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 뇌인지과학이 밝힌 인류 생존의 열쇠 서가명강 시리즈 25
이인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자꾸만 떠오를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아무리 잊으려 애써도 도저히 잊히지 않아 너무나 힘들고 괴롭다. 그런가 하면 기억해야 할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밑줄까지 치면서 열심히 읽었던 책을 오랜만에 다시 떠올려보면 머릿속이 하얗다. 심지어 제목까지도. 잘 놔둔 지갑이 안 보일 때도 마찬가지다. 기억해 보려 애써도 흐릿하기만 하고, 도무지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이처럼 기억이 내 편이 아닌 것 같을 때는 골칫거리지만, 다행히 늘 문제만 일으키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나'라는 존재를 이끌어주는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뇌에게 학습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 숙명이다.

단순하게는 세상 속에 계속 존재하기 위해, 더 나아가 세상에 더 잘 적응하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뇌는 끊임없이 학습하고 기억한다.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018

책은 뇌가 학습하고 기억하는 근본적 이유와 원리에 관해 이론과 설명을 제시하는 과학교양 입문서다.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존재감은 거의 없는 '뇌'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기능이 문제를 일으키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 설명하여 뇌의 학습능력이 우리 생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서가 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의 시리즈답게 뇌인지 과학 분야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주제를 원 포인트 레슨받는 것처럼 집중적으로 섬세하게 설명하고, 뇌과학 책에서 자주 접하는 용어들도 친절하게 풀어내고 있어 특히 뇌과학을 처음 접하는 입문자들이 읽어보면 좋을 듯싶다.

경험한 것은 모두 뇌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 변화는 기억되며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이것이 뇌의 학습과 기억의 핵심이다.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025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뇌는 생존하기 위해 학습한다'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은 원시시대에 느꼈던 목숨의 위협과는 다른, 사회 안에서의 치열한 경쟁으로 끊임없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는데 뇌는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목적 하나를 위하여 끊임없이 학습하고, 학습된 것을 기억한다. 다시 말해, 뇌는 위험하고 해로운 것을 피하기 위해, 이로운 것을 취하기 위해 학습하고, 기억하여 우리를 생존하게 하고, 적응하게 한다. 이를 위해 뇌는 매 순간 회상, 재인(존재 확인), 계획, 상상력, 공감, 이해, 소통 등을 활용하여 학습하고, 학습한 것을 응용하면서 생존을 이어 나간다.

그런데 뇌는 한정된 세포와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경험을 정보로 저장하지 않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핵심 장면만을 저장한다. 자세히 말해, 간결하고 핵심만 추린 기억의 조각들에다가 상상을 섞어서 기억을 재구성한다. 또한, 뇌의 속성(생존에 유리하기 위해 에너지를 최소화함)은 애매한 상황을 비슷한 정보와 동일시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보처리를 '일반화'라고 하는데, 자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의 경험을 참고하여 '재해석'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에(새로운 시선으로 보는데 사용되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같은 경험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른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기억과 해석은 상당히 불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책은 이렇게 불완전하고 정확성 떨어지는 뇌가 우리에게 완전한 기억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뇌는 단순한 정보 저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불필요한 기억은 망각하고 좋은 기억은 더 잘 기억하는, 적응과 생존을 위해 균형 잡힌 상태라는 것이다.(단, 구조적 이상이 발생하여 학습의 영역이 둔화되거나 과잉된 경우는 제외한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기억들도 사실은 나를 보호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뇌가 제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끔 너무 열심히 경계하는 듯 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뇌는 끊임없이 학습하면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다는 것을 '기억'하고, 보다 의미 있는 경험들을 선택해나가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또다시 힘든 기억들이 괴롭힐 때에는 올라오는 기억들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마주하여 뇌가 불필요한 기억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게 기억과 싸우지 않는 최선의 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