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의 동기가 분노나 의무감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을 도우면 긍정적인 생리적 반응이 나타난다. 그래서 남을 돕는 사람은 종종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고 알려진 기분, 즉 에너지와 힘, 따뜻함과 차분함이 혼합된 느낌을 경험한다. 이렇듯 외로운 세기에는 사람들이 돌봄을 받는 기분을 느끼고 실제로 돌봄을 받는 것만큼이나 남을 돌볼기회를 얻는 것 역시 중요하다. - P59

인간의 외로움과 타인을 향한 적대감의 연관성을 밝힌 과학적 연구는 매우 많다.‘ 하버드대 정신의학과 교수 재클린 올즈Jacqueline Olds 가 설명하듯 이러한 적대감은 초기 방어 행동인 ‘뒷걸음질 치기‘에서 나온다. 외로운 사람은 종종 인간적 온기에 대한 욕구와 다른 사람과 함께있고 싶은 욕구를 부정하면서 자기 자신을 보호해줄 고치를 만든다. 그러면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날 혼자 내버려둬. 난 당신이 필요하지 않아, 저리 가라는, 대개는 비언어적인 신호를 남들에게보내기 시작한다.
이때 외로움은 뇌에서 다른 일을 벌인다. 몇몇 연구자들은 외로움과 공감 능력의 감소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공감 능력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능력, 다른 사람의 관점이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행동뿐만 아니라 두뇌 활동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보통 타인의 고통과 마주했을 때 공감 능력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뇌 부위인 측두정엽이 활성화된다. 하지만 여러 연구를통해 외로운 사람의 뇌는 측두정엽의 활성도가 오히려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대신 일반적으로 경계심, 주의력, 시각과 관련된 뇌 부위인 시각피질이 활성화된다. 그러니까 외로운 사람은 일반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빨리 반응하지만(실제로 몇 밀리세컨드밖에 걸리지않는다) 반응의 무게중심은 관점이 아닌 주의력에 있다. 외로운 신체가 스트레스 반응을 증폭시키듯이, 주변을 몹시 경계하는 불안하고 외로운 정신도 자기 보존 차원에서 작동한다. 따라서 그는 고통받는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혹시 모를 위협 요소를찾아 주변을 살핀다. "숲속을 걷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뱀으로 착각하고 흠칫 놀라 물러선 적이 있습니까?" 시카고대 두뇌역학실험실 책임자 스테파니 카치오포Stephanie Cacioppo 박사는 묻는다. "외로운정신은 언제나 뱀을 봅니다." - P64

분노, 적의, 주변 환경을 위협적이고 매몰찬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 저하된 공감 능력 등 외로움은 위험한 정서 조합을 낳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외로움 위기는 병원에서뿐만 아니라 투표소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결속과 포용과 관용의 사회적 가치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이 우려할 만한 영향을 민주주의에 미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려면(모든 시민의 요구와 불만이 원활히 전달되어 다양한 집단의 이익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다) 두 가지 유대가 강력해야 한다. 하나는 국가와 시민 간의 유대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들 간의 유대다. 이러한 연결성의 유대가 무너지면, 그래서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서로 신뢰하거나의지하지 못하고 단절감을 느낀다면, 그래서 국가가 자신을 보살피지 않는다고, 자신이 주변화되었다거나 버림받았다고 느낀다면 사회는 분열되고 양극화되며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오늘날의 상황이 이렇다. 이 외로운 세기에는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고 우리를 국가에 연결해주던 유대가 실낱처럼 가늘어지고 있다. 동료 시민이 자신을 고립시키고 소외시키고 단절시키고 있다고그리고 주류 정치인들이 자신을 고립시키고 소외시키고 단절시키고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들은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거나 자신을 보살펴주지 않는다고 느낀다. - P65

‘포퓰리스트‘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자신이 ‘국민‘을 대표하며 오로지 자신만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외치면서 국민과 경제·정치·문화 ‘엘리트‘ 사이에 반목을 조장하는 정치인이 바로 포퓰리스트라고 말이다. 포퓰리스트들이 악당으로 묘사하는 ‘엘리트‘란 국회, 법원, 자유 언론 등 합법적이고 관용적인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제도다. 흔히 극우 포퓰리스트는 문화적 차이와 국가 정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포퓰리스트들은 흔히 이민자나 다른 민족이나 종교의 ‘습격‘으로 마치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는 듯이 묘사한다. 그러면서 우리를 결속시켜주는 제도와 규범을 존중하는 화합된 사회 그리고 관용과 이해와 공정성의 문화에 아주 심각한 위협을 제기한다. 그들은 사회의 결속이 아닌 분열을 추구하고 자신의 목적에만 부합한다면 주저 없이 인종적·종교적· 민족적 긴장을 부추긴다.
외로운 사람들, 불안하고 남을 신뢰하며 어딘가 소속되길 갈망하지만 항상 ‘뱀을 보는‘ 이들은 포퓰리스트에게 이상적인(그리고 가장 취약한) 목표물이다. - P67

전후 뉘른베르크 재판에 제시된 증거문건을 통해 나치가 인종 말살을 위해 동원한 끔찍한 수법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어떻게 이런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아렌트는 알고 싶었다. 무엇이 평범한 사람을 집단 대학살에 가담하도록, 아니면 최소한 이를 용인하도록 만들었을까? 아렌트는 "나치즘의 핵심 구성원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추적해 근원적인 정치적 문제들을 발견하고자 했다. 1951년 아렌트는 이 주제에 대해 시대의 상징이 된 논쟁적 저작 『전체주의의 기원」을 발표했다. 이 책은 반시오니즘의 대두, 선전(프로파간다)의 역할, 인종주의와 관료주의가 결합한 제국주의 등 광범위한 주제를 아우른다. 그런데 아렌트는 이 책 후반부에서 놀랍게도 외로움이라는요소에 주목한다. 아렌트가 보기에 전체주의는 ‘외로움을 기반으로삼는다. [•••] 이것은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절망적인 경험에 속한다." 나치즘을 추종한 사람들의 "주요 특성은 [•••] 야만과 퇴보가아닌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 "임을 발견한 아렌트는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개인적 자아를 투항함으로써 목적의식과 자긍심을 되찾으려 한다"고 주장한다. 외로움 또는 "세상에 전혀 속하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경험"이 "전체주의정부의 본질이며 이것이 ‘전체주의의 집행인과 희생자를 준비하는것이라고 아렌트는 쓴다. 
아렌트가 말하는 외로움은 내가 내린 외로움의 정의와 공명한다. 주변화되고 무력해진 느낌, 고립되고 배제되고 자기 자리와 지원을 빼앗긴 느낌. 이러한 차원의 외로움이, 여기 그리고 21세기인 지금 날로 확대되고 있는 위험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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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등에 내 가슴을 밀착하고 그에게 기댄 채 몸을 둥글게 말면 우리의 숨소리는 하나가 되고 우리 발은 뒤엉킨다. 이것이 5,000번의 밤이 넘도록 그와 내가 함께 잠들어온 방식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각자 다른 방에서 자고, 낮에는 2미터 간격을 유지하려 지그재그 춤을 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나누던 포옹, 쓰다듬기, 입맞춤 같은 짧은 애정표현은 이제 금지되고 ‘내게서 떨어져‘가 새로운 사랑의 언어가 되었다. 끊이지 않는 기침에 아프고 힘든 상태가 계속되자 나는 남편에게 가까이 갔다가 혹시 그까지 감염시킬까 잔뜩 겁이 난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거리를 유지한다.
오늘은 2020년 3월 31일,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다른25억 명처럼 우리도 집이 봉쇄 상태다이토록 많은 사람이 집에만 묶여 원격 근무를 하는 처지(그러니까여전히 직장이 있다면)에 친구나 다른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닐 수도 없고, 하루 한 번이라도 바깥에 겨우 나가본들 ‘사회적 거리두기‘와 ‘검역‘과 ‘자가격리‘를 준수해야 하니 적이 외롭고 고독한 기분이밀려드는 걸 피할 수 없다. - P11

지금 사이토 씨는 여성 재소자 시설인 도치기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교도소를 선택한 수많은 일본 노인 가운데한 명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65세 이상 노령층의 범죄 건수가 4배로 급증했다. 15 이들은 5년 내에 재범을 저지를 확률이 70%다. 도치기 교도소 소장 준코 아게노는 이런 현상을 불러온 핵심 요인이 외로움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교도소 소장으로 일하면서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다." 고령 수감자가 증가하는 현상을 연구한 류코쿠대 교수 고이치 하마이도 여기에 동의한다. 하마이는 상당수의 노령여성이 사회적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옥을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매장에서의 소소한 절도 행위 같은 경범죄 (감옥에 가는 것이 목적일 때 저지르기 가장 쉬운 범죄다)로 수감된 재소자의 40%가 가족과 거의대화하지 않거나 가족이 아예 없다. 최근 몇 년간 절도 행위로 수감된노인의 절반이 수감 전까지 혼자 살았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들 가운데 다수가 감옥을 "집에서는 찾지 못하는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묘사한다. 어느 80대 재소자의 말처럼 감옥은 "항상 주변에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은 곳이었다. 18 동료 여성 재소자인 78세의 씨는 감옥을 이야기 나눌 사람이 많은", "오아시스"로 묘사했다. 그들에게 감옥은 친구뿐만 아니라 도움과 돌봄까지 제공되는 안식처였다. 
노년층은 우리 가운데 가장 외로운 사람들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집단이다. 실제로 이 집단은 평균보다 더 외롭다. - P17

특히 심각한 것은 이 문제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과소평가되기 쉽다는 점이다. 부분적으로 이는 외로움에 따라붙는 사회적 낙인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외로움을 인정하는 것을 무척 힘들어한다. 일터에서 외롭다고 느끼는 영국 직장인의 3분의 1은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한 적이 없다. 일부 사람들은 자기가 외롭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조차 인정하기 힘겨워한다. 외로움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일체의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요인에 의한 결과라기보다 개인적인 실패를 암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로움이 과소평가되는 진짜 이유는 그 정의에 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것과 동의어가 아닐뿐더러 (주변에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외로울 수 있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적인 외로움의 정의는 지나치게 협소하다. 우리가 21세기에 경험하고 있는 외로움은 전통적인 외로움의 정의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 - P19

물론 공동체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좋지 않다. 정의상 공동체는 배타적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편협하고 외부인에게 적대적이다. 다름이나 반항을 허용하지 않을 때도 많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대해서, 전통적이지 않은 가족 구조에 대해서, 대안적인 신념이나 생활 방식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 가령 하레디 공동체와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의 경우 공동체의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구성원은 처벌이 잔인하다는 것을, 또 그만큼 신속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공동체는 폐쇄된 집단 내에 머무르는 이들에게만큼은 확실한 건강상의 이점을 준다. 그 원천은 일단 공동체가 제공하는 실질적인 지원이기도 하고 누군가가 내 뒤를 지켜봐주고 있음을 아는데에서 오는 안도감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뿌리 깊은 진화적 과거에서 기원하는 한층 더 근본적인 어떤 것이기도 하다. 바로 우리 인간은 혼자 있지 않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P46

"신체를 돌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보는 것 역시 자신을 돌보는 한 가지 형태입니다. 저는 이것이 아주 놀라운 발견이라고 봅니다. " 물론 빈약한 인간관계와 외로움은 다르다. 그리고 앞서 강조했듯 외로움은 단지 우리가 다른 개인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정도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집단, 즉 제도와 사회 전체에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정도에도 영향받는다. 거기에다 수백 건의 의학 연구를 통해, 공동체 그리고 연결된 느낌은 건강상 이점을 제공하지만 외로움은 가장 좁게 정의되었을 때조차 위험한 대가를 요구한다는점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외로움은 우리의 신체적 건강을 쇠퇴시키는 우리 삶의 수많은 스트레스 원인 가운데 하나일 뿐일까, 아니면 외로움에 의한 스트레스에는 장기적으로 중대한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는 걸까? 답은 둘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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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전체로도 지구적 경쟁에 나설 준비가 부족한 처지에 자치주들이 태국이나 캄보디아 같은 더 큰 이웃 경제권들과경쟁할 수 있겠느냐고 진지하게 걱정했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미얀마가 무력한 조각들로 쪼개지지 않으면서도 민주화할 수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중앙 정부는 어떻게 하나로 통합된 국가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여러 민족 집단들의 정체성을 인정할 수있을까? 애초에 장군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국가 정체성의 잔재가 아닌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나 있을까? 미얀마를 지켜보는 제삼자들은 옛 유고슬라비아가 여러 공화국으로 산산조각나서오랫동안 대립을 일삼았던 것처럼 미얀마도 결국 와해될까 봐 우려한다.
자비를 강조하는 불교의 정신은 이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얀마 사람들은 이 맥락에서도 응징적 정의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임 추궁보다는 과거를 묻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윈 민은 1988년 봉기 이후 몇 년을 정글에서 보냈 - P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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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의 도시에서조차 10보다 큰 수가 존재한다고말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도시의 담벼락에는<모두가 10의 그늘 속에서 평등하다>라든가 <파르밀의 이단자들을 처단하자>라는 구호가 곳곳에 적혀 있었다.

파르밀은 마치 어떤 역병이 돌고 있어서 다른 나라들로부터 격리되기라도 한 것처럼 완전히 고립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하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파르밀은 지식이라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몹쓸 도시였을 것이다.
아무도 이 도시 국가를 지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파르밀은 존재하고 있었고, 그럼으로써 수에 관한 지식의 불씨도 꺼지지 않고 있었다. 비록 그 불씨를 간직하고 있는 파르밀 백성들의 수가갈수록 줄어들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중에 뱅상은 파르밀의 어느 거리에서 어떤 광신적인 <10의수호자에게 암살당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이 흘러 그가 호호백발의 노인이 된 뒤의 일이었다.
그는 화살을 맞고 쓰러지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한 싸움에서는 천장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바닥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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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네 말로 인해 낡은 생각이 깨지고 나은 생각이 완성되는 찰나의 기쁨을 느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문제에 힌트를 얻은 거지. 콘크리트처럼 굳어가는 사람이아니라 남의 말이 스며드는 고운 흙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질색하는 일도 한번 시도해보고 안 읽히는 책도읽고, 파도처럼 부단히 움직여야겠지.
버지니아 울프가 딱 그랬다. [파도]라는 독백과 이미지로 된 형식의 소설에 도전하면서 "완전히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런 작품을 쓰는 나 자신을 매우 존경한다"(해설, 313면)고 일기에 적었대. 자기 쇄신의 실행력이 존경스럽지. "포도송이에서 포도를 떼어내듯이 떼어내어 ‘받아요. 이것이 나의 인생이오‘라고 말"(253면)하는 몽상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이 있는가 하면, 또 "인생은 즐겁고 좋은 것이다. 월요일 다음에는 화요일이 오고 그다음에는 수요일이 온다"(286면)고 무심하게 삶에 순응하는 책을 마저 읽다가, 그날 너와의 대화를 복기하며 나는 좋은 늙음을 꿈꾼다. - P104

점원의 인상은떠오르지 않았어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사람의 눈을 보지 않고 음식에만 꽂혀 시선을 아래로 고정했어요. 상대의 눈을 보는 일은 존중의 짧은 의례이거늘. - P106

그럼 이제 와서 어쩌나요. 이 집요한 삶의 배반을 견딜 방법은 없는가. 예전에 어느 문학잡지를 보다가 중국계 미국인 작가 이윤 리Yiyun Li의 말이 너무 와닿아서 베껴놓은 적이있어요. 그가 그랬죠.
"삶은 그저 삶일 뿐이지요. 늘 고난이 있습니다. 좋은 순간도 나쁜 순간도 있고, 저는 좋든 나쁘든 그 모든 순간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우리는 고통과 슬픔을 경험할 테니까요. 그것은 삶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친절은 우리가 베풀거나 베풀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어요. 타인툰 아니라 자신에게도 친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자신에대한 친절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친절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일 텐데, 선택이기 때문에 저는 친절에대해 쓰는 것이 좋습니다."
고난은 피할 수 없지만, 친절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희망적입니다. 게다가 친절은 글쓰기로 훈련할 수 있거든요. - P107

지금 생각하니까 삶의 하중을 받아서 신체가변형되고 있었던 거 같아. 건강검진표에는 나오지 않는 이상 징후들이겠지. 눈빛은 차분함을 잃고 말투는 드세지고 걸음은 쫓기는 사람처럼 허둥지둥. 그런데 더 슬픈 건 그걸 내가 인지하지 못한다는 거야. 하루하루는 똑같아 보여도10년 후에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두려운 일이지. - P119

우린 슬픔에 무지한 종족입니다. 세월호 이전에도 슬픔은 허용되는 삶의 모드가 아니었죠. 슬퍼하는 사람은 약자로 분류되고, 약자는 구제의 대상이지 자기 목소리를 내는권리의 주체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공적 발언의 장이 주어지지 않고, 슬픔은 각자 삭여야 할 사적 과제로 여겨집니다. 슬픔을 표현하는 말도, 슬픔에 공감하는 말도 공동체에흐르지 못하니까 슬픔에 관한 언어가 빈곤하죠. 슬픔에 관한 지혜가 모자랍니다. - P171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는 그 나이를 두번 산다. 나도 열일곱 무렵부터 시가 괜히 좋았다. 시집표지가 나달나달해지도록 읽고 노트에 정성스레 베껴 쓰곤했다. 슬픔, 기쁨, 사랑, 그리움 같은 단어가 만든 감정의 둘레에서 나는 마치 꽃그늘 아래 앉은 것처럼 더없이 안전하다 느꼈다. 아이는 왜 그시의 그 부분이 좋았을까.
집 곳곳에 책이 있지만 수레는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 나도 굳이 아이에게 권하지 않는다. 한때는 책 읽으면 똑똑해진다는 신앙에 얽매이는 엄마였는데, 똑똑한 게 자기답게사는 데 도움이 되는지 걸림돌이 되는지 언제부턴가 헷갈린다. 그리고 책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자기만의 방식으로세상과 교감하며 느낄 것은 느끼고 배울 것은 배운다는 걸이젠 안다. 타인들의 삶을 관찰하고, 아이의 성장을 가까이지켜보며 자연스레 터득했다. - P209

"이야기를 바꾸는 일, 이름을 바꾸는 일, 새 이름이나 용어나 표현을 지어내고 퍼뜨리는 일은 세상을 바꾸려 할때 핵심적인 작업이다. (...) 백인 아이들은 그냥 ‘어울려 노는‘ 것이지만 흑인 아이들은 ‘어슬렁거리고‘ ‘슬금슬금 돌아다니는‘ 것이 된다. 언어는 지우고, 왜곡하고,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거짓 미끼를 던지거나 주의를 흘뜨릴 수 있다."(9-12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이야기를 바꾸는 것이라니. 해볼 만하지 않나요. 우린 이야기를 공기처럼 마시며 삽니다. 그중엔질 나쁜 공기처럼 몸에 해로운 이야기가 있지요. J가 성장기 내내 남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덕목들, 가령 자신감 있어라, 활동적이어야 한다, 같은 것들의 강요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또 아빠가 없어서 남자답지 못하다는 말은 듣기 싫었기에 혼란스러웠다고 했던 것처럼요.
솔닛은 세상의 이야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하는 사람‘이 되라고 조언합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는 세상을 둘러싼 그 물의 일부가 되어, 기존의 이야기들을 훼손하거나 강화할" (289면) 거라고요. 그러니까 부당함에 침묵하지 말자, 반박하고 저항하는 말들이 물처럼 넘치도록 하자는 뜻이겠죠. - P237

한 사람의 ‘능력‘이란 것은 타고난 재능이나 자질보다 가족으로부터 우수한 학업 기회가 꾸준하게 제공되느냐, 행운이 따르느냐 등 비능력적 요인에 의해 많은 것이 좌우됩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한 능력‘이 현수의능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72면)고 말해도 무리가없게 됩니다. 저자는 말해요. "능력은 환경적·사회적으로구성되는 것이며 ‘온전히 개인에게 속한 능력‘이란 환상이다."(21)또 하나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왜 능력을 꼭 학력과 성적으로만 측정하는가? 즉, 능력을 도대체 누가 평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 P248

가장 낮은 자리에 있기에 제일 먼저타격을 입고 가장 약한 이들이 모여 있기에 사회 모순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 탁아소가 쉽게 폐쇄되는 사회에서 청년들이라고 안전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긴축은 사람들을 흩어지게, 고독하게, 그리고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20면)며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쁠 것이 분명하다‘는 어두운 전망을 품는 젊은이를 양산했다"(67면)고 지적해요.
‘집도 절도 없다‘는 말을 그대도 들어보았을 거예요. 집과 절은 인간 생활을 떠받치는 두 중심 거점을 뜻하는 거 같아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집도 중요하지만 절이라는 출구가 없으면 집은 따뜻한 감옥일지도 몰라요. 의식주가 해결된다고 존엄이 보장되진 않으니까요. 저만 해도 사람답게살아갈 힘과 배움을 얻은 곳은 노조나 인문 공동체 같은 ‘절‘이었어요. 그대가 찾는 곳도 비빌 언덕이 되는 ‘절‘이겠고요. - P274

"사람은 누구나 깨진 꽃병이다. 이렇게 막고 저렇게막고 해봤자 깨진 걸 숨길 수 없다." 저는 연탄난로와 깨진꽃병의 마음이 있는 그곳이 천국이었구나 느끼면서 서울로향합니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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