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들의 뇌에 관해 내가 아는 내용을 거론했다. 전사유전자를 초기 학대와 연결하는, 아브샬롬 카스피의 연구결과도 언급했다. 그리고 세 다리 의자 이론이 위험한 사이코패시 행동의 토대가 될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세대를 초월하는 폭력의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세 세대 이상의 아이들이 사회적 폭력을 경험하는 문화에서는 폭력의 비율이 증가해 호전적인 전사 문화가 발생한다는 논리였다. 내가추측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폭력이 만성적인 사회에서는 소녀들이 기왕이면 자신을 가장 잘 보호해줄 남자들과 어울릴 테고, 그러다 아마도 짝을 지을 테다. 대상은 십중팔구 공격성과 관련이 높은유전자를 가진 소년들일 것이다. 그렇게 두어 세대가 지나면 공격성 관련 유전자가 집중되기 시작하고, 결국 서너 세대 뒤에는 사회안에서 유독 공격적인 하위집단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설사정치적·종교적·문화적·경제적·사회적 원인들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공격성 관련 유전자가 유달리 집중된 사람들의 공격적문화는 몇 세기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발표에서는 거명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지역으로는 가자. 다르푸르,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일부, 과테말라와 콜롬비아의 여러 지역, 미국 도시들의 몇몇 동네가 예상된다. - P147
하지만 프로그램에 필요한 데이터는 얻었다. 내가 통역을 써서각 부족민들을 면담하는 동안, 제임스는 나중에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 유리병에 부족민들의 타액을 모아 얼음 위에다 얹었다. 유목민들은 네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기억하는 게 없는 사람들이라 우리는 그들의 전사유전자 보유율이 낮으며 그들의 평화로운 사회에서는 전사유전자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가정했다. 백인들은 X염색체 약 30퍼센트에 고위험 MAOA 대립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인과 중국인, 마오리족은 비율이 훨씬 더 높다. 이러한 인종적 차이는 계속 논란이 되어왔는데 모로코의 유목민 부족들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런데 만일 배두인족과 같은 아랍인의 전사유전자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나면 어쩌지? 우리는 두 시험군 모두에서 30퍼센트보다 낮을 것으로 예측했는데. 우리 생각은 틀렸다. 그 비율이 약 30퍼센트로, 유럽인과 북아메리카인만큼 높았던 것이다. 결과대로라면 환경은 내 예상보다더 큰 역할을 할지도 몰랐다. 사막의 가혹한 조건에서는 생존을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폭력적이면 추방될 수도 있을 테고, 그러면 혼자가 되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이 경우 사람들의 공격성을 제한하고 있는 건 유전이 아니라 문화였다. 본성이아닌 양육 말이다. 이건 DNA가 우리 행동의 80퍼센트를 설명한다는 나의 믿음에 가해진 또 하나의 작은 일격이었다. - P156
사실 나는 ‘사랑에 빠졌다‘라고 말하지만, 다이엔에게 완전히 감정적으로 연결되었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와 다이앤 사이에 유대가 생겨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공감을 통해 그녀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이앤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매혹적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우리에게는 공통의 목표와 가치(가족, 자유의지론, 불가지론)가 있어서 동지애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언제나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남았다. 1967년부터 1968년 무렵, 나의 사고와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다. 공격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풋볼 경기장에서 사람들이 다칠까봐 노심초사하지도 않았다. 알파인 스키 경주를 하면서도 최대한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만 집중했다. 나는 온화함을 잃었고, 학문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마치 나의 공격성 스위치가 켜진 듯했다. 교회는 더 이상 다니지 않았고, 도덕성 또한 사라졌다. 허풍의 수준도 날로 높아졌다. - P178
직업적 성과가 오르락내리락하고 몸무게도 미친 듯이 변한다는사실을 깨달은 뒤, 나는 테이프로 이어 붙인 그래프용지 여러 장에이 리듬을 그려보기로 작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논문 발표 수연구비 액수 등을 기초로 직업적·창의적 산출량과 몸무게의 관계를 도표로 만들고 나니, 그 상관관계가 확실했다. 내 몸무게가 꼭짓점을 찍었을 때마다, 그러니까 몸무게가 대여섯 차례 130~135킬로그램에 육박했을 때마다 나의 직업적·창의적 산출량 또한 절정이었다. 그러다가 살이 다 빠져서 85~95킬로그램으로 돌아가면, 생산성도 0으로 떨어져 그 상태가 1~2년 지속되곤 했다. 내가 많이 먹고 담배 피우고 놀수록 그리고 운동을 덜 할수록, 모든 분야에서 성과가 좋았다. 다른 사실도 눈에 띄었다. 내 몸무게가 최고의 눈금을 찍을 때, 가까운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도 나아지는 듯했다. 몸무게가 최고점에 다가가는 동안에는 사람들, 특히 가족들과의 유대감도 커지는 듯했다. 어떤 식으로든 이 긍정적특성, 지적·창의적 성과와 유대감은 연결된 듯 보였다. 그리고 때때로 담배 때문에 살이 빠졌을 때엔 생산성이 떨어지고 어떤 종류의 공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정기적으로 섹시한 파티 보이가 되었지만, 동시에 얼간이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때의 나는 나의 어떤 행동이 남들의 감정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아니 물리적으로 해칠지 모른다는 걱정조차 전혀 하지 않았다. •••••• 몸무게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가 왜 연결되는지 결코 알아내지못했지만, 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추측했다. 혹시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그리고 어쩌면 엔도르핀과 테스토스테론도 내 변연계 안에서 비정상적이지만 주기적으로 활동하는 건 아닐까? 이들 신경전달물질, 조절인자, 호르몬이 모여들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측두엽과 그에 연관된 변연계, 곧 감정의 뇌가 특히 의심스러웠다. 수면 리듬을 포함해 세로토닌이 조절하는 나의 일일 리듬들이 바뀌면서 이 거센 요동에 연료를 공급한다고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는 추측에 불과했다. - P184
공감은 여러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공감을 동정과대비시킬 수 있다. 이때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다시 말해 그가 경험하는 감정을 당신도 경험하듯 상상하는 능력이라고 여겨진다. 반면에 동정이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욕구에 가깝지, 실제로 상대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것은 아니다. 공감은 일반적으로 타인에 대한 감정 반응도를 가리킨다. 동정은 지진이나 홍수 피해자들의 곤경을 전해 들은 사람이 자신은 그런 피해를 실제로 경험한 적이 없는데도 시간을 내어 피해자들을 돕거나 구호자금을 기부하게 하는 감정이다. 이는 남을 도우려는 사람은 피해자들에게 공감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공감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공감하는 사람 중에는 자기가 남들의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감지하면서도 남을 돕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UCLA 마르코 야코보니 Marco lacoboni가 진행한 생리학 연구들은 사람들의 관계 및 영향에대해 큰 시사점을 준다. - P186
거울뉴런계는 야코보니의 발견을 근거로 가정되는 뇌 회로다. 남이 뭔가를 하는 모습을 한 번만 지켜보면 즉시 자기도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영장류, 특히 인간의 능력은 전두엽과 두정피질의영역에 있는 이 뉴런들 사이에 형성된 회로를 바탕으로 한다고 여겨진다. 예컨대 엄마가 수건을 개는 모습을 지켜본 아이가 바로 수건을개려고 시도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거울뉴런계의 존재는 도움이 된다. 아이는 엄마를 지켜보는 데 사용하는 감각운동계 sensorymutor system와 똑같은 세포군을 써서 그 과제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 P187
우리가 공감이라 부르는 것에 이렇게 많은 뇌 영역과 유전자가 연관됨을 알면, 공감이라는 말의 의미가 그토록 애매했던 게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닐 성싶다. 우리는 대개 공감의 부재를 사이코패시와 연관 짓는다. 사이코패스는 사람들을 냉담하게, 거의 무감각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이코패스는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애정을 갖고 있다. 사이코패스 살인마조차도 자신의 부모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버펄로 빌을 생각해보라. 그는 죄 없는 여자들을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죽이지만, 자신의 푸들이 위험에 빠지자 눈에 띄게 초조해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사이코패스들이 나머지 사회 전부를 증오하며 폭력적으로든 비폭력적으로든 복수에 나설 수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주식투자에 가산을 모두 탕진했다면, 사이코패스는 금융기관에 분노를 돌림으로써 세상에 가혹하게 복수할것이다. 사이코패시 테러리스트나 독재자는 자신의 가족, 종족, 국가, 인종, 종교에 대한 공격을 지각하면 그에 대해 복수하려 들 것이다. 가장 폭력적인 테러리스트, 외톨이 살인자, 독재자는 자신의 집단에게는 공감하지만 타인의 삶과 안녕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 P193
공감의 유형은 이처럼 개인 대 집단이라는 틀로 나눠볼 수도 있지만(이장 앞에서 이야기한 공감대 동정이라는 이분법과도 연관된다). 다른 방식으로 구분해볼 수도 있다. 바로 감정적 공감과 ‘마음이론‘으로 알려져 있는 인지적 공감을 구분하는 것이다. 마음이론은 아동기 전반에 생겨나서 성인기까지 점차 발달하며, 아이들이 자신에게 욕구와 의도와 믿음 같은 정신 상태가 있음을 그리고남들에게도 비슷한 심리가 있음을 깨닫는 주요한 발달적 이행 단계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앓는 사람은 정상적인 마음이론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경계선인격장애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와 같은일부 인격장애와 특정한 형태의 양극성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면에 사이코패시, 자기애성인격장애, 특정한유형의 조현병이 있는 사람들은 인지적 공감은 가능하되 감정적공감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 두 유형의 공감 상실은 전전두피질의아래쪽, 즉 복측 절반 중에서도 서로 다른 부분의 기능부전과 연관된다. - P194
나는 또 상대의 신뢰를 얻으려 거짓말을 하는 걸로도 유명했다. 거짓말은 게임을 나한테 유리하게 이끄는 내 페르소나의 일부이자, 인생이 따분하지 않게끔 삶에 대처하는 한 방법에 불과하다. 내가 하는 거짓말은 대부분 정보를 빠뜨리는 것일 뿐, 없는 정보를보태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누가 나에게 직업을 물을 때 나는 한때 바텐더 겸 트럭 운전사였지만 지금은 반쯤 은퇴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엄밀하게 따지면 사실이지만 그 목적은 단지 상대에게 트럭 운전사치고는 똑똑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일부 사이코패스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지만, 그들은 모두다르다. 나쁜 가정에서 태어난 사이코패스가 상식을 뛰어넘는 일을 저지르는 이유는 아버지가 그를 두들겨 패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이는 무감각해진다. 그렇게 성장한 사이코패스를 자극하려면 많은 게 필요하다. 마약 중독자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점점 더자극적인 행동을 해야 쾌감을 얻고 점점 더 극단적인 경험을 해야뭐라도 느낀다. 이는 연애를 통해 긍정적으로 표출될 수도 있지만, 그가 학대를 당했다면 반사회적 행동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성적학대로 성과 폭력에 관련된 뇌의 배선이 잘못된 사람은 강간을 저지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연구가 잘 이루어져 있지 않다. 내가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은 대개 쾌락과 관계 있다. 나는 언제나 짜릿함이나 즐거운 시간을 추구하고, 약간의 쾌감을 얻기 위해남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걸로 유명했다. - P200
나 자신을 돌아보면, 이런 성향은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전반에 잘 들어맞는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자유의지론과 불가지론, 무신론을 정치적·종교적으로 신봉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 아이를구하는 데 우리가 가진 돈을 동전 한 닢까지 다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한 아이만 애지중지하면 결국 인류는 파괴될 것이다. 또 누굴 애지중지할지는 누가 판결하는가? 나는 먼 지평선이 백년, 천년, 만년 뒤에 펼쳐질 상황을 본다. 한 사람이 사회를 위해 내일 거꾸러진다면, 그건 정말 유감이지만 나는 괘념치않는다. 나는 어떤 아이가 내 눈앞에서 굶어 죽게 내버려두지는않겠지만(나는 괴물은 아니다), 내가 정부를 운영한다면 모든 복지제도를 도려낼 것이다. 헌법의 기본 원리(공정성, 사유재산, 기타 등등)를 철저하게 적용한다면 어떤 사람은 죽을 것임을 알고있지만, 나는 괴롭지 않다. 그 체제가 약하거나 게으른 개인들을솎아낸대도, 난 상관없다. 나는 비생산적이거나 무책임한 행동을부추기고 싶지 않다. 그런 행동은 사회를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한 사람이나 한 집단보다 종種에 대해 더 많이 공감한다. - P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