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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2강 모두 1명 신청합니다. 현대 중국이 어떻든간에-_-ㅋ 역사에 흐르는 위대한 사상가들 자체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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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동호도 정대도 정미도 진우도 은숙도 선주도,

어리디 어린 그들이 왜 그토록 참혹하게 스러져야 했는지

어쩌면 그토록 존엄하게 바로 서 있을 수 있었는지... 

 

6장 꽃 핀 쪽으로를 읽을 땐 한 줄 문장마다 아니 단어, 낱글자마다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이 눈물이 무언지 어떤 의미의 눈물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부끄러웠다.
숨이 콱 막히는 답답함  치밀어 오르는 분노  무거운 보따리를 이듯 빚진 느낌  온 몸이 스물거리는 이물감 ...과 전율 끝에

시원하게 울 수 있어서 고마웠지만 그렇게 쉽게 울어버리면 안될 것 같아서 죄스러웠던.

이 책을 무어라 추천해야 할지 난감하다.
재밌어 라고 한다면 가볍고 꼭 읽어봐 라고 권한다면 부담스러울 테니.
단, 각오했던 것보다 무겁지 않았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이 단어가 여전히 어울리지 않지만 소설적 재미, 서사의 재미가 있다).

 

 

달아났을 거다, 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자정 무렵이었던 것 같아, 가냘프고 부드러운 무엇이 가만히 나에게 닿아온 것은.

얼굴도 몸도 말도 없는 그 그림자가 누구의 것인지 몰라 난 잠자코 기다렸어.

혼에게 말을 거는 법을 생각해내고 싶었지만, 어디서도 그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

서로에게 말을 거는 법을 알지 못하면서, 다만 온 힘을 기울여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어.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이제 그녀는 스물 네살이고 사람들은 그녀가 사랑스럽기를 기대했다.

사과처럼 볼이 붉기를, 반짝이는 삶의 기쁨이 예쁘장한 볼우물에 고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빨리 늙기를 원했다. 빌어먹을 생명이 너무 길게 이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너를 데리고 가려 하자 너는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같이 가자,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서서 너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네 눈꺼풀은 떨렸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 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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