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에게 삶이 수수께끼인 부분은,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잊어버린 후에도 그것을 지닌 채 살아간다는 사실이었다 환각지幻覺같은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솔직히 그때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발견했을 때 자신이 느낀 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더이상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겉만 깨끗이 긁어내면 되는 커다란 스테이크 조각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은 아마도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지독히 현실적인 문제라고, 그는 세월이한참 지난 뒤 아내에게 말했다. 이어 그녀의 공포가 제대로 숨겨지지 않은 채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왔다. 창피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 깨달음은 아주 즉각적으로, 심지어 그녀가 말하는 도중에 찾아왔다. 음, 그렇다면 당신은 한 번도 배고파본 적이 없었던 거군, 일레인. 그가 실제로 그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가 그에게 그런 질문을 했을 때 그는 창피함을 느꼈다. 그때 그는 분명 창피함을 느꼈다. 자식들에게는 아버지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찾은 음식을 먹을 만큼 가난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그녀는 그에게 요구했다. - P335

키스가 암으로 죽었다은 소식을 들었을 때 에이블은 깜딱 놀랐다. 그가 놀란 것은 죽음, 한 사람이 싹 지워지는 것, 그 남자가그렇게 간단히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어리둥절함과 관련이 있었다. 사라지는 것의 단순함은 에이블에게 익숙한것이었다. 그는 젊은 사람이 아닐뿐더러, 아버지가 사라진 것부터 시작하여 타인들의 죽음을 봐왔다. 하지만 그때 놀라움에 뒤따른 감정은 활활 타오르는 수치심이었다. 마치 지난 세월 키스에게 자신의 옷을 만들게 한 것이 뭔가 불미스러운 행동이었던것처럼. 그는 자신의 차에 탔을 때나 혼자 사무실에 있을 때, 혹은 아침에 옷을 입으면서 이 말을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오, 정말 미안해요."
보수당 지지자로 투표하면서, 이사회로부터 연간 보너스를 받으면서, 시카고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서, 그의 대부분이 오랜 세월 생각해왔던 것, 즉 내가 부자라는 사실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거야, 라는 말을 되뇌면서도, 그는 사과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갑자기 수치심이 파도처럼 그를 덮쳐왔다. 아내가 몇 년 동안 열감을 견딜때 얼굴이 대번에 발개지고 땀이 귀 밑으로 개울처럼 흘러내렸었는데, 꼭 그런 느낌이었다.  - P342

 곧 구급차가 속도를 높이자 에이블은 공포가 아닌 묘하고 강렬한 기쁨을 느꼈다. 온갖 문제들이 그 껍질이 벗겨진 채로, 혹은 지금도 계속 벗겨지면서 돌이킬 수 없이 그의통제를 벗어나는 데서 오는 지극한 행복감을. 하지만 그의 손이닿을 수 없는 곳에서 불빛이 반짝이고 있는 것처럼, 거기 크리스마스 창문이 있는 것처럼, 다른 무언가가 기다란 흔적을 그리고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며 어리둥절해지기도,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는데, 고단한 황홀경 상태에서 그것은 거의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링크 매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에이블은 가슴에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것 같았음에도 그 말을 들으니 미소가 지어졌다. 멋지고 덩치 큰 여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블레인 씨, 견디셔야 해요" 하고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 그 미소가 그들에게는 고통에 찬 찡그림으로 보였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는 지금그들을 남겨둔 채 초록빛 콩밭을 지나며 아주 가볍게 훌훌-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날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더없이 아름다운 사실을 가슴속에 지닌 채.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스노볼을 사랑하는 어여쁜 소피아처럼 에이블에게도 친구가 생겼다고. 하지만 말할 필요가없었다. 그리고 그런 선물이 그런 시간에 그를 찾아올 수 있다면 무엇이든...... 록퍼드에서 회의에 참석하려고 옷을 잘 차려입고온 그 사랑스러운 여자의 모습이 록강 위로 급물살처럼 흘러갔다…… 그가 눈을 떴고, 그래, 바로 거기 있었다. 온전한 깨달음이.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가능하다. - P3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