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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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하우스로부터의 선물, 이렇게 오랫동안 남을 줄이야. 10년 전쯤 영미 소설은 나에게 영 맞지 않는다며 굳이 골라 읽지 않았다. 대학 시절 영문학과 수업에서도 영어학은 역사와 언어가 함께 어우러지며 가장 재미있는 과목이었는데 문학은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국문학은 뭐 안 그랬나. 생각해 보니 그 당시는 나의 소양이 부족해 맞지 않다 한 것이지, 이제 와 돌아보니 그 때로 돌아가 함께 같은 책을 읽고 각자의 의견을 늘어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며 너무너무 나누고 싶다.

고전도 틈틈이 읽어가는 와중 만나게 된 이 책은 오랜만에 문장 속에 푹 젖어들어가며 손에서 놓지 못한 채 계속 읽고 다시 읽고, 또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신기한 힘을 보여줬다.


"그녀는 결국 자신이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딸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떄문이다."


후작 부인의 에피소드를 시작하기 전 챕터를 시작하는 첫 장에 쓰여있던 글이다. 시작 전부터 알 만했다. 얼마나 이기적인 엄마인가. “대리만족”이 떠올랐다. 역시나 자신이 누리지 못한 사랑을 갈구하다 딸마저 진절머리 내며 떠나버린다. 그 딸에게 편지로 매달리며 여전히 사랑을 갈구한다. 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치장을 해가며 써내린 문구들은 미학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였으나, 그 에너지로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았더라면 그녀는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잘못된 사랑을 깨닫고 새로 다시 살아보자 다짐하자마자 그녀는 그 사고를 당한다.


"이제 그는 사랑에 관한 돌이킬 수 없는 비밀을 발견했다. 가장 완벽한 사랑에서조차 한쪽이 다른 한쪽을 덜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로맨스가 벌어질까 상상했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다. 고아인 쌍둥이 형제는 그 단둘 밖에 없다.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를 사랑하며 각자를 하나 된 존재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러다 한 형제에게 나타난 사랑, 떠나려는 다른 형제. 둘이 아닌 적이 없었기에 서로는 서로에 의해 상처받고 서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랑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을 포기한 그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그를 잃은 다른 쌍둥이 형제는 정신을 잃는다. 쌍둥이였던 적이 없고, 쌍둥이 고아였던 적은 더더욱 없는 독자들은 그 슬픔과 아픔을 그 깊이만큼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부모를 잃은 자식이나,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만큼이나 찢어질 듯한 상태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래도 다시 새롭게 일어나자 마음먹은 그에게도 그 불행한 사고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닥쳐버린다.


"우리는 놀라운 수준의 훌륭한 것들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와서, 우리가 다시 경험하지 못할 아름다움을 희미하게 기억한 채 살다가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간다."


부모 자식도 없이 홀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던 음유시인 같은 그에게도 운명의 순간은 나타난다. 그녀를 만나, 그녀를 자식보다, 아내보다 더 깊게 사랑하게 되고 그녀의 성공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준다. 남김없이 다 주었지만 그녀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그녀에게 불행이 닥쳐 재기가 힘들어졌을 때도 그는 그녀의 아들에게 다시 모든 걸 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떠나는 길에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다.

불행한 사고로 떠나보낸 사람들의 주변 사람들은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평생 무거웠던 엄마를 애써 외면하고 떠나려 했던 딸, 그 엄마에게 말동무로 보내어졌던 소녀를 키워냈고, 쌍둥이 형제를 잃고 남은 한 형제를 새롭게 살려내려고 했던 수녀원장, 그리고 인생을 바쳐 멋진 여배우를 만들어냈으나 세상과 단절된 그녀를 구하기 위해 그의 아들에게 또 인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던 그와, 함께 떠난 그녀의 아들을 모두 잃은 여자. 이들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결국 죽는 사람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과연 그 답이 있을까.


문학의 임무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 했다. 나는 과연 이 책을 읽고 제대로 질문하고 있는 것일까.

훌륭한 책을 만날 때마다 만나게 되는 다짐이 하나 있다면, 좀 더 글 읽기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읽고 난 후에도 여러 번 떠오르며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가슴이 아려오는 소설이다. 퓰리처상 수상은 우연이 아니다.

아, 나 영미소설 좋아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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