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떠나기 전 이미 학생들에게 현기영 선생의 소설 <순이삼촌>(1978)을 권해둔 터였는데, 4.3의 진실을 용기 있게 공론화한 이 기념비적인 소설을, 나도 제주의 버스 안에서 오랜만에 재독했다. 이 소설에서 ‘짓‘이라는 단어에 새삼 눈길이 머문것은 기행을 떠나기 직전 강의에서 마침 이청준의 <소문의 벽>(1971)을 토론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던 이들이 눈앞에 들이밀었다는 그 불에 대해 말해주는 또 한 편의 소설. 현기영의 제주에서 자행된 전짓불의 만행은 전쟁 발발 이후 이청준의 장흥에서도 행해졌던 것이어서, 이에 대해서라면 <소문의 벽> 쪽이 더 자세하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전짓불을 얼굴에다 내리비추며 어머니더러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때 얼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전짓불 뒤에 가려진 사람이 경찰대 사람인지 공비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지독한 복수를 당할 것이 뻔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상대방이 어느 쪽인지 정체를 모른 채 대답을 해야 할 사정이었다. 어머니의입장은 절망적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절망적인 순간의 기억을,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가려버린 전짓불에 대한공포를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소문의 벽》, 문학과지성사2011,219쪽)

이 전짓불이 끔찍한 것은 50퍼센트의 확률로 오답을 말했을경우에 가해질 폭력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폭력은 답안 채점 이후에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전짓불을 들이미는 순간 이미 시작되는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질문은 진실을 말하라고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체로 인간개개인의 진실이라는 것은 도무지 한두 마디로 말해질 수 없는것일 때가 많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진실은, 이렇게 시작되는 긴 이야기의 끝에서야 겨우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전깃불을 들고 있는 이들은 그 이야기를 다 들을생각이 없었으리라.
자신의 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규정되는 모든 존재들은 억울하다. 이 억울함이 벌써 폭력의 결과다. - P91

그래도 한 번 더 물었다. "그렇다고 학대받은 아이들은 아프고 슬프니까 따뜻하게 위로해줘야 한다는 내용의 노래만 불러야만 할까? 그것이 본의 아니게 그 아이들을 앞으로도 계속 아프고 슬픈 존재로 머무르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똑같은 시선으로만 보지 말고 다른 모습을 발견해주는 일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제제의 흥미로운 이중성을 노래한 아이유가 그랬듯이." 그러자 그 학생은 고요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 이중성 자체가 학대받은 아이들의 특징이에요." 이 말은 나를 흔들어놓았다. 그와 동시에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학대받은 아이들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르고, 그 학생은 안다는 것. - P96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예컨대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이 사고이고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이 사건이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고는 ‘처리‘하는 것이고 사건은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개가 어떤 날 어떤 사람을 물었다‘라는 평서문에서 끝나는 게 처리이고, ‘그는 도대체 왜 개를 물어야만 했을까?‘라는 의문문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게 해석이다. 요컨대 사고에서는 사실의 확인이 사건에서는 진실의 추출이 관건이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것. 사고가 일어나면 최선을 다해 되돌려야 하거니와 이를 ‘복구‘
라 한다. 그러나 사건에서는, 그것이 진정한 사건이라면, 진실의 압력 때문에 그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무리하게 되돌릴 경우 그것은 ‘퇴행‘이 되고 만다. - P115

어딘가에 단편소설은 삶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파열의 선(線)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썼었다. 삶의 어딘가에 금이 가고 있는데 인물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일이 되고 나서야 그들은 파열을 깨닫는다. 단편소설이란 이런것이다. 그런데 제임스 설터는 더 지독해서, 금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려주지 않은 채 고요하고 우아한 몇 페이지를 써나가다가, 갑자기, ‘돌이킬 수 있음‘이 ‘돌이킬 수 없음‘으로 전환되는 그 극적인 순간으로 독자를 데려가 발견과 파열을 동시에 목격하게 한다. 그리고 소설의 끝에는 ‘어젯밤‘에 생긴 일 덕분에 이제는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 인물들이 망연한 표정으로 독자를 바라본다. 그것은 삶이 진실에 베일 때 짓는 표이다. 나도 당신도 그런 시간 속에 정지 화면처럼 서 있었던이 있을 것이다. - P117

 그중 하나인 17살 소년 레오(작가에게 수용소 체험을 증언하고 작고한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를 모델로 한)의 눈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견딜 수 없는 참혹을 견뎌내야 했다. 그래서 이 소년은 살인적인 배고픔을 ‘배고픈천사‘와 친구가 된 것으로, 숨조차 쉴 수 없는 착란 상태를 가슴속의 ‘숨그네‘가 뛰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작가의 말대로 비극이시의 옷을 입었다. 한 대목만 옮긴다.

점호 시간에는 부동자세로 서서 나를 잊는 연습을 했다.
들숨과 날숨의 간격이 크지 않아야 했다. 고개를 들지 않고눈만 치켜떴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내 뼈를 걸어둘 만한 구름자락을 찾았다. 나를 잊고 하늘의 옷걸이를 찾으면 그것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구름이 없는 날도 잦았다. 그런 날 하늘은 탁 트인 물처럼 푸르기만 했다.
잿빛 구름이 하늘을 빈틈없이 뒤덮는 날도 잦았다.
구름이 계속 흘러 옷걸이가 멈춰 있지 않은 날도 잦았다.
추위가 내장을 찌르는 날도 잦았다.
그런 날은 하늘이 내 흰자위를 뒤집었고 점호는 그걸 다시 뒤집었다. 걸릴 곳이 없는 뼈들은 오로지 나한테만 걸렸다.(30~31쪽)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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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옴 씨의 벌레
La bère a maître Belhomme

르아브르의 승합마차가 크리크토를 떠나려는 참이었다. 말랑댕이 운영하는 코메르스 호텔 마당 안에서 여행객들이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기다렸다.
승합마차는 노란색이었다. 예전에는 바퀴도 노란색이었지만 진흙이쌓여 이제는 거의 잿빛이 되었다. 앞바퀴들은 아주 작았고, 뒷바퀴들은 높고 홀쭉했다. 그 마차에는 짐승의 배처럼 흉하게 부풀어 오른 트렁크가 실려 있었다. 첫눈에 봐도 눈에 띄는, 머리가 커다랗고 무릎이 둥글게 튀어나온 늙은 백마 세 마리가 강철 손잡이에 매인 채 구조와 외양이 괴상한 그 마차를 끌 예정이었다. 말들은 그 괴상한 마차 앞에서 벌써 잠들어 버린 것 같았다. - P618

마드무아젤 페를
Mademoiselle Perle

1
그날 저녁 내가 페를 양을 여왕으로 뽑을 생각을 한 것은 정말이지 희한한 일이었다.
나는 매년 오랜 친구인 샹탈 씨 집에 왕 뽑기 놀이를 하러 간다. 샹탈 씨는 내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이고, 나는 어릴 때부터 그 집에 드나들었다. 나는 과거에 그 집에 다닌 것처럼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이 세상에 샹탈 씨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계속 그 집에 다닐 것이다.
상탈 집안에는 특이한 면이 있었다. 파리에 살지만 그라스, 이브로 혹은 퐁타무송에 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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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문해 보았다. ‘내가 잘못한 걸까, 잘한 걸까?‘ 그들은 아문 상처 속에 탄알이 남아 있는 것처럼 마음속에 고통을 감추고 살았었다. 그러니 이제 두 사람은 더 행복해진 게 아닐까? 사랑의 고통을 다시 경험하기에는 너무 늦었지만, 감동 어린 마음으로 기억해 낼 시간은 아직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 봄날 저녁 무렵 두 사람이 함께 나무 밑을 지나다가, 그들 발밑에 쏟아지는 달빛에 동요되어 서로 껴안고 손을 맞잡으며 그동안 억눌러 온 잔인한 고통을 생각해 낼지도 모른다. 그 짧은 포옹은 그들이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했을 약간의 전율을 그들의 혈관 속에 전하고, 순식간에 되살아난 민첩하고 숭고한 황홀감을 그들에게 던져 줄 것이다. 그 황홀감은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도 맛보지 못할 행복감을 그 연인들에게 안겨 줄 것이다. - P630

산장
L‘auberge 

우호슈바렌바흐 산장은 하얀 산봉우리들을 이어 주는 바위투성이의 헐벗은 협곡과 빙하들 밑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은 오트잘프 지방의 모든 목조 숙박시설들과 마찬가지로 젬미 통행로를 따라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안식처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산장은 장 오제 가족이 사는 여섯 달 동안은 문을 열었다. 하지만 작은 골짜기가 눈으로 메워져 로에슈로 가는 내리막길을 이용할 수 없는 시기에는 문을 닫았다. 올해도 그 시기가 오면, 오제 가족은 떠나고 늙은 안내인 가스파르 아리와 젊은 안내인 울리히 쿤지, 그리고 덩치 큰 산악견 샘만 남기로 했다. - P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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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는 시대가 바뀌어도 자신의 아이디어가 계속 유효할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이것은 인류 역사상 진정한 혁명의 세기라고 할수 있는 18세기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정치적 소요가 들끓기 시작했다. 스미스가 그의 역작<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집필했을 때, 상인들은 영국 제도와 7대양을 누비며 전 방위적인 무역을 하고 있었고, 인구는 급격히 팽창했으며, 세계 각지에 공급할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소규모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교역이 활성화되면서영국과 유럽 대륙 전역에 은행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계몽주의시대the Enlightenment (16세기 말에서 18세기 후반에 걸쳐 유럽 전역에 일어난, 구시대의 묵은 사상을 타파하려던 하나의 혁신적 사조)에 가장 근본적인혁명을 초래한 것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다른 시각에서 보기 시작한 사상가들이었다. 스미스는 자신의 강의에서 "인간은 갈망하는 동물이다"라고 말했는데, 당시 시대 상황으로 볼 때 그리 놀랄만한 언급이나 통찰은 아니다. - P49

때는 바야흐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스미스는 농민, 수사(修士), 상인, 화주 등을 사회적 대변동을 일으키고 이끌어갈 주체로 호명한다. 더구나 스미스는 경제 정책은 특정 정파나 계급에 대한 편견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그를 특정 계급의 시녀니 위선자니 하며 비난할 수 없다. 비록 그가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을 역사적 필연으로 간주했지만, 사회가 그들의 농간에 순진하게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준엄하게 경고했다. 여하튼 1776년에 출간된 《국부론)은 경제학자들에게는 하나의 독립선언문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부론>의 원제는 국가의 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An Inquiry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보통 줄여서 《The Wealthof Nations》으로 부름)로 스미스가 이 책에서 무엇을 다루고자 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선, 스미스가 부를 창출하는 방법을 설명해줄 인과법칙을 찾아내는 데 특별히 주안점을 둔다는 것에 주목하자. 원제의 ‘원인‘이니 ‘연구‘니 하는 단어에서 엿볼 수 있듯이 스미스는 계몽주의전통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경제 행위자들economic actors‘를 이끄는 경제 법칙을 설명하고, 이들의 행동 법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부분에서 더욱 분명하게드러난다. 여기에서 ‘경제 행위자들‘은 다소 전문적인 용어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사람들 일반을 의미할 뿐이다.
스미스는 모든 사람들을 경제 행위자로 간주한다. 그리고 주인공 없는 연극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스미스에게 사람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누락된 경제학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 스미스는이탈리아의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o Machiavelli와 토머스 홉스의 전례를 따른다. 두 사람은 인간을 당위적인 존재가 아니라 현실에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직시했다. - P64

애덤 스미스가 인간의 본성에서 발견한 중요한 자연적인 충동 또는 ‘성향 propensities‘이 그의 분석 토대이자 고전파 경제학의 기초를 이룬다. 첫 번째, 스미스가 발견한 인간의 자연적 충동 또는 성향은 모든 인간은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인간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 다시 말해, 비록 공공연하게 들어 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를 줄곧따라다니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어떤 변화나 발전을 바라지 않을 만큼, 자신의 주어진 상황에 한 순간이라도 완전하고 완벽하게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두 번째. 스미스가 발견한 인간의 자연적 충동 또는 성향은 "인간의 본성이 갖는분명한 성향은 (...)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의 것과 교환하고, 교역하고, 거래하고자 하는 것이다. (...)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성향이다. "
스미스는 국가의 부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인간의 자연적인 충동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이기적인 인간들 또는 인간의 이기심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기심은 풍부한 천연자원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간의 자비나 이타심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다보면, 사람들은 바보가 되고, 국가는 빈곤해질 수있다. 스미스는 인간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무작정 타인의 자비만을 기대하는 것"은 헛된 바람이라고 주장한다.  - P65

스미스는 <국부론>의 한 유명한 구절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사회 전체가 번영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얼핏 들으면 다소 모순되게 들리지만, 잘 들어보면 정말 그럴듯한 말이다. 즉, "그는(...) 공익을 증진시키려는 의도도, 자신이 그것을 얼마나 증진시킬 수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 그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이며, 그리고 이런 경우에,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목표를 증진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린다." 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뚜렷한 상징이 된다.
그렇다고 스미스가 자신의 주장을 모두 이런 보이지 않는 유령에게 맡긴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적 조화를 이끌어내는 진정한 지휘자, 즉 자유시장을 상징한다. 20세기에 그 누구보다 자유시장 질서를 옹호했던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Friedrich von Hayek 는, 만일 시장 제도가 자연스럽게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칭송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시장 경쟁은 한 이기적인 인간이 아침에 일어나 창밖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원료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생산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이웃이 원하는 만큼 생산하고, 자신이 꿈꾸는 가격이 아니라 이웃이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가격에 판매한다. 즉, 자유시장에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사회 전체가 번성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 P67

핀 제조업에 관해 (...)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는 (...)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에 핀 20개는커녕 단 1개도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핀 제조업이 운영되는 방식을 보면, 작업 전체가 하나의 특수한 직업일뿐만 아니라 그것이 다수의 부문으로 나뉘어 있고, 그것이 또한 각각 특수한 직업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한 사람은 철사를 잡아 늘리고, 다른사람은 그것을 곧게 편다. 그러면 세 번째 사람은 그것을 자르고, 네 번째 사람은 끝을 뾰족하게 만들고, 다섯 번째 사람은 핀 머리를 붙이기 쉽게 다른 쪽 끝을 갈아낸다. 핀 머리를 만드는 데도 두세 가지 다른 공정이 필요하다. 핀 머리를 핀에 올려놓는 것과 이렇게 만들어진 핀을 표백하는 것도 각각 특수한 작업이다. 심지어 완성된 핀을 포장하는 것도 하나의 직업이다. 이런 식으로 핀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약 18개의 공정을거쳐야 한다. 어떤 공장에서는 이 세분화된 공정을 한 사람씩 각각 분담해서 하는곳이 있다. (...) 나는 이런 공정을 열 사람이 나누어서 하는 작은 공장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한 사람이 () 하루에 평균]4,800개의 핀을 생산했다. 그런데 만일 그들이 이 모든 공정을 혼자서 독자적으로 한다면, 그리고 핀 제조업에 대해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하루에 핀 20개는커녕 단 한 개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작업을 전문화하고 세분화함으로써 하루 생산량이 40만 퍼센트까지 폭증할 수 있다니! 스미스는 어떻게 이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잠든 사이에 우리를 대신해 일하는 보이지 않는 발이나 다른 공평한 귀신이라도 있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 스미스는 작업을 전문화하고 세분화함으로써 모든 생산이 40만 퍼센트 증가한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노동분업으로 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공언했다. 첫째, 노동자는 분업을 통해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숙련도를 높일 수 있다. 둘째, 노동자들의 작업 전환이 필요한 경우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작업 전환 과정에서 작업복, 공구, 또는 위치까지 바꿔야 할 경우에 더 효율적이다. 마지막으로 전문화된 노동자들은 매일 같은 작업을 반복함으로써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공구나기계를 발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미스는 분업화된 노동자들이 전문적인 기술자들engineers보다도 더 많은 발명을 내놓는다고 생각했다. - P73

문명화된 국가에서 가장 초라하게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나 협력 없이는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없다. (..) 온갖 사치품으로치장한 왕과 군주에 비해 그들의 생활은 매우 단출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럽의 왕과 군주의 생활이 근면하고 성실한 농부의 그것보다 훨씬 좋다고는 해도, 이 농부와 수많은 헐벗은 야만인들의 생명과자유를 좌지우지하는 아프리카의 많은 족장들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만18큼은 크지 않을 것이다. ‘‘

그의 추종자들과 마찬가지로, 스미스는 자유로운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위정자들과 아무 연고가 없는 사람들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중앙 계획경제 체제에서는 정치권력이 경제적 지위를 결정한다. 그래서 왕과 군주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 P84

비록 스미스가 부를 증가시키는 비밀을 밝혀냈다고 자신했지만, 그것이 보편타당한 진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노동분업에 몇 가지결함이 있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비용과 이익보다이 결함에 더 주위를 기울였다. 그의 첫사랑이 도덕 철학이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물리적 환경이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던스미스는 일관 작업이 노동자들의 지능과 정신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한평생을 몇 가지 단순 작업을 하며 보내는 사람은 비록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지만 (...) 자신의 지력(力)을 발휘하거나, 어려운 작업을 손쉽게 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고자 하는 등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 자연히 그는 머리를 쓰는 습관을 상실하게되고, 그리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지능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노동자들에게 온정적이었던 스미스는 노동분업에 따른 대중의 우둔화 경향을 치료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교육 public education 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교육을 받음으로써 육체노동을 하면서도정신을 수양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공교육은 매우 적은 비용으로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기본 교육을 받아야할 필요성을 이해시키고, 격려하며, 심지어는 강제할 수 있다" - P85

그럼, 이제 <국부론)을 요약해보자. 애덤 스미스는 노동을 경제성장의 주요 엔진으로 보았고, (1) 노동력 공급이 증가할 때, (2) 노동이 분화될 때, (3) 새로운 기계의 도입으로 인해 노동의 질이 상승할 때 경제성장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투자 아이디어와 발명이 계속해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유로운 교역이 허용되는 한, 경제는 꾸준히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으로 일반 국민들이 높은 생계 수준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태생의 경제학자폴 새뮤얼슨Paul S. Samuelson 은 스미스의 성장 이론을 현대 수리경제학의 수리 기법 mathematical techniques을 동원해 재조사했다. 밀턴 프리드먼과 걸핏하면 논쟁을 했던 그는 이 과정에서 만일 "계속해서 발명이이뤄진다면 (...) 이윤율과 실질 임금 수준은 평균적으로 생계 수준을 상회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새뮤얼슨은 "애덤 스미스가 오늘날 시행된 사후 검사를 성공적으로 통과한 것이 기쁘다"고 선언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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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 그 둘의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루하루 살게 하시고
순간순간 누리게 하시며
고통을 평화에 이르는 길로 받아들이게 하시옵소서."

- 라인홀드 니부어, <평온을 비는 기도>중.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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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안 영감
Toine

사방 10리외 안에 사는 사람들은 투른방의 술집 주인 앙투안을, ‘뚱보 투안‘이나 ‘내 코냑 투안‘ 혹은 ‘화주火酒‘라고도 불리는 투안 영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바다를 향해 내려가는 작은 골짜기 깊숙한 곳에 처박힌 그 작은마을을 유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마을은 구덩이와 나무들로 둘러싸인 노르망디 양식의 집 열 채로 이루어진 초라한 농촌 마을이었다.
집들은 투른방이라 불리는 굽이 뒤, 잡초와 가시양골담초로 덮인 골짜기 속에 웅크려 있었다. 폭풍우 치는 날 새들이 혹독하고 짠 바닷바람에 맞서 밭고랑 속에 몸을 숨기듯, 마치 그 골짜기 속에서 피난처를 찾은 것 같았다. 폭풍우 때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불처럼 주변을 부식시키고, 태우고, 겨울의 서리처럼 주변을 메마르게 하고 파괴한다. - P585

투안 할멈은 격분해서 다시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게 하나 딱 하나 있어...... 그 일은 일어나고 말 거야.
그 배가 곡식자루처럼 터져 버릴 거라니까......"
그러고는 술꾼들이 와 하고 웃는 가운데 화난 채로 나가 버렸다.
사실 투안 영감의 모습은 보기에도 놀라웠다. 몸이 너무나 두텁고, 뚱뚱하고, 빨갛고, 엄청나게 뚱뚱했던 것이다. 그는 유쾌하고 익살스러운외양으로 죽음의 술책에 놀림받는 거대한 남자였다. 그의 몸은 천천히 파괴적으로 변해 갔지만, 겉으로 볼 때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흰머리가 나고, 몸이 야위고, 주름살이 생기고, 점점 쇠약해져서 맙소사, 저 사람 엄청 변했군!"이라는 말을 듣는데 말이다. 그의 아내는 그를 살찌우는 데서, 그를 괴물처럼 만들고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서, 그를 울긋불긋하게 채색하는 데서, 그를 파괴하는 데서, 그에게 초인적인 외양을 부여하는 데서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가 부과한 몸의 왜곡이 그에게는 불길하고 딱한 것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것, 익살스러운 것, 재미있는 것이 되었다.
투안 할멈이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게 딱 하나 있어. 머지않아 그 일이일어날 거야" - P589

세례
Le Baptême

"박사님. 코냑을 좀 더 드세요"
"그러지요"
늙은 해군 군의관은 작은 술잔을 내밀고 금빛으로 반짝이는 예쁜 액체가 잔 가장자리를 따라 차오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높이로 잔을 들어 올려 램프 불빛에 비춰 본 뒤, 냄새를 맡고 몇 모금 마셨다. 오랫동안 혀 위에 굴리고 입천장을 적시며 음미했다.
그런 다음 말했다.
오, 매력적인 독이여! 유혹적인 살인자여, 달콤한 파괴자여! - P600

무분별
Imprudence

결혼 전 그들은 별에서 사는 것처럼 서로를 순결하게 사랑했다. 그들은 어느 해변에서 매혹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그는 그녀가 달콤하다고생각했다. 장미처럼 탐스러운 그녀가 엷은 양산을 쓰고 생기 있게 화장한 얼굴로 긴 수평선 위를 지나갔다. 파란 파도와 드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그는 금발의 날씬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싱그럽고 짭짤한 공기와 환하게 쏟아지는 햇빛, 파도가 일렁이는 드넓은 풍경 속에서 갓피어난 듯한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 영혼 속에, 혈관 속에 아련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을 일깨웠다. - P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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