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와이라가 두렵다. 와이라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더 가까이 있길 바라는지, 가능한 멀리 떨어지길 바라는지 알 길이 없다. 나를 핥고 싶은지 물고 싶은지, 그르렁대는 것이 행복해서 그런지 짜증 나서 그런지도 알 수 없다. 아직도와이라와 몇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을 때면 목숨을 거는 것처럼느껴진다. 그런데 해리도 그런다고? "그래, 개무섭다." 해리가 어깨를 으쓱인다. 새미가 끄덕인다. "사실이야." 나는 눈을 가늘게 뜬다. 새미가 농담하는 줄 알았는데 톰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와이라는 그냥..... 잠만 자는걸." 와이라는 덤벼들지않는다. 와이라와 달리 어떤 고양이들은 사람에게 덤벼들거나 사람이 집중력을 잃는 순간에 같이 놀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와이라는 옆에 앉아 쓰다듬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정글을 지나 걸으려면 보디가드가 필요할 지경이다! 심지어 나를 만진적도 없다. 무릎을 베거나 손가락을 핥을 때를 제외하면 또 와이라는…… "하악거리잖아. 으르렁대기도 하고, 하악댈 때가 더 많아. 몇시간이고 처자는 걸 보면 머리가 돌아버리겠어. 그러다 또 하악거려서 사람들이 케이지로 서둘러 달려가게 만들지. 행복하게 있는법이 없어. 놀고 싶어 하지도 않고, 하나를 해주면 바로 다른 걸 원해. 모든 걸 무서워하면서도 미친년처럼 군단 말이야......" "미친년이라니! 또 그렇게 부르기만 해봐!" 나의 얼굴이 곧바로 새빨개진다. 해리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는 뒤돌아서 삽을 집어 든다. 그리고 궁시렁거린다. "와이라 봉사자들이란" 나는 말없이 서 있다. 해리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다. 어떻게 감히? 와이라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결국 패디와 브라이언이 나를 떨어트려 놓는다. "와이라는 미친년이 아니야!" 패디의 팔을 잡은 채 다시 소리친다. 패디가 내 어깨를 가만히 토닥인다. - P154
공사 작업을 하느라 볼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날마다 와이라는 더 차분해지고 나를 더 맘 편히 대한다. 왜 이렇게 느껴지는지는설명하기 어렵다. 미묘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막 와이라의 미묘함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시간의 길이에서 나를 야무지게 혀로 핥는 동작에서 그것이 느껴진다. 하악거리는 횟수가 줄고, 더 많이 산책하고, 러너를 벗어난 곳에서 자신감이 넘치고 더 다정해졌다. 그늘 속에서 혼자 있기보다 내 옆에 앉는 빈도가늘었고, 보이지도 않는 흙을 발에서 핥아내는 강박 행동이 줄었고, 더 많이 먹고, 꿈속에서도 들릴 만큼 익숙해진 낮은 아르릉 소리를내기보다 고요한 시간을 더 자주 보내게 되었다. 와이라가 나에게, 우리에게 너무 큰 정을 붙이는 것은 아닌지굳이 걱정하진 않으려 한다. 걱정하기 시작하면 언젠가 항공편과 비자와 돈 문제가 한꺼번에 몰아닥치리라는 사실을, 제인과 내가 둘 다 떠나리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테니까. 언젠가는 그럴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순간만 빼고는. - P172
물론 끝은 있다. 불이 산꼭대기를 붉게 밝히고 연기 냄새가 처음 풍겨온 지 3주쯤 지났을 거다. 바람이 방향을 바꿨다. 연기가 걷히고 불길이 이동한다. 어쩌면 다른 이들의 땅으로 갈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정말로 앞을 볼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고속도로처럼 넓게 판 길이 세상을 서로 다른 둘로 나누었다. 산에 근접한 세상은 아무렇게나 뻗어 나가는 회색과 검은색의 사막이다. 남은 것이라곤 드문드문한 나무들뿐이고, 나뭇가지는 음울한 종말의 생존자처럼 그을었다. 허공을 빙빙 도는독수리 떼, 등을 구부려 만찬을 즐기는 그 그림자 동물의 수는 점점줄어만 간다. 하지만 다른 쪽 세상은......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다. 내가 아는 그 정글, 무성하고 끝이 없고 불가해한 그 정글이 유리를통과하는 햇살처럼 안에서 밖으로 빛을 발한다. 예전과 다름을 눈치챌 만한 유일한 단서는 고요함밖에 없다. 독수리의 울음소리 말고는 거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개구리도 귀뚜라미도 없다. 원숭이도 올빼미도 나비도 없다. 전부 사라졌다. - P194
물은 그 안에 열을 가두고, 진득거리는 진흙은 나의 옷을 잡아붙든다. 이제는 질색인 연기 냄새가 아직도 바람을 타고 멀리서 풍겨온다. 그래도 냄새의 대부분은 물과 흙 냄새, 희미하게 톡 쏘는 라벤더 향이다. 귀가 뾰족한 쥐처럼 자그마한 노란색 다람쥐원숭이떼가 아마존의 키 큰 나무로 손꼽히는 케이폭나무 꼭대기에서 우리를 지켜본다. 고색창연한 가지들을 날개처럼 활짝 펼쳤다. 어쩌면 몇 주간 케이지에 홀로 있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어쩌면 통제력을 잃어서 그랬을지도, 열기와 불과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와이라의 본능이 물로 뛰어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와이라가 너무도 두려워하던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다. 수년간 이곳에 머물며 호숫가에 몇 시간이고앉아 있으면서도 하지 못했던 일. 와이라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목이 메여 침을 삼키기가 어렵다. 보이는 것은 오직 물방울과 석호진흙이 튀고 햇살에 갈색을 띤 와이라의 뒤통수와 반들반들한 회색귀 끝, 휙휙 움직이며 물을 가르는 꼬리 끝의 짙은 털 뭉치가 전부다. 와이라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전부 부풀어 오른다. 뜻밖에 나를 완전히 때려눕히는 그 모든 감정들. 나는 여지없이 망가진다. 몸이 부서지고 마음도 산산조각 난다. 이게 사랑일까? 모르겠다. 확실한건,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 P198
나는 목을 쭉 빼고 두리번거리며 트럭에 실린 나무를 세어본다. 다섯 그루. 저마다 폭이 내 키만큼 크다. 머리와 발이 잘린 거인, 하지만 여전히 속박할 필요가 있다는 듯 묵직한 사슬로 바닥에 묶어두었다. 트럭이 또 다른 구덩이를 쿵 하고 지나갈 때 나무가 튀어오르는 모습을, 나무들이 서로 이리저리 거칠게 떠밀리는 모습을지켜본다. 작년에는 벌목 트럭이 기껏해야 한 주에 한 번꼴로 지나가곤 했다. 이제는 상공을 날아가는 야생 금강앵무 떼처럼 수두룩하다. 도로의 구덩이를 키운 또 다른 범인일 것이다. 학교 선생님이 앵무새처럼 반복해 강조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1분마다 풋볼 경기장 세 개 넓이의 숲이 사라진단다, 얘들아! 나무를 심어야 해! 아마존 보호 자선사업 기금 마련을 위한 케이크를 판매한단다! 나는 남아메리카 전역에 바다처럼 넓게 퍼진 소 방목장을 보고 육식을 중단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아이스크림을 마다하는 것이 케이크 판매처럼헛된 일로 느껴진다. 산불의 연기 냄새가 또다시 풍겨오는 것만 같다. 그 냄새를 맡으면 정글이 산 채로 잡아먹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개미부터 원숭이, 거대한 쥐, 거미, 뱀, 버섯, 뿌리, 사람까지,, 그 모든 것이 정글과 함께 잡아먹힌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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