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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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와 ‘패배’만이 남는 전쟁의 역사에서 하찮다는 이유들로 기억될 리 없던, 기록되지 못했던 이야기. 우리가 만나온 역사와 어떤 사건들의 기록은 모두가 파편적일 것이다.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 자체로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기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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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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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는 이제 진부한가? 글쎄, 그럴 수 있으려나. 최진영 작가의 <해가 지는 곳으로>를 사두고도 한참을 책꽂이에 두고 있다가 하루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읽어 내려갔다. 일전에 한 번 시도한 적 있었는데, 그땐 마음이 이끌리지 않아 멈췄던 자국이 책엔 그래도 남아 있었다. 직전에 좀 모호한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너무 꾹꾹 자국을 남기는 눈 위의 발자국 같았다. 곧 녹아 없어지거나, 다른 것들과 쉬이 섞여버릴 자국이라고 하더라도. 꾹꾹.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전 세계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한국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죽는다. 그 뒤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한국을 떠나 러시아의 허허벌판 어딘가를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린이의 간을 탐내고, 사람 수보다 많은 총을 들고 있고, 생존의 문제가 달린 그 척박한 땅 위에서도 성적 욕망을 분출하기 위해 ‘강간’을 하는 사람들과 그 ‘강간’의 시간에 붙잡힌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

그러나 이 소설의 핵심은 사랑. 세상의 종말 속에서 눈을 떠도 잘 보이지 않는 먼지 자욱한 오늘을 버티고 일어나는, 사랑을 놓지 않고 그곳이 어디든 멈추지 않고 가고 말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사랑 이야기. 저마다의 절망이 만들어진 결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지금을 함께 살아가도 서로 다른 순간을 지니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길 위해서 만나 시작하는 사랑이 만들어낸 또 다른 사랑의 방식, 사랑의 모양, 결국 원과 같을 사랑의 이야기.

‘재앙을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 재앙에도 굶지 않고 뛰지 않는 사람들(p18)’. 저승보다 먼 곳에 세계가 있을 사람들의 이기 속에서 동생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멈추지 않는 도리와 재앙 속에서도 농담과 웃음을 만들어 가는, 하등 쓸모없는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품고 있는 지나. ‘꿈을 꾸고 우주인이 되었기 때문에(p176)’ 소리를 잃은 미소. 단 하나의 사랑, 단 하나의 길을 놓지 않고 살아갈, 살아남을 건지. 그리고 ‘너무 무난하고 뻔해서 위태로(p170)’웠던, 그래서 충분히 생각하지도 못하고 헌신하지도 못했던 ‘사랑’에 대해 저리게 깨닫게 되는 류와 그리고 단.

소설은 기적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평생에 단 한 사람은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A, B, C가 아니라 완벽한 고유명사로 기억될 사람이. 어떤 이는 지름길로 나타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가장 먼 길을 지난하게 지나고 모든 것에 무감해진 때에야 비로소 거기 있는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기적을 만나려면 그곳까지 가야 한다. 멀어지며 그것을 갈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죽고 사는 것보다 중요해지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 사랑이란 것에, 그리하여 그 기적이란 바람에.

서로를 향해 걷지 않았지만, 그 두렵고 낯선 곳에서 도리와 지나는 만난다. 사실 이 만남 자체가 기적이 되었다. 정상성에 부합되지 않는 비-이성애 관계의 두 여성인 도리와 지나. 그들의 입맞춤에 누군가는 더럽다는 듯이 침을 뱉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공기는 달랐다. 류는 그들과 함께 하며 ‘온갖 나쁜 것 속에서도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P165)’. ‘단 하루를 살더라도 평생처럼 살고(P64)’싶은 도리였으니까. 지나와 함께. 이 절망 속에서 버려두었던 감정과 외면해두었던 것들이 되살아났으니까. 더는 ‘미루는 삶은 끝났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P100)’는 것을 이제 아니까. 모를 수 없으니까. 희망은 애초에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세계는 점점 어둠에 다가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있다. 세상을 끝까지 돌진할 수 있고, 멈추지 않을 수 있는 심장의 빨간 보석, 사랑이 있다.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민음사

아, ‘함께 보낸 무수한 어제가 직조해낸 우리만의 문양(166)’이란 문구가 있었다. 이 짧은 문장을 보고 울고 말았다. 그것은 사랑이라서, 사랑이어야 가능한 것이라서, 사랑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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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숙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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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은 단단해져갈테니까.
불룩한 가난의 모습 속에서도 다른 선택과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너의 몫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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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숙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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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작가는 <올해의 미숙>은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미숙의 이야기라고 했다. 나는 이 만화책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 채 황정은 작가때문에 이 책을 만났다. 황정은 작가의 추천사를 읽으며 울컥해서. 그는 추천사에서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것과 달리 가난의 모습은 홀쭉하지 않다. 가난의 주머니는 불룩하다. 그 주머니엔 이를테면 냄새와 흉터와 눈치와 질병과 자책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문장들을 이어갔다. <올해의 미숙>에서는 모기향 냄새가 나는 옷, ‘미숙아’로 부르며 존재를 무시하는 같은 반 사람들, 술을 먹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엄마를 때리던 시인 아빠, 아빠가 화를 내며 던지 ‘무소유’ 책에 맞아 생긴 흉터, 허벅지를 꼬집으며 모든 것을 인내하며 참던 언니, 아빠와 똑같이 미숙을 때리던 정숙, 그렇게 시를 쓰고자 했고 가정폭력의 가해자였던 두 사람이 같은 병으로 죽고 만 가난의 이야기. 그러나 그들의 죽음으로도, 그 가난으로도 미숙을 나타내기엔 부족한 정리. 일상에서 온갖 시간 속에서 미숙에게 던져진 수많은 폭력들과 상처들. 가난은 홀쭉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가난은 불룩하고 구구절절 할 말도 많지만,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가난이 넘쳐나지만, 가난은 숨겨야할 이야기이고 감춰야할 냄새다. 다시 황정은 작가로 넘어와서 그는
“미숙아, 계란말이 뺏기지 말고 너 먹어, 누가 빼앗아 먹으면 죽여.......”같은 심정으로 읽으면서 “내 것이기도 하고 내게 익숙한 타인의 것이기도 한 미숙함들 때문에 서글프고 부끄러웠다” 말했다. 그러나 그때 미숙은 계란말이를 먹는 재이가 밉지 않았다. 처음으로 ‘미숙아’가 아닌 ‘미숙이’로 곁에 선 이었으니까. 그가 자신의 믿음을 뭉개버릴 줄은 몰랐지만. 어머, 세상에 이런 일이 있네 하고 놀랄 것이 아니라 이걸 보며 너무 속상해서 가슴이 아렸다. 그런 이들이 있을 것을 진즉 안 황정은 작가는 이 만화책을 통해 다시 그걸 겪으며 속상해서 울 사람들을 언급했다. 나는 이 책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울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러지 않았다. 그 폭력과 가난의 늪을 보면서는 그러지 않았다. 그치만 이상하게도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오니 그제야 눈물이 왈칵했다. 미숙이는 단단해졌으니까. 미숙의 삶에 지난하게 붙어있던 폭력과 상처의 모습들을 미숙이 만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자신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미숙은 아빠가 진돗개인줄 알고 정성을 쏟다가 버린 절미와 새로운 삶의 시간을 꾸려나갈 줄 아는 사람이니까. 절미는 미숙과 함께 하며 이제 똥을 먹지 않는다.
장미숙, 그러니까 이제 너도 어느 누구에게도 맞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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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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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손에 들고 다닌 책을 다 읽었다. 눈물이 흐르지 않으면서도 내내 물기가 차올라 심호흡을 가다듬은 시간을 계속 보내왔다. 황정은 작가는 <디디의 우산>을 출간하고 한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 당연시되는 ‘상식’을 말하고 싶었다. 소수자에 대한 논의가 폭넓고 진지하게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작가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으로는 해당 주제의 논의를 잘 이뤄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이 책에 담긴 소수자성에 대한 공감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람들, 제도권 밖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러나 여러 정체성으로 존재함으로서 사회의 인정과 폭력이 ‘헷갈리기’ 쉬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 폭력인지도 모른채 내뱉어지는 성차별 속에 놓인 사람들, 비장애 중심 속 선택할 선택도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는 그 이야기를 선별하여 하지 않는다. 그는 끝내 모두에게 돌아가야할 우산을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쥐어질 수 없다면 그 우산이 누구에게 가야할 것에 대해서도. 그렇기에 결국 우리 모두 중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필요함이 곁에 있게 되는 ‘우산’을 이야기한다. 즉각적이고 반응이 확연히 드러나는 구불구불 그래프같은 감정선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곁에 함께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글들이 있다. 어떤 글은 읽으며 펑펑 울게 되지만, 어떤 글들은 입술을 굳게 닫으며 몸을 울게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늘 환희에 차고 웃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이 슬퍼하고 견뎌가고 때론 찬 바닥에 오들오들 떨더라도 너를 거부하고 무시하는 세상에 같이 맞서 꼭 잡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모였던 이들과 나눈 시간을 기억한다. 더이상 누구도 그런 식으로 죽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확성기에 이야기하며 끝내 울었던 어느 밤을 기억한다. 모르던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같이 울고 단단한 이야기를 건네던 시간을 기억한다.
세월호 사건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맞서는 사람들을 향한 경찰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을 기억한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시대가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최루액을 섞은 물대표를 맞으며 따가운 얼굴을 비비면 안 되지만 자꾸 비벼대며 소리치며 울어대고 헛구역질을 했던 그 밤을 아직도 기억한다. 앞 사람이 밀려나 경찰과 대치하는 맨 앞까지 가게 되고, 같이 팔짱을 껴서 서로를 버텨주던 사람과 떨어져 경찰 앞에 넘어졌을 때, 경찰 방패 안에서 온 몸을 두들겨 맞으며 들었던 “씨발년”도 기억한다. 그때 맞은 팔이 여전히 내게 이질적인 불편을 초래하기에 문득문득 그날이 떠오른다. 엉엉 울며 먼 길을 돌아와 함께 했던 친구들과 껴안고 서러움을 폭발하듯 울던 그 밤을 나는 아직도 이렇게 기억한단 말이다.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며 섰던 촛불의 시간을 기억한다. 어떤 사람과 달리 내 몸에 그리고 나와 같이 어떤 사람들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 모두’란 이유로 감당해야했던, 분명한 성별적이고 위계적인 폭력이다. 촛불이 마치 모두의 평화인 것처럼 이야기될 때, 대단하다 말해질 때 끊임없이 그 속에 존재하는 차별과 배제에 대해 이야기해야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이 대부분 ‘묵자’의 세계였단 것도. 끝내 이야기할 수 없고, 이야기해도 들어주지 않은 세계가 존재했단 것도.
20년을 함께 살아왔음에도 서로의 귀가가 확인되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의 죽음에서도 같이 해왔음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제도권 안 들어왔는가, 아닌가. 그것은 누가 만들어냈는가. 우리는 정말 누구라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있을까. 우리는 정말 누구라도 부정당하지 않은 세상에 있는 걸까.
<디디의 우산>은 혁명이 성공했고 달라졌다고 하는 이들에게 전한다. 정말 우리는 혁명이 끝난 세상에 ‘같이’ 살아가고 있는지. 침묵 당하고 있는 무수한 존재들이 있음을. 그리하여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 신호를 보내듯 그는 이렇게 썼다. 그리고 그 신호는 사람들에게 가 닿을 것이다. 오늘 내게로와 같이.

2019.02.24 <디디의 우산>, 황정은 연작소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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