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970년대 이래 뇌에 대한 이해가 훨씬 나아진 만큼, 이제우리는 어떤 특징이 인간 안에 내장되거나 보편적이지 않아도 선천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신경학자 게리 마커스(GaryMarcus)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자연에서 받은뇌는 이미 상당히 복잡한 상태이지만, 그 안에 이미 다 갖춰져 있어고정불변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보다 채 갖춰지지 않아 융통성이 있고 또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제일 좋다." 마커스는 종전의 내장 설계도를 대신해 한결 나은 비유를 제시한다. 즉, 인간의 뇌는 한 권의 책과 같고, 엄마의 배 속에 있는 동안 유전자가 그 초고를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태어날 당시 책에는 어느장도 완성되어 있지 않으며, 일부는 아예 개요만 대략 정해져 있어서 아동기를 거치며 그 내용을 채워야 한다. 그러나 각 장(성욕. 언어, 음식 취향, 도덕성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자)은 또한 완전히 빈 여백은 아니어서 사회가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써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음과 같이 이어지는 마커스의 비유는 내가 이제까지 접한 선천성의 정의 중 제일 훌륭하다.
자연이 초고를 주면, 경험이 그것에 수정을 가한다. •••••• ‘내장‘이라는 말은 변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경험 이전에 구조화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 P246
진화론 자체로만 보면 여러분이 우리 아들 맥스나 머나먼 타국에서 굶주리는 아이나 새끼 바다표범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화론에 그런 내용이 없는 까닭은 우리가 현실에서 흘리는 개별적인 눈물을 다윈이 일일이 다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설명해내야 했던 것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눈물샘이 존재하는 이유, 나아가 그 눈물샘이 더러 자신이 고통 받지 않는 때에도 활성화되는 이유였다. 다윈은 각 모듈의 본래적 동인만을 설명해내야 했던 것이다. 통용적 동인은 짧은 시일 안에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일례로, 폭력에 희생당하는 계층은 우리주위에 항상 있었으나, 우리 조부모 때에만 해도 관심을 받는 계층의 폭이 좁았던 반면 오늘날에는 그 폭이 훨씬 넓어졌다. - P252
미국을 비롯한 여타 지역에서는 진보주의자의 도덕 매트릭스가 보수주의자에 비해 배려 기반에 의지하는 경향이 훨씬 강한데, 이 운전자는 차량에 스티커를 세 개나 붙여가며 무고한 희생자들을 보호해줄 것을 사람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이 운전자는 다르푸르의 희생자들과 어떤 연고도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스티커를 통해 다르푸르 분쟁 및 육식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배려 기반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직관과 연결시키려 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경우에는 동정심과 관련된 범퍼 스티커를 찾아보기 힘든 편이지만, "상이용사" 스티커가 이런 사례에 해당할 수 있다. 이 운전자 역시 사람들에게 배려를 요청하고 있지만, 보수주의자의 배려는 진보주의자의 배려와는 차원이 약간 다르다. 그들의 배려는 동물이나 타국의 국민보다는 집단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배려는 모든 곳이 아닌 자신이 사는 지역에 더 한정되고, 또 충성심과도 뒤섞이는 경향이 있다. - P254
진화 이론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종종 유전자를 ‘이기적‘이라고 말할 때가 많은데, 그 말은 유전자는 오로지 자기 복제에 도움이 될 때만 동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러나 도덕성 기원과 관련해 무엇보다 중요한 통찰은, 이 ‘이기적‘ 유전자로부터 관용을 지넌 존재가 만들어져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들은 누구에게나 관용을 보이기보다 상대를 골라서 관용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인간이 왜 친족 집단에 이타주의를 보이는가는 전혀 골치 아플 일 없는문제이다. 그러나 인간이 왜 친족 이외의 집단에까지 이타주의를 보이는가는 진화론적 사고가 전개되는 동안 가장 오래도록 학자들의골치를 썩여온 문제이다." 이 문제가 해결될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1971년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가 호혜적 이타주의 (reciprocalaltruism)라는 이론을 펴내면서였다." 트리버스는 진화를 통해 이타주의자가 만들어질 수 있는 종(種)은 따로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런 종의 개체들은 다른 개체와의 예전 상호작용을 기억할 수 있고, 그 기억에 따라 나중에 자신에게 보답할 가능성이 높은 개체에게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특징이 있었다. 우리 인간이 이런 종에 해당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트리버스가 내놓은 의견에 따르면, 인간은 진화를 통해 일련의 도덕적 감정을 발달시켰고, 그런 감정들을 가지고 되갚기 (tit-for-tat) 게임을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우리는 보통 누구에게든 호의를 보이지만, 그렇게 첫 만남이 지나고부터는 사람을 고르게 되어 있다. 나에게 잘해준 사람과는 힘을 합치고, 나를 이용한 사람은 멀리하는 것이다. - P255
공평성 모듈의 통용적 동인에는 실로 많은 것이 포함될 수 있는데, 이것들은 문화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호혜성 및 부정不正의 역학과 관련이 있다. 좌파의 경우 그들의 공평성 기반은 평등과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사에 의해 일부 형성된다. 좌파에서 부유층이나 권력층을 비난하고 나서는 이유도, 그들이 ‘공평하게 내야 할‘ 세금은 내지 않으면서 사회 최하층을 착취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골자로 내세운 것이 최근 일어난 ‘월가 점령 시위 (Occupy Wall Streetmovement)‘로, 2011년 10월 나도 그 현장에 갔었다. (<도표 7-5) 참조). " 한편 우파에서 진행하는 티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 : 보스턴 차 사건에서 명칭이 유래된 운동으로 2009년부터 미국의 여러 길거리에서 시작된 보수주의 시위를 말함 옮긴이) 역시 공평성에 관심이 매우 높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눈에는 민주당원들이 ‘사회주의자‘나 다름없다. 열심히 일한 미국인들의 돈을 가져다 게으른 사람(복지 혜택과 실업수당을 받는 이들이 여기에 포함된다)과 불법 이민자(무상 건강보험과 무상교육의 형태로)에게 주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평성에 관심을 가지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평성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좌파의 공평성은 평등의 의미를 함축할 때가 많은 반면, 우파의 공평성은 비례의 원칙을 의미한다. 즉, 우파에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기여한 만큼 그에 따르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보며,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불평등한 결과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 P258
충성스러운 팀원이 사람들에게서 큰 사랑을 받는 만큼, 그 반대 존재인 반역자들은 보통 적보다 훨씬 악독한 존재로 여겨져 사람들에게서 엄청난 증오를 받는다. 예를 들어, 《코란》에는 타 집단 사람들(특히 유대교도)의 표리부동함을 경계하는 내용이 가득한데, 그럼에도이 유대교도를 죽이라는 명령은 찾아볼 수 없다. 《코란》에서 유대교도보다 훨씬 나쁘게 보는 것은 바로 배교자, 즉 이슬람 신앙을 배신하거나 아무 이유 없이 버리는 사람이다. 《코란》에서는 이 배교자를이슬람교도가 죽여야 한다고 명령을 내리며, 알라신이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배교자를 처단할 것을 약속하기도 한다. "그런 자들은 반드시 지옥 불에 떨어뜨려 바싹 구워버릴 것이다. 몇 번이고 불에 집어넣어 피부가 하나도 안 남도록 타버리면 다시 피부를 돋게 하여 진정한 형벌이 무엇인지 그 맛을 보여줄 것이다. 분명 신은 전능하시고, 또 전지하실지니.25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도 배반의 죄를저지른 자는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져 가장 무시무시한 고통을겪게 되어 있다. 욕정, 폭식, 폭력, 이단보다도 자신의 가족, 팀, 나라에 대한 배신이 훨씬 더 나쁘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충성심 기반은 사랑과 증오의 감정과 단단히 얽혀 있으니, 그것이 정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좌파 정치인들은 애국주의를 지양하고 세계시민주의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어." 충성심 기반을 중시하는 유권자들에게서 표심을 못 얻을 때가 많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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