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위한 정치적 책임
아이리스 M. 영 지음, 허라금 외 옮김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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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들인데, 자명하고 당연한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타당한 것만 이야기하고자 소모된 훌륭한 사유의 과정들이 아쉬웠다. 탁견은 타당한 것을 이야기할 때 타당한 것 이후로 나아가거나, 타당한 것 이상을 바라보거나, 타당한 것 이외까지 아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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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눈 - 포식자에서 먹이로의 전락
발 플럼우드 지음, 김지은 옮김 / yeondoo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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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스스로 자연임을 오롯이 자각할 수 있게 한다. 채식주의와 페미니즘의 한계를 에콜로지즘과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비판한다. 자명하게도 문제는 육식이냐 채식이냐 따위의 이분법이 아니라는 것. 번역의 질이 정말 나쁜데, 한국어 문장의 주술 호응이 엉망이다. 뒷부분은 그나마 좀 나아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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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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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부커상 국제부문을 수상한 뒤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그의 소설이 추구하는 미의 재현 양상과 부조리에 대한 저항 방식이 불편과 불쾌를 준다는 소감 등이다. 소위 대중매체에서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작가가 되기 전까지는 이와 같은 납작한 소감이 나올 일이 당연히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명한 말이지만, 어떤 서사가 이 세계의 불편과 불쾌를 이야기한다는 이유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폄훼당하거나, 자신과 맞지 않다고 외면당하거나, 수정하기를 강요당하는 것은 나치 독일이나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 식의 폭력과 같은 것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이 연작장편은 당연히 가부장인 아버지는 그 자체로 존재해선 안 된다고 호도하거나 처제와의 불륜을 미화하는 작품이 아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잘못된 지점들과 남성중심적 욕망으로 굴절된 여성의 면면을 그리고 있을 뿐.)와 뭇 작품이 빛났던 것은, 세계의 여성혐오에 평면적인 분노와 일차원적인 반박으로 맞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여성혐오를 행하고 있는 남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대응방식은 진부하고 낡은 한계로 자승자박의 굴레에 갇힌 미러링에 불과하다. 남성 가부장제와 육식의 문제를 전형적이고 구시대적인 생태주의-여성주의의 틀로서만 논박한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선전선동의 문구로 전락해버린다. 한강은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들로 서사를 직조해 나감으로써 남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적절한 문제제기를 실천한 것은 물론, 그러한 메시지 중심의 단순화된 교훈주의를 뛰어넘고 탐미주의적인 경지로 나아간다.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 환경주의자로서도 <채식주의자>는 발간 당시 굉장히 반가웠던 작품이었다. 페미니즘이나 환경주의를 노골화하는 소설들이 만연한 현실에 비하면, 한강의 그것은 진정으로 아름다웠고 아름답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한강이 역사적 상처를 직면하는 쪽으로 그 소설의 방향을 선회했을 때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소년이 온다>는 비록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담한 장면들을 과도하게 부각하려 애썼으나 그래도 문학의 최소 시민권인 미의 언어로 쓰여지기를 놓지 않았다. 거기다 선과 악의 따분하고도 파시즘적인 구도를 그려내는 데 집착하지 않고, 역사가 잘못 간 길에 남아 있는 발자국 하나하나에 담긴 아픔과 슬픔을 조명하는 데 힘썼다. 그만큼 이야기보다 언어가 힘이 세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광주에 대한 기억을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하나는 실로 대단하다 할 만하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한국 근현대사와 현실정치의 비극에 대해서 단순한 논법으로 시시비비를 따지려 들지 않는다. 제주 4.3은 정치이념으로 인해 이분법적으로 대립했어야 했던 지난날의 민중이 겪었던 고통스러운 사건 중 하나이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옳고 그름보다도 그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빚어졌던 그릇된 언행들이 만들어낸 비극이 핵심이다. 문학은 그 중요한 핵심을 통해, 비극이 만들어냈으나 잊어버린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간혹 이행한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도 그렇다. 역사가 잘못 갔던 그 길의 궤적을 되짚어 보면서, 그 상흔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 상흔을 미화하거나 비하하는 법이 없다. 상흔은 상처가 남긴 흔적이다. 그 자체로 상처 입게 된 까닭으로서의 사연과 흔적이 남게 된 까닭으로서의 깊이를 오롯이 받아낸 증좌이다. 그것을 직시하는 시선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노래하는 것이 된다. 설령 앞으로 오지 않을 미래라고 해도, 노래의 방식으로나마 남기기 위해서.


덧붙여, 뻔한 소리지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축하할 일이다. 이를 현실정치로 엮어 군말을 더하고 비판하는 자들은 자신의 정치이데올로기에 맞춤한 프로파간다로 악용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한강 소설이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에 별로라고 말하는 것 또한 자신을 과신, 과대평가하고 자신만을 기준으로 삼는 자아도취적 태도라는 것 역시 두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한강 문학의 성취를 보며 그와 다른 문학에 대해 개저씨 문학 운운하는 것 또한 반페미니즘적이고 반생태주의적이다. 개저씨 문학은 명백히 존재하지만, 우열을 나누는 정신승리야말로 저열하고 폭력적인 개저씨 문학의 방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개저씨 문학=남성 문학 자체를 일컫는 말이 아님을 부기해야 할 만큼 이해력이 떨어지는 이들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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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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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러운 범죄를 소재로 했다고 별로라는 반응을 접할 때마다 헛웃음만 나온다. 죄와 악을 다루는 창작 행위(A)가 죄와 악을 합리화한다는 착각(B)으로 매도된 셈. A에서 B로 가는 섣부른 폭력이 더 혐오스럽다. 치밀한 심리 묘사와 서사 구성으로 직조된 소설. 소위 출세작보단 못하나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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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 페미니즘 -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변혁의 힘
로지 브라이도티 지음, 윤조원.이현재.박미선 옮김 / 아카넷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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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적절하지만 당대적일 뿐 혜안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선각적이진 못하다. 포스트휴머니즘 자체가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라는 함정을 간과하고, 페미니즘이 안티페미니즘으로 치닫는 모순적 예외를 놓친다. 역자들의 값진 노고와 미래의 도래할 비전에 부응 못하는 본고가 아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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