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유라시아의 양 끝을 잇는 이 장거리 교역로를 실크로드(비단길)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이름은 잘못 지어진 것이다. 교역로는 단 한 갈래 길만 있었던 게 아니라, 도시들과 오아시스 마을들과 교역 집산지들을 연결하는광범위한 경로들의 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운송과 교역이 일어난 경로들은 거미줄처럼 중앙아시아에 뻗어 있었다. 그리고우리는 실크로드를 중국과 지중해의 양 끝 사이를 잇는 대륙 횡단 연결로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도 북부와 아라비아로뻗어 있는 경로들과 함께 그 중간 지점들 사이의 교역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 P262

 뜨거운 태양열에 의한 증발과 상승 기류 때문에 비가 많이내리는 적도 부근에는 울창한 열대 우림이 아마존 분지에서 시작해 동인도 제도,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에 걸쳐 뻗어 있다(1장에서 보았듯이, 동아프리카에 원래 있던 우림은 판의 활동으로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융기하면서 건조한 사바나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이공기가 높은 고도까지 올라가 이동하다가 다시 지표면으로 내려올 때쯤이면 (적도에서 남북으로 30° 쯤 떨어진 지점에서) 매우 건조한공기로 변한다. 그래서 이곳에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들이생겨난다. 남반구에서는 이 건조한 지역들의 띠에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레이트샌디 사막, 남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 남아메리카의 파타고니아 사막이 포함되어 있다. 북반구에도 이와 거울상처럼 비슷한 띠가 뻗어 있는데, 아메리카의 모하비 사막과소노라 사막, 사하라 사막, 아라비아반도, 인도 북서부의 타르 사막이 이곳에 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이 패턴이 조금 더 복잡하게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몬순 시스템과 그에 따른 많은 계절적 강수량 때문에 일반적인 사막의 띠 패턴이 적용되지 않는다. 8장에서 티베트고원과 히말라야산맥이 어떻게 인도 지역에서 몬순을 강화하는 작용을 하는지 보게 될 테지만, 이 높은 산맥들과 이 산맥들에서 파생한 파미르고원, 쿤룬산맥, 톈산산맥 같은 고지대는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몰려오는 습기 찬 공기를 막아 중앙아시아로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처럼 실크로드가 극복해야 했던 많은 사막은 비그늘(산맥이 습한 바람을 막아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의 반대편 경사면에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 효과 때문에 생겨났고, 그 결과로 아시아에서 사막의 띠는 다른 대륙들보다 적도에서 훨씬 더 먼 곳까지 뻗어 있다. 일부 사막에는 이동하는 모래 언덕이 많지만(타클라마칸 사막은 모래가 이동하는 사막 중아라비아반도 남부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루브알칼리 사막 다음으로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사막이다), 많은 사막은 자갈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표면이 단단해 물만 충분히 가져간다면 어렵지 않게 지나갈 수 있다.
따라서 지난 4000만~5000만 년 동안 일어난 판의 융기는 넓은호 모양의 히말라야산맥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뒤쪽에 사막들도 만들었다. 이 사막들과 산맥들이 실크 로드가 뻗어간 지형을 결정했다. 이 건조한 기후대에서 잘 활동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적응하여 동서 교역을 촉진한 동물이 있는데, 낙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P265

하지만 역사에서 실크로드가 지닌 중요성은 단지 교역 상품의 운송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 광범위한 육상 운송망은 유라시아 남부 해안선을 지나가는 해상 교역로와 함께 사상과 철학과 종교의 확산을 촉진하는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 수학과 의학, 천문학, 지도 제작 분야에서 일어난 획기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박차, 제지, 인쇄, 화약 같은 혁신과 신기술도 이 교역로를 통해유라시아 전역의 민족들 사이에 전파되었다. 이러한 육상 및 해상 통합 교역망은 그 시대의 인터넷과 같은 것이어서, 단지 서로먼 곳 사이의 상업뿐만 아니라 지식의 교환도 장려했다.
하지만 16세기부터 실크로드는 그 중요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탐험 시대에 유럽의 항해자들이 개척한 전 세계적인 해양네트워크에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활기찬 장소였던 실크로드의 옛 교역 집산지들은 과거의 활기와영광을 잃었고, 사마르칸트와 헤라트처럼 대상들이 들렀던 중간기착지는 오늘날에도 인구가 많은 도시로 남아 있긴 하지만, 그밖의 많은 교역 장소들은 우리의 문화적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아 있다. 그때부터 세계의 교역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해안의 항구들이었다. - P269

북쪽의 추운 타이가 기후대와 남쪽의 사막 지역 사이에 광대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 유라시아에서는 이 지역을 스텝steppe 이라부르는데, 북아메리카의 프레리prairie와 동일한 위도대에 있다. 남반구에서는 같은 위도대에 해당하는 지역에 아르헨티나의 팜파스pampas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벨트veld가 있다.
유라시아 대륙 중심에 뻗어 있는 스텝은 습윤한 해풍의 영향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강수량이 적다. 이렇게 건조한 곳에서는대부분의 나무가 살아남을 수 없어 이곳에 자라는 주요 식물은가뭄에 잘 견디는 풀이다. 풀은 많은 유제류(3장에서 보았듯이, 많은 유제류는 처음에 이 생태계에서 진화했다)의 먹이가 된다. 스텝은 만주에서 동유럽까지 연속적인 넓은 띠를 이루어 6000km 이상 뻗어 있다. 이 광대한 풀의 바다는 미국 본토보다 넓지만, 장소에따라 산맥 때문에 좁은 통로로 축소된 곳도 있다.  - P272

사람들은 말을 통제하고 타는 법을 터득했는데, 이것은 아주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3장에서 보았듯이, 양과 소 같은초식 포유류 종을 가축화하면서 우리는 풀을 영양분이 많은 고기와 젖으로 바꾸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정착 생활을 하는 농민에게는 가축을 먹여 살릴 풀밭이 얼마 없었고, 그래서 풀을 뜯어먹는 동물을 기르다 보면 풀밭이 금방 고갈되기 쉬웠다.
하지만 광대한 초원에서 말을 타고 가축을 몰면, 방목지를 훨씬먼 곳까지 넓힐 수 있고 훨씬 많은 가축을 통제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기원전 33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소가 끄는 일체형 바퀴 수레가 도입되면서 스텝 사람들은 필요한 모든 것- 식량과물, 천막 등과 함께 가축을 이끌고 광대한 초원을 장기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초식성 유제류 가축과 말을 이용한 빠른 기동성 그리고 이동식 주택 역할을 하는 소가 끄는 수레의 결합으로 스텝 지역은 많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변했다.
곡물을 재배하는 관개 농업은 스텝 지역을 가로지르는 일부강들 주변의 더 비옥한 지역에서만 가능했다. 그래서 대체로 이곳 사람들은 가축을 기르고 계절에 따라 다른 목초지를 찾아 늘이동하면서 초원의 유목민으로 살아갔다. 그리고 스텝의 자연지형에는 육상 이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거의 없다. 아시아의이 중심 지역은 판의 활동이 일어난지 오래된 지역으로, 최근에 판의 충돌로 구겨지는 사건이 없었고, 오랜 침식을 통해 평평하게 변했다. 유라시아의 남쪽 가장자리에는 큰 산맥들이 우뚝 솟아 있는 반면, 대륙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스텝 지역의 띠에는 그러한 장벽이 거의 없다. 예외는 우랄산맥뿐이다. - P276

이들이 유라시아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건들은 스텝 중심 지역에서 많은 군사를 이끌고 나와 대륙 가장자리에 정착한 문명들의 영토를 공격할 때 일어났다.이들 기마유목민은 농경 사회와 해양 사회의 강력한 적이었다. 이들은 때로는 공물을 요구했고, 때로는 농촌과 마을을 공격해 약탈했으며, 가져갈 수 있는 것을 다 약탈한 뒤에는 그냥 넓은초원 지대로 돌아가 버렸다. 농경 사회 군대는 상당한 규모의 기병이 없으면, 풀의 바다까지 유목민 군대를 추격할 수 없었는데, 건조한 평원에서는 식량을 구할 수 없어 보병만으로는 원정에 나설 수 없었다. 그래서 유목민 부족들이 느슨한 형태의 거대한 연맹체를 이루어 스텝을 떠나 정착 문명들을 침공하고 정복하는일이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일어났고, 때로는 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스텝 지역 민족들이 유라시아 가장자리 지역의 문명들에 미친 영향력은 단지 직접적인 군사적 공격에만 그치지 않았다. 유목민인 이들은 늘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환경의미묘한 균형에 균열이 생기면 (인구가 급증하거나 기후 변동으로 목초지가 황폐화되거나 하면) 전체 부족들이 기존의 생활 터전을 버리고더 나은 장소를 찾아 이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로 이동하는 부족들이 이웃 부족들을 밀어냄에 따라 마치 당구공이 서로 충돌하듯이 연쇄적으로 혼란의 물결이 스텝 지역 전체로 출렁이며 퍼져나갔다. 결국 일부 스텝 지역 민족은 정착 사회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예컨대 동양에서는 만주와 중국 북부에서. 서양에서는 우크라이나와 헝가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 P279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커뮤니케이션 동맥을 통해 훨씬 파괴적인 것이 전달되었으니,그것은 바로 질병이었다.
흑사병은 스텝 지역에서 시작되어 14세기 중엽에 연결된 이세계를 가로지르며 크게 퍼져나갔다. 흑사병의 한 종류인 가래롯페스트는 1345년에 중국에, 1347년에는 콘스탄티노플에 퍼졌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에서 상선을 통해 뱃길로 제노바와 베네치아로 전파되었고, 그다음 해 여름에는 북유럽으로 퍼졌다. 잇따른 흉년으로 제대로 먹지 못해 (흑사병이 퍼진 시기는 소빙하기중 첫 번째 극소점에 이른 시기와 일치한다) 이미 몸이 많이 약해져 있던 사람들은 금방 이 질병에 걸렸다. 불과 5년 사이에 전체 유럽인과 중국인 중 적어도 3분의 1이 흑사병으로 숨졌고,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유럽에서만 약 2500만명이 죽었다.
흑사병은 몽골의 칸들이 통치하는 지역들에도 큰 타격을 주었는데, 칸들의 통치력은 이미 내부 경쟁으로 크게 약화돼 있었다. 중국에서는 원나라가 1368년에 명나라에 멸망했고, 유라시아 전체에서 광대한 몽골 제국이 많은 나라들로 분열되면서 정치적, 경제적 통일성이 무너졌다. 스텝 지역은 다시 많은 유목민 부족들이 서로 뒤엉켜 경쟁하는 장소로 변했고, 동양과 서양을 잇던고속도로는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서유럽에서 흑사병은 좋은 결과도 일부 낳았다. 심각한 인구 감소로 많은 지주는 소작인을 잃게 되어 지대를 낮추고 더 유동적인 노동력을 받아들이지않을 수 없었다. 또,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장인과 농촌 노동자는더 높은 급료를 요구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봉건 제도에서 시행되던 농노 제도가 완화되었고, 서유럽에서 사회적 이동이 촉진되었는데, 인구가 많고 상업이 발달한 서유럽 도시들에서는 길드guild가 이미 상당히 큰 영향력을 떨치고 있었다. 스텝에서 시작되어 몽골인의 도움으로 유지된 교역 기반 시설에 도움을 받아 퍼져간 흑사병은 봉건주의의 기반을 뒤흔들어 이전과는 다른더 유동적인 사회를 탄생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 P291

그리고 초강대국 몽골의 정복은 유럽의 역사에 훨씬 지대한영향을 미친 다른 결과들도 가져왔다. 몽골족은 서쪽으로 진격하면서 중앙아시아의 호라즘 제국을 멸망시켰는데, 그러면서 교역집산지인 사마르칸트와 메르프, 부하라 그리고 아바스 왕조의 수도이던 바그다드까지 파괴했다. 하지만 몽골군은 유럽으로 깊숙이 들어오기 직전에 진격을 멈추었는데(오고타이 칸의 급작스러운 사망), 이것이 유럽에 큰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그 덕분에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항구들은 서양의 주요 상업 중심지로 계속 살아남았고,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시대에 부와 권력이 크게 성장했다. 유라시아의 이슬람 핵심 지역을 파괴한 반면 유럽을 고스란히 남겨둔 덕분에 몽골족은 이 지역에서 권력의 균형추를 유럽으로 기울게 했고, 유럽은 이슬람 세계를 추월해 더 빨리 발전할 기회를 얻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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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남편 윌리엄에 대해 몇 가지 말하고 싶다.

윌리엄은 최근에 몹시 슬픈 일을 몇 차례 겪었고 많은 사람이그런 일을 겪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래야 한다고 거의 강박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일흔한 살이다. 두번째 남편 데이비드는 작년에 죽었는데,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과정에서 나는 윌리엄에 대해서도 슬픔을 느꼈다. 슬픔이란 정말로-오, 그건 정말로 고독한 일이다. 그것이 슬픔이 무서운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슬픔은 당신이 유리로 된 아주 높은 건물의 긴 외벽을 미끄러져 내려오는데 당신을 보는 사람이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 - P9

윌리엄이 나를 과거의 애칭으로 부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그가 이 순간 여기 존재한다는 의미인데, 그는 그렇지 않을 때가많기에 나는 윌리엄이 그렇게 부르면 늘 가슴이 뭉클하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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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에게 삶이 수수께끼인 부분은,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잊어버린 후에도 그것을 지닌 채 살아간다는 사실이었다 환각지幻覺같은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솔직히 그때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발견했을 때 자신이 느낀 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더이상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겉만 깨끗이 긁어내면 되는 커다란 스테이크 조각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은 아마도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지독히 현실적인 문제라고, 그는 세월이한참 지난 뒤 아내에게 말했다. 이어 그녀의 공포가 제대로 숨겨지지 않은 채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왔다. 창피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 깨달음은 아주 즉각적으로, 심지어 그녀가 말하는 도중에 찾아왔다. 음, 그렇다면 당신은 한 번도 배고파본 적이 없었던 거군, 일레인. 그가 실제로 그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가 그에게 그런 질문을 했을 때 그는 창피함을 느꼈다. 그때 그는 분명 창피함을 느꼈다. 자식들에게는 아버지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찾은 음식을 먹을 만큼 가난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그녀는 그에게 요구했다. - P335

키스가 암으로 죽었다은 소식을 들었을 때 에이블은 깜딱 놀랐다. 그가 놀란 것은 죽음, 한 사람이 싹 지워지는 것, 그 남자가그렇게 간단히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어리둥절함과 관련이 있었다. 사라지는 것의 단순함은 에이블에게 익숙한것이었다. 그는 젊은 사람이 아닐뿐더러, 아버지가 사라진 것부터 시작하여 타인들의 죽음을 봐왔다. 하지만 그때 놀라움에 뒤따른 감정은 활활 타오르는 수치심이었다. 마치 지난 세월 키스에게 자신의 옷을 만들게 한 것이 뭔가 불미스러운 행동이었던것처럼. 그는 자신의 차에 탔을 때나 혼자 사무실에 있을 때, 혹은 아침에 옷을 입으면서 이 말을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오, 정말 미안해요."
보수당 지지자로 투표하면서, 이사회로부터 연간 보너스를 받으면서, 시카고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서, 그의 대부분이 오랜 세월 생각해왔던 것, 즉 내가 부자라는 사실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거야, 라는 말을 되뇌면서도, 그는 사과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갑자기 수치심이 파도처럼 그를 덮쳐왔다. 아내가 몇 년 동안 열감을 견딜때 얼굴이 대번에 발개지고 땀이 귀 밑으로 개울처럼 흘러내렸었는데, 꼭 그런 느낌이었다.  - P342

 곧 구급차가 속도를 높이자 에이블은 공포가 아닌 묘하고 강렬한 기쁨을 느꼈다. 온갖 문제들이 그 껍질이 벗겨진 채로, 혹은 지금도 계속 벗겨지면서 돌이킬 수 없이 그의통제를 벗어나는 데서 오는 지극한 행복감을. 하지만 그의 손이닿을 수 없는 곳에서 불빛이 반짝이고 있는 것처럼, 거기 크리스마스 창문이 있는 것처럼, 다른 무언가가 기다란 흔적을 그리고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며 어리둥절해지기도,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는데, 고단한 황홀경 상태에서 그것은 거의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링크 매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에이블은 가슴에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것 같았음에도 그 말을 들으니 미소가 지어졌다. 멋지고 덩치 큰 여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블레인 씨, 견디셔야 해요" 하고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 그 미소가 그들에게는 고통에 찬 찡그림으로 보였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는 지금그들을 남겨둔 채 초록빛 콩밭을 지나며 아주 가볍게 훌훌-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날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더없이 아름다운 사실을 가슴속에 지닌 채.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스노볼을 사랑하는 어여쁜 소피아처럼 에이블에게도 친구가 생겼다고. 하지만 말할 필요가없었다. 그리고 그런 선물이 그런 시간에 그를 찾아올 수 있다면 무엇이든...... 록퍼드에서 회의에 참석하려고 옷을 잘 차려입고온 그 사랑스러운 여자의 모습이 록강 위로 급물살처럼 흘러갔다…… 그가 눈을 떴고, 그래, 바로 거기 있었다. 온전한 깨달음이.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가능하다.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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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의견은 피고인 국가가 참고인 진술 내용 등의 모순점을 지적하여 그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거나 정리위원회의 결정을 다투어보려고 시도한 흔적을 찾을 수 없는데도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대하여 다수의견이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의 지적을하면서 다시 추가적인 증거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국회가 과거사 정리를 위하여 입법적 결단으로 제정한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이루어진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민사소송절차에서 다시 검증하자는 주장은 과거사정리법의 제정취지를 존중하지 않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의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민사소송 원칙을 고수하다 과거사위원회 진실규명결정, 형사법원 재심결정, 여러 특별법 제정의 입법정신 등 제도적 노력이 수포화되고, 특히 제도폭력에 따른희생자의 ‘구체적이고 특별한 희생‘이 결과적으로 재차 제도적으로 무위화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 P156

미국 시카고대학교 로스쿨 교수이자 미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오랫동안 일한 리처드 포스너는 실용주의자로 불린다. 미국 법체계의 더없는 복잡성, 미국 법관들의 이질성, 직업법관제를 택하지 않은 미국 사법부의 구성방식 등을 고려할 때 실용주의적 판결을 하는 수밖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실용주의적 판결의 핵심은 법관이 결과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이며, 따라서 정책적 판단의 토대를 개념론과 일반성에 두기보다 판결의 결과에 두겠다는 마음을 갖는 데 있다. 그러나 판결이 당면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합리적인 법실용주의자라면 당면사건의 판결이 가져올 결과뿐 아니라 제도상의 결과를 포함한 체011계상의 결과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법실용주의는 "법관에 대해 사건에서 서로 다투는 이익들에 비춰 합리적인 판결을 낸다는것 이상의 포부를 설정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미국의 로스쿨교육은 이러한 법실용주의적 방향과 반대로 가고 있다고 비판하고있다.
포스너에 의하면 로스쿨에서는 "법관에게 작용하는 동기와 제약, 그리고 그 결과 형성된 법관의 정신 상태는 무시하면서, 법관을 제한된 지성으로 불확실성의 바다를 항해하는 인간이 아니라 마치 컴퓨터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법관도 자연스레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자기 앞에 제출된 사건만 판단하는 데 익숙해지게 되고, 이는 법관들을 ‘기이한 수동성‘에 빠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수동성에 사로잡힌 판결은 결과적으로 법실용적인 결과를 낳지 못한다고 한다.
- P167

변호사나 교수 등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판사가 되는 영미법 국가와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그동안 직업법관제를 채택해왔다.
직업법관제란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법관의 이미지대로 "경력의 전부를 직업법관으로 일하는 법률가들로 법원이 구성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직업법관제를 채택한 나라의 대부분은 성문법을가지고 있다. "법전이 정확하고 상세할수록 법관이 자신의 정치적 - P168

또는 기타 개인적인 선호에 빠져들 가능성이 작아진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개별적인 사건에서 법관의 개인적인 의견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더욱 철저한 법리적 해석에 따라 모두가동등하고 평등한 판결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러나 포스너는 직업법관제 아래에 있는 법관들이 "‘때때로 입법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화된 영역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법리들일 뿐, 그 법리들과 그 법리들이 규율하는 제반 행위들 간의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포스너가 미국의 로스쿨 제도하에서 양성되는 법률가들이 ‘기이한 수동성‘에 빠지게 된다고 한 지적과 직업법관제와 성문법 시스템 하의 법관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은 상통한다. 법률가들이 때로 법만 따지고 현실을 무시하는 판결을한다는 지적은 바로 이런 법교육과 직업적인 법관으로서의 폐쇄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 P168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 내지 갈등의 현안들이 당사자 간 합의나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법정으로와 법적 관점에서 결말이 나는 현상을 말한다. 정치사회 영역이 사법에 점차 의존해가는 이런 현상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그 경향이 심화되기 마련이다. ‘정치적 현안이 법정에서 결정되는 대표적 예로 노무현, 박근혜 두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라든지 신행정수도 건설 근거법률의 위헌 결정 등을 쉽게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사법의 정치화‘란 법관이 법을 해석하는 형태로 법을 형성하는 데 참여함으로써 법관이 정치체제의 일부를 이룬다는 인식이다. 즉 사법부의 판결이나 결정이 정치와 분리된 사법의 범위 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치체제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치의 사법화가 광범위해지면서 사법의 정치화란 단순히 사법부가 정치의 일부를 형성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사법부의 판결 혹은 결정에 정치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미치는지의 문제로까지 확장되었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뜨거운 쟁점이 되는 판결에 대해 정치계, 경제계 등 외부의 힘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회 대다수가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드러난 사법부와 청와대 간의 이른바 ‘판결거래‘ 의혹과 같은 사태는 ‘외부의 힘이 사법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을 넘어 ‘사법부 스스로 외부의 힘을 불러들여 사법부의 현안을 해결하려 한다‘는 의심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보다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가 더 뜨거워진 이유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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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돌 표면에서 유공충이라는 해양 동물의 화석을 볼수 있다. 껍데기 폭이 최대 수 센티미터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할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것을 만든 생물이 단세포 생물이라는 점이다. 사람의 세포 중에서 가장 큰 난자는 폭이 약 0.1mm여서 맨눈으로 간신히 보이는 크기이다. 피라미드의 석회암을만든 해양 동물은 이에 비하면 매우 거대한 편이다. 이 해양 동물은 화폐석Nummulite(라틴어로 ‘작은 동전‘이라는 뜻)이라는 거대 유공충 종류에 속한다.
화폐석 석회암 광상은 피라미드 건설에 건축 재료를 제공한나일강 주변뿐만이 아니라, 북유럽에서 북아프리카까지, 중동에서 동남아시아까지 광대한 지역에서 발견된다. 이 광대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화폐석 석회암은 4000만~5000만 년 전에 따뜻하고 얕은 테티스해 가장자리에 퇴적되었다. 에오세 전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지구의 온도는 팔레오세-에오세 최고온기의 온도 급상승기보다 비록 온도는 더 높지는 않았지만 훨씬 더 오랫동안 높은 온도 상태가 지속되었다. 해수면 상승으로 테티스해의 물이 북유럽과 북아프리카를 뒤덮었다. 따뜻한 물에는 유공충이 아주 많이 살았는데, 이들이 죽자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동전 모양의 껍데기들이 거대한 더미를 이루어 가라앉아 해저 바닥을 뒤덮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이것들이 서로 들러붙어 화폐석 석회암이 되었다. - P180

문명의이야기는 인류가 발밑의 지구를 파내 그것을 쌓아 도시를 건설한 이야기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기본 암석은 세 종류가 있는데, 역사를 통해우리는 세 종류의 암석을 모두 사용해 문명과 도시를 건설했다. 퇴적암은 더 오래된 암석에서 침식된 물질이나 생물학적으로 생긴 물질이 퇴적된 뒤 교결 작용을 통해 엉겨붙어 생겨난다. 퇴적암의 예로는 사암, 석회암, 백악 등이 있다. 반면에 화강암 같은화성암은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나 지하 깊은 곳의 마그마가 식으면서 굳어져 만들어진다. 그리고 퇴적암이나 화성암이 고온과 고압의 환경(대륙 충돌이 충돌할 때 그 사이에 끼이거나 마그마가 암석층 속으로 뚫고 들어올 때처럼)에 놓이면 물리적으로나 화학적으로 변성되어 대리암이나 점판암으로 변하는데, 이런 암석을 변성암이라고 한다. - P185

하지만 대부분의 석회암은 티볼리 광천 같은 육지의 화산 온천이 아니라, 해저에서 생물학적 암석으로 만들어진다. 유럽 전역과 나머지 세계에서 발견되는 석회암은 대부분 많은 육지가따뜻하고 얕은 바다로 뒤덮였던 쥐라기 때 생겼다. 그 당시 바다에는 플리오사우루스와 어룡 같은 해양 파충류가 열대 바다에서헤엄치고 다닌 반면, 해저에는 유공충 같은 바다 동물의 껍데기에서 나온 탄산칼슘이 석회암 성분을 포함한 진흙으로 침전되었다. 모래 입자나 껍데기 파편이 해저에서 조수에 휩쓸려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그 위에 방해석 광물이 동심원의 형태로 층층이 쌓여 어란석(어란석은 영어로는 oolith라고 하는데, ‘알돌‘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이라는 작은 공 모양의 암석이 된다. 이 작은구체들이 더 많은 방해석과 함께 들러붙어 어란상 석회암을 만든다. - P187

따라서 시베리아 트랩에서 일어난 화산 분화는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느 화산 분화와 달리 지구 내부에서 엄청난 양의 가스가 방출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분화에서 방출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는 강한 온실 효과를 일으켰다. 지표면 온도가 급등했고, 깊은 바닷물은 산소가 부족해져 해저에 사는 생물들이 질식해 죽어갔다. 염화수소와 이산화황처럼 유독한 화산 가스가 높이 솟아올라 성층권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염화수소는 오존층을 심각하게 파괴해 태양의 해로운 자외선이 지표면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산화황은 햇빛을 일부 차단하는 효과를 일으켜 광합성 생물과 광합성 생물에 의존하는 생물을 살아가기 힘들게 만들었고, 그러다가 물과 섞여 산성비가 되어 내렸다.
전 세계의 생태계를 급속하게 붕괴시켜 지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멸종을 촉발한 주범은 바로 페름기 말에 일어난 이 다중재난이었다. 이 현상은 페름기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트라이아스기에서 쥐라기로 넘어가는 시점인 약 2억 년 전에 홍수 현무암사건이 또다시 일어났다. 이 사건도 대멸종을 초래했고, 그 결과 지구에서 공룡이 육상을 지배하는 동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 아주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페름기 사건과 트라이아스기 사건 이후에도 대규모 홍수 현무암 분화가 많이 일어났지만, 이와 비슷한 대멸종을 초래한 것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지구가 대분화의 격변적 효과에 탄력적으로 잘 대응할 수 있게 한 변화가 일어난 게 틀림없다. - P199

이번에도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관계아의 분열이다. 초대륙은 전반적으로 대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효율이 낮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면적의 내륙은 강수량이 적어 매우 건조해진다. 그래서 암석의 침식을 통해 제거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적고, 퇴적물과 영양 물질을 바다로 실어 날라 플랑크톤의 성장을 돕는 강도 적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위축시킨다. 따라서 판게아가 마지막으로 분열된 후지난 6000만 년 동안은 대규모 용암 분출을 통해 대기 중으로 방출된 이산화탄소를 지구가 훨씬 효율적으로 제거했다. 하지만이것이 다가 아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는 지질학적 메커니즘(산의 침식을 통해)은 아주 느리게 작용한다. 따라서 큰화성암 지대의 분화 때문에 일어난 급격한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은 암석 침식을 통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도로 떨어지기 훨씬전에 대멸종을 초래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생물학적 전이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약 1억 3000만 년 전의 백악기 초기에 대륙붕의 얕은 바다에살던 원석조가 서식지를 확장해 넓은 바다에서 플랑크톤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탄산칼슘 껍데기를 가진 유공충 역시 깊은 해저 서식지에서 표층수로 서식지를 넓혔다. 이것은 단지 대륙 주위의 얕은 바다뿐만 아니라 광대한 대양에 탄산칼슘 껍데기를 만드는 플랑크톤이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죽은원석조와 유공충 껍데기가 해저 바닥에 쌓여 새로운 종류의 퇴적물이 생겼는데, 이 때문에 대륙붕 지역뿐만 아니라 대양의 깊은 해저에서도 석회암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해양 생물이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깊은 해저에 생물학적 암석으로 가둬놓는 능력이 크게 높아졌다. 그리고 그 이후 지구에서 이산화탄소 농도는 꾸준히 감소해왔다. - P201

편암이라는 어두운 색의 단단한 변성암(진흙이나 점토가 지구 내부 깊은 곳에서 높은 열을 받아 변한) 덩어리들이 도시 전체 지역에서 지표면에 드러나 있다. 뉴요커들은 점심시간에 센트럴파크에서그러한 편암 위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기도 한다. 뉴욕의 편암은래브라도 해안에서 미국 동부를 따라 아래로 텍사스주와 멕시코동부와 스코틀랜드까지 뻗어 있는 거대한 산맥 아래에서 구워졌다(북대서양이 열리기 전에). 이 그렌빌산맥은 판게아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한 초대륙 로디니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뻗어 있었다. 약 10억 년 전에 로렌시아 대륙이 다른 두 대륙판과 충돌하면서 서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그렌빌산맥을 밀어 올렸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대륙들이 쪼개졌다 다시 붙었다 하는 동안 느리지만 끈질기게 진행된 침식 작용이 이 산맥을 깎아내 지금은 그 밑뿌리만 남아 있다.
뉴욕에서 편암층은 향사폐 (오목한 모양의 습곡. 중앙부에서 가장자리로 갈수록 오래된 지층이 분포한다)를 이루고 있는데, 이 때문에 편암층은 맨해튼 남단에서 지표면에 가까이 위치하고, 거기에서 조금 지난 미드타운에서 또다시 지표면에 가까워진다. 이 단단한 변성암 기반은 초고층 건물들의 엄청난 무게를 떠받치기에 좋은 기초를 제공한다. 그 사이에 위치한 향사에서 오목한 곳에는 더 무른 암석들이 분포하고 있어 거대한 건물을 떠받치기에 부적합하다. 고층 건물들의 패턴에는 기존의 상업 중심지에서일어나고 있던 발전처럼 사회경제적 요인도 영향을 미쳤지만, 전체적으로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은 그 아래에 있는 지질학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즉, 가장 높은 건물들이 들어선 지역은 단단한 편암이 떠받치고 있는 장소이다. 보이지 않는 지하 세계-침식으로 다 닳고 그루터기만 남은 아주 오래된 산맥의 패턴이지상 위에 우뚝 솟은 상업 중심지의 고층 건물들(신들에게 바친 기념물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바친 기념물인)의 패턴에 반영되어 있다. - P213

바닷물이 해저의 암석 사이로 스며 들어가 마그마를 만나 과열된다. 과열된 물은 지각을 뚫고 다시 솟아오르면서열수 분출공을 통해 해저로 뿜어져 나오는데, 그 과정에서 주변암석의 광물들이 물에 녹아서 함께 올라온다. 광물을 풍부하게함유한 이 뜨거운 유체가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면, 녹아 있던 금속성 황화물 광물 입자들이 침전하면서 잉크처럼 시커먼 소용돌이 기둥을 이루어 콸콸 솟아나온다. 그래서 이런 열수 분출공에블랙 스모커black smoker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높다란 굴뚝처럼생긴 블랙 스모커들은 칠흑같이 캄캄한 깊은 바닷속에서 집단을이루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마치 가우디에게서 영감을 얻은산업 지역 풍경처럼 보인다.
블랙 스모커는 황량한 심해 환경에서 살아가는 지구에서 가장극단적인 형태의 생명체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햇빛이 한줄기도 비치지 않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기묘한 생물 군집에는 길이가 2m나 되는 관벌레도 있는데, 이 관벌레는 1970년대 후반에 잠수정이 최초의 블랙 스모커 지역을 발견했을 때 처음으로 과학계에 알려졌다. 그 밖에 창백한 색의 새우, 고등, 게도 이곳에 살고 있다. 햇빛이 없는 이 생태계를 굴러가게 하는 것은 열수 분출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속과 황화물 같은 무기 에너지원을 섭취하면서 살아가는 미생물이다.
바다로 뿜어져 나온 입자들은 열수 분출공 주변 지역에 다시가라앉으면서 귀중한 금속(구리, 코발트, 금 등)이 깊은 해저에 높은 농도로 축적되지만, 현재로서는 채굴이 불가능하다.  - P222

미노아인이 구리를 채굴한 키프로스섬의 트로오도스산맥은쉽게 접근할 수 있고 예외적으로 잘 보존된 큰 규모의 오피올라이트이지만, 유일한 오피올라이트는 아니다. 판들의 충돌로 테티스해가 닫히면서 지중해가 만들어질 때, 다른 해양 지각 조각들도 육지 위로 밀려올라갔다. 오피올라이트 금속 광상은 지중해가장자리 주변의 알프스산맥, 카르파티아산맥, 아틀라스산맥, 토로스산맥 등지에서 띠를 이루어 발견된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대양이 닫힌 다른 사건들에서도 해양지각이 육지 위로 밀려올라가는 일이 일어났다. 에스파냐의 틴토, 캐나다의 노랜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랄산맥을 따라 늘어서 있는 광산들처럼 오늘날 가장 큰 규모의 광산들 중 일부는 풍부한 블랙스모커 금속 광상에서 구리와 아연, 납, 은, 철 등을 채굴하고 있다. - P228

세계 각지에서 제각각 다른 시기에 시작된 철기 시대는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다. 청동은 비교적 비쌌기 때문에 대체로 지배계층의 전유물로 쓰이거나 군대를 무장시키는 데 쓰였다. 반면에 철광석은 풍부하여 온갖 종류의 실용적 물건을 만드는 데 쓸수 있는 일반적 용도의 금속을 제공했다. 철제 도구는 또한 청동제보다 내구성이 더 좋고 날을 더 날카롭게 버릴 수 있었다. 이것은 단지 무기와 갑옷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도구에도중요한 특성이었다. 쇠도끼는 새로운 농경지를 만들기 위해 숲을 베어내는 작업에 큰 차이를 가져왔다. 그리고 철제 쟁기는 기존의 경작지에서 농업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이전에는 경작할 수 없었던 땅을 갈아 농경지로 만들었다. 이 두 도구는 새로운 정착 지역들을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P230

오늘날 산소는 공기 중에서 약 5분의 1을 차지한다. 지구의 역사중 처음 절반 동안은 대기와 바다에 산소 기체가 사실상 전혀없었다. 현재 공기 중의 산소와 바닷물에 녹아 있는 산소는 생물이 만들어낸 것이다. 일부 생물은 햇빛 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유기 분자로 만드는 능력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물을 쪼개 산소를 기체 노폐물로 배출한다. 이 생물학적 연금술을 광합성이라고 부르는데, 이 덕분에 세포는 놀라운 자급자족 능력을 발휘해 빛과 이산화탄소와 물에 녹아 있는 몇몇 영양 물질로부터 필요한 것을 모두 다 만들 수 있다.
이 광합성 능력이 발달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종류의 세포를 남세균, cyanobacteria 이라 부른다. 햇빛을 이용하는 더 복잡한 생물-규조류, 조류, 해초 그리고 육상의 모든 식물과 나무는 약 10억 년 전의 중요한 진화 사건을 통해 이 능력을 물려받았다. 그것은 바로 조상 단세포 생물이 남세균을 자기 몸의 일부로 포함시킨 사건이었다. 지구 전체에 산소를 공급한 장본인은 바로 원시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배기가스처럼 내뿜은 초기의 남세균이었다. 먼 옛날의 암석을 조사하는 지질학자들은 24억 2000만 년 전에 산소 농도가 처음으로 크게 증가한 증거를 발견하는데, 이 사건을 대산화 사건 Great Oxidation Event (산소대폭발 사건이라고도 함)이라고 부른다. 이때 증가한 산소 농도는 오늘날의 산소 농도에 비하면 몇 퍼센트 수준에 불과해 사람이 숨 쉬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했지만, 대산화 사건은 지구의 화학과 생명의 발달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다.  - P238

대산화 사건 직후인 22억~23억 년 전에 지구 역사상 가장 길고 아마도 가장 극심한 빙하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태양은 오늘날보다 25% 정도 희미했기 때문에, 지표면의 물이 액체 상태로 남아 있을 만큼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려면 상당히 큰 온실 효과가 필요했을 것이다. 먼 옛날의 대기에는 강한 온실가스인 메탄이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증가한 산소가 메탄과 반응하여 대기 중에서 메탄을 제거함으로써 지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던 담요를 벗겨냈다. 기온이 곤두박질치면서 전 세계적인 빙결이 일어났는데, 거의 모든 지표면이 두꺼운얼음으로 뒤덮인 이 상태를 눈덩이 지구Snowball Earth라 부른다. 이렇게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상태가 1000만 년 동안 계속 이어지다가 지속적인 화산 활동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충분히 높아지자 해빙기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지구를 극심한 빙하시대에서 구출한 것은 화산 활동이었다. 대산화 사건 무렵에 살았던 많은 미생물은 반응성이 높은 산소 기체에 제대로 대응할수 없었고, 결국 이 독가스 때문에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상 산소대학살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었다. 생물들은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독가스 속에서 살아남도록 진화하거나(우리의 조상 세포가 그랬듯이, 산소의 반응성을 이용해 자신의 대사 과정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해저의 진흙이나 길은 땅속처럼 산소가 침투하지 않는 서식지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택해야했다. - P239

그런데 이보다 훨씬 놀라운 해결책이 검토되고 있다. 스마트폰 터치스크린에 들어가는 인듐처럼 현대 전자공학에 쓰이는 일부 희귀한 금속은 아주 얇은 막으로 사용되거나 다른 금속에 극소량 섞어서 사용되는데, 이 때문에 전자 장비가 수명을 다한 뒤에 희귀한 금속을 회수해서 재활용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많은금속은 약간의 노력만으로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 우리는 못 쓰게 된 장비들을 수십 년 동안 그냥 버려왔기 때문에, 이제 많은매립지에는 이 소중한 금속들의 광맥이 숨어 있다. 이 상황은 매립지 채굴이라는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기한다. 쓰레기를 뒤져그 속에 매장된 보물을 캐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브뤼셀에서 동쪽으로 100km 지점에 있는 매립지의 한 시험 장소에서는 건축재료를 회수하고 쓰레기를 연료로 사용하려고 하는데, 그와 동시에 소중한 금속을 분류하고 회수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매립지 채굴은 영국에서도 곧 시작될지 모른다. 시험 대상이 된네 곳은 알루미늄과 구리, 리튬이 상당량 묻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전망이 특별히 밝은 곳은 일본의 첨단 기술 제품 매립지이다. 계산에 따르면, 이곳에 매립된 쓰레기에는 금, 은, 인듐이 전 세계 연간 소비량의 세 배가 포함되어 있으며, 백금은 어제면 여섯 배나 포함돼 있을지 모른다. 사실, 분해한 휴대 전화물질로 이루어진 그런 인공 광석에는 금이 실제 금광에서 발견되는 광석보다 30배나 높은 농도로 들어 있을 수 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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