로 알게 되는 지식이 아니다. 배우고 익혀야 하며, 그 교육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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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은 진리를 검증하는 사유 방법인데, 헤겔이 보기에 기존의 형식 논리학은 ‘변화‘하는 세상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헤겔은 그동안 형식 논리학이 ‘모순‘을 단지 부정적인 것으로만 취급하면서, 모순 안에 존재하는 역동성과 변화 가능성을 놓쳤다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며, 모순이야말로 변화 발전의 원인이라고 본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헤겔은 기존의 형식 논리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변증법적 논리학을 제시했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모순‘에 의한 변화 발전이고요.
- P79

변증법의 모순을 다룰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대립물의 통일‘입니다. 모순된 요소가 사물이나 현상의 내부에 공존하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해바라기 씨앗 안에 형태를 유지하려는 요소와형태를 버리고 싹을 틔우려는 요소가 공존합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착함과 악함의 모순된 두 요소가 공존하고요. 앞서 변증법을설명하면서 부르주아혁명의 예를 들었는데, 만약 봉건 지주와 자본가가 서로 다른 별에서 산다면 갈등과 모순이 없었겠지요. 동일한 시공간에서 공존하기 때문에 모순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사물이나 현상의 내부에 한 가지 요소만 존재한다면 역동적인 운동과 변화발전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 P82

‘양적 변화의 질적 변화로의 이행의 법칙‘은 모순에 의한 변화와 발전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법칙입니다. 모순에 의한 변화 발전은 아무렇게나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양적 변화가 계속 축적되다가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질적 변화가일어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이야기지요.
부연 설명을 하자면, 형이상학적 세계관은 질적 변화를 부정하며 양적 변화만을 인정하는 세계관입니다. 질적 변화는 틀이 바뀌는 변화잖아요. 반면에 양적 변화는 틀이 바뀌지는 않지요. 예컨대 서양 중세사회는 국왕, 성직자, 귀족, 농도 등으로 이루어진계급사회였습니다. 이러한 계급구조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의해서 합리화되었고요. 이 구조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지배계급 입장에서는 사회의 ‘질적 변화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세상을 고정 불변하는 틀(신분제)‘로 파악하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지요. 하지만 신흥 자본가계급은 자신들의 부와 사회적 입지를 축적 양적 변화해나가는 가운데, 혁명의 순간에 이르러 봉건귀족들을 누르고 사회의 ‘질적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기존 신분제가 영원할 것이라는 봉건귀족들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이 잘못됐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역사적 사건이지요. 이렇듯 형이상학은 질적 변화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해, 변증법은 질적 변화를 인정합니다.
- P97

‘변증법적 부정‘이란 사물이나 현상의 변화 발전 과정에서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하는 상황을 일컫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변화 발전한다는 것은, 예전의 낡은 모습을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생명체의 진화를 생각해보세요. 거듭된 진화 과정을 통해 생명체는 과거와 다른 모습을띠게 되지요. 중세 봉건사회가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할 때도예전의 낡은 봉건 시스템이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대체됩니다. 낡은 것이 새로운 것에 의해서 ‘부정‘ 되는 것이지요. ‘정-반- 합의 과정에서 ‘정-반‘의 모순 관계가 갈등과 투쟁을 통해 새로운 ‘합으로 변화 발전하는 것이 ‘변증법적 부정입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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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보다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관계를 무기 삼아 심리적인 공격을 한다.
예들 들어 자기들끼리 피해자를 비웃거나, 말을 비비 꼬아서 상처를 주거나, 악의적인 내용의 쪽지나 문자를 보내거나, 뒷담화를 하거나, 보란 듯이 시선을 피하거나 또는 경멸의 눈빛을 보내거나, 근거 없는 나쁜 소문을 퍼트리거나, 노골적으로 친구집단에서 소외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은밀하고 철저하게 피해자의 심리를 공략하여 고통을 주기 때문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어른들이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목격하더라도 확실하지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몸에 상처를 남기지는 않지만 왕따 같은 관계를 무기로 삼는 괴롭힘은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피해자가 받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여자 아이들의 경우 겉으로 드러난 것과 다른 일이 뒤에서 벌어질 수 있음을 인지하고 항상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 P214

아이들은 저마다 조금씩 화를 내는 패턴이 달랐다. 그러나 모두 언젠가는 멈춘다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화는 결국 멈춘다는 것, 영원히 지속되는 감정이 아니라 언젠가 멈추는 감정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깨닫기를 바랐다. 언젠가 ‘멈추는‘ 감정이기에 얼마든지 ‘멈추게 할 수도‘ 있으며, 그 열쇠는 자신이 쥐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었다. 자신의 분노를 활활 불타오르게도 사그라들게도 할 수 있는 존재, 즉 자신의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존재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큼 강력한 분노조절 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 P221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언어를통해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제시한 감정 표현법은 ‘
나사·감·바 전달법‘ 이다. 이는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객관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의사소통법으로, ‘너는‘ 이 아니라 ‘나는‘ 이라고 시작하고, ‘판단‘ 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며, 당시 ‘감정‘ 을 표현하고, ‘바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대화법이다. ‘나 사 감 바‘는 이를 줄인 말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아이가 늦게 집에 들어와 엄마가 야단치는 상황이라고 하자.
"너, 도대체 지금까지 어디 있다 온 거야?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정신이 있어, 없어? 왜 전화도 안 해? 손이 없어 발이 없어?"
같은 상황을 나사 감 · 바로 바꾸면 이렇다.
"어디에 있었니? 네가 전화도 없이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아 엄마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알아? 엄마는 정말 걱정되고 속상했어."
  - P226

‘센‘ 야동을 통해 성과 사랑을 배운 아이들에게는 ‘센‘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음란물로 인해 성과 사랑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가진 아이들에게 정자와 난자가 어떻고, 자궁과 고환이 어떻고 하며 생물학적으로 얘기해봤자 잘 듣지도 않는다. 단도직입적이고 적나라하게 야동의 실체를 밝히고 성에 관한 아주 민감한 질문에 대해 직설적이고 정확하게 대답해줄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생식기는 그저 성행위를 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라 소중한 생명을 만드는 기관이기에 건강하게 관리하고 서로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 이제 자신의 몸은 언제든지 새 생명을 만들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지금까지 음란물을 통해 배운 성과 사랑은 연출되고 조작된 가짜라는 것 등을 배워 나갈 수 있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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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철학!

먹고사는 데 ‘철학‘ 따위는 필요 없다고들 합니다. 돈 벌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웬 철학이냐는 게지요. 게다가 구닥다리 불온 인물
‘마르크스‘까지 덤으로 붙어 있으면 말 다했지요. 헌책방에서나 구할 수 있는 1980년대 사상 서적도 아니고 말이에요..
- P4

철학은 세계관 世界理에 관한 학문입니다.
세계관이란 세계를 보는 관점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중세 서양 사람들은 기독교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았습니다. 모든 게 하느님의뜻이라고 믿었지요. 그러니 그림도 기독교 일색일 수밖에요. 십자군 전쟁도 하느님의 뜻이고 마녀사냥도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만사 오케이! 이것이 세계관, 즉 철학의 위력입니다.
지금은 중세가 아니니 괜찮을까요? 현대 자본주의는 ‘돈‘ 중심세계관이 대세입니다. 중세 서양에서는 하느님의 뜻인지 아닌지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돈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
더욱 놀라운 것은, 마치 중세 서양에서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을 당연시했듯 우리가 그런 자본주의 상황들을 당연시 한다는 점입니다. - P5

학생 : 아! 관념론 신화나 종교)이 기득권층의 이익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는 말씀이군요.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인정하면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무너지고 봉건 지배층의 입지도 타격을 받을 테니까,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관념론을 유지했다는 이야기네요. 갈릴레이가 종교계로부터 왜 그렇게 비난과 탄압을 받았는지 이해가 됩니다.
선생님 : 과학이 발전할수록 종교의 초라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정치적으로는 진보(과학)와 보수(종교)의 모습을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데에 반해 종교는 낡은 교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요. 갈릴레이의 지동설 재판이나 다윈의 진화론 논란, 낙태에 대한 과학과 종교의 대립 등은 그런 양상을 잘 보여줍니다. 종교계는 정치적으로도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 색채를 띠는 경우가 많지요. - P55

선생님 :버클리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내 밖에 객관적 실체로서 나무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나무를 연상시키는 감각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즉, 물질의 존재는 불확실하나 내가 느끼는 ‘관념‘만은 명백히 존재한다는 이야기지요. 이것이 ‘주관적 관념론‘ 입니다.
학생 : 그러면 혹시 ‘객관적 관념론‘도 있나요? 주관적인 게 있으면 객관적인 것도 쌍으로 존재할 것 같은데요?
성생님 : 타이밍 좋게 잘 질문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플라톤의 ‘이데아‘나 기독교의 ‘신‘의 경우, 우리 외부에 정신적 실체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지요? 이데아나 신이 세상의 근원이며본질이라고 주장하고요. 이것이 ‘객관적 관념론‘입니다.
버클리의 주장을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버클리에게는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것이라고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관념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버클리는 주관적 관념론을 통해 유물론의 토대인 물질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거지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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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가장 중요한 열쇠가 어른들의 진솔성과 진정성이다. 아이들은 권위 인물이 먼저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오픈하면 그것을 진솔성으로 받아들인다. 단 어른들의 자기 개방이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들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므로 자기 개방은 15세 인생수업을 이끄는 이들뿐만 아니라 모든부모와 교사가 익혀야 할 덕목이다. 부모와 교사가 먼저 자기 개방을 하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깊어질 뿐만 아니라 하나의 모델링이 되어 아이들도 자기 개방을 할 수 있게 된다. 개방은 개방을 낳고 치유적 관계가 된다.
- P138

지수처럼 자신에게 많은 장점이 있다고 옆에서 말해줘도 쉽게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장점을 장점으로 인식하지 못하며,
아예 자신의 장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넌 어떤 장점을 가졌니?"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장점은 나를 이루는 하나의 특성이므로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곧 자신을 보다 깊숙이 이해하는 일이며, 또한 어린아이에서 성숙한 성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수용하는 단계를 넘어 이를 토대로 ‘긍정적인 자아상‘ 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P142

그렇다면 왜 이 시기에긍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해야 할까? 긍정적인 자아상은 성숙한어른의 모습으로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핵심 요소인 ‘자존감‘ 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말 그대로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으로, 자기 자신에대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나타내는 자신에 대한 신념의 집합이다.
자존감은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생각과 나는 할 수 있어!" 라는 자신감이 어우러져 형성되는 인간 행동의 특성이다. 즉 자존감은 인간의 모든행동의 근원으로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자존감이다.
실제로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며 리더십이 뛰어나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공감능력 · 의사소통능력 문제해결능력 · 갈등조절능력 등이 뛰어나다고 한다. 자존감이 이처럼 인생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한 개인이 가진 재능과 자질, 잠재력 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 P144

15세를 비롯한 청소년기는 추상적인 자아 발달이 이루어지면서 부모로부터의 독립 욕구가 폭발하는 동시에 어린아이처럼 어딘가에 소속되어 의존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함께 존재하는 시기이다. 즉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충만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어정쩡한 상태로 이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는 친구집단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부모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죽을 것처럼 굴던 아이들이 친구와만 이야기를 하려 하고, 지금까지 자신을 돌보는 존재로 생각했던 부모를 자신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존재로 여기며 격렬하게 저항하고 반항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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