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 오늘의 젊은 작가 57
전예진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평점 :
예약주문


전예진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보글은 독창적인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우리가 삶의 불행과 갈등을 다루는 방식을 서늘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냅니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된 이 작품은 뺨을 맞대고 무엇이든 ‘먹어 치울 수 있는’ 기묘한 능력을 가진 자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자매는 눈앞의 영 성가신 대상이나 미운 존재를 삼켜서 손쉽게 세상에서 지워버립니다. 초기에는 단순한 장난이나 작은 복수였던 삼키기는 성장할수록 점차 통제할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집니다. 무언가를 소화하면 배설물이 남듯, 자매가 지워버린 대상들은 신체 곳곳에 '보글'이라는 붉은 돌기나 씨앗의 형태로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눈앞에서 없애버린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오히려 지우려 할수록 더 끔찍하고 영원한 흔적으로 몸에 각인된다는 점을 소설은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마주하며 자매는 비밀과 거짓말로 단단한 벽을 쌓고 "우린 우리만 생각하면 돼"라며 세상으로부터 도망칩니다. 하지만 회피로 점철된 삶은 작은 바람에도 위태롭게 흔들릴 뿐입니다. 소설은 자매가 감추고 믹서기에 갈아 없애던 '보글'을 똑바로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거대하게 엉킨 삶의 실타래를 풀어낼 용기를 건넵니다.


보글 은 타인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과오와 불행을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직시하는 것이 진정한 성장의 시작임을 말해줍니다. 기발한 상상력 속에 묵직한 인간적 고뇌를 담아내어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고 보면 헌법 - 알고 나면 보이는 사회 속 헌법 이야기 온 세상이 교과서 시리즈 11
전국사회교사모임 외 지음, 박은선 감수 / 해냄에듀(단행본)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상적인 법 조항을 디지털 기본권이나 기후 위기 같은 현실적인 쟁점과 연결해 설명해 주어 흥미롭습니다. 현직 선생님들의 고민이 담긴 만큼, 학생들이 교실 안팎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화할 수 있는 최고의 지침서가 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름 사람들
이유리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유리 작가의 첫 장편소설 구름 사람들은 지상 1.5킬로미터 상공, 오염물질로 만들어진 분홍빛 구름 위에 터를 잡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분홍빛'이라는 낭만적인 색채와 오염물질이라는 비극적인 실체의 간극은, 이 소설이 가난을 다루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겉보기엔 환상적인 우화 같지만, 한 겹만 들춰내면 그 안에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서늘한 현실이 가득합니다.


소설 속 구름 사람들은 땅으로 내려가기 위해 매일 긴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물과 전기조차 부족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들을 더 깊이 짓누르는 것은 물리적 결핍보다 '땅 사람들'의 시선입니다. 누군가에게 그들의 터전은 철거되어야 할 거지들의 요새이며, 누군가에게는 예술적 영감을 주는 불행으로 만든 솜사탕일 뿐입니다. 철저히 대상화된 시선 속에서 주인공 '하늘'은 자신의 가난이 대물림되는 지독한 굴레임을 자각합니다.


작가는 가난을 결코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섣불리 위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력할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자본주의의 비정한 논리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1970년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보여주었던 그 처절한 사투는, 2026년의 분홍빛 구름 위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문득 명치끝이 뻐근해지는 이유는, 하늘이 선택한 자립의 방식이 결국 자신의 불행을 전시하는 것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불행하고 나쁜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자아를 지키려 했던 한 청춘의 속도가 이토록 아프게 다가옵니다. 반짝이는 상상력으로 빚어낸 가장 무겁고도 슬픈, 이 시대의 새로운 가난 서사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편에서 이리가 오늘의 젊은 작가 53
윤강은 지음 / 민음사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윤강은의 장편소설 저편에서 이리가 는 종말 이후의 한반도를 배경으로,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온 ‘국가’와 ‘민족’이라는 경계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디스토피아와 판타지, 스릴러적 긴장감이 자연스럽게 엮인 이 소설은 장르적 재미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의 시선으로 한반도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특히 다섯 청년이 종말의 풍경 속을 가로지르며 보여 주는 선택과 연대는, 붕괴된 세계에서조차 ‘우리’가 무엇으로 성립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이 소설에서 한반도는 고정된 국경이나 정치적 표상이 아니다. 인물들의 발걸음에 따라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정의되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작가는 익숙한 현재의 갈등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미래라는 거리감을 통해 오히려 더 선명한 현실감을 만들어 낸다. 그 결과 독자는 허구의 세계를 읽고 있음에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책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저편에서 이리가 가 인상적인 이유는 종말을 그리면서도 냉소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후 위기와 전쟁, 정치적 불안이 일상이 된 시대에 이 작품은 희망을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의 선택과 움직임 속에서 발견한다. 멀리 있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드는 소설로,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 주는 데뷔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함윤이의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는 독자를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로 이끄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표제작 자개장의 용도에서 인물 ‘나’는 분에 넘치는 자개장을 손에 쥐고 상경하며, 그 자개장은 단순한 가구를 넘어 원하는 곳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스스로 걸어야 하는 규칙처럼, 모든 꿈과 욕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처럼 함윤이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언제나 선택과 책임의 순간을 마주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길과 내면을 탐색한다.


각 단편은 저마다 독특한 힘을 품고 있다. 강가의 ‘나’는 이국의 호텔 테라스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탐색하고, 수호자의 아이들은 기절놀이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보며, 나쁜 물의 ‘나’는 물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이야기를 마주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단순한 모험을 넘어, 인간의 정서와 관계, 우정과 용기의 의미를 탐구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특히 친구의 마음과 우정이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은 소설 전반에 걸쳐 은연한 천사의 숨결처럼 배어 있어, 읽는 내내 따스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함윤이의 문장은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하다. 매끄러운 문장 사이 갑자기 나타나는 긴장과 침묵은 독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며,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감정을 흔든다. 자개장과 거울 같은 신비로운 사물들은 인물들의 내면과 결합해 이야기를 한층 풍부하게 만들며, 독자는 그 빛깔과 질감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자개장의 용도는 삶의 불확실성과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탐색하면서도, 미지의 여정 속에서 발견되는 용기와 연대, 그리고 섬세한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환상과 현실을 교차하며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함윤이 특유의 오묘한 문체는 독자를 단번에 사로잡는다. 이 소설집은 단순한 읽는 경험을 넘어, 마음 깊은 곳까지 울림을 남기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