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미술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무장한 것은 시대적인 상황 때문이다. 종교개혁과 로마의 약탈로 큰 타격을 입은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를 연다. 카를로 보로메오추기경, 교황 식스토 5세의 노력으로 로마 가톨릭은 다시 예전의 권위를 회복한다. 반종교개혁을 위해 미술과 학문을 통제하는 상황에서도 과학과 진리는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 P89

로마의 뒷골목을 그린 화가라고요?

바로 카라바조입니다. 카라바조는 어둠의 화가로 불립니다. 그의 그림 속에 로마의 어두운 뒷골목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카라바조는 로마의 깊은 그림자로부터 영감을 얻어 미술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선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뒷골목을 그려 유명해졌다니 흥미롭네요.

먼저 그의 생애를 잠시 짚어볼까요? 카라바조의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메리시입니다.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요?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와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향 이름을 빌려와 그를 카라바조Caravaggio라고 불렀습니다. 카라바조는 밀라노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 P96

무엇보다도 카라바조는 공간을 어둡게 하면서도 강한 빛을 집어넣어 이야기를 이어지게 합니다. 연극의 조명처럼 빛을 활용해서 시선을 집중시키죠. 이탈리아어로 어둠은 테네브라Tenebra입니다. 카라바조가 보여주는 명암의 극적인 대조효과를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고 부릅니다.
카라바조는 테네브리즘의 창시자인 겁니다.
그림 속 빛이 마태오를 비추면서 성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테네브리즘은 신성한 분위기뿐만 아니라 무겁거나 폭력적인 주제와 어우러질 때도 매력을 발휘합니다. - P114

아무래도 그리는 데 공을 들여서일까요?

맞습니다. 건축적 회화라고 불리는 프레스코 벽화는 이젤화보다 규모가훨씬 크고 다루는 주제도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프레스코 벽화를 기준으로 화가의 역량을 판가름했던 겁니다. 안니발레 카라치는 방금 본 그림처럼 프레스코 벽화를 그려 명성을 얻었던 반면, 카라바조는 주로 이젤화를그렸습니다.

카라바조가 그린 콘타렐리 예배당 그림은 벽화가 아니었나요?

콘타렐리 예배당 그림은 캔버스에 그려 벽에 붙여서 정통 벽화로 볼 수 없습니다. 카라치의 작품처럼 프레스코 기법으로 거대한 건축 공간에 여러이야기를 펼쳐 놓는 그림이 진정한 벽화입니다.
카라바조가 강렬한 회화 세계를 보여주었음에도 주로 이젤화를 그려 사람들은 그의 영향력을 한정된 범위에서만 인정했습니다. 반면 벽화를 그했던 안니발레 카라치는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와 비교되는 전설적인 화가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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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내가 대답했지. "황홀한 9번."
그래, 바로 9번이었지, 여러분.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떠나갔어, 내가 누워 눈깔을 감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동안에말이야. "좋다. 좋아, 착한 아이구나." 장관 놈이 내 어깨짝을두드리고는 나갔지. 혼자 남아 있던 어떤 놈이 이렇게 부탁하더군. "여기 서명하세요." 서명하려고 눈을 떴지만, 여러분, 내가 뭘 서명하는지도 몰랐고 신경도 쓰지 않았지. 그러고는 혼자 남겨져 루트비히 판의 9번을 들었지.
아, 그건 황홀했고 맛깔스러웠어. 3악장인 스케르초 부분에 이르렀을 때, 나는 아주 날렵하고 신비한 발길로 뛰어다니면서 멱따는 면도칼로 신음하는 이 세상의 낯짝 전부에 조각하는 내 모습을 보았지. 그러고는 느린 악장으로 이어졌고, 마지막으로는 합창이 나오는 아름다운 악장이 기다리고 있었어. 난 제대로 치료가 된 것이야.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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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처럼 강렬한 바로크 미술은 혼란스러운 로마의 새벽으로부터 떠올랐다. 바스러진 영광을 되찾으려는 간절함은 끝을 모르는 화려함을 낳았으나, 그 이면에는 미처 물러가지 못한 어둠이 잔재했다. 로마의 중심을 굳건히 지키는 성 베드로 광장, 그 찬란하고 위태로운 시대의 흔적 위로 뜨거운 햇빛이 선명히 타오른다. - P13

아마도 베르니니는 자신의 시대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강렬한 표현을 원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점을 아낌없이 보여주려 한 거죠.
17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연극이 전성기를 누리며 극장이 계속 지어지고무대장치와 무대미술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이런 배경 아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연극 배우 같은 조각이 베르니니의 손끝에서 빚어졌습니다.

베르니니의 천사상은 손짓이나 몸짓이 커서 실제로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해요.

그렇죠. 베르니니는 천사들을 왜 이렇게 과장했을까요? 우선 현대인의눈으로는 그의 의도를 읽어내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베르니니는 자신의 천사들을 힘들고 지친 순례객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연출했거든요. 당시 순례객들은 짧으면 몇 주, 길면 1년 가까이 걷고 또 걸어 바티칸에 도착했습니다. 로마에 들어섰을 때 순례객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테베레강을 건너기 위해 천사의 다리에 첫발을 디뎠을 때 순례객이 느낀 감동은 정말 대단했을 겁니다.

지친 순례객의 눈에 천사들의 모습은 한없이 반가워 보였겠어요. - P23

이런 거대한 구조물을 지으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했겠어요.

맞아요. 온갖 정성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서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고대 신전인 판테온에서 청동을 뜯어올 정도였으니까요. 오래된 건축물이나 구조물에서 재료를 뜯어와 다른 곳에 활용하는 방식을 스폴리아spolia라고 합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기둥과 장식은 콘스탄티누스시절의 옛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던 것을 재활용했습니다. - P37

아무리 종교 미술이라고 해도 교리를해석하는 과정에서 작가들의 주관이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트리엔트공의회는 바로 이 부분을 엄격히 제한한 겁니다. 이전까지는 성경 이야기를 그릴 때 장면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의복이나 소품을 임의로 추가하거나 색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도들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된 거죠. 당연히작가들의 창작 활동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가들이 교회 눈치를 많이 봐야 했겠네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어요.

맞습니다. 이때부터 미술가들은 자신만의 해석을 버리고 교리와 성경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점점 미술은 종교 안에서 움츠러듭니다. 하지만 결국 미술가들은 이 문제를 극복해냅니다. 내용 면에서 변화를 포기하는 대신 형식에 집중하면서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미술을 선보이거나, 전혀 새로운 형식으로 내용을 담아냈습니다. 베르니니의 강렬한 미술이 전자에 해당하고, 3장에서 만날 카라바조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네요. 그 구멍이 바로 바로크였군요.

바로크 미술은 종교 미술을 엄격하게 다루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자 했던 미술가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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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100년이 지나는 사이에, 인류는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는 생물학적 명령을 내쳐 왔다. 진화가 생명에 필수적인 기능들을 위해 340만년에 걸쳐 완성한 필수 조건을 말이다. 그 결과 선진국 전역에서 수면 단축이 일어나면서 우리의 건강, 기대 여명, 안전, 생산성, 아이 교육에 재앙 수준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면 줄이기라는 이 소리 없는 유행병은 21세기 선진국이 직면한 가장 큰 공중 보건 과제다. 수면 소홀이라는 질식시키는 올가미, 그것이 일으키는 때 이른 죽음, 그것이 초래하는 건강 악화를 피하고 싶다면, 수면의 개인적, 문화적, 직업적, 사회적 인식에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나는 우리가 게으름이라는 불리한 낙인이 찍히거나 난처한 표정을 짓는 일 없이, 밤잠을 푹 잘 권리를 되찾을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건강과 활력을 주는 가장 강력한 묘약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생물학적 경로로 혜택을주는 묘약이다. 그러고 나면, 가장 심오하면서 충실한 존재감과 더불어 낮에 진정으로 깨어 있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떠올릴수 있을 것이다. - P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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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덜 잔 피곤한 뇌는 줄줄 새는 기억 거름망과 다를 바 없다. 학습한 것을 받아들여서 흡수하거나 효과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런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부분 기억상실증을 일으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린 뇌에게 일찍 일어나는새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은 벌레를 잡아먹지 못하게 만드는 셈이 될것이다. 그 벌레가 지식이나 좋은 성적이라면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잠을 박탈함으로써 한 세대의 아이들을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만들고 있다. 등교 시간을 늦추는 것이야말로 확실하게, 그리고 말 그대로 영리한 선택이다.
수면과 뇌 발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우려되는 추세 중 하나는 저소득가정과 관련이 있다. 교육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추세다. 사회 경제적으로 하층에 속한 아이들은 자가용으로 등교할 가능성이 더 적다. 부모가 오전 6시나 그 이전에 업무를 시작하는 서비스산업에서 일을 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런 아이들은 통학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며, 따라서 부모가 학교까지 태워주는 아이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 결과 그렇지 않아도 불리한 입장에 있는 이 아이들은 더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보다 잠을 으레 덜 자기 때문에 더욱 불리해진다. 그 결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악순환이 지속된다. 깨고 나오기가 무척 어려운 닫힌 체계다. 우리에게는 이 악순환을 타파할 적극적인 개입 방법이 절실히, 그것도 빨리 필요하다. -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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