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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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꽤 오래 손에 들고 다닌 책을 다 읽었다. 눈물이 흐르지 않으면서도 내내 물기가 차올라 심호흡을 가다듬은 시간을 계속 보내왔다. 황정은 작가는 <디디의 우산>을 출간하고 한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 당연시되는 ‘상식’을 말하고 싶었다. 소수자에 대한 논의가 폭넓고 진지하게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작가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으로는 해당 주제의 논의를 잘 이뤄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이 책에 담긴 소수자성에 대한 공감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람들, 제도권 밖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러나 여러 정체성으로 존재함으로서 사회의 인정과 폭력이 ‘헷갈리기’ 쉬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 폭력인지도 모른채 내뱉어지는 성차별 속에 놓인 사람들, 비장애 중심 속 선택할 선택도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는 그 이야기를 선별하여 하지 않는다. 그는 끝내 모두에게 돌아가야할 우산을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쥐어질 수 없다면 그 우산이 누구에게 가야할 것에 대해서도. 그렇기에 결국 우리 모두 중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필요함이 곁에 있게 되는 ‘우산’을 이야기한다. 즉각적이고 반응이 확연히 드러나는 구불구불 그래프같은 감정선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곁에 함께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글들이 있다. 어떤 글은 읽으며 펑펑 울게 되지만, 어떤 글들은 입술을 굳게 닫으며 몸을 울게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늘 환희에 차고 웃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이 슬퍼하고 견뎌가고 때론 찬 바닥에 오들오들 떨더라도 너를 거부하고 무시하는 세상에 같이 맞서 꼭 잡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모였던 이들과 나눈 시간을 기억한다. 더이상 누구도 그런 식으로 죽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확성기에 이야기하며 끝내 울었던 어느 밤을 기억한다. 모르던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같이 울고 단단한 이야기를 건네던 시간을 기억한다.
세월호 사건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맞서는 사람들을 향한 경찰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을 기억한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시대가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최루액을 섞은 물대표를 맞으며 따가운 얼굴을 비비면 안 되지만 자꾸 비벼대며 소리치며 울어대고 헛구역질을 했던 그 밤을 아직도 기억한다. 앞 사람이 밀려나 경찰과 대치하는 맨 앞까지 가게 되고, 같이 팔짱을 껴서 서로를 버텨주던 사람과 떨어져 경찰 앞에 넘어졌을 때, 경찰 방패 안에서 온 몸을 두들겨 맞으며 들었던 “씨발년”도 기억한다. 그때 맞은 팔이 여전히 내게 이질적인 불편을 초래하기에 문득문득 그날이 떠오른다. 엉엉 울며 먼 길을 돌아와 함께 했던 친구들과 껴안고 서러움을 폭발하듯 울던 그 밤을 나는 아직도 이렇게 기억한단 말이다.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며 섰던 촛불의 시간을 기억한다. 어떤 사람과 달리 내 몸에 그리고 나와 같이 어떤 사람들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 모두’란 이유로 감당해야했던, 분명한 성별적이고 위계적인 폭력이다. 촛불이 마치 모두의 평화인 것처럼 이야기될 때, 대단하다 말해질 때 끊임없이 그 속에 존재하는 차별과 배제에 대해 이야기해야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이 대부분 ‘묵자’의 세계였단 것도. 끝내 이야기할 수 없고, 이야기해도 들어주지 않은 세계가 존재했단 것도.
20년을 함께 살아왔음에도 서로의 귀가가 확인되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의 죽음에서도 같이 해왔음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제도권 안 들어왔는가, 아닌가. 그것은 누가 만들어냈는가. 우리는 정말 누구라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있을까. 우리는 정말 누구라도 부정당하지 않은 세상에 있는 걸까.
<디디의 우산>은 혁명이 성공했고 달라졌다고 하는 이들에게 전한다. 정말 우리는 혁명이 끝난 세상에 ‘같이’ 살아가고 있는지. 침묵 당하고 있는 무수한 존재들이 있음을. 그리하여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 신호를 보내듯 그는 이렇게 썼다. 그리고 그 신호는 사람들에게 가 닿을 것이다. 오늘 내게로와 같이.

2019.02.24 <디디의 우산>, 황정은 연작소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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