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중독자가 되어버렸지만 괴짜라고 할 수 있는 아빠와 현실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림 그리는 엄마.이런 가정에 셋째인 저넷.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살아가는 이 가족들에게 책을 읽는 도중 정말 욕 나올만큼 화가 나고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앞에서 그래도 이 아빠가 정말 보고 싶을 것 같았다.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이 가족들의 기행이 불쌍했지만 또한 부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한 번 읽어 볼만 한 책이다.
어린시절 사고로 다리를 다친 로트레크는 키가 150을 겨우 넘기는 불구가 되었다.이런 이유로 더 그림에 마음을 쏟았는지도 모른다.로트레크와 드가를 비교해 설명한 부분도 좋았고 로트레크의 그림중에 ˝침대에서˝를 보고 있으니 너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다리가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난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 툴루즈 로트레크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툴루즈 로트레크
로트레크는 매춘부들이 서로 부드러운 포옹이나 키스를 하는 모습을 다룬시리즈를 완성했다. 그중에서 무엇보다도 성공적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은 <침대에서> (70~71쪽)일 것이다. 작품 속 두 인물은 더블 침대 속에서 시트와 이불로몸을 거의 다 덮은 채 머리만 보이고 있어서 둘 다 여성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채긴 어렵다. 침대에서 느긋하게 누워 있는 매춘부는 함께 있는 것에 만족하는 듯 서로를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다. 남성에게 성적으로 이용당하고 물건 취급을 당하는 매춘부에게 동성애 관계는 상처받기 쉬운 감정과 그 울분을 발산할 분출구였던 것이다.
이런 답답한 사랑을 본 적이 없다.주인공은 왜 자기의 사랑은 믿지 못했을까?
사람들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가 감춰둔 영혼, 질서정연하는 뒤죽박죽이든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세상에서가장 형편없고 가장 단순해 보이는 사람도 경이로운 내면로 품고 있을 수 있고, 가장 어리석은 사람도 고뇌에 찬 영혼의 소유자인 수 있다. 왜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미적거리며,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라는 듯 사람이라는 피조물을 이해하고 판단 내리는 걸까? 왜 우리는 처음 본 치즈의 특성을 말할 때 주저하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대해서는 단박에 결론짓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걸까? p58
그들은 삶을 즐기고 있었다. 생기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외따로 떨어져, 나만의 생각 속에 들어앉아 문을 걸어잠그고 살았다. 내가 저들 위에서 내려다본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내가 세상과 벽을 쌓고 살아온 이유는 지나치게 특별해서가 아니라, 있어야 하는 것들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이란 저 사람들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저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자기 몫의 삶을 걸머지고 살아가며, 의무를 이행하면서 세상에 뭔가를 돌려주고 있다.p223
꼭 조를 결혼시켜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만 빼면 무난한 마무리였다.독립적인 조를 보는 것으로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기 위한 책으로 간결하고 담백한 설명은 참 좋았다.시간이 좀 걸렸지만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스피노자를 알게하는 참 좋은 책.
우리가 지니고 있는 관념들의 대부분은 원인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결과들에 대한 인식이다. 자신이 받아들인 부분적인 결과를 거꾸로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으로부터 부적합한관념, 즉 오류가 생겨난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오류라고 부르는 것이 단지 관념들의 혼동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앞서 보았듯이, 인간은 자신의 신체에 자극받은 다양한 관념을 갖고 있다. 그러한 관념들 자체에는 아무런 오류가 없다. 우리가 다양한 관념 각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것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면서 매우 혼란스럽게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결과이고 원인인지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p122
스피노자에 따르면, 선과 악이란 결코 사물의 본성에 속한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다만 인간이 사물로부터 자극받은 대로 판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사람들이 선악을 판단하는 것은 ‘인간적인 정서‘에 따른 것일 뿐이다.(『에티카』 3부 정리 9 주석) "우리는 그것을 선善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향하여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을 느끼고 욕구하는 것이아니라, 반대로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을 느끼고 욕구하기때문에 어떤 것을 선이라고 판단한다."(『에티카』 3부 정리 9 주석) 어떠한 사물도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p146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욕망‘이라는 이름의 코나투스 역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욕망이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유익한 어떤 것을행하도록 하는 ‘충동‘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 욕망과 코나투스는 다르지 않다. 인간의 본성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하여 유익한 것을 행하도록 결정되는 한에서, 욕망은 곧인간의 본질 자체가 된다.(『에티카』 3부 정서의 정의 1) 그것이 인간의 정신과 관련될 때는 ‘의지‘라고 부르며, 정신과 신체 에 모두 관련될 경우 ‘충동‘ 이라 부를 따름이다. 따라서 그는인간의 의지나 충동, 욕망이나 본능, 이 모든 것을 일컬어 ‘욕망‘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p180
자유로운 사람들은 지복을 누리기 위해서쾌락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복을 누리기 때문에 쾌락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에티카』 5부 정리 42) 지복을 누리기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한다는 생각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지복과는 거리가 멀다. 스피노자에게 지복이란 사후나 먼 미래에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재의 삶 속에서 누리는 유덕한 삶으로 제시된다. 지옥 또한 미래에 닥칠 심판이 아닌 현재 삶의 일부로 존재한다. 그것은 정서에 예속되어 운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스피노자는 이런 예속된 삶을 가르켜 ‘진짜 지옥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다. ([신, 인간, 그리고 인간의 행복에 관한 소론]2부 18장)p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