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 뇌과학과 신경과학이 밝혀낸 생후배선의 비밀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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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나를 지배하는 건 내가 아닌 '뇌'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다. 단순한 일상생활 습관은 물론, 몸의 질병이나 심리적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뇌의 시스템이 변해야 가능하다. 심리서나 자기 계발서에서 배운 것들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뇌가 도와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단 얘기다.



"우리 뇌는 우리가 시간을 쏟는 일이 보상이나 목표와 관련되어 있기만 하다면,

그 일에 맞춰 스스로를 조정한다. 그것을 배우겠다는 의욕이 없으면 신경회로 재편은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에 알맞은 신경 조절 물질이 방출되지 않기 때문이다."(P.226)



<더 브레인>으로 유명한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이 책에서 뇌가소성의 확장 개념인 '생후배선'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우리 뇌가 평생에 걸쳐 스스로를 바꿔나가는 역동적인 존재임을 보여준다. 인간은 미완성의 뇌를 갖고 세상에 태어나 주변 환경을 반영해서 효율을 최적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회로를 조정하는데 이를 생생히 표현해주는 용어가 바로 '생후배선'이다. 뇌의 신체 지도는 유전자에 미리 각인된 것이 아니라 입력되는 정보에 따라 형성된다.경험 의존적이라는 얘기다. 즉, 우리는 '어떤 사람이다'가 아닌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 것이다.


책에는 생후배선의 놀라운 사례들이 다양하게 실려있다. 예를 들면 혀나 진동소리로 시각 정보를 추출해낼 수 있고, 촉각으로도 시각으로 접하는 세계를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감각을 탐지하는 기관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신호에 실린 정보가 중요할 뿐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팔을 잃었거나 다리를 잃었을 경우 운동피질이 재편되어 다른 부분들이 그 기능을 이어받을 수 있는데 이 역시 뇌가 특정한 형태의 신체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몸을 최적의 상황으로 스스로를 개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뇌가 적응하지 못하는 세상이나 신체 형태는 없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그냥 되는 일은 없다. 반복을 해야만 뇌의 구조에 반영된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반복적인 연습이나 노출 그리고 그 능력을 얻고 말겠다는 욕망이 있어야만 변화가 이루어진다. 나에게 중요하다고 인식되어야만 뇌도 노력을 해줄테니까. 하지만 이미 나이가 많다면 유연성이 감소되어 변화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활발한 생활을 계속하면 새로운 신경회로가 만들어질 수 있다하니 계속 관성대로 돌아오더라도 가능성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걸로. 우리 뇌가 어떻게 끊임없이 회로를 바꾸는지 궁금하다면 일독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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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에디터스 컬렉션 1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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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이 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지난번에 읽을 때는 내면의 문제였는지 취향의 문제였는지 책의 내용이 부담스럽고 저항감이 느껴졌었다. 음산한 분위기와 주인공의 나약한 삶의 태도가 공감은커녕 이해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독에서 놓쳤던 내용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전혀 다른 책을 읽는 것 마냥 새롭게 읽혔다. 내 시선으로 재단하며 읽지 않고, 주인공의 마음으로 읽어내려가니 그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는 너무 일찍 세상의 실체를 알아버렸다. 인간이 껍데기일 뿐임을 알아버렸고, 충실하게 무의미한 삶을 이행했다. 그리고 다시 '없음'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했다. 어둡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지만 이면에 담긴 인간이란 존재의 진실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고 성찰해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저는 인간을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수기 016

이 책의 주인공 요조는 어려서부터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관념이 자신의 것과는 너무도 달랐고, 돈을 위해, 먹기 위해 살아가는 이중적인 모습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세상 인간들과 동질감을 느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들과 연결고리를 잇고 싶어 인간의 행동을 흉내내며 자신의 진짜 정체를 들키지 않기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세상 속에서 타인들과의 '다름'은 수면 위로 올라왔고, 그의 괴로움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그는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단판에 끝내버리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된다.

이제 내겐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 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세 번째 수기 148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끝내 인간이 왜 삶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결핍과 두려움을 견뎌내지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 길을 택하고 만다. 나는 요조의 '무저항의 삶'을 옹호하고 싶지도 않고,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나 역시 마음의 힘듦을 경험했고, 누군가의 이해와 위로를 간절히 바랬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에게도 온전한 공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사무치게 느꼈었다. 많이 회복된 지금도 냉정한 세상과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혹시나 상처받을까 봐 깊숙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가 겁난다. 그렇지만 주인공 요조가 말했듯이 세상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다 지나간다. 시간과 함께 버티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조금씩 발을 내디뎌 본다면 단단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온전히 이해는 아니더라도 도와주고 함께하는 인연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주인공 요조에게 '너만이 결핍과 다름을 경험한 게 아니야. 나도 그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의 결말이 달라졌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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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아이온총서 1
박인성 지음 / 경진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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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란, 불교의 근본진리를 묻는 물음에 대한 선사들의 대답, 혹은 제자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말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화두는 생각과 감정에 가려진 우리의 본성을 찾기 위한 수행 방법 중 하나로 논리적인 생각으로는 풀 수 없는 주제를 붙잡고 있음으로써 번뇌를 끊고, 주제 안에 숨은 의미를 통해 망상에서 깨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한 방법이다.

이 책<화두>은 제목 그대로 화두만을 모아 해독한 책으로, 조주 선사의 화두가 주를 이루고, 마조 선사와 남전 선사의 화두 중 조주 선사의 화두와 연계된 것들만을 골라 담아냈다. 저자는 조주가 언어의 본질에 대해 깊은 성찰과 심원한 철학적 사유를 했기에 그의 화두가 문답 상대자의 언어를 언어로 해체시켜 언어를 통해 이해와 증득을 하나로 만들어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강렬한 힘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화두는 '금'이지만 주제를 해독한 결과로 '금'을 얻고자 하지 말고, 해독 과정을 눈여겨 읽어야 옛 선사들의 섬세하고 심원한 사유 과정에 동참할 수 있다고 당부한다.

책에 담겨있는 99개의 선문답은 예상대로 불편하고 무거워서 해설없이는 읽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구절마다 등장하는 불교 용어를 찾아보느라 불편했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문답은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엉킨 실타래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저자가 일상어로 풀어준 해독 역시 만만치가 않아서 꽤나 집중하고 음미하며 읽어야만 했다. 다행히 이렇게 공을 들여 화두를 들여다보니 조주의 화두 하나하나에 담긴 깊은 철학적 의미를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었고, 늘 생각하던 방식과 논리적으로 지은 경계를 무너뜨려 의미와 무의미를 사유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의 특징 중 하나인 들뢰즈 철학을 적용해 해독한 부분은 나로서는 언감생심이어서 가볍게 읽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선불교 철학을 서양철학에 의거해 해독한 내용이 궁금한 독자라면 관심가져 볼 만하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 뜰 앞의 잣나무이다.

  • 한 해가 다 가도 돈을 사르지 않는다.

  • 우리 안에서 소를 잃었다.

  • 앞니에 돋은 털이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는 '불법의 요지는 무엇이냐' '깨달음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선종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화두다. 이러한 불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숨어있는 말의 뜻을 찾아서는 알 수 없고, 언어의 의미로부터, 분별로부터 벗어나야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위에 네 가지 대답은 지칭하는 대상의 존재를 넘어서기 위한 말이다. '뜰 앞의 잣나무'는 눈앞의 실체에 고착되지 않는, 마음을 바로 가르켜 보인 것이며 '앞니에 돋은 털'역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부조리한 대상이기에 당초 고착될 것이 없음을 나타내고, '돈을 사르지 않음'과 '우리 안에서 소를 잃음'도 각각 작위적인 행동을 하지 않음을, 경계를 무너뜨림을, 즉 고착되지 않는 마음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정리해 보면, 우리의 본성은 '이것이다, 저것이다'하며 분별로 찾으려 하면 찾을 수 없고, 분별에 의지하지 않고 지금 눈앞에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바로 본성을 확인할 수 있음을 화두는 말하고 있다.

역시 언어의 이해로 깨달음을 얻기엔 부족하다. 화두를 풀기 위해서는 일상을 습관대로 지나치지 않고 냉철하게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모든 경험을 당연하게 대하지 않고, 새롭게 볼 때 그동안의 착각과 무지가 드러나 근본적인 답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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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 뇌인지과학이 밝힌 인류 생존의 열쇠 서가명강 시리즈 25
이인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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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자꾸만 떠오를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아무리 잊으려 애써도 도저히 잊히지 않아 너무나 힘들고 괴롭다. 그런가 하면 기억해야 할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밑줄까지 치면서 열심히 읽었던 책을 오랜만에 다시 떠올려보면 머릿속이 하얗다. 심지어 제목까지도. 잘 놔둔 지갑이 안 보일 때도 마찬가지다. 기억해 보려 애써도 흐릿하기만 하고, 도무지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이처럼 기억이 내 편이 아닌 것 같을 때는 골칫거리지만, 다행히 늘 문제만 일으키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나'라는 존재를 이끌어주는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뇌에게 학습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 숙명이다.

단순하게는 세상 속에 계속 존재하기 위해, 더 나아가 세상에 더 잘 적응하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뇌는 끊임없이 학습하고 기억한다.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018

책은 뇌가 학습하고 기억하는 근본적 이유와 원리에 관해 이론과 설명을 제시하는 과학교양 입문서다.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존재감은 거의 없는 '뇌'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기능이 문제를 일으키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 설명하여 뇌의 학습능력이 우리 생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서가 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의 시리즈답게 뇌인지 과학 분야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주제를 원 포인트 레슨받는 것처럼 집중적으로 섬세하게 설명하고, 뇌과학 책에서 자주 접하는 용어들도 친절하게 풀어내고 있어 특히 뇌과학을 처음 접하는 입문자들이 읽어보면 좋을 듯싶다.

경험한 것은 모두 뇌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 변화는 기억되며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이것이 뇌의 학습과 기억의 핵심이다.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025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뇌는 생존하기 위해 학습한다'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은 원시시대에 느꼈던 목숨의 위협과는 다른, 사회 안에서의 치열한 경쟁으로 끊임없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는데 뇌는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목적 하나를 위하여 끊임없이 학습하고, 학습된 것을 기억한다. 다시 말해, 뇌는 위험하고 해로운 것을 피하기 위해, 이로운 것을 취하기 위해 학습하고, 기억하여 우리를 생존하게 하고, 적응하게 한다. 이를 위해 뇌는 매 순간 회상, 재인(존재 확인), 계획, 상상력, 공감, 이해, 소통 등을 활용하여 학습하고, 학습한 것을 응용하면서 생존을 이어 나간다.

그런데 뇌는 한정된 세포와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경험을 정보로 저장하지 않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핵심 장면만을 저장한다. 자세히 말해, 간결하고 핵심만 추린 기억의 조각들에다가 상상을 섞어서 기억을 재구성한다. 또한, 뇌의 속성(생존에 유리하기 위해 에너지를 최소화함)은 애매한 상황을 비슷한 정보와 동일시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보처리를 '일반화'라고 하는데, 자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의 경험을 참고하여 '재해석'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에(새로운 시선으로 보는데 사용되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같은 경험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른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기억과 해석은 상당히 불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책은 이렇게 불완전하고 정확성 떨어지는 뇌가 우리에게 완전한 기억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뇌는 단순한 정보 저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불필요한 기억은 망각하고 좋은 기억은 더 잘 기억하는, 적응과 생존을 위해 균형 잡힌 상태라는 것이다.(단, 구조적 이상이 발생하여 학습의 영역이 둔화되거나 과잉된 경우는 제외한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기억들도 사실은 나를 보호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뇌가 제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끔 너무 열심히 경계하는 듯 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뇌는 끊임없이 학습하면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다는 것을 '기억'하고, 보다 의미 있는 경험들을 선택해나가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또다시 힘든 기억들이 괴롭힐 때에는 올라오는 기억들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마주하여 뇌가 불필요한 기억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게 기억과 싸우지 않는 최선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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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
앨런 라이트먼 지음, 송근아 옮김 / 아이콤마(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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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세상의 경험에 의존하면서 편안함을 목표로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만만치가 않다. 그 이유는 우리가 확실한 것만을 원하고, 불확실한 것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불확실한 곳인데 우리는 자신이 아는 것만을 고집하고, 모르는 것은 부정하거나 회피한다. 그러니 늘 오만과 편견 속에서 불안함을 끌어안고 살아가니 힘들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확장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절대적이라고 믿는 현실 속에 보다 큰 의미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과 수용이라는 내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은 이 세계의 시작과 끝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이자 소설가인 저자 앨런 라이트먼은 지금까지 과학이 밝혀낸 모든 것들과 다양한 종교 철학, 그리고 자신의 철학적 고찰을 잘 다듬어 멋지게 이 한 권에 담아냈다. 무와 무한 사이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우주라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 마음은 과학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등을 차분하게 들려주어 우리의 존재와 삶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무한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포용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무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125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모든 생명과 우주의 시작점일 수 있는 무()에 대하여, 2장은 마음의 과학적인 관점과 생명의 희귀성에 대하여, 3장은 우주의 거대한 공간과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 무한에 대하여 들려준다.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감수성 있는 글들로 풀어내었기에 완전하게 소화하겠다는 마음은 내려놓고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진지하게 읽어내려가야 보이는 책이긴 하다.

이 책은 현대 과학의 놀라운 발견들 속에서 '나'를 사색하게 한다. 우리는 무와 무한 사이의 가상의 공간 안에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혼돈의 세상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우리는 중력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으로 인간을 구성하는 작은 단위인 원자 속 끝없이 작은 세계와 우리 망원경 너머에 있는 끝없이 펼쳐진 존재의 끝을 알아낼 수 있게 됐지만 시간과 공간의 특성으로 인한 근본적인 한계로 우리 눈으로 그곳을 확인할 수는 없다. 오직 가늠만 할 수 있다. 그리고 (無)가 모든 물질과 우주의 시작점이라면, 원자들의 수많은 충돌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였다면 인간이란 존재는 초월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인 것이며 인간의 자아감과 감각 역시 비물질적인 가치가 아닌 화학적, 전기적 흐름에 의해 생성된 '원자의 집합체'일 뿐인 것이다. 즉, 우리는 생명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존재이면서 본질적인 가치가 없는 생명체에 불과하다.

이 말인즉슨, 우리가 꽤나 과학적이지 못하며, 이해되지 않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는 얘긴데 그렇다고 허무해하거나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행히 이 책은 비관적이지 않다. 저자는 비록 인간, 또는 생명체들이 자연의 법칙의 산물이라고 해도 경이로운 존재임은 틀림없으며 우리가 모르는 저쪽 편에는 신비로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 신비로움이야말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며, 그 신비로움이 우리를 계속해서 끌어당기고 자극해서 새로운 과학과 예술을 탄생시켜나간다고 현명한 조언을 건넨다.

그렇다. 우리가 원자의 집합체라 할지라도 오묘하고 모순된 존재이기도 하다. 상상과 꿈과 욕망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 자연의 논리에 순응하면서도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경계를 깨뜨리며 살아가는 특별한 존재 말이다.

바로 우리가 특별한 존재라는 믿음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원자가 바위나 물의 원자와 다르다거나,

우리 안에 비물질적인 요소가 있어서 특별하단 것이 아니라,

우리 원자가 생명체와 의식을 창조하기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는 것이다.

이 행성 안에서 사는 우리는 인간의 짧은 생애와 그 유한함에 대해 초조해한다.

그러나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 보지 않는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205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나'란 존재와 우주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린 것은 아니다. 애초에 정답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는 있다.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그냥 모를 뿐'으로 남겨둔 채, 삶의 기쁨은 최대화하고, 고통은 최소화하면서 현재를 충만하게 채우며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내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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