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의견은 피고인 국가가 참고인 진술 내용 등의 모순점을 지적하여 그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거나 정리위원회의 결정을 다투어보려고 시도한 흔적을 찾을 수 없는데도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대하여 다수의견이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의 지적을하면서 다시 추가적인 증거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국회가 과거사 정리를 위하여 입법적 결단으로 제정한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이루어진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민사소송절차에서 다시 검증하자는 주장은 과거사정리법의 제정취지를 존중하지 않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의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민사소송 원칙을 고수하다 과거사위원회 진실규명결정, 형사법원 재심결정, 여러 특별법 제정의 입법정신 등 제도적 노력이 수포화되고, 특히 제도폭력에 따른희생자의 ‘구체적이고 특별한 희생‘이 결과적으로 재차 제도적으로 무위화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 P156

미국 시카고대학교 로스쿨 교수이자 미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오랫동안 일한 리처드 포스너는 실용주의자로 불린다. 미국 법체계의 더없는 복잡성, 미국 법관들의 이질성, 직업법관제를 택하지 않은 미국 사법부의 구성방식 등을 고려할 때 실용주의적 판결을 하는 수밖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실용주의적 판결의 핵심은 법관이 결과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이며, 따라서 정책적 판단의 토대를 개념론과 일반성에 두기보다 판결의 결과에 두겠다는 마음을 갖는 데 있다. 그러나 판결이 당면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합리적인 법실용주의자라면 당면사건의 판결이 가져올 결과뿐 아니라 제도상의 결과를 포함한 체011계상의 결과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법실용주의는 "법관에 대해 사건에서 서로 다투는 이익들에 비춰 합리적인 판결을 낸다는것 이상의 포부를 설정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미국의 로스쿨교육은 이러한 법실용주의적 방향과 반대로 가고 있다고 비판하고있다.
포스너에 의하면 로스쿨에서는 "법관에게 작용하는 동기와 제약, 그리고 그 결과 형성된 법관의 정신 상태는 무시하면서, 법관을 제한된 지성으로 불확실성의 바다를 항해하는 인간이 아니라 마치 컴퓨터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법관도 자연스레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자기 앞에 제출된 사건만 판단하는 데 익숙해지게 되고, 이는 법관들을 ‘기이한 수동성‘에 빠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수동성에 사로잡힌 판결은 결과적으로 법실용적인 결과를 낳지 못한다고 한다.
- P167

변호사나 교수 등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판사가 되는 영미법 국가와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그동안 직업법관제를 채택해왔다.
직업법관제란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법관의 이미지대로 "경력의 전부를 직업법관으로 일하는 법률가들로 법원이 구성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직업법관제를 채택한 나라의 대부분은 성문법을가지고 있다. "법전이 정확하고 상세할수록 법관이 자신의 정치적 - P168

또는 기타 개인적인 선호에 빠져들 가능성이 작아진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개별적인 사건에서 법관의 개인적인 의견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더욱 철저한 법리적 해석에 따라 모두가동등하고 평등한 판결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러나 포스너는 직업법관제 아래에 있는 법관들이 "‘때때로 입법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화된 영역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법리들일 뿐, 그 법리들과 그 법리들이 규율하는 제반 행위들 간의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포스너가 미국의 로스쿨 제도하에서 양성되는 법률가들이 ‘기이한 수동성‘에 빠지게 된다고 한 지적과 직업법관제와 성문법 시스템 하의 법관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은 상통한다. 법률가들이 때로 법만 따지고 현실을 무시하는 판결을한다는 지적은 바로 이런 법교육과 직업적인 법관으로서의 폐쇄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 P168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 내지 갈등의 현안들이 당사자 간 합의나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법정으로와 법적 관점에서 결말이 나는 현상을 말한다. 정치사회 영역이 사법에 점차 의존해가는 이런 현상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그 경향이 심화되기 마련이다. ‘정치적 현안이 법정에서 결정되는 대표적 예로 노무현, 박근혜 두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라든지 신행정수도 건설 근거법률의 위헌 결정 등을 쉽게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사법의 정치화‘란 법관이 법을 해석하는 형태로 법을 형성하는 데 참여함으로써 법관이 정치체제의 일부를 이룬다는 인식이다. 즉 사법부의 판결이나 결정이 정치와 분리된 사법의 범위 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치체제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치의 사법화가 광범위해지면서 사법의 정치화란 단순히 사법부가 정치의 일부를 형성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사법부의 판결 혹은 결정에 정치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미치는지의 문제로까지 확장되었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뜨거운 쟁점이 되는 판결에 대해 정치계, 경제계 등 외부의 힘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회 대다수가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드러난 사법부와 청와대 간의 이른바 ‘판결거래‘ 의혹과 같은 사태는 ‘외부의 힘이 사법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을 넘어 ‘사법부 스스로 외부의 힘을 불러들여 사법부의 현안을 해결하려 한다‘는 의심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보다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가 더 뜨거워진 이유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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