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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투라 CULTURA 2025.12 - Vol.138, 2025 ICON
작가 편집부 지음 / 작가 / 2025년 11월
평점 :
#쿨트라 #culturamagazine #서평단 #도서제공
잡지를 읽어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콘텐츠들이 SNS를 장악해버렸으니 이제는 출판되어 나오는 잡지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이 되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드를 넘겨 소비하기보다는 소유하고 싶은 기분이 든 이유는 주제였던 '2025 ICON' 때문이었다. 나는 문화 예술 전반을 다 즐기는 넓은 사람은 아니기에 모든 카테고리의 이슈는 다 알 수는 없지만, 책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게 성해나, 박정민만큼은 정말 2025년의 아이콘으로 선정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지 않을까.
표지가 곧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부인 SNS 매거진들 때문에 출판 잡지들이 주는 느낌이 어땠는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동안 수많은 피드 중, 간택 당하기 위해 짧고 굵게 남기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너무도 당연해졌다. 하지만 출판물들의 표지와 주제는 중심이 되는 테마일 뿐 커다란 주제 하에 다양하고 넓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미 내 손안에 들어온 이상, 책자는 다 읽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 번 훑어보고, 다시 내려놓았다가 또다시 펼쳤다가를 반복하며 너무도 짧은 시간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이게 맞나 싶어 다시 진지하게 앉아서 읽어보았더니 다 읽은 게 맞았다. 이게 잡지의 매력 아니었던가, 그걸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그 반가움이 정말 가득했다.
올해만 국립중앙박물관을 아이와 함께 세 번 갔다. 이제는 내 위주의 관람이 아닌 아이 위주의 "구경"이 되다 보니 재미보다는 의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워낙 인기가 좋다 보니 예전처럼 조용한/한가한 관람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다시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시들해지는 중이었는데, 이슬람실이 신설되었다는 소식을 읽었다.
사진으로 찍어둔 페이지 외에도 다른 페이지에 담긴 작품들도 12월호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슬람 작품들은 뭐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지 그 단어를 찾지 못하겠지만 가장 가까운 단어를 찾자면 "예쁘다". "섬세하다"도 맞지만 그 단어로는 뭔가 부족하다. 그런 예쁨이다. 1월 중 전쟁기념관 전시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들러야겠다. 그 예쁨을 보러.
결혼기념일에 다 같이 보고 온 주토피아2. 디즈니의 고집 때문에 아쉬운 느낌이 가득했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 볼거리들이 많았다. 이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아이들의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인터뷰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출산율의 감소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것은 산업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전반도 마찬가지다. 주요 타깃은 아직 소비할 여력이 그래도 남아 있는 많은 인구수를 자랑하는 40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미 TV를 보는 연령대는 더 높아졌고, 아이돌 보다 트롯이다. 이 흐름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적이다.
진행하던 업무 중 주토피아2와 관계가 있던 일이 있어 특히 개봉 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봤다. 이 영화의 타깃이 어린이들이었다면 지금의 흥행은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년에 개봉할 토이스토리5도 같은 맥락에서 타깃은 토이스토리1을 10대에 보고 자란 지금은 40대가 된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타깃 설정과 관련해 업무 관련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40대의 사람들이 아직도 디즈니 콘텐츠는 10대의 감성이라 생각하며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 부분에서 많은 논쟁을 벌였던 기억이 있다.
시리즈물은 첫 경험한 시기의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며 다시 찾는 경향이 있기에 이제 디즈니에서도 기존 작품의 시리즈로 어린이를 공략하는 것보다는 겨울왕국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IP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나며 시리즈를 찾아보게끔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어릴 적 모르던 새로운 IP가 더 익숙하다. 요즘 살짝 시들해졌다 하지만, 티니핑이 그 예가 될 수도 있다.
2024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던 성해나의 '혼모노'. 사실 이 작품 또는 김기태의 '보편교양'이 왜 대상이 아닌지 의아했다. 두 작품 모두 "고급진 유머를 사용했다"라며 사람들에게 추천했다. 작년, 김기태의 해당 작품이 실린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출간되자 얼마 되지 않아 읽었다. 사진이 현실보다 더 해상도가 높게 나오는 필터를 쓴 것 같은 느낌의 글이었다. 현실보다 더 정교한 현실, 그래서 더 왜곡되어 보이고 진짜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런데 현실이 맞다. 거기서 오는 고급진 유머.
성해나의 단편집도 곧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그전에 2025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를 접했다. 읽다가 좋으면 작가가 누구더라 하면서 다시 찾아보는 편이라 이 작품이 성해나의 작품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혼모노'의 강렬한 붉은색을 연상케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글로 느끼는 시각적 자극보다는 불편하고 가까이하기 싫은 감정이 가득했다. 도대체 이 작가는 누군지 찾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전혀 다른 소설을 써내다니. 두 소설의 다름으로 인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공존하기에 아직 '혼모노'는 읽지 않았다.
올여름, 세 회사의 협업 장소에서 한 담당자가 다른 담당자에게 읽어보라며 '혼모노'를 건넸다. "이 책 좋아요?"라고 묻는 다른 담당자에게 책을 건넨 담당자는 "나는 썩 좋지 않았어"라고 대답했다. 그 느낌이 뭔지 잘 알 것 같다. 사람들은 익숙함을 좋아하니까.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혼모노'를 읽은 후 머릿속에 그려지는 새빨간 색채에 매료되어 그녀의 프로필을 찾아보고 SNS를 팔로우 했는데, 이런 재능에 이런 미모를 지녔다니! 저 예쁜 외모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을 것 같다. 그 힘든 일들이 자양분이 되어 더 좋은 작품을 써 내려가겠지. (*나는 왜 이 외모에 재능은 한 줌도 없는 걸까.)
2025년 영화 아이콘: 박정민 이라고 하지만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이콘이 아닐까. '첫 여름, 완주'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출판사 대표도 박정민이고, 성해나를 샤라웃 한 사람도 박정민이고, 도서전에서 가장 긴 줄을 만든 사람도 박정민이니까. 박정민을 보러 도서전에 간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그 작은 부스 앞을 지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의 복도만 성수동 팝업 거리 같은 느낌이었다. 경호 인원들이 외쳐대던 "서 있지 마세요, 움직이세요"가 아직도 기억난다.
'첫 여름 완주'를 읽지도 않았고, '혼모노'를 읽지도 않았지만 올해 박정민을 읽은 느낌이다. 이 배우는 왜 이렇게 여러 매체에 등장하는 걸까. 사람에게는 정말 "때"라는 것이 있다는 걸 느낀다. 그는 하루아침에 유명해지지도 않았고, 계속해서 작품을 했다. 그리고 글을 썼다.
그렇게 쌓인 세월이 그의 2025년을 만들었다. 이룬 게 별로 없는 것 같은 나의 2025년을 돌아보며 그가 외롭게 쌓아 올린 세월을 부러워한다. 나는 무얼 위해 세월을 쌓고 있을까, 나의 때는 올 것인가. 그리고 그가 맞이한 2025년을 바라보며 희망을 갖는다. 나에게도 그에게 2025년일 그런 해가 올 것이라고.
단편집도 흐르듯 읽다가 작품이 마음에 들면 제목과 작가 이름을 찾아보듯 음악도 흐르듯 듣다가 곡이 마음에 들면 그제야 제목과 아티스트의 이름을 찾아본다. 올해 그런 곡이 "멸종위기사랑"이었다. 도대체 이 아티스트의 머릿속엔 무슨 음악이 들어있는 걸까.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내가 들은 모든 전세계 음악이 다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절대로 새롭지 않고 다 들어본 익숙함이었다. 1996년생인데 뱃속부터 들었던 걸까.
K-POP 관련 업무로 1년을 보냈기 때문에 2025년은 내내 100위권 내 차트인 곡을 들었다. K-POP 잘 안 들었는데, 이렇게 많이 자주 들은 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차트인 한 곡들 중 K-POP만 있지는 않다.) 그 와중에 유독 귀를 끌어당기는 곡이 "멸종위기사랑"이었다. 듣고 또 듣고, 돌려서 또 듣고. 그리고 퇴사를 결심하던 날 아침에도 이 곡을 들으며 힘을 냈다. 힘이 나는 곡은 확실하다.
장난스럽기도, 진지하기도, 멋있기도, 익살스럽기도, 잘생겼기도, 못났기도 하다. 한 곡에 그렇게 많은 표정과 감정들을 드러낼 수가 있을까. 그 역시도 얼마나 많은 세월을 쌓아 올려 지금에 도달했는가. 한 방송에서 그의 어머니가 인터뷰했던 내용이 기억난다. 자꾸 우리 딸한테만 관심이 많은데 우리 아들도 잘났다고 관심 가져달라 비슷하게 했던 말. 그의 때도 왔다.
참 TV 안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 둘은 한 편씩은 찍먹해봤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소설을 읽은 지 5년이 넘은 것 같다. 이후 드라마나 영화 계약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쉽지 않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보니 언젠가 10년이 넘기 전에는 나오겠지 생각했다. 이게 10년을 넘어버리면 또 그땐 사회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의외로 빠르게 영상화가 되었는데, 여러 인물들이 조연이 되어 버렸다. 사실 김 부장은 모든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김 부장이 떠오르는 나의 10년 전 몇 상사들이 떠오르며 나도 김 부장을 관찰하는 3인칭 관찰자가 되어 아주 빠르게 읽어 내렸다. 그는 희화화의 대상이기도 했고,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다. 내가 아는 그 몇 상사들과 겹치며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끝까지 깨달은 느낌도 들지 않았다. 꼰대 그 자체라고 생각했고, 마지막까지도 정이 하나도 가지 않았다.
저렇게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남편에게도 추천했다. 책 읽기 싫어하는 남편이 세 권을 빠르게 흡수했다. 그만큼 김 부장이란 인물은 모두가 금방 감정이입이 될 만큼 이 사회 여기저기 있다. 김 부장에 대한 새로운 시선들이 생긴 것은 연출가의 의도일 수도 있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보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 같은 지면에 "태풍상사"를 함께 실었다는 점이었다. 김 부장 이야기만 있었다면 대충 훑고 넘어갔을 것이다. 김 부장과 동갑내기의 외환위기 시절이라니. 그래서 또 감정이입을 했다. 우리 집도 외환위기 시절 망했다. 하지만 망해서, 더 떨어질 절벽이 없었기에 난 그 어린 나이에 기어올라가는 법을 배웠다. 나와 다른 나이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같은 삶을 살았다. 포기하고 또 포기하고 양보하고 최종적으로 얻는 걸 배웠다. 아버지가 남긴 사업을 살리기 위해 꽃을 사랑하던 청년을 잃었다고 한다. 나 역시도 나의 꽃을 잃었다. 하지만 지금을 얻었다. 잃어야 얻는다. 김 부장은 잃지 않으려 몸부림쳤기에 다 잃었다. 그래서 꽃을 잃은 청년이 아쉽지만 그에게서 더 나와 같음을 읽는다. 뻔한 결말이라 다 보진 않았지만.
2025 ICON으로 시작해, 나의 2025년뿐만 아니라 인생을 되돌아봤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 해다. 이 1년을 하나의 목표를 위해 잃고 참고 견디며 해냈다. 그리고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할 일은 너무 많다.
이렇게 읽고 글을 쓰고 싶어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목표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걸 제쳐두고 열심히 달려왔기에 후회는 없다. 비록 2025 ICON처럼 알려지지도 않았고 인기를 얻지도 않았고 나는 그냥 1년 전 이 일을 하기 전 나와 달라진 것이 없다. 하지만 믿는다. 쌓은 세월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것을. 그게 2025년이 아니었을 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