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박물관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남자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원본과 마주했을 때만큼 만족스러운 순간은 없다고. 세상에 복사본이 많아질수록 원본의 위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으며, 때로 그 위력은 거룩한 성유물에 버금간다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세상에 하나뿐인 것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며, 그로 인해 늘 파손에 대한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앞에 여행객 한 무리가 둘러서서 경건한 태도로 그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팽팽한 긴장의 순간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어디선가 찰칵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지곤 했다. 마치 디지털 언어로 내뱉는 새로운 ‘아멘‘처럼. - P94
하지만 기차 여행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밤 시간 전부를 송두리째바쳐야 한다. 조상들의 오랜 여행 습관처럼 다리와 고가도로, 터널을 일일이 통과하며 육로를 횡단해야 한다. 무엇 하나 빠뜨리거나 건너뛰어선 안 된다. 1밀리미터도 빠짐없이 바퀴로 밟아 가면서 순간과 접선하는 동안, 반복되지 않는 배열이 끝없이 펼쳐진다. 바퀴와 철로, 시간과 공간, 온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배열이 계속해서 전개된다. - P97
뭔가를 글로 묘사한다는 건, 그것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해서 결국엔 그것을 망가뜨리게 된다. 색깔이 엷어지고 모서리는 닳아서, 글로 적어 놓은 것들은 결국 희미해지고 사라져 버린다. 특히 장소에 관한 글이 그렇다. 여행 안내서들은 침략이나 전염병처럼 지구의 상당 부분을 파괴하고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 다양한언어로 수백만 부를 찍으면서 해당 장소를 속박하고 약화시키고 그 윤곽을 지워 버렸다. 나 또한 한때, 젊은 날의 무지함 탓에 어떤 장소들을 묘사해 보겠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훗날 내가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어 보았을 때,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그 강렬했던 존재감을 되살리려 애쓰고 그 글의 소곤거림에 귀를 기울여 보았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진실은 가혹했다. 뭔가를 글로 쓴다는 건, 그것을 파괴한다는 의미였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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