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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준비가 끝났다. 스테판 브라이트비저 Stéphane Breitwieser는 박물관에 들어서며 여자친구 앤 캐서린 클레인클라우스Anne-Catherine Kleinklaus의 손을 꽉 움켜잡는다. 둘은 안내 데스크로 걸어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넨다. 누가 봐도 귀여운 연인이다. 현금으로 입장권을 두 장 사서 들어간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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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든 부부는 그날 밤에 제이미를 살피러 공동 생활 가정에 갔다. 그자리에는 샘을 혼자 욕조에 남겨 두었던 보모도 있었다. 세라가 말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서 충격으로 마냥 흐느껴 울었어요. 나는 그녀를 포옹해 주면서 <마르비카, 당신이 아니었더라도 우리 중 누구라도 똑같은 실수를 할 수 있었어요>라고 위로했어요. 물론 그녀는 샘을 혼자 욕조에 남겨 두지 말았어야 해요. 하지만 매 순간 조금도 방심하지 않기란 지극히어려운 일이에요. 우리는 모두 실수를 저질러요. 시도 때도 없이 실수를 저지르죠. 만약 샘이 계속 우리 집에 머물렀다면 나 역시 혹시 수건이라도가지러 가면서 샘을 혼자 남겨 두었을지도 몰라요. 환자를 직접적으로 보살피는 이런 지극히 고된 일을 할 적격자를 채용하고 그들을 계속 잡아 두기란 정말 어려워요. 보수도 형편없어요. 그런 사람들의 실수를 범죄라고 몰아붙여서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나는 이처럼 상대적으로 생색도 나지않는 분야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을 수 있는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게다가 우리는 제이미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공동 생활가정에 계속해서 드나들어야 했어요.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밤낮으로 우리 아이들을 돌보아 주었고 그 덕분에 우리도 살 수 있었어요. - P643

앨런 로스는 「가족의 이례적인 아이The Exceptional Child in the Familys에서 부모들이 하나같이 그들의 자녀가 부모보다 높은 수준의, 아니면 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사회 문화적인 성취를 이루길 기대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계속해서 자녀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 일반적으로부모는 현실에 맞추어 자신의 행동을 수정해야 하며 이를 위해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요컨대 《보통 아이》에 대한 그들의 이미지와 《그들의 자녀》라는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설명한다. 대체로 이러한 갈등은 자녀의 장애 정도보다 부모의 대처 능력이나, 가족 내 건강한 구성원 간의 역학 관계, 부모가 그들 가족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부여하는 중요도 등과 상관이 있다. 부모의 수입과 자녀에게 집중하는 데 할애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외부의 지원은 하나같이 중요한 요소다. 아마도 가장 은밀하게 찾아오는 스트레스는 친구들과 소원해지거나 또는 친구들의 동정이나 몰이해로 부모가 스스로 그들과 담을 쌓으면서 뒤따라올 수 있는 사회적 고립일 것이다. 건강한 자녀의 탄생은 일반적으로 부모의 사회적 인맥을 확대하지만, 장애가 있는 자녀의 탄생은 대개 부모의 인맥을 제한한다. - P647

중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극심한 건강 위기나 끔찍한 발작을 겪지만 그들을 보살피다 보면 대체로 주기가 생기고, 인간의 본성은 리듬이 있는 것에 언제나 적응하기 마련이다. 보살피는 일에 능숙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극단적이지만 일정한 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덜 극단적이지만 일정치 않은 스트레스보다 대처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다운증후군 자녀의 부모 노릇이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 자녀의 부모 노릇보다 더 수월한 이유중 하나도 그 때문이다. 즉 다운증후군 자녀의 부모는 그날그날 자신이 누구를 상대하는지 알고, 부모에 대한 요구도 비교적 변화가 적은 편이다.
반면에 정신분열증 자녀의 부모는 자신이 장차 어떤 괴상함과 부닥치게될지 예측할 수 없다. 자폐증 자녀의 부모는 어떤 파국의 순간이 들이닥칠지 예측할 수 없다.
부모의 허황되거나 무지한 기대는 독이나 다름없지만 장애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은 큰 도움이 된다. 제롬 그루프먼 교수는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서 언어는 청진기나 메스만큼이나 의사가 의료 행위를 하는 데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의사가 하는 모든 말 중에서도 환자의 병에 부여하는 병명은 다른 어떤 말보다 큰 무게를 갖는다. 병명이 곧 환자의 정체성이 되는 까닭이다>"라고 주장했다. 섣부른 예측 때문에 빚어진 슬픔이 아무런 예측도 못해 빚어진 혼돈보다 훨씬 낫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명확하기만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그 길을 받아들일 것이다. 또한 아는 게힘인 까닭에 끔찍한 예측일지라도 예측이 가능한 증후군은 아무것도 알수 없는 증후군에 비해서 훨씬 고상하게 인내될 것이다. 정체성은 확신에의한 결과물이다. - P652

공감과 연민은 당신이 여전히 당신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의미 있는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할 때 최선의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상태를, 즉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인생 경로를 결정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가 내적 통제 소재internal locus of control〉20이며, 이와는 반대로 자신이외부 환경과 사건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고 느끼는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로 외적 통제 소재 external locus of control>가 있다. 내적 통제 소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활 방식과 우선순위를 적극적으로 일치시키고자 노력해야 한다. 예컨대 자신의 생활 방식과 우선순위를 일치시키는 데 실패한 남자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남편이나 아버지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직장에서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한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흔히 장애 아동의 부모들은 그들에게 통제권이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상황이 통제된다는 느낌을 얻는다.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보다 훨씬 커다란 어떤 대상에 대한 믿음이다. 가장 보편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종교가 있지만 다른 방법도 많다. 신의 존재나 인간의 선의지, 정의등을 믿을 수도 있으며 단순히 사랑을 믿을 수도 있다. - P661

나는 건강한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환상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가 영원히 상냥하고, 연약하고, 부모에게 적당히 의지하면서 사춘기에 반란을 일으키거나 어른이 되어 부모에게 무심해지지 않는것을 최고의 바람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조언하건대, 당신의 바람을 경계할지어다. 장애 아동은 영원히 그들 부모의 책임이다. 지적 장애인의 85퍼센트는 부모와 함께 살거나 부모의 간접적인 보살핌을 받으면서살고, 부모가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이 같은 구조가 가장 보편적이다. 23 하지만 부모가 늙어감에 따라 이러한 구조는 부모에게 커다란 걱정거리로 작용할 수 있다. 어떤 부모들은 처음에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다가 특별한 주의를 요구하는 자녀에게 점점 압도되고, 중년이나 그 이후에 가서 절망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원래는 자녀를 포기하고입양을 보내려고 했다가 그 자녀에게 차츰 사랑을 느끼는 부모들도 있다.
한편 장애인의 기대 수명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1930년대에는 보호시설에 수용된 지적 장애인 남자의 평균 사망 연령이 대략 15세였고, 여자는 22세였다. 1980년에 이르러 이 수치는 남자의 경우 58세가 되었고여자는 60세로 급증했다." 다만 움직일 수 없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보다 일찍 죽는다. 장애 아동을 양육하는 일에 이력이 나기 전이고, 감정적인 유대가 형성되기 전이며, 애초에 상상했던 건강한 아이에 대한 환상이 아직 완전히 깨지기 전인 부모들에게 초기의 스트레스는 흔히 그들을 압도한다. 그럼에도 지적 장애가 있는 성인 자녀의 노부모들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실시한 한 연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노부모들 중 거의 3분의 2가 보호자 역할이 그들에게 목적의식을 갖게 만든다고느꼈고, 성인 자녀와 함께 삶으로써 외로움을 덜 느낀다는 사람도 절반이넘었다. - P669

사람들은 상투적인 말로 우리를 위로하려고 해요. <하느님은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주십니다>라는 말처럼요. 하지만 샘이나 줄리아나 같은 장애아는 애초에 부모에게 선물이 될 운명으로 태어나지 않아요. 그럼에도 그 아이들이 우리에게 선물인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선택했기 때문이죠. - P677

그동안 중도장애 아동의 형제들에 대해서 광범위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결정적인 결과물은 없는 실정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중도장애인 형제가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장애인 형제와 함께 삶으로써 보다 책임감 있고, 관대하고, 사람들의 장점을 보고, 멋진 유머 감각을 개발하고, 유연한 태도를 기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곤혹감이나 죄책감, 고립감, 장애인 형제의 미래에 대한 걱정 등을> 드러내기도했다. 장애 아동의 형제들을 조사한 또 다른 연구는 그들의 <평범하고 오래된 속상함>에 대해 우울증 진단을 내릴 수 있을지 검토했으며, 그들이 다른 또래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덜 행복하기는 하지만 어떤 진단을 내릴 만큼 정신적 문제를 겪는 것은 아님을 밝혀냈다. 대체로 장애가 보다 명백하거나 심각할수록 비장애인 형제의 입장에서는 대처가 훨씬 수월하다. 장애가 명백하거나 심각한 아동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애초에 정상적인 면을 기대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고 처음에는 정상인처럼 보이다가 나중에 가서 그렇지 않음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보다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요컨대 장애 아동의 형제에게는 최악의 장애가 최선의 적응 환경을 제공하는듯하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결과는 장애 아동의 두드러진 장애에대해 그 가족들만이 느끼는 명확성과 편안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 보였다. 한편 친구들에게 단순한 설명밖에 할 수 없는 어린 형제들 사이에서는 진단명이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연구도 있다. 요컨대 명백한 진단명이 없는 장애 아동의 형제는 훨씬 어려운 싸움을 해야 했다. - P677

애슐리 같은 사례들이 유발하는 윤리 문제는 지난 50년을 거쳐 오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정체성을 바꾸려는 행위도 문제이고, 의학적인 또는 사회적인 의무를 무시하는 행위도 문제다. 애슐리의 아버지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자 웹 페이지를 개설했다. 개설 이후로 지금까지 그의 웹페이지는 거의 30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시점에도 그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 일주일에 약 10시간 정도를 할애하고 있었다. 항의자들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고 설명하면서 그는 그와 아내가 받는 이메일 가운데 약 95퍼센트가 그들 부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뉴스 전문 채널인 MSNBC에서 7,000명 이상에게 실시한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 중 59퍼센트가 해당 치료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슐리의 부모는 <베개 천사와 관련된 직접적인 경험이있는 1,100명 이상의 보호자들과 가족들이 기꺼이 시간을 내서 이메일로우리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혀 왔다. 만약 애슐리 같은 자녀를 둔 부모들중에 이 치료법이 그들 자녀의 삶을 질적으로 개선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자녀에게 이 치료법을 제공하는 데 있어서 성실하고 결연해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논란 이후로 애슐리 치료법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건서 박사가 말했다. 자칫 오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치료법의 유용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치료법을 이용할 수 없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위험한 비탈길>이다. 오용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가능한 치료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실행할 수 있는 의술은 극히 적어질 것이다.」「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프린스턴 대학의 윤리학자 피터 싱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애슐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고통을 겪지 말아야 하며, 그녀가 즐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서 그녀가 소중한 이유는 현재의 그녀 모습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부모와 형제들이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둘러싼 고상한 대화가 애슐리 같은 아동들이 그들 자신과 가족 모두를 위한 최선의 치료를 받는 데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한다. - P693

애슐리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가 애슐리를 사랑하고, 애슐리 치료법에 대해 철석같은 믿음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책을쓰면서 나는 장애인 자녀가 성장하고, 보살피기 어려울 정도로 덩치가 너무 커져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족들을 수없이 만났다. 장애 인권 운동가들은 걸핏하면 애슐리의 존엄성 상실을 언급했지만, 나는 그녀와 비슷한상태의 다른 장애인들을 침대 밖으로 옮기기 위해 도르래를 이용해서 쇠사슬로 들어 올리거나, 근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쇠로 된 기립 자세 보조기구에 집어넣거나, 샤워를 시키기 위해 줄로 만들어진 장치에 의지해서 옮기는 모습들을 수없이 지켜보면서 그 안에서 어떠한 존엄성도 발견할 수없었다. 또한 아서 카플랜 교수나 다른 사람들은 장애인의 가족들에게 보다 나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애슐리의 부모가 그 같은치료법에 동의한 이유는 줄이나 도르래를 마련하거나 간호사를 고용할 재원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애슐리를 그들 스스로 직접 옮기면서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친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아이든 어른이든 또는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든 없든 간에ㅡ은 기계적인 보조 장치보다 인간과의 접촉을 선호한다. 이러한 친밀감이 수술적 개입을 정당화하는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이런 친밀감을 깎아내리고, 보조 장치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핵심을 비껴가는 행동이다. - P694

오스트레일리아의 장애 인권 운동가 크리스 보스윅이 쓴 글에 따르면, 윤리학자에게는 이러한 문제를 숙고하는 것이, 즉 <《인간》이지만 인간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스윅은 의사에게 자신이 의식이 있다고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에 우리는 그 사람을 식물인간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문제는 의식 그 자체가 아니라 의식이 있음을 또렷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그는 의식을 대체로 알 수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 의학 전문지 「신경학 Archives of Neurology에 실린 <식물인간 상태>로 판명된 실험군 84명 중 거의 3분의 2에 달하는 환자들이 3년 안에 <의식을 회복했다>는 논문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러한 증거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저술가들이,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식의 해석이 가능한 것이 훤히보이는 데이터로부터 어떻게 영구성과 확실성 같은 특성을 추출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스윅은 설령 인격체가 아닌 인간이 실제로 존재할지라도 우리가 그들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판단하기에 비인격체처럼 보였지만 결국에는 반짝이는 인간성을 보여 준 앤 맥도널드와 크리스토퍼 놀란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우리는 증거가 결정적으로 확실치 않은 사건에서 내려지는 사형선고를 개탄하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당연히 명확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 P715

여왕개미의 딸들은 그들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돌본다. 종(種)에 따라서는 상대적으로 일찍 태어난 어린 새들이 어미 새를 도와 더 어린 새들을기르기도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인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호 의존적인 양육 관계가 매우 드물다. 인간의 양육은 일방적으로 작용하는 일시적 관계가 아닌 양방향으로 작용하는 평생에 걸친 관계다. 장년기에 이른 자녀가 무능력해진 노부모를 보살피는 궁극적인 180도 전환이 일어나기이전에도,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암시하는 징후가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을 결정짓기도 한다. 또한 자녀가 흠모하는 시선으로 부모를 바라보는 초기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인해서, 자녀의 의존성에 함축된 애정으로 인해서, 갓 말을 배운 자녀가 혀짤배기소리로 하는 달콤한 말들로 인해서, 그 같은 보상에 대한 전망이 흔히 묵살되기도 한다. 중도 복합 장애아동의 부모들에게는 초기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가 드물 수 있으며, 궁극적인 상호 의존적 관계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녀를 돌보는 기쁨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만 있지 않다. 예컨대 프랑스 작가 아니 르클레르는 <자녀에게 느끼는 심오한 맛>에 대해 언급했으며, 페미니스트 심리학자 다프네 드 마르네프Daphne de Marneffe는 자녀에게 반응하는 어머니의 능력이 <자녀에 대한 어머니 자신의 인식뿐 아니라 즐거움과 효율성, 자기표현에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미 오래전부터 정신분석가들은 어머니의 초기 보살핌이 자가 치료의 한 형태라고 주장해 왔다. 프로이트는 <너무나 감동적인 동시에 본질적으로 너무나 유치하다는 점에서 볼 때, 부모의 사랑은 마치 자신이 다시 태어난듯 느끼는 부모의 자기도취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 P717

평범한 자녀의 어머니에게 존재하는 모순성의 어두운 부분은 그 자녀가 개별적인 존재로 거듭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평생 독립적으로 살 일이 없는 중도 장애 아동에게는 부모의 부정적인 감정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따라서 그들의 상황은 감정적으로 완전히 순수한, 소위 불가능한 상태를 요구한다. 건강한 자녀를 둔 부모들과 비교하면서 중도 장애 아동의 부모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중도 장애 아동의 부모들은 하나같이 사랑과 절망을 모두 느꼈다. 모순성은 당사자가 보여줄지 말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도 장애 아동의 부모들 중 대다수는 그들이 느끼는 모순성의 한쪽 측면에서 행동하기로 선택했다. 줄리아 홀랜더 역시 모순성의 또 다른 한쪽 측면에서 행동하기로 선택했을 뿐이다. 모순성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줄리아의 가족이 느낀 모순성과 다른 가족이 느낀 모순성이 달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시대는 중도 장애가 있는 자녀와 함께 살면서 그들을 위해 용감한 희생을 감수하는 부모들이 존경받는 시대이며, 나 또한 이 시대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않다. 그럼에도 줄리아 홀랜더가 자신에게 솔직했고, 다른 모든 가족들이한 일을 하나의 선택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에서 나는 그녀를존중한다. - P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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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물 흐르는 소리가 끊어졌다. 목욕물이 찰랑거리는 소리, 욕조 바닥에 발을 디디는 소리가 들렸고, 바버 부인이 욕조 안에 앉은듯 무겁게 첨벙하는 소리가 났다. 이후로는 정적이 흘렀고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 간간이 새어 나왔다.
바버 부인의 기모노 가운이 벌어졌을 때처럼, 저 소리들을 듣고 있자니 신경이 곤두섰다. 무엇보다도 신경 쓰이는 건 소리보다도 정적이었다. 아까 가계부를 정리할 때는 세입자들이 순전히 돈벌이 수단으로, 이를테면 돈다발 두 뭉치쯤으로 느껴졌었다. 그런데 지금 뒷걸음으로 움직이며 타일 바닥을 닦아나가다 보니, 세를 준다는 의미가무엇인지 비로소 실감났다. 친하지 않은 사람끼리 가깝게 지내는 기묘한 경험. 벌거벗은 바버 부인과 그녀 사이에 몇 평짜리 부엌과 얇은문 한 장밖에 없는, 서로 간의 겉 포장이 벗겨진 듯한 상태. 불현듯 머릿속에 어떤 상상이 떠올랐다. 열기 속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둥근 젖가슴이.
프랜시스는 깔개 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고, 걸레를 붙잡고서 바닥을 힘껏 문질렀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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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소설가 클레어 앨런은 <정신병이 최초로 발병하는 순간 환자가 서명하는 모종의 합의서가, 예컨대 정신병에서 탈출해서 《정상적인>세계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절대로 언급하지 않겠다는 계약서가 존재하는 것 같다. 정신 질환에 따라오는 낙인은 환자들의 경험을 강탈하고, 몇 개월이나 몇 년 동안 또는 회복과 재발을 반복하는(대부분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동안 그들이 사실상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세뇌한다. 매드 프라이드 같은 단체가 자존감 문제를 검토할 필요성에 주목한다는 것이 경이롭지 않은가?>라고 썼다. 이 책에 기술된 다른 자존감 운동과 마찬가지로 매드 프라이드의 자존감 운동은 난치성 질환에걸린 사람들이 그들의 완전함과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을 지지한다. 또한 육체적, 정서적 건강으로 이어질 수 있는 효과적인 자기 치료 방식을 개발하라고 강조한다. 매드 프라이드 운동가들은 정신병에 걸리기 이전의 상태에 다시 귀를 기울이기보다,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실용적이고 진실한 현재의 삶을 구축하기 시작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조치들에 주목한다. 앨런의 주장에 호응해서 한 온라인 논객이 말했다. <내 주치의에 따르면 나는 미쳤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광기가 내일부가 아닌 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카로스 프로젝트 단체는그들의 웹사이트에 <우리는 흔히 정신병이라고 진단되고 정신병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 구성된 네트워크다. 우리는 이런 경험들이 질병이나 장애가 아니라 양성과 보호가 필요한 정신병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고 설명한다. - P601

 한 젊은 인도 남자가 적어도 나한테는 몹시 긍정적으로 보이는 자신의 환영에 대해 언급했다. 「나는 나뭇잎들이 내게 속삭이는 사랑의 시(詩)가 들린다.」 <끔찍한 목소리는 사라지고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는 남아 있게 만드는 약을 찾을 수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정신분열증 환자와 목소리의 관계는 애정이나 심지어 진정한 절박함에 의해 조정되기도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어머니는 <목소리들이 비록 상냥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아들의친구들이다. 그들의 관계는 지극히 사적인 문제이며, 아들은 목소리들을이해한다. 아들의 정신과 의사는 아들에게 목소리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그들에게 말을 할 때도 마치 어린아이에게 이야기하듯이 하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 P618

십작 대상은 군인이다. 그가 말했다. 「그들은 나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집단이죠. 그들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내가 스스로를 단단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려고 해요. 그들은 내 존재 가치를 믿어 주는 것 같아요. 도대체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부모님과는 사뭇 다르죠. 윈스턴은 이런 샘의 집착이 불합리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샘의 환상은 보호받는 것이고, 그래서 내게 군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어요.」누군가는 사람들을 향한 샘의 이러한 동경을 다 받아 주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결국 화를 내게 만드는 것이 과연 현명한 행동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있겠지만, 샘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동참하는 윈스턴의 행동은 감응성 정신병의 또 다른 형태였다.  - P625

가족은 다양한 난관에 직면해서 함께 헤쳐 나가고, 서로의 차이에도불구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거의 모든 난제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와 성장의 기회, 깨달음을 발견한다. 때로는 정신분열증이나 다른 관련 정신질환의 경우에도 그러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신분열증은 유독 아무런 보람이 없는 트라우마의 범주로 분류될 수 있다. 청각장애의 다채로운 농문화나, 소인들의 LPA를 중심으로 한 권한 부여, 많은 다운증후군 아이들의 지극한 다정함, 자폐증 권리 보호 단체들의 자아실현, 비록 매드 프라이드 운동이 있기는 하지만 정신분열증의 세계는 이런부분들 중 그 어느 것에도 해당 사항이 없다. 어떤 질병은 문제도 있지만 동시에 다채로운 정체성이기도 한 까닭에 치료가 망설여지는 경우가 있지만 정신분열증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치료가 절실히 필요하다. 정신분열증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만난 부모들 중 상당수가 행복해졌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자녀도 행복해졌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고통은 끝이 없으며, 특이하게도 그 어떠한 보상도 없다. - P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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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정신보건연구소 소장 토머스 인셀은 1950년대 이래로 가장 주목할 만한 진전은 <비난과 수치심>의 종식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정신분열증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본 경험에 의하면, 비난과 수치심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전국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가족체계이론>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행이 지난 지 20년이 넘은 시점인 1996년에도 설문에 응한 사람들 중 57퍼센트가 여전히 정신분열증이 부모의 행동에 의해 야기된다고 믿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기 계발서 열풍을 일으키면서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된 「시크릿 The Secret』 같은 책은 정신 건강이 단순히 긍정적인 사고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크리스천 사이언스>와 19세기 미국의 다양한 형이상학 운동에 이러한 믿음의 이전 형태들이 명시되어있는데, 윌리엄 제임스는 이러한 믿음을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종교라고 부르면서 <용기와 희망, 신뢰의 극복 효능>을 찬양하고, <의심과 두려움, 걱정에 대한 상대적인 경멸>을 옹호했다. 이러한 개념은 건강한사람들이 개인적인 용기를 통해 건강한 삶을 누린다고 암시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결함이 있는 절제력과 나약한 성격이 정신병의 원인이라는 암시는 일종의 고문이다. - P551

1950년에 소라진이 처음 개발된 이래로, 항정신병 약물의 발달은 정신분열증의 양성 증후를 치료하는 데 기적적인 돌파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음성 증후에 대해서는 이 약물들의 효과가 무시해도될 정도로 미미하다. 에모리 대학의 신경 촬영학과 학과장 헬렌 메이버그Helen Mayberg 교수가 말했다. 「어찌 보면 불난 집을 구매한 경우와 비슷하다. 당신은 소방차를 불러서 그 집에 물을 있는 대로 퍼부을 것이다. 그리고 불은 진화될 것이다. 하지만 불길이 사라져도 여전히 문제들이 남는다. 새까맣게 탄 잔해가 남고, 연기로 인한 피해도 있고, 사방에 물도 흥건하고, 집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당장은 그 집에서 살 수 없는것이다. - P554

치료 전문가이자 정신병원 밖으로Out of Bedlam」의 저자 앤 브레이든존슨Ann Braden Johnson 박사는 <정신 질환이 신화라는 신화>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탈시설화가 정신 질환자에 대한 견해가 변하면서 등장한 정치학의 결과였고, 그러한 견해의 변화는 생물학적 정신의학이 등장함으로써 일어났으며, 생물학적 정신의학의 등장은 정신보건과 관련한 예산을 보호 간호가 아닌 다른 분야에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상황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거의 전면적인 시설화가 파멸을 가져올 정도였다면 거의전면적인 탈시설화도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정신분열증 연구자 낸시 안드레아센Nancy Andreasen은 예전의 주립 병원들이 <독자적인 소규모 공동체였고, 그 안에서 환자들은 가족처럼 함께 살면서 병원의 농장이나 주방, 세탁소에 취직해서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시스템의 오류 중 하나는 요구에 대한 공명심이다. 존슨은 <내가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의 기존 프로그램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맞는 프로그램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프로그램을 만든 공무원들 대부분이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은 고사하고 환자를 만나본 적이전혀 없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공감 부재의 문제는 어쩌면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공동체가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법을 모른다고 그들을 되돌려 보내는 모든 시스템에 존재한다. 약물치료에 대한 지원 부재와 일관성 없는 접근법이 흔히 급속한 퇴보를 야기함에도 이런 관행을저지하려는 가족 구성원들의 시도는 법 앞에서 좌절을 겪는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자식을 둔 어떤 노부가 말했다. 「당국은 길 잃은 외톨이 동물처럼 사는 게 각자의 선택인 동시에 권리라고 주장해요. 그렇다면 빠른 자살은 불법이고 느린 자살은 괜찮은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 P563

뇌는 세포체로 이루어진 회백질과, 세포체와 연결되고 시냅스를 형성하는 축색돌기가 모인 백질과, 유동체로 채워져서 뇌척수액의 순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뇌실로 구성된다. 뇌 조직이 줄어들면 뇌실이 커지는데 측뇌실이 확대되는 것이 정신분열증의 주요한 특징이다. 시냅스 연결의 과다 현상이 자폐증의 특징이라면 정신분열증의 특징은 시냅스 연결의 부족현상이다. 또 정신분열증 환자는 시냅스를 형성하는 수상돌기와, 정신 활동을 통제하는 뇌세포의 일종인 중간 뉴런의 숫자가 비교적 적다. 정신분열증의 양성 증후는 소리와 감정의 지각 작용이 이루어지는 측두엽의 이상과 관련이 있는 듯 보인다. 반면 음성 증후는 인지와 집중과 관련된 전두엽과 전전두엽의 손상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정신분열증에 대한 유전적 취약성은 태아기 환경의 차이를 비롯해서 촉발성 트라우마의 영향을 받는다. 산과(産科)적 합병증이나 진통 또는 분만 과정의 합병증은 태아의 뇌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정신분열증 환자들일수록 과거에 그러한 경험을 한 경우가 많다. 임신 기간 중에 임부姙婦가 풍진이나 인플루엔자 같은 병에 걸리는 경우에도 위험이 증가한다.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사람들 중 겨울에 태어난 사람의 비율이 높은 것도 어쩌면 임신 중기의 임부가 겨울에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은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임신 기간 중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정신분열증과 상관관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임신 중에 전쟁을 겪거나 배우자가 사망한 여성이 낳은 자녀가 정신분열증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 네덜란드에서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한 기근 때문에 20년 후에 정신분열증이 극적으로 증가했다. 과학자들은 산전(産前) 스트레스가 태아의 신경 발달을 저해하는 호르몬 분비로 이어진다고 주장해 왔다. 스트레스 때문에 임부의 도파민 시스템이 활성화될 수 있고 그 결과 태아의 도파민 시스텝에 조절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565

유년 시절의 두부 외상 같은 산후(産後) 사건들도 정신분열증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 장기간의 스트레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발이 덜이루어진 환경에서 도시로 넘어간 이주자 급작스럽게 생소한 환경에 직면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위험성이 특히 높다. 생후에 정신병 증상을 악화시키는 가장 한결같은 환경 요인은 특히 사춘기에 이루어지는 알코올이나 각성제인 메스암페타민, 환각제, 코카인, 마리화나 같은 기분 전환 약물의 남용이다. 일본에서는 전후 복구 과정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메스암페타민을 제공했고 그로 인해 정신병이 유행병 수준으로 급증했다. 해당 약물을 끊음으로써 회복된 사람도 많았지만 일시적인 재발을 겪거나 지속적인, 심지어 영구적인 장애를 겪는 사람도 있었다. 1980년대에 약 5만 명의 스웨덴 징집병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중요한 연구에 따르면 마리화나를 50회 이상 피운 사람들이 정신분열증에 걸릴 확률이 6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일 대학 정신과 의사 시릴 수자CyrilD‘Souza의 설명이다.「약물 남용과 정신병의 관계는 흡연과 폐암의 관계와 유사한 듯 보인다. 약물 남용이 간접적인 원인이 될 수는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일부 연구가 암시하는 대로라면 만약 대마초가 없어지면 전 세계의 정신분열증 발병률이 최소한 10퍼센트는 감소할 것이다.  - P566

치료의 불완전함을 고려하여 오늘날에는 훨씬 더 조기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이, 즉 정신병이 발병하기 이전인 전구증상 단계에서 예방하려는 움직임이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다. 환자들은 리버먼이 <험프티 덤프티* 상황"이라고 부르는, 다시 말해 <우리의 현재 도구로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을 고치기보다 정신분열증에 의한 병적인 상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편이 더 쉬운> 상황에 있다. 코넬 대학 정신의학과 학과장 잭 바처스Jack Barchas가 지적하듯이, 어떤 사람을 보다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만들수록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보다 탄탄한 역사가 생기는 셈이다. 따라서 단지 정신분열증이 시작되는 시기를 늦추기만 하더라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구증상(前驅症狀) 단계임을 암시하는 일단의 증상들을 정리했는데 의심. 특이하고 불가사의한 또는 기이한 사고방식, 행동 방식의 극단적인 변화, 기능 감소, 학교나 직장 생활에서 보이는 무능력 등이다. 하지만 이런증상들 대부분이 평범한 사춘기 증상이기도 하다는 점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전구증상 단계인 것으로 확인된 피험자들을 추적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 중 실제로 정신분열증이 생긴 사람은 단지 3분의 1에 불과하다. 2003년부터 맥글라산은 전구증상 단계임이 분명한 사람들에게 올란자핀 성분의 항정신병 약(자이프렉사)을 처방했고, 그 결과 정신분열증의 발병률이 다소 감소했다. 동시에 이 약은 어쩌면 정신분열증 환자로 넘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를 많은 사람들을 살이 찌거나, 행동이 느려지거나, 눈빛이 멍해지게 만들었다. 그는 <긍정적인 결과는 극히 미미한 의미만 있을 뿐이고, 부정적인 결과는 명확하다>고 말했다. 이런 수학적 계산으로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강력한 약물치료로 정신병이 발병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지만, 지금 당장은 단지 무뚝뚝할 뿐인 사람에게 해당 약물을 사용하기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부작용이 너무나 많을뿐더러, 현재로서는 정신분열증과 부작용 가운데 어느 쪽이더 나을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569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자기 권리 주장 운동은 농인의 인권 운동이나 LPA의 정책, 신경 다양성 운동과 다르다. 자기 권리 주장 운동을 제외한이러한 운동의 주체들은 자신의 상태를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흔히 주류 사회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는다. 이를테면 소인은 키가 크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제로 알 수 없고, 자폐증이 있는 사람은 사회 지능이 주는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일반적으로 온전한 이해력을 가졌다. 정신분열증의 결정적인 특징은 해당 질환이 환영을 일으키고 따라서 정체성에관한 요구가 복잡해진다는 점이다. 정신분열증에 의해 어떤 감각이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과연 자아를 수용하고 있을까? 아니면 정신분열증의 한 증상인 부정이라는 거미줄에 갇혀 있을까? 정신분열증 자체의 환영은 자신에게 질병이 없다고 믿는 <질병 불각증(不覺症)>으로 인해서 한층 더 복잡해진다. 제임스 1세 시대의 희곡 정직한 창녀 The Honest Whore」에서 토머스 데커는 <당신이 미쳤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 당신이 미쳤다는 확실한 증거다> 라고 썼다. - P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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