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처럼 강렬한 바로크 미술은 혼란스러운 로마의 새벽으로부터 떠올랐다. 바스러진 영광을 되찾으려는 간절함은 끝을 모르는 화려함을 낳았으나, 그 이면에는 미처 물러가지 못한 어둠이 잔재했다. 로마의 중심을 굳건히 지키는 성 베드로 광장, 그 찬란하고 위태로운 시대의 흔적 위로 뜨거운 햇빛이 선명히 타오른다. - P13
아마도 베르니니는 자신의 시대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강렬한 표현을 원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점을 아낌없이 보여주려 한 거죠. 17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연극이 전성기를 누리며 극장이 계속 지어지고무대장치와 무대미술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이런 배경 아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연극 배우 같은 조각이 베르니니의 손끝에서 빚어졌습니다.
베르니니의 천사상은 손짓이나 몸짓이 커서 실제로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해요.
그렇죠. 베르니니는 천사들을 왜 이렇게 과장했을까요? 우선 현대인의눈으로는 그의 의도를 읽어내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베르니니는 자신의 천사들을 힘들고 지친 순례객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연출했거든요. 당시 순례객들은 짧으면 몇 주, 길면 1년 가까이 걷고 또 걸어 바티칸에 도착했습니다. 로마에 들어섰을 때 순례객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테베레강을 건너기 위해 천사의 다리에 첫발을 디뎠을 때 순례객이 느낀 감동은 정말 대단했을 겁니다.
지친 순례객의 눈에 천사들의 모습은 한없이 반가워 보였겠어요. - P23
이런 거대한 구조물을 지으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했겠어요.
맞아요. 온갖 정성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서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고대 신전인 판테온에서 청동을 뜯어올 정도였으니까요. 오래된 건축물이나 구조물에서 재료를 뜯어와 다른 곳에 활용하는 방식을 스폴리아spolia라고 합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기둥과 장식은 콘스탄티누스시절의 옛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던 것을 재활용했습니다. - P37
아무리 종교 미술이라고 해도 교리를해석하는 과정에서 작가들의 주관이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트리엔트공의회는 바로 이 부분을 엄격히 제한한 겁니다. 이전까지는 성경 이야기를 그릴 때 장면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의복이나 소품을 임의로 추가하거나 색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도들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된 거죠. 당연히작가들의 창작 활동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가들이 교회 눈치를 많이 봐야 했겠네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어요.
맞습니다. 이때부터 미술가들은 자신만의 해석을 버리고 교리와 성경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점점 미술은 종교 안에서 움츠러듭니다. 하지만 결국 미술가들은 이 문제를 극복해냅니다. 내용 면에서 변화를 포기하는 대신 형식에 집중하면서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미술을 선보이거나, 전혀 새로운 형식으로 내용을 담아냈습니다. 베르니니의 강렬한 미술이 전자에 해당하고, 3장에서 만날 카라바조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네요. 그 구멍이 바로 바로크였군요.
바로크 미술은 종교 미술을 엄격하게 다루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자 했던 미술가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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