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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ㅣ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성해나의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은 관계의 미묘한 틈과 그 틈 사이를 건너려는 시도에 대한 섬세한 기록이다. 이 소설은 부모의 재혼으로 잠시 형제처럼 지냈지만 끝내 마음을 나누지 못한 두 인물, 기하와 재하의 시선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형제라 부를 수 없던 사이, 형제가 되고 싶었던 순간들, 그리고 이미 남이 되어버린 현재가 겹겹이 포개지며, 독자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허상과 진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두 인물의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두고 온 여름이 특별한 이유는 관계의 실패를 단순히 회한이나 고통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은 오히려 그 실패를 통해 각 인물 내면의 결을 조심스레 살피고, 말로 다하지 못한 감정들이 어떻게 기억 속에서 희미한 빛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언가를 건네려다 멈칫했던 손짓,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끝내 하지 못한 채 멀어졌던 순간들. 그런 장면들이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되살아나고, 우리는 결국 모든 감정이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더라도 서로를 향한 다정이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기하와 재하가 십오 년 만에 다시 마주한 장면은 이 소설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들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다가서려다 주춤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듯하다. 비록 완벽한 화해는 아닐지라도, 그 과거를 더는 외면하지 않고 마주보려는 태도는 그 자체로 따뜻한 성장이다.
성해나의 문장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다. 담담하고 절제된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울림은 더 깊고 오래간다. 작가는 “두고 온 인물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고 했지만, 이 소설을 덮는 독자들 역시 그들의 앞날을, 그리고 자신이 두고 온 어떤 여름날들을 조심스레 떠올릴 것이다.
두고 온 여름은 누구나 품고 있는 ‘끝내 닿지 못한 진심’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가 애써 묻어둔 기억의 조각들을 다시 꺼내보게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 조각들 속엔, 여전히 말하지 못한 다정이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