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퍼니 사이코 픽션
박혜진 엮음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4월
평점 :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와 함께 클레이하우스로부터 선물 받은 두 번째 책이다. 아 정말 이 두 권 어떻게 말해야 하나. 머릿속에 계속해서 진한 영상이 남는다. 아직도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에서 남은 영상이 뇌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분인데 이렇게 또 훅 들어오는 느낌은 뭘까. 꼼짝없이 당해버렸다.
소설을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있다. 아니, 왜 이렇게 다들 미쳤어?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라면 스토리로 만들기 밋밋하겠지. 일상을 깨는 미친 사람들이 있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대개 그 미친 사람들이 가해자, 평범한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곤 한다. (그 틀을 깨고 주인공 또는 화자 자체가 미친 사람들이었다는 결론을 내는 경우도 있어 그게 신선하기도 하다.)
퍼니 사이코 픽션의 주인공들 또는 화자들은 다 미쳤거나 미친 사람과 매우 가까운 물리적 거리에 위치한다. 작가들은 비뚤어진 그들의 시선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하나씩 가졌다. 단편이기에 굉장히 단도직입적이고 빠르게 메시지가 전달된다. 그래서 어렵지 않고 쉽다. 아쉬운 면이라면 그 장점 때문에 작품들 초반에 빠르게 메시지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버린다. 수능에 출제된 처음 보는 문학 작품을 접하는 느낌 같은 그런 기분이 생긴다.
물론 모두 좋은 메시지를 가졌고 해석하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예술성이 높은, 문학적 가치를 알아보는 인간이 아닌 이상 서두부터 후루룩 빠져들기 힘들다. 이 소설들의 타겟은 누구였을까. 과연 나 같은 대중이었을까? 아니면 문학성을 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을까.
세상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이 책의 매력에 사로잡혀 버린 불편한 진실이 있다. 왜 모든 작품들이 하나같이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나도 저런 사람을 아는데, 나도 저렇게 당한 적이 있는데, 혹시 나도 사이코가 아닌가 하면서 공감되는 순간도 너무 많았다.
결국, 읽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고, 초반 위치 설정만 제대로 하면 금방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들이었다. 잘못 해석했다는 기분이 들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어보면 역시나 나를 착각하게끔 했지만 결국 전달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어떻게 이렇게 슥 지나가는 단어 하나하나에 잘 숨겨놨을까 하는 감탄도 들곤 했다. 하지만 초반 위치 설정의 어려움 그리고 불편한 현실을 너무 현실적으로 드러낸 서술에 불편하고 무거웠다. 초반을 잘 넘기지 못하면 뒷장을 읽으리라 보장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잘 쓴 소설은 재미와 동시에 사회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모두 잡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예를 들어 히가시노게이고나 다카노 가즈아키 같은 작가들. 재미있으려고 읽다가 사회적 메시지도 읽는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바로잡아야만 한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고 자체를 하게 된다.
대학 수업에서도 국내 현대 소설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이유가 그랬다. 사회적 공감을 얻으려 하다 재미를 놓쳐버렸다. 작품은 서사의 재미 자체보다 사명감을 가졌고, 해석되기를 원했다. 마치 그렇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할 것처럼. 지나치게 진지했다. 특히 나같이 빙빙 둘러말하면 못 알아듣는 T 100% 인간에게는 더더욱.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서두에서 시작을 하지 못해 들어가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책을 읽겠다고 작정하고 사서도 앞 몇 장에서 진행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린다. 그 시기를 넘기고 재미있는 중반으로 접어들게 되면 드는 생각, 한 번 잡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재미를 던져주고 그다음에 진지하게 가주면 안 될까?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지만, 서두에 잡아주지 못하는 탓도 많다. 문화적 사대주의는 절대 아니지만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소설을 읽다 보면 절로 끄덕이게 된다. 첫 장부터 독자를 잡고 간다. 그리고 전할 것을 다 전한다. 그래서 자꾸만 손이 간다. 정해연 작가도 그랬다. 그냥 첫 장부터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도 아직 한 권도 읽지 못했다. 문학상이라는 것에서부터 느껴지는 무게와 그간 겪은 국내 문학의 어려운 무게에 눌려 아직은 읽지 못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슬픔과 한과 억울함이 가득했던 과거의 독서 경험이 시작을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배경과 정서가 잔뜩 깔려 문화적 해석이나 물리적, 장소적인 상상 필요 없이 읽고 싶은 욕구가 가득하다. 경험과 무게와 그 편견을 언제쯤 걷어낼 수 있을까. 일단, 느끼게 하기 보다 무조건 해석하고 답을 골라야 하는 수능적 학습이 문제였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독서가 즐겁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앞으로의 과제가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