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글리코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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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글리코 #아오사키유고 #도서제공 #리드비 #강추강추초강추


정말 바쁘게 다 놓치고 살고 있는 동안에도 이 책은 진짜 기대된다는 단톡방 멤버의 한 마디에 내가 먼저 가서 서평단 신청하고 제발 선정되기를 기다렸던 작품! 당당히 서평단에 선정되어 드디어 읽게 되었다. 거짓말 안 하고 야근 없는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사는 와중에도 4일 만에 단숨에 읽어버렸다. 지하철 타고 오가면서, 주말 하루 밖에 절대 안 나가고 하루 종일 집안에서 들고 다니면서 후루룩 삼켜버렸다. 와! 진짜 대박 재미있다!!!!


추리소설 팬이지만 뭐 이런 형식의 추리소설이 있는가 생각이 들었던, 허를 찌르는 장면들이 정말 많아서 즐거웠던 소설이다. 숫자에 약해서 첫 에피소드는 읽다가 생각했다가 계산했다가 왔다 갔다 하긴 했는데 뭐 어때! 재미있으면 되었지!


소설은 여러 가지 게임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에피소드를 모두 잇는 큰 전제의 스토리가 있다. 에피소드들이 워낙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기에 큰 전제의 스토리가 그렇게 큰 임팩트가 없긴 했고, 서사가 좀 약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이 소설에서 단점을 굳이 찾으라고 강요하면 하나 있을 단점일지도. 아무튼 굉장히 궁금한 결말이었는데 생각보다 약했다. 고등학생들이라는 설정하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 얘들아 돈이 장난이니?


마지막 장, "자세한 규칙을 들어 볼까요?"로 끝난다. 아니, 이거 너무 궁금하잖아! 작가님, 다음 시리즈도 나오는 건가요??


이 소설에는 다양한 게임이 담긴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일본 놀이 문화를 적당히 알고 있다면, 아니라면 예능 등으로라도 접한 적이 있다면 굉장히 재미있게 상상하며 읽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약간 무리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안내면 진다 가위바위보!"로 시작하지만 일본은 또 다른 구호로 시작하니까, 그런 맛을 번역이 다 담기에는 힘든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문화를 알고 있다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무조건 드라마로 나와줬으면 한다. 그러면 더 많은 팬이 생길 수도!


각각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느낀 점. 어릴 적 점 3개씩 세 줄, 총 아홉 개 점이 그려진 종이에 한 붓 그리기로 완성하는 문제를 풀었던 적이 있다. 그때 그 느낌, 규칙 내에서 변칙을 이용해서 푸는 그 짜릿한 결과 & 도파민 폭발의 기분이 기억났다. 그래서 놓지 못하고 다음 에피소드 또 읽고, 지하철에서 내려서 사무실까지 걸으면서도 책 읽고.. 이런 기분 얼마 만이었는지.


아오사키 유고 작가의 다음 작품도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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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니 사이코 픽션
박혜진 엮음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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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와 함께 클레이하우스로부터 선물 받은 두 번째 책이다. 아 정말 이 두 권 어떻게 말해야 하나. 머릿속에 계속해서 진한 영상이 남는다. 아직도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에서 남은 영상이 뇌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분인데 이렇게 또 훅 들어오는 느낌은 뭘까. 꼼짝없이 당해버렸다.

소설을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있다. 아니, 왜 이렇게 다들 미쳤어?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라면 스토리로 만들기 밋밋하겠지. 일상을 깨는 미친 사람들이 있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대개 그 미친 사람들이 가해자, 평범한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곤 한다. (그 틀을 깨고 주인공 또는 화자 자체가 미친 사람들이었다는 결론을 내는 경우도 있어 그게 신선하기도 하다.)

퍼니 사이코 픽션의 주인공들 또는 화자들은 다 미쳤거나 미친 사람과 매우 가까운 물리적 거리에 위치한다. 작가들은 비뚤어진 그들의 시선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하나씩 가졌다. 단편이기에 굉장히 단도직입적이고 빠르게 메시지가 전달된다. 그래서 어렵지 않고 쉽다. 아쉬운 면이라면 그 장점 때문에 작품들 초반에 빠르게 메시지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버린다. 수능에 출제된 처음 보는 문학 작품을 접하는 느낌 같은 그런 기분이 생긴다.

물론 모두 좋은 메시지를 가졌고 해석하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예술성이 높은, 문학적 가치를 알아보는 인간이 아닌 이상 서두부터 후루룩 빠져들기 힘들다. 이 소설들의 타겟은 누구였을까. 과연 나 같은 대중이었을까? 아니면 문학성을 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을까.

세상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이 책의 매력에 사로잡혀 버린 불편한 진실이 있다. 왜 모든 작품들이 하나같이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나도 저런 사람을 아는데, 나도 저렇게 당한 적이 있는데, 혹시 나도 사이코가 아닌가 하면서 공감되는 순간도 너무 많았다.

결국, 읽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고, 초반 위치 설정만 제대로 하면 금방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들이었다. 잘못 해석했다는 기분이 들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어보면 역시나 나를 착각하게끔 했지만 결국 전달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어떻게 이렇게 슥 지나가는 단어 하나하나에 잘 숨겨놨을까 하는 감탄도 들곤 했다. 하지만 초반 위치 설정의 어려움 그리고 불편한 현실을 너무 현실적으로 드러낸 서술에 불편하고 무거웠다. 초반을 잘 넘기지 못하면 뒷장을 읽으리라 보장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잘 쓴 소설은 재미와 동시에 사회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모두 잡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예를 들어 히가시노게이고나 다카노 가즈아키 같은 작가들. 재미있으려고 읽다가 사회적 메시지도 읽는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바로잡아야만 한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고 자체를 하게 된다.

대학 수업에서도 국내 현대 소설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이유가 그랬다. 사회적 공감을 얻으려 하다 재미를 놓쳐버렸다. 작품은 서사의 재미 자체보다 사명감을 가졌고, 해석되기를 원했다. 마치 그렇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할 것처럼. 지나치게 진지했다. 특히 나같이 빙빙 둘러말하면 못 알아듣는 T 100% 인간에게는 더더욱.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서두에서 시작을 하지 못해 들어가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책을 읽겠다고 작정하고 사서도 앞 몇 장에서 진행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린다. 그 시기를 넘기고 재미있는 중반으로 접어들게 되면 드는 생각, 한 번 잡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재미를 던져주고 그다음에 진지하게 가주면 안 될까?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지만, 서두에 잡아주지 못하는 탓도 많다. 문화적 사대주의는 절대 아니지만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소설을 읽다 보면 절로 끄덕이게 된다. 첫 장부터 독자를 잡고 간다. 그리고 전할 것을 다 전한다. 그래서 자꾸만 손이 간다. 정해연 작가도 그랬다. 그냥 첫 장부터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도 아직 한 권도 읽지 못했다. 문학상이라는 것에서부터 느껴지는 무게와 그간 겪은 국내 문학의 어려운 무게에 눌려 아직은 읽지 못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슬픔과 한과 억울함이 가득했던 과거의 독서 경험이 시작을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배경과 정서가 잔뜩 깔려 문화적 해석이나 물리적, 장소적인 상상 필요 없이 읽고 싶은 욕구가 가득하다. 경험과 무게와 그 편견을 언제쯤 걷어낼 수 있을까. 일단, 느끼게 하기 보다 무조건 해석하고 답을 골라야 하는 수능적 학습이 문제였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독서가 즐겁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앞으로의 과제가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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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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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하우스로부터의 선물, 이렇게 오랫동안 남을 줄이야. 10년 전쯤 영미 소설은 나에게 영 맞지 않는다며 굳이 골라 읽지 않았다. 대학 시절 영문학과 수업에서도 영어학은 역사와 언어가 함께 어우러지며 가장 재미있는 과목이었는데 문학은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국문학은 뭐 안 그랬나. 생각해 보니 그 당시는 나의 소양이 부족해 맞지 않다 한 것이지, 이제 와 돌아보니 그 때로 돌아가 함께 같은 책을 읽고 각자의 의견을 늘어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며 너무너무 나누고 싶다.

고전도 틈틈이 읽어가는 와중 만나게 된 이 책은 오랜만에 문장 속에 푹 젖어들어가며 손에서 놓지 못한 채 계속 읽고 다시 읽고, 또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신기한 힘을 보여줬다.


"그녀는 결국 자신이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딸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떄문이다."


후작 부인의 에피소드를 시작하기 전 챕터를 시작하는 첫 장에 쓰여있던 글이다. 시작 전부터 알 만했다. 얼마나 이기적인 엄마인가. “대리만족”이 떠올랐다. 역시나 자신이 누리지 못한 사랑을 갈구하다 딸마저 진절머리 내며 떠나버린다. 그 딸에게 편지로 매달리며 여전히 사랑을 갈구한다. 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치장을 해가며 써내린 문구들은 미학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였으나, 그 에너지로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았더라면 그녀는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잘못된 사랑을 깨닫고 새로 다시 살아보자 다짐하자마자 그녀는 그 사고를 당한다.


"이제 그는 사랑에 관한 돌이킬 수 없는 비밀을 발견했다. 가장 완벽한 사랑에서조차 한쪽이 다른 한쪽을 덜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로맨스가 벌어질까 상상했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다. 고아인 쌍둥이 형제는 그 단둘 밖에 없다.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를 사랑하며 각자를 하나 된 존재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러다 한 형제에게 나타난 사랑, 떠나려는 다른 형제. 둘이 아닌 적이 없었기에 서로는 서로에 의해 상처받고 서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랑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을 포기한 그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그를 잃은 다른 쌍둥이 형제는 정신을 잃는다. 쌍둥이였던 적이 없고, 쌍둥이 고아였던 적은 더더욱 없는 독자들은 그 슬픔과 아픔을 그 깊이만큼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부모를 잃은 자식이나,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만큼이나 찢어질 듯한 상태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래도 다시 새롭게 일어나자 마음먹은 그에게도 그 불행한 사고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닥쳐버린다.


"우리는 놀라운 수준의 훌륭한 것들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와서, 우리가 다시 경험하지 못할 아름다움을 희미하게 기억한 채 살다가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간다."


부모 자식도 없이 홀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던 음유시인 같은 그에게도 운명의 순간은 나타난다. 그녀를 만나, 그녀를 자식보다, 아내보다 더 깊게 사랑하게 되고 그녀의 성공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준다. 남김없이 다 주었지만 그녀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그녀에게 불행이 닥쳐 재기가 힘들어졌을 때도 그는 그녀의 아들에게 다시 모든 걸 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떠나는 길에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다.

불행한 사고로 떠나보낸 사람들의 주변 사람들은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평생 무거웠던 엄마를 애써 외면하고 떠나려 했던 딸, 그 엄마에게 말동무로 보내어졌던 소녀를 키워냈고, 쌍둥이 형제를 잃고 남은 한 형제를 새롭게 살려내려고 했던 수녀원장, 그리고 인생을 바쳐 멋진 여배우를 만들어냈으나 세상과 단절된 그녀를 구하기 위해 그의 아들에게 또 인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던 그와, 함께 떠난 그녀의 아들을 모두 잃은 여자. 이들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결국 죽는 사람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과연 그 답이 있을까.


문학의 임무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 했다. 나는 과연 이 책을 읽고 제대로 질문하고 있는 것일까.

훌륭한 책을 만날 때마다 만나게 되는 다짐이 하나 있다면, 좀 더 글 읽기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읽고 난 후에도 여러 번 떠오르며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가슴이 아려오는 소설이다. 퓰리처상 수상은 우연이 아니다.

아, 나 영미소설 좋아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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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라이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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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랜드”에 이어 밝은세상에서 제공받은 두 번째 소설책.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들이 교차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하는 방식이 피터 스완슨의 “죽어 마땅한 사람들”, “살려 마땅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두 사람이 아는 비밀을 지키려면

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

네버 라이, 프리다 맥파든

책 표지에 쓰인 이 문구가 눈에 띄었다. 도대체 어떤 비밀이길래, 그렇다면 둘 중 하나가 죽는 결말이려나? 표지에서부터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며 시작했지만 결국 나의 추리는 하나도 맞지 않은 채 끝나버렸다.

추리 소설은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읽으면 범인을 맞추고 마는데, 그 믿음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경우가 이런 미국 추리 소설이다. 굉장히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듯하지만 사실 읽다 보면 전개 방식에 의해 산만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결국 몇 명으로 한정되고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어? 하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다시 앞장을 뒤져서 내가 놓친 부분을 찾아내고 또 속았다며 웃어버렸다. 범인이라 가정한 사람은 전혀 범인이 아니었고,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아마도 이런 소설은 우리나라에서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미국이라는 배경은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소재들을 만들어낸다. 눈에 갇혀 제설차를 기다리느라 며칠씩이나 고립되다니. 대한민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사의 집에서 상담이 이루어지다니, 불법 의료 신고를 받을 일이다. 남이 쓰다 놓고 간 빈집의 가구들을 활용한다거나, 둘이 살면서 방이 6개가 넘는 대저택에 사는 것도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나의 추리가 틀릴 수밖에 없다.

어릴 적 읽던 틴에이지 소설들도 그렇고 미국 소설들은 항상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을 내놓는다. 그것이 문화의 차이에서 온다는 걸 최근 많이 느끼고 있다. 번역체의 낯섬도 한몫하지만 말이다.

이틀 출근시간만을 투자해 싹 읽어버렸다. 그러니까 집중해서 읽는 시간이 단 두 시간이면 되었다는 이야기다. 상당히 빠르고 강한 전개와 스토리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지하철 안에서 영화 한 편 순삭 한 느낌!

오랜만에 속도가 있는 소설을 읽어서 신났다^^

요새 읽은 소설들은 내가 그런 시선으로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주인공들이 사이코가 아니면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좁은 의미라던가.

아주 오래전 막장 드라마를 보시던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저 말도 안 되는 것이 현실 기반으로 쓴 각본이라고.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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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
스티븐 위트 지음, 백우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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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젠슨황생각하는기계 #스티븐위트 #백우진옮김 #RHK코리아 #알에이치코리아 #도서제공


5월은 숨 막힐 정도로 일이 많았다. 아니 아직도 많다. 그 연장선상에 있다. 불안해서 주말에도 노트북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할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놓칠 수가 없었다. 작년부터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전기를 읽었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당연히 젠슨 황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내 눈앞에 나타날지 몰랐지만.

이렇게 일이 많고 바쁜데 책 읽을 시간이 있냐고 묻는다면, 일이 많고 바쁘다고 물 마실 시간이 있냐고 묻는 것과 같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제대로 붙들 수 있게 책을 잡고 있어야 한다. 덕분에 작년 5월엔 초록으로 물드는 세상에 눈이 팔려 딱 한 권 읽는 책태기에 빠졌지만 올해는 더더욱 책을 붙잡고 있다.

스티브 잡스를 읽으며 아이폰 하나만 애플이었던 집안의 모든 전자기기는 애플로 바뀌었고 애플 제품에 대한 리스펙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내가 모으고 있는 미국 주식의 반절이 이미 애플이다. 차량은 고장 날 때까지 바꿀 생각이 없고, 우주여행은 아직 먼 이야기로 들려 일론 머스크의 제품들은 존중하지만 아직 멀다. 제품을 먼저 알았고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잘 모르던 그 엔비디아는 언젠가 내가 읽어야 할, 알아야 할 기업으로 찍어두고 있었다.

엔비디아? 엔디비아? 이름부터 헷갈리는 이 기업은 대략 2010년대 중반부터 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직을 하며 새로 지급받은 컴퓨터에 그 스티커가 붙어있었고, 윈도우 화면 우측 하단에서 보였으며, 게이밍 노트북을 하나 구매하면서 또 눈에 띄었다. 당시에는 큰 관심은 없었지만 이 초록색 로고는 자꾸 내 시선을 빼앗았고, 언젠가 오래전 알던 지인이 그 회사에 다닌다고 하여 또 신경이 쓰였다.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를 읽으며 그들은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천재와 함께 따라오는 수식어는 “괴짜”, 좋은 말로 그렇지 현실적으로는 “미친놈“이다. 그런데 젠슨 황은 천재가 맞고, 괴짜가 아니다. 그만의 특별하고 과하며 당하면 무서운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전자와 달리 막무가내는 아니다.

세 사람은 모두 미국에서 성공했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스티브 잡스뿐이고 일론과 젠슨은 이민자이자 이방인이다. 하지만 백인 가정에서 자란 둘과 아시아 가정에서 자란 젠슨은 다르다. “잘난 내”가 세상의 중심인 백인 가정과 “책임을 가진” 아시아 가정의 교육관에 의해 자란 사람은 뿌리가 다르기에 결과물도 다르다. 동아시아 내에서도 한국, 일본, 대만은 같지 않다.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각 국가의 기업이 원하는 방향성은 뿌리가 같다고 생각한다. 만약 젠슨 황이 엔비디아라는 기업의 CEO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특히 백인), 나의 교육관은 “잘난 내 새끼”를 만드는데 집중되었을지도 모른다. 각 문화적 특징상 장단점이 있지만 그중 장점을 극대화하면 어느 것이 열등하다는 결론은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엔비디아를 엔디비아라고 헛갈려 읽지 않는다. 엔비디아의 엔비는 ENVY라고 확실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직접 상품을 쓰고 있기에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쉽게 읽었다. 운전을 할 줄 알고 우주선의 비행 과정을 알기에 일론 머스크도 쉬웠다. (심지어 원서였음에도 다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반도체는 나 같은 문과 출신에게 어려웠다. 노트북을 뜯어볼 수도 없고, 뜯어본 들 그 안의 머리카락보다 가는 회로를 눈으로 확인이나 가능하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할 만큼 즐거웠던 이유는 그가 걸어온 길이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어렵다. 이미 돈 되는 세상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불쑥 나타나거나, 남들이 버리고 잊은 것들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이 과정은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나 젠슨 황이나 동일했다. 다만, 내가 몸담은 조직이 그 비전을 알고 그만큼을 견뎌줄 자금이 있고 나를 지지해 줄 수 있는지가 문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모두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과 어떤 조직과 어떤 상황을 만나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뒤흔든 존재가 되거나 길거리에서 팔자타령을 하게 될 것이다. 인생은 그야말로 한 끗 차이다.

성공한 사람의 전기를 읽는 것은 참 즐겁다. 어차피 해피엔딩인(성공한) 것을 알기에 어려운 과정도 당연한 것처럼 읽어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어려운 과정에 당도해있는 나는 너무 괴롭다. 이 과정이 없으면 큰 성공도 없는 줄 알고 있다. 여러 번 그 어려운 과정에서 내외부적 요인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싶다.

무너지려고 하는 멘탈을 잡기 위해 그렇게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 것 같다. 아직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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