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잘 구사한다거나 뛰어난 문장력을 갖춘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날것의 언어로 이야기를 엮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모종의 고백록과 같은데 술술 읽히는 것도 좋지만 잘 제련되지 않은 무기를 보는 것 같은 날카로움이 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아이러니를 잘 묘사하는 것으로 봐선,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경험담을 늘어 놓기 급급한 수준이 아니고, 사람들이 얼마나 비열해질 수 있는지 친구들과의 관계나 낯선 타인들과의 조우 속에서 잘 그려낸다. 심지어 자기 자신이 그랬던 것까지도 진솔하게 이야기해, 나만 옳고 남은 틀리다는 식의 좁고 이기적인 올바름의 과잉으로부터 탈주한다. 좋은 성장소설이자 성장의 좋은 실패를 다룬 소설이다.
언어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이수명 시는 전진한다. 여기서 전진한다는 것은 전위를 추구하거나 서정을 수호하는 방식처럼 일차원적인 층위가 아니다. 시의 지척을 넓힌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이수명 시의 배후에는, 시의 지척을 넓히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여느 시인들이 쉽게 빠져드는 자기 연민의 늪이나 감상성의 무저갱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 것 또한 이수명 시의 강점이다. 시의 휘장과 후광을 손쉽게 가져와 사유 없이 너저분한 감정을 늘어놓는 것은, 중견에 접어드는 시인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다. 그러나 이수명 시에서는 그런 혐의가 없다. 도리어 자신을 건조시키는 것처럼, 그리하여 자신을 시에서 지워내는 데 성공하려는 것처럼, 이수명은 시에서 무엇도 추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