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못해 닳은 사랑
히코로히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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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덕에 첫 소설집을 읽게 되었다. 오랜만에 이런, 뭐랄까… ‘작정하고’ 연애 연애인, 소설을 읽은 것 같기도. 그것도 일본 소설이라니! 추천사를 쓴 요시모토 바나나도, ‘시마세 연야문학상’을 받은 저자와 같이 이 상을 이미 받은 에쿠니 가오리도 좋아하는/좋아했던 일본 소설가이다. 특히나 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세계관을 사랑했다. <닿지 못해 닳은 사랑>은 엄청나게 드라마틱하거나 로맨틱한 이야기들이 있는 것은 아닌,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들이지만, 우리 인생에서 대체로 연애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공감되기도 하고, 찌르르- 까진 아니더라도 어느새 좀 생경해진 감각에 담겨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맞아, 그랬지. 하나만의 감각만이 아니라 정말 그라데이션 같은 색감과 감정이 존재하는 게 우리네 연애였지.

<닿지 못해 닳은 사랑>, 히코로히 지음, 문예춘추사

p12 화를 내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이제는 지겨웠다. 그를 이해 하려 애쓰는 데도 지쳤고,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도 포기했다. 내 속에서 리쿠에 대한 감정 한 조각이 또 뚝 부러져나갔다. 그렇게 조금씩 부러져나가는 감정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부러져야 완전히 사라질까. 그리고 이미 이만큼 부러진 이상, 정체 모를 ’이것‘의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나는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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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인데요, 집수리 기사입니다
안형선 지음, 조원지 그림 / 크래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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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혹은 여자들까리만 살아가는 집에서는 관리사무소의 사람이라고 한들 선뜻의 마음이 되지 않곤 한다. 모두를 잠재적 000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성별화되어 있는 불안의 사회에서 아무렇지 않기란 생각보다 어렵고, 이것은 지정성별 여성 개인의 탓이 아니다. 그렇기에 너무 예민해서, 라는 말은 불필요하고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문제를 발생시키는 요인에는 성별만이 아니라 나이 등 다른 요소와 결합되어 무례를 만들기도 하고 폭력을 만들기도 한다. 삶에서의 본인의 경험과 주변의 경험들이 허투로 사라지지 않고 안전한 수리 시스템을 위한 작업에 활용되었다. 여성이 하는 수리는 것이란 게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했겠으나, 거기서 멈추지 않는 것. 여성이 하는 수리여서가 아니라, 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작업과정을 갖는가에 더 중요한 초점일 거라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여자인데요, 집수리 기사입니다>, 안형선 글•조원지 그림, 크래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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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동성인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연애하는 게 그의 삶을 짓밟고 뒤흔들만큼 잘못일까. 가난, 성적 지향, 가족의 형태, 학력, 직업 등 어느 하나에만 우리는 국한될 수 없이 다양한 정체성과 위치성으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고, 또 원하든 원치 않든 만들어지기도 한다. 불안이, 불안정이 만든 상처와 두려움이 곪지 않도록 우리에게는 다른 사회, 시선, 시스템이 정말 너무나 분명하게 필요하다.

사랑이 만들어낸 것으로 사랑을 잃는 이들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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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
나규리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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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동성인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연애하는 게 그의 삶을 짓밟고 뒤흔들만큼 잘못일까. 가난, 성적 지향, 가족의 형태, 학력, 직업 등 어느 하나에만 우리는 국한될 수 없이 다양한 정체성과 위치성으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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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기 힘든 사람들 - 돌봄, 의존 그리고 지켜져야 할 우리의 일상에 대하여
도하타 가이토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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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함께 ‘있기.’ 이 책의 주제는 ‘있기’다. 처음엔 <있기 힘든 사람들>이란 책 제목에 조금은 갸웃하며 의아하기도 하고, 여러 번 읽고 생각을 했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의 자각일 수 있는 ‘있기’가 이 책의 주제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돌봄’이 필요하다. ‘있기’가 불가능한/불가능해진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을 읽다보니, 나라고 늘 ‘있기’가 능수능란하고 쉬웠을까?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책의 추천사를 쓴 고병권 선생님은 “누군가 곁에 있고 돌봄을 제공하기에 우리는 우리로서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내게도 누군가 나에게 그래주었고, 나도 그랬기에 가능했던 “있기”의 무사함이란 생각을 한다.

저자는 돌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전문가적으로(생각했던) ‘치료’가 하고 싶었던 임상심리사이다. 그러던 그도 질문을 갖게 되었다. 치료란 무엇이며, 돌봄이란 무엇일까? 그가 여러 사람들과 매일을 보낸 돌봄 시설에서는 치료가 제대로 먹혀들어가지 않을 때가 다반사이기도 하고, 돌봄이 절대적 영향을 갖기도 하고, 또 치료와 돌봄이 이분법화 되어 나뉘고 갈라지는 것이 아니기도 했다. ‘있기’를 오늘도 내일도 해나가기 위해 모인 그 시/공간에는 어떤 건 치료, 어떤 건 돌봄이라며 명확히 구분되기보다 그것이 같이 흘러갔다. 그러면서 또 동시에 각각의 것들이 필요하기도 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실습을 했던 주간보호시설이 생각이 났다. 중년의 발달장애인분들의 낮 시간을 위한 그 공간에서 아침에는 매일의 일정 등을 나누고 점심시간 전까지 자유 시간이 진행되었는데, 침묵의 자유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여러 음성언어들이 떠도는 공간에서 길면 한 시간, 그게 너무 어려우면 30분을 조용히 각자가 하고 싶은 놀이나 프로그램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있기’라는 것에 생각할 때 머리에 들었던 장면들이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엄기호 선생님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가 생각이 났다. ‘멤버’라고 불리는 참여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곁에 있는 직원들, 활동가들의 소진과 떠나감을 보면서 누군가의 ‘있기’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있기’는 어떻게 존중받고 보호되는가, 또 그들 역시 어떻게 쉽게 무너지는지 생각했다. 고꾸라지기 전의 사람들, 고꾸라진 사람들이 이 책에도 나온다. 저자를 포함해서. 그러나 저자도 짚었듯 그저 ‘있기’의 가치를 갈수록 사회는 도외시하고, 자본을 쫒기에 우리의 ‘있기’는 쉽게 침범당하고, 외면당한다. ‘돌봄’이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일면 반가운 일이고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자꾸만 자본과 연결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할 것이 아니다. 조금 더 다른 ‘돌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되고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지 아무렇게나 되어도 상관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있기’를 위해 ‘있기’를 하는 것은 ‘있기’를 강제하는 것과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효율성과 결과, 생산성과 이윤을 한 손에 쥐고 같은 값이 되는 돌봄을 만들려는 시도가 아닌, 다른 돌봄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있기 힘든 사람들>, 도하타 가이토 지금, 다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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