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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슨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도대체 전혀 모르겠는데 아름다운 문장을 음미하고 감탄하며 읽어나가면 흥미진진하고 가슴 아프고 진지하지만 유쾌한 글이 펼쳐진다.
쿠엔 형제와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떠올랐다가 종내는 위대한 마법사같은 얀 마텔의 이름만이 남는다.
1부가 버석버석거리고 무거워 진도가 조금 늦게 나갔다면 2부는 신기하고 기묘한 환상소설 같아 긴 독백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빨라졌고 3부는 그야말로 매혹적이다.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고 즐겁고 감동적이다.
책을 읽다가 문장마다 문단마다 모조리 남기고 싶었던 글은 오랜만인 듯 싶다.
길이 기억하고 싶은 책이다.
그와 클래라는 리스본을 한 차례 방문했다. 타일로 벽면을 장식한 집들, 화려한 정원, 언덕, 쇠락한 유럽의 매력 넘치는 거리들이 그는 마음에 들었다. 부드러운 빛과 노스탤지어와 가벼운 권태가 뒤섞여 도시는 늦여름의 저녁나절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몸으로 부딪쳐야 될 겁니다." 밥이 말한다. 그는 침팬지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말을 건다. "오도, 간지럼 태우기 할까, 간지럼 태우기?" 밥이 눈을 크게 뜨고 말한다. 그기 침팬지의 옆구리를 간지럽히기 시작한다. 곧 둘은 땅바닥에서 마구 뒹굴고, 밥이 웃음을 터뜨리자 오도는 우우 소리를 내고 기분이 좋아서 비명을 지른다. "같이하세요, 같이!" 밥이 외친다. 다음 순간 피터와 오도가 엎치락뒤치락한다. 침팬지는 진짜 헤라클레스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여러 번 오도는 땅바닥에서 피터를 불끈 들어 다시 동댕이친다. 한바탕 야단법석이 끝나자 피터가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머리가 산발이고 구두 한 짝이 벗겨졌다. 셔츠 단추 두 개가 떨어지고 앞주머니는 찢어지고, 풀잎, 잔가지, 흙 얼룩이 잔뜩 묻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이이 같은 짓이고, 예순둘의 사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완전히 전율이 이는 일이기도 하다. 피터는 침팬지에 대한 두려움이 싹 달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 말고는 아무도 나무에 침팬지가 있는 줄 모른다. 어른들은 화장실에 다녀오고 자동차와 가족의 배를 채우느라 바쁜 반면, 아이들은 주위를 둘러본다. 아이들이 씩 웃는다. 몇몇은 부모에게 손짓하면서 알리려고 한다. 하지만 부모는 아무 데나 쳐다보거나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아이들은 차를 타고 떠나면서 오도에게 손을 흔든다. .... 낮에 차를 몰고 미국을 횡단하면서 피터는 자기도 모르게 규칙적으로 고개를 돌려 옆 좌석의 승객을 흘끔댄다. 차에 침팬지가 있다는 사실에 번번이 가슴이 철렁하다. 오도 역시 창밖의 경치를 보다가 똑같이 규칙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흘끗 보고는, 인간과 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을 피터는 눈치챈다. 내내도록 서로에 대한 경이와 놀라움(또 약간의 두려움) 속에서 그들은 뉴욕으로 향한다.
그러고 나니 할 일이 없다. 3주 동안-아니 한평생일까?-쉼없이 움직였는데, 이제 할 일이 없다. 무수한 종속절과 수십 개의 형용사와 부사가 들어가고, 기발한 접속사들이 문장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는 와중에-예기치 못한 막간의 촌극까지 끼어들고-하이픈 없는 명사들이 난무하는 장문이 마침내, 놀랍도록 고요한 마침표와 함께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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