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 사회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31
노명우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유년시절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지붕위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올라가

안테나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모습들이 생각이 난다.

안방에서 지붕위에 있는 사람과의 의사 소통을 위해 저절로 커지던

목소리. 그 목소리를 연결하기 위해 중간 어디쯤 내가 서있던 그 시절

처음 집에 텔레비전이 생기고 거기서 눈을 떼지 못했던 나와 내동생들은

아침마다 그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지각을 면하기 위한 뜀박질을

해야 했고, 조그만 화면속에서 매일 새로운 영상이 나오는걸 신기하게

쳐다 보면서 그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린시절 나에게

9시란 시각은 너무나 미운 시간이 되었다. 모든 채널의 주도권은

아버지에게 있었고, 채널을 돌리는 아버지의 손길은 내게 너무나

가혹하기 까지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 피식 미소짓게 되었던 책읽기.

 

거실을 서재 분위기로 바꾸기 위해 한 쪽 벽면을 책장으로 가득 채웠다.

쇼파를 치우고 커다란 상을 들여놓고 책장에 책을 채워 나갔고, 우리는

그런 분위기에 조금씩 물들어 가는듯 보였다. 그런데 이 애물단지

텔레비전, 이 녀석을 두고 한참을 고민고민 하다 결국 텔레비전이

없는 거실은 상상할 수가 없었고 다른것이 변해가는 거실 분위기에서

유독 텔레비전만은 그자리 그대로 그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조금씩 변하던 우리의 일상은 새로움에 대한 일시적

변화였을뿐, 텔레비전이 사라지지 않은 거실엔 어느새 온 버튼을 누르고

볼륨이 높아지고 이젠 시간 맞춰 보게 되는 프로그램도 생겨져 버렸다.

우리의 새로운 변화는 그렇게 텔레비전 앞에서 무너지고 만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기가 여간 힘든게 아님을 알아 버렸다고나

할까? 오늘도 나는 책장앞이 아니라 텔레비전 앞에 있다.

언제쯤 off버튼을 찾게 될까?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기가 정말 힘들다.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기엔 나를 너무 무력하게 만드는걸 알면서도

이 무력함에 길들여진 나를 보자니 불편하다. 오늘부터 또 다시 나를

시험해 보고자 한다. 켜짐이 아닌 꺼짐에 익숙해질 때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