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와이라가 두렵다. 와이라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더 가까이 있길 바라는지, 가능한 멀리 떨어지길 바라는지 알 길이 없다. 나를 핥고 싶은지 물고 싶은지, 그르렁대는 것이 행복해서 그런지 짜증 나서 그런지도 알 수 없다. 아직도와이라와 몇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을 때면 목숨을 거는 것처럼느껴진다. 그런데 해리도 그런다고?
"그래, 개무섭다." 해리가 어깨를 으쓱인다.
새미가 끄덕인다. "사실이야."
나는 눈을 가늘게 뜬다. 새미가 농담하는 줄 알았는데 톰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와이라는 그냥..... 잠만 자는걸." 와이라는 덤벼들지않는다. 와이라와 달리 어떤 고양이들은 사람에게 덤벼들거나 사람이 집중력을 잃는 순간에 같이 놀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와이라는 옆에 앉아 쓰다듬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정글을 지나 걸으려면 보디가드가 필요할 지경이다! 심지어 나를 만진적도 없다. 무릎을 베거나 손가락을 핥을 때를 제외하면 또 와이라는……
"하악거리잖아. 으르렁대기도 하고, 하악댈 때가 더 많아. 몇시간이고 처자는 걸 보면 머리가 돌아버리겠어. 그러다 또 하악거려서 사람들이 케이지로 서둘러 달려가게 만들지. 행복하게 있는법이 없어. 놀고 싶어 하지도 않고, 하나를 해주면 바로 다른 걸 원해. 모든 걸 무서워하면서도 미친년처럼 군단 말이야......"
"미친년이라니! 또 그렇게 부르기만 해봐!" 나의 얼굴이 곧바로 새빨개진다.
해리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는 뒤돌아서 삽을 집어 든다. 그리고 궁시렁거린다. "와이라 봉사자들이란"
나는 말없이 서 있다. 해리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다. 어떻게 감히? 와이라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결국 패디와 브라이언이 나를 떨어트려 놓는다.
"와이라는 미친년이 아니야!" 패디의 팔을 잡은 채 다시 소리친다. 패디가 내 어깨를 가만히 토닥인다. - P154

공사 작업을 하느라 볼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날마다 와이라는 더 차분해지고 나를 더 맘 편히 대한다. 왜 이렇게 느껴지는지는설명하기 어렵다. 미묘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막 와이라의 미묘함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시간의 길이에서 나를 야무지게 혀로 핥는 동작에서 그것이 느껴진다. 하악거리는 횟수가 줄고, 더 많이 산책하고, 러너를 벗어난 곳에서 자신감이 넘치고 더 다정해졌다. 그늘 속에서 혼자 있기보다 내 옆에 앉는 빈도가늘었고, 보이지도 않는 흙을 발에서 핥아내는 강박 행동이 줄었고, 더 많이 먹고, 꿈속에서도 들릴 만큼 익숙해진 낮은 아르릉 소리를내기보다 고요한 시간을 더 자주 보내게 되었다.
와이라가 나에게, 우리에게 너무 큰 정을 붙이는 것은 아닌지굳이 걱정하진 않으려 한다. 걱정하기 시작하면 언젠가 항공편과 비자와 돈 문제가 한꺼번에 몰아닥치리라는 사실을, 제인과 내가 둘 다 떠나리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테니까. 언젠가는 그럴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순간만 빼고는. - P172

물론 끝은 있다. 불이 산꼭대기를 붉게 밝히고 연기 냄새가 처음 풍겨온 지 3주쯤 지났을 거다. 바람이 방향을 바꿨다. 연기가 걷히고 불길이 이동한다. 어쩌면 다른 이들의 땅으로 갈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정말로 앞을 볼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고속도로처럼 넓게 판 길이 세상을 서로 다른 둘로 나누었다. 산에 근접한 세상은 아무렇게나 뻗어 나가는 회색과 검은색의 사막이다. 남은 것이라곤 드문드문한 나무들뿐이고, 나뭇가지는 음울한 종말의 생존자처럼 그을었다. 허공을 빙빙 도는독수리 떼, 등을 구부려 만찬을 즐기는 그 그림자 동물의 수는 점점줄어만 간다. 하지만 다른 쪽 세상은......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다. 내가 아는 그 정글, 무성하고 끝이 없고 불가해한 그 정글이 유리를통과하는 햇살처럼 안에서 밖으로 빛을 발한다. 예전과 다름을 눈치챌 만한 유일한 단서는 고요함밖에 없다. 독수리의 울음소리 말고는 거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개구리도 귀뚜라미도 없다. 원숭이도 올빼미도 나비도 없다. 전부 사라졌다. - P194

물은 그 안에 열을 가두고, 진득거리는 진흙은 나의 옷을 잡아붙든다. 이제는 질색인 연기 냄새가 아직도 바람을 타고 멀리서 풍겨온다. 그래도 냄새의 대부분은 물과 흙 냄새, 희미하게 톡 쏘는 라벤더 향이다. 귀가 뾰족한 쥐처럼 자그마한 노란색 다람쥐원숭이떼가 아마존의 키 큰 나무로 손꼽히는 케이폭나무 꼭대기에서 우리를 지켜본다. 고색창연한 가지들을 날개처럼 활짝 펼쳤다.
어쩌면 몇 주간 케이지에 홀로 있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어쩌면 통제력을 잃어서 그랬을지도, 열기와 불과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와이라의 본능이 물로 뛰어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와이라가 너무도 두려워하던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다. 수년간 이곳에 머물며 호숫가에 몇 시간이고앉아 있으면서도 하지 못했던 일. 와이라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목이 메여 침을 삼키기가 어렵다. 보이는 것은 오직 물방울과 석호진흙이 튀고 햇살에 갈색을 띤 와이라의 뒤통수와 반들반들한 회색귀 끝, 휙휙 움직이며 물을 가르는 꼬리 끝의 짙은 털 뭉치가 전부다. 와이라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전부 부풀어 오른다. 뜻밖에 나를 완전히 때려눕히는 그 모든 감정들. 나는 여지없이 망가진다. 몸이 부서지고 마음도 산산조각 난다. 이게 사랑일까? 모르겠다. 확실한건,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 P198

나는 목을 쭉 빼고 두리번거리며 트럭에 실린 나무를 세어본다. 다섯 그루. 저마다 폭이 내 키만큼 크다. 머리와 발이 잘린 거인, 하지만 여전히 속박할 필요가 있다는 듯 묵직한 사슬로 바닥에 묶어두었다. 트럭이 또 다른 구덩이를 쿵 하고 지나갈 때 나무가 튀어오르는 모습을, 나무들이 서로 이리저리 거칠게 떠밀리는 모습을지켜본다. 작년에는 벌목 트럭이 기껏해야 한 주에 한 번꼴로 지나가곤 했다. 이제는 상공을 날아가는 야생 금강앵무 떼처럼 수두룩하다. 도로의 구덩이를 키운 또 다른 범인일 것이다.
학교 선생님이 앵무새처럼 반복해 강조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1분마다 풋볼 경기장 세 개 넓이의 숲이 사라진단다, 얘들아! 나무를 심어야 해! 아마존 보호 자선사업 기금 마련을 위한 케이크를 판매한단다! 나는 남아메리카 전역에 바다처럼 넓게 퍼진 소 방목장을 보고 육식을 중단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아이스크림을 마다하는 것이 케이크 판매처럼헛된 일로 느껴진다. 산불의 연기 냄새가 또다시 풍겨오는 것만 같다. 그 냄새를 맡으면 정글이 산 채로 잡아먹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개미부터 원숭이, 거대한 쥐, 거미, 뱀, 버섯, 뿌리, 사람까지,, 그 모든 것이 정글과 함께 잡아먹힌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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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얼굴색이 피오 똥처럼 변한다. 핑계를 대고 급히 자리를뜬다. 푸세식 변기에 혼자 있을 때에만 호흡이 침착해진다. 여기서만 진정할 수 있다니! 말도 안 돼. 가장 안전하게 느껴지는 곳이라는 이유로 필요한 시간보다 오래 푸세식 변기에 앉아 있기 시작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벌레와 구더기와 나방이 종이접기 하듯 서로 포개져 있는데! 기름진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손이 덜덜 떨린다. 평소의 대처방식, 그러니까 나는 멋져 보이고, 웃고 있고, 여기에 적합한 사람이고, 괜찮다고 다짐하는 것이 더러운 물집투성이 손가락 주위에서 부서진다. 노랗고 검은 거미가 서까래에 친 거대한 거미집에 매달려 있다. 첫날 밤에 보고 소리를 질렀던 바로 그 거미다. 나는 거미에게 해그리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해그리드가 나를 바라본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한 어두운 눈. 그 앞에서는 나의 미소가진짜 미소로 보이지 않을 것만 같다. 거미가 나의 마음속 어두운 곳까지, 온갖 안 좋은 것들을 꽁꽁 숨겨둔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까? 내 표면에 드러난 것들은, 차와 자파케이크(초콜릿이 발린 동그란 모양의 영국 과자 - 옮긴이)가 먹고 싶어, 날씨는 어때, 같은 게 전부다.
하지만 속으로는 엿 같은 ‘운명의 산(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화산. 주인공 프로도는 그의 동료 샘와이즈 감지와 함께 절대반지를 파괴하러 ‘운명의 산‘으로 여정을 떠난다-옮긴이)‘을 오르고 있다. 와이라도 나의 그런 모습을 간파하고 있을까? 그래서 내가 자기 주변에 있지 않기를 바라는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속상함에 눈물이 난다.
화장실 바깥이 숨 막힐 듯 고요해서 입을 막고 소리를 죽인다. 그동안 가본 여느 장소와 달리 정글은 실제로 모든 것을 듣고 있다. 이 모든 소음에도 개의치 않는다. 수 킬로미터에 걸쳐 존재하는 생명체, 나무와 식물과 버섯, 암석과 대지에도 개의치 않는다. 지금껏 나 자신이 이토록 연약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정글은 듣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정글이 싫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P86

따뜻한 물로 샤워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참이다. 쿠션이 깔린 의자에 앉을 그날을, 단 몇 초라도 벌레에 물리지 않고 서 있을 그날을……. 하지만 나뭇가지에 매달린 야생 꼬리감는 원숭이가 태평하게 망고를 먹으며 구경하는 동안, 해리가 자기보다 큰 돼지에게 뽀뽀를 퍼붓는 모습에는 무언가가 있다. 숲 천장의 틈 사이로 햇살이 반짝거리며 진흙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모습에도 마찬가지다. 나의 마음 한구석을 살짝이나마 여는 것. 내가 갈망하는 것. 예전에는 그 존재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것.
나는 고개를 젓는다. 어느 모로 보나 이 남자는 형편없는 멍청이에 불과하다. 이 돼지는 오래된 죽과 똥으로 뒤범벅이다. 그리고 와이라는... 와이라는 그냥 화만 내는 양아치일 뿐이다. 나는 마음을 강하게 먹으며 서둘러 숙소로 돌아간다. 함께 마음껏 뒹굴고 있는 해리와 판치타를 뒤로한 채. - P98

"나를 핥고 있어!" 목소리를 낮춰 감탄한다.
문 반대편에서 무릎을 감싼 채 쭈그려 앉아 있던 제인이 웃
"너무 들뜨지는 마. 소금기 때문일 거니까."
와이라는 도도하게 이마를 들이밀어 나의 팔을 뒤집더니 다른쪽까지 핥기 시작한다. 하마터면, 정말이지 하마터면 와이라는 케이지 안에, 나는 바깥에 있다는 것조차 망각할 뻔했다. 마치 정반대로 느껴진다. 와이라가 바깥 정글에, 우리가 케이지 안에 있는 것처럼. 정글이 암녹색을 드리워 와이라를 감싼다. 와이라의 혀는 거칠다. 살갗이 벗겨질 정도다. 생각보다 아프지만, 그만두지 않으면 좋ㄱ다. 지금 와이라의 낮은 소리는 지칠 대로 지친, 자포자기한 나의 귀에는 그가 나를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들린다. 와이라는 내 팔 쪽으로 머리를 숙이고 앞발 한쪽을 철조망 가장자리에 편안히 댄 채로균형을 잡는다. 할짝, 할짝, 할짝, 살갗이 벌게진다. 몸의 나머지 부분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오직 와이라와 접촉한 이 좁은 살갗만이 감각의 대상이 된다. 그저 그 부분만이 나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 이를테면 놓친 버스, 시내를 구경할 기회, 이전의 생활 모두가 흐릿해져간다. 와이라는 나를 케이지가 실재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간다. 처음 만난 날 하악거리던 고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똑같이 생겼지만, 결코 똑같지 않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다. 워낙 활짝 웃고 있어서 또다시 우스꽝스러운 순간에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와이라, 고마워." - P108

나의 숨이 와이라에 발맞춰 느려진다. 그는 할기를 끝냈다. 전장한 두 뒷발은 진흙 속에 오그라져 있다. 한쪽 앞발은 여전히 내바지 끝에 놓여 있다. 발톱을 집어넣고 발가락에 힘을 뺐다. 다른 쪽 앞발은 턱을 받치고 있다. 그의 눈이 서서히 감기고, 숨이 깊어간다. 가슴이 오르내리고, 속눈썹이 흔들린다. 믿기 힘들지만, 갑자기와이라가 연약한 존재로 보인다. 어안이 벙벙하다. 우리가 없는 매일 밤마다 케이지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우리를 만날 시간을 기대하고 있을까. 아니면 불안해할까. 또 현기증이 난다. 몸이 기우는 것같다. 아드레날린 때문이려나. 너무 오랫동안 이곳을 맴돌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껏 앞으로 위로 어딘가로 움직여야 했던 압박과 소리와 빛 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방향을 잃은 삶에 손이 떨리고 사지가 피곤에 찌들었다. 지금도 역시 피곤하긴 하지만 무언가가 다르다. 오랜 시간 동안 처음으로, 와이라의 차분한 숨소리와 나를 둘러싼 정글의 편안한 심장 박동을 들으며 몸이 떠오르는듯하다. 내 몸이 허공에서 멈춘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이런 장소에있다니. 더군다나 퓨마와 함께라니. 나는 와이라가 나에게 보이고싶어하는 모습만큼 용감하거나 대담하진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깨닫고 있다. - P113

"파라미, 로스 아니말레스 레스 카타도스 손 코모 라스 세보야스(나한테는 구조된 동물이 양파처럼 느껴져요)."
밀라는 나를 바라보며 말뜻을 이해했는지 확인한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안절부절못할 뿐이다. 밀라는 한숨을 쉬고,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천천히 말한다. 구조된 동물은 양파와 같다. 불안의 껍질을 힘겹게 한 꺼풀 벗겨내면 예기치 못한 다른 껍질이 나오고, 전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껍질이 그 아래에 숨어 있다. 우리모두는 이곳 동물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기에, 전부 제각기 엉망이고 망가져 있기에, 우리 또한 양파나 다름없다.
"이 에소 에스로 케 아세 엘 파르케." 밀라가 미소를 머금는다. "바로 그게 파르케가 하는 일이죠. 그렇지 않나요? 우리의 껍질을벗겨내는 것." 그가 나의 가슴팍을 툭툭 두드리고 말을 이어간다. "당신과 나 말이에요. 한 꺼풀씩, 한 꺼풀씩. 그러면서 우리 자신에대해, 우리가 돌보는 동물들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죠. 카다디아, 매일매일. 훈토스, 함께. 함께하는 거예요. 포르 에소 메 에나모레 데 에스테 루가르, 그래서 제가 이곳을 좋아하는 거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결코 알 수 없어요." - P118

야생 원숭이들의 고함이 차츰 잦아든다. 원숭이들의 우두머리는 무리를 이끌고 캠프 근처로 와서 코코와 파우스티노를 비웃곤한다. 우두머리는 덩치 큰 수컷 원숭이인데, 그래 봤자 코코가 몸집이 더 크다. 털의 붉은빛도 더 짙고 턱수염도 더 길고 두껍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만일 상황이 달랐더라면, 숲이 벌목되지 않았더라면, 나와 같은 관광객이 이색 애완동물의 수요를 부채질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존재를 억누르고 짓밟는 행태가 정상이 아닌 세상이었더라면, 코코는 자신의 힘과 열정과 관대함을 앞세워 무리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두운 실루엣의 밀라가 나타난 뒤에야 코코가 움직인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진다. 하늘은 분홍색에서 금빛 붉은색으로 변하고, 그에 따라 숲 꼭대기가 구릿빛으로 물든다. 밀라가 우리에게 천천히 걸어온다. 카우보이모자가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다. 밀라가 주머니에서 치즈 한 조각을 꺼낸다. 코코가 밀라의 품속으로 들어가 치즈를 입안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 차마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듯 얼굴을 가슴 속에 파묻는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동물은 그저 동물일 뿐이라 여겼던 과거의 삶을 떠올린다. 그랬던 내가 싫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내가 동물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 P132

고양이들은 주로 봉사자들과 헤엄을 치며 시간을 보낸다. 야생에서도 헤엄을 칠 것이다. 물속을 응시하는 와이라를 보면 이따금 그가 용기를 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이해한다. 허세 부리기, 하악거리기, 으르렁대기. 전부 그의 대처 방식이다. 미소 짓기와 괜찮은 척하기가 나의 대처 방식인 것처럼. 내가 나뭇가지를 밟자 와이라가 1미터가량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제 그림자조차 무서워하는 퓨마다. 야생을 두려워하는 퓨마.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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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라가 발걸음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본다. 몇 발짝 뒤에 있던 오스카도 걸음을 멈춘다. 와이라의 머리 위에 청설모 한 마리가나타났다.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빠른 청설모. 털색은 안전 고깔과 비슷하고, 꼬리는 지난주에 미용실에 갔다 온 듯 풍성하다. 대나무 줄기에 앉아 갈색 열매를 앞발로 꼭 붙들고 있다. 청설모도 와이라의 존재를 감지했다. 나에게도 보일 만큼 깜짝 놀란 모양새다.
철저한 공포, 일말의 희망. 꼼짝 않는다면, 정말로 꼼짝 않는다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리란 희망. 하지만 와이라의 꼬리 끝은 집고양이처럼 돌연 홱 움직인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반짝이는 물고기 장난감이나 깃털 혹은 양말, 아니면 그 어떤 것이라도 끝장나기 일보 직전이라는 뜻이다. 나는 힘없이 청설모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해 원한다. 뛰어! 와이라의 입에서 군침이 뚝뚝 떨어진다. 그의 얼굴이 위쪽을 향한 탓에, 어둠 속에 사는 짐승처럼 눈이 더 큼지막해 보인다. 눈앞의 사건을 전부 담아낼 작정으로 눈이 점점 더커진다. 케이지에 있던 와이라는 작아 보이기만 했던 게 아니었다.
짓눌린 것처럼 보였다는 게 맞다. 밖에서 보니, 그는 자신이 채워야했던 공간을 이제야 채운다는 듯 부풀어 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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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한 시카고 대학 출신의 통화주의 경제학자들을 시카고학파라고 한다. 시카고학파는 미국의 전통적인 하버드학파와 더불어 현대 주류 경제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시카고학파의 특징은 첫째, 인간의 경제 행위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분석 도구로서 가격 이론을 신봉하고, 둘째, 자유시장경제가 자원 배분은 물론 소득 배분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있다. 시카고학파는 케인스 경제학의 입장을 계승한 신경제학new economics에 대립해 생산, 고용, 가격 등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으로서 통화공급량을 중시한다. 이 같은 시카고학파의 주장은 미국의 닉슨 행정부에 의해 처음으로경제 정책에 반영되었고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레이거노믹스의 온상이 되는 등  그 영향력을 더해 가고 있다.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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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남김없이 이름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들이 나의 앞길을 가로질러서, 혹은 내 피부 위에서 헤엄치고 날아다니고 뛰어다니고 기어다니는 동안, 밤중에 내게 살며시다가오거나 한낮에 나와 얼마간 나란히 동행하는 동안,
그들이 얼마나 친근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들의 이름이 나와 그들 사이에 뚜렷한 장벽처럼 가로놓였을 때보다 그들이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너무도 가까워서 그들을 향한 나의 두려움과 나를 향한 그들의 두려움이 하나의 두려움이 되었다. 비늘과 피부와 깃털과 털을 서로 만지고 문지르고 쓰다듬고, 서로 피와 살을 맛보고, 서로 몸을 녹이길 바라는 욕구, 많은 이들이 느꼈던 그 끌림은이제 두려움과 함께 모두 하나였다. 누가 사냥꾼이고 사냥감인지, 누가 포식자고 먹잇감인지 알 수 없었다.
-어슐러 K. 르 귄, <이름을 거부한 여자 She Unnames Them>

지금은 2007년, 내 나이는 스물넷. 조그맣진 않지만 크지도 않은 체구. 170센티미터쯤 되는 키에 비뚤어진 코. 가슴 무게 때문에 허리가 쑤시고 발목이 약해 발걸음이 늘어진다. 나는 방황하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나는 일생을 거의 홀로 지냈다. 불안할 때면 뭔가를 먹고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자주 불안에 빠진다. 엄마와 아빠는두 분 다 심리학자고, ‘성공한 삶을 살았다. 나는 영국에서 태어나미술사 전공으로 대학원을 졸업했다. 원숭이도 사람처럼 농담을 던지거나 우울해질 수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는 사람이다. 퓨마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링가, 아키(아가씨, 여기예요)!"
곧 부서질 듯한 버스에 앉아 덜컹거리며 나아가던 참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섯 시간쯤? 금이 간 창문에 맺힌 물방울을 소매로 문지르고 기다란 자국 사이로 밖을 내다본다. 온통 정글뿐이다.
"¿엔 세리오 (여기라고요)?" 목소리에 두려움이 배어 나온다. - P19

와이라는 그늘과 색이 비슷해서 언뜻 봐선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허공을 가르는 긴 꼬리는 단번에 알아보겠다.
"올라, 와이라." 나는 소리를 낮춘다.
뚜렷한 것이라곤 와이라의 두 눈뿐이다. 그의 눈은 카누 노잎이 달린 식물의 꼭대기처럼 초록색이다. 코는 노을의 끝자락처럼 분홍빛이 감돈다. 와이라가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침묵의 순간. 그 순간이 너무 길어서 아예 움직이지 않으려나 생각하던 차에 와이라가 단 꼭대기로 펄쩍 뛰어올라 마치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는 듯 우아하게 착지한다. 나는 경외감에 뒤로 물러난다.
와이라가 어슬렁거리며 우리를 향해 걸어온다. 나는 주눅이들어 가만히 바라본다. 그때 제인이 철조망 안으로 살며시 두 손을밀어 넣는다. 비명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나는 또다시 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반경 80킬로미터 내에는 의사도 없다고! 정글을 뚫고 캠프로 돌아가서 수의사가 제인의 살갗을 꿰매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모든 장면이 와이라가 케이지를 가로지르는 찰나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철조망으로 다가온 와이라가 무언가를 핥기 시작한다. 제인의 손을 핥고 있다. 제인의 표정은 마치 다른 세계로 가 있는 것 같다. 소매를 걷어올리자 퓨마가 제인의 손에 머리를 들이민다.
이제야 제인이 무얼 하려 했는지 알겠다. 나는 퓨마를 마운틴라이언이라고 부르곤 했다. 다른 이름들도 머릿속 깊은 곳에서 표면 위로 떠오른다. 쿠거, 팬서……. 더는 모르겠다. 이 모든 이름이 같은 동물을 가리키는 것인지 전혀 몰랐다. 이 깨달음을 큰소리로 말해볼까 했지만 이내 그러지 않기로 한다. 할짝대는 소리만 들려온다. 깔깔한 사포로 문대는 듯 거친 소리.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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