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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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윤이의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는 독자를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로 이끄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표제작 자개장의 용도에서 인물 ‘나’는 분에 넘치는 자개장을 손에 쥐고 상경하며, 그 자개장은 단순한 가구를 넘어 원하는 곳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스스로 걸어야 하는 규칙처럼, 모든 꿈과 욕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처럼 함윤이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언제나 선택과 책임의 순간을 마주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길과 내면을 탐색한다.


각 단편은 저마다 독특한 힘을 품고 있다. 강가의 ‘나’는 이국의 호텔 테라스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탐색하고, 수호자의 아이들은 기절놀이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보며, 나쁜 물의 ‘나’는 물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이야기를 마주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단순한 모험을 넘어, 인간의 정서와 관계, 우정과 용기의 의미를 탐구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특히 친구의 마음과 우정이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은 소설 전반에 걸쳐 은연한 천사의 숨결처럼 배어 있어, 읽는 내내 따스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함윤이의 문장은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하다. 매끄러운 문장 사이 갑자기 나타나는 긴장과 침묵은 독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며,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감정을 흔든다. 자개장과 거울 같은 신비로운 사물들은 인물들의 내면과 결합해 이야기를 한층 풍부하게 만들며, 독자는 그 빛깔과 질감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자개장의 용도는 삶의 불확실성과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탐색하면서도, 미지의 여정 속에서 발견되는 용기와 연대, 그리고 섬세한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환상과 현실을 교차하며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함윤이 특유의 오묘한 문체는 독자를 단번에 사로잡는다. 이 소설집은 단순한 읽는 경험을 넘어, 마음 깊은 곳까지 울림을 남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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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사랑의 언어 - 한강의 문학을 읽는다
한기욱 엮음 / 창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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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사랑의 언어: 한강의 문학을 읽는다" 는 노벨 문학상 수상 1주년을 맞아 한강의 문학 세계를 다각도로 조망한 평론집이다. 초기 단편부터 최근 장편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섬세히 분석한 여덟 편의 평론과 더불어 백낙청, 황정아의 대담, 그리고 수상 직후 진행된 인터뷰가 한 권에 담겼다. 


책은 한강 문학의 중심을 이루는 '빛'과 '사랑'이라는 화두가 어떻게 시대와 작품을 관통하는지 탐구한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비롯한 주요 작품들은 역사적 트라우마와 인간의 고통을 그리되, 상투적 재현을 거부하고 새로운 형식과 목소리를 통해 응답한다. 또한 여성의 상처, 시적 문체, 세계 문학적 보편성 등 다양한 관점이 제시되어 읽는 즐거움이 크다. 특히 대담과 인터뷰는 평론적 논의를 넘어 생생한 사유의 현장을 보여준다. 


이 책은 한국 문학의 세계적 위상을 확인하게 할 뿐 아니라, 짙은 어둠 속에서도 빛과 사랑을 써온 한강 문학의 힘을 다시금 일깨우는 훌륭한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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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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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의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은 관계의 미묘한 틈과 그 틈 사이를 건너려는 시도에 대한 섬세한 기록이다. 이 소설은 부모의 재혼으로 잠시 형제처럼 지냈지만 끝내 마음을 나누지 못한 두 인물, 기하와 재하의 시선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형제라 부를 수 없던 사이, 형제가 되고 싶었던 순간들, 그리고 이미 남이 되어버린 현재가 겹겹이 포개지며, 독자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허상과 진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두 인물의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두고 온 여름이 특별한 이유는 관계의 실패를 단순히 회한이나 고통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은 오히려 그 실패를 통해 각 인물 내면의 결을 조심스레 살피고, 말로 다하지 못한 감정들이 어떻게 기억 속에서 희미한 빛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언가를 건네려다 멈칫했던 손짓,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끝내 하지 못한 채 멀어졌던 순간들. 그런 장면들이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되살아나고, 우리는 결국 모든 감정이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더라도 서로를 향한 다정이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기하와 재하가 십오 년 만에 다시 마주한 장면은 이 소설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들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다가서려다 주춤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듯하다. 비록 완벽한 화해는 아닐지라도, 그 과거를 더는 외면하지 않고 마주보려는 태도는 그 자체로 따뜻한 성장이다.


성해나의 문장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다. 담담하고 절제된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울림은 더 깊고 오래간다. 작가는 “두고 온 인물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고 했지만, 이 소설을 덮는 독자들 역시 그들의 앞날을, 그리고 자신이 두고 온 어떤 여름날들을 조심스레 떠올릴 것이다.


두고 온 여름은 누구나 품고 있는 ‘끝내 닿지 못한 진심’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가 애써 묻어둔 기억의 조각들을 다시 꺼내보게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 조각들 속엔, 여전히 말하지 못한 다정이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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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한강을 읽는 한 해 (주제 2 : 인간 삶의 연약함) - 전3권 - 바람이 분다, 가라 +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내 여자의 열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을 읽는 한 해 2
한강 지음 / 알라딘 이벤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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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는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 예술과 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존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한겨울 새벽 미시령 고개에서 시작된 한 여류화가의 의문사, 그리고 그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과 고통이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특히 친구 서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믿고 진실을 찾아 나서는 이정희의 고투는 단순한 진상 규명을 넘어, 삶의 본질을 향한 문학적 탐색으로 확장된다.


작품은 현실과 과거, 과학과 예술, 정신과 육체가 교차하는 복잡한 구성 속에서 독자를 정신없이 끌고 간다. 플랑크의 시간, 얼음 화산, 달의 뒷면 등 시적인 장 제목은 이야기의 구조적 밀도와 상징성을 더한다. 


한강은 무채색의 먹그림처럼 말의 여백 속에 감정과 의미를 쌓아 올린다. 인물들의 상처는 지나치게 내밀하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실하게 산다는 것'의 무게를 체감하게 한다.


이 소설은 단지 하나의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을 마주한 자들의 절망과 고요한 저항, 끝끝내 삶을 향해 기어가는 존재의 몸부림을 그린다. “삶 쪽으로 바람이 분다. 가라, 기어가라, 어떻게든지 가라.” 이 문장은, 한강의 문학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간절한 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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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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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읽는 이를 조용히, 그러나 깊고 날카롭게 가른다. 이 시집은 그의 소설에서 익히 보아온 차갑고 투명한 언어가 시라는 형식 안에서 더욱 응축되고 선명하게 빛을 발한다. 삶과 죽음, 상처와 회복, 고통과 침묵을 다루는 한강의 시들은 마치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미세한 불빛처럼 독자의 내면을 건드린다. 그는 삶의 상흔을 드러내되 과장하지 않고, 고통을 노래하되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에서 "밥을 먹어야지 / 나는 밥을 먹었다"라고 담담히 적는 그의 문장은 지나간 상실과 체념 속에서도 살아가는 행위를 묵직하게 떠올리게 한다.


연작시 거울 저편의 겨울과 저녁의 소묘에서는 한강 특유의 절제된 서정성이 절정에 이른다. 반복되는 어둠과 겨울의 이미지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고독을 환기하지만, 그 끝에는 미세하게나마 온기와 빛을 암시한다. 특히 괜찮아에서는 상처받은 내면을 향해 건네는 "이제 괜찮아"라는 말이 마치 독자를 위로하듯 다가온다. 이 시집의 힘은 거대한 서사나 화려한 언어에 있지 않다. 오히려 가장 낮은 곳, 침묵의 바닥에서 길어 올린 단단한 언어들이 독자를 천천히, 그러나 깊이 흔든다.


20년에 걸쳐 써 내려간 시편들은 각기 다른 시기의 고통과 사색을 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커다란 통로처럼 이어져 있다. 한강은 고통을 똑바로 바라보되, 그것을 견디는 존재의 투명한 힘도 포착해낸다. 그의 시를 읽는 일은 어둠을 통과해 끝내 빛을 만나는 경험과 같다. 이 시집은 고통 속에서도 언어로 살아남고자 하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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