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 그 중에서 번뜩 하는 순간들을 담았다. 황당하다가 안타깝고 웃기지만 슬픈 그런 이야기들이다. 타인의 삶을 바라볼 때 그들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들의 삶을 속깊이 잘 알지 못하는 탓이다. 그러나 새벽 시간 또띠아를 대신할 밀가루 반죽을 만들다가 술병을 떨어뜨려 부모님을 깨게 한 청년이 실은 또띠아를 만들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초간단 또띠아 토스트 레시피)처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껏 불러내려 놓고 조기축구하는 모습을 보여준 남자의 속마음이 도시에 사는 친구들을 불러와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려내고 싶었던 것(말처럼 쉽지 않네)처럼, 치매 걸린 할머니가 손자를 남편으로 오해해서 밤늦은 시간 거실 이쪽 저쪽을 뛰어다니는 것을 할머니의 숙면을 위해 제지하지 않은 1302호의 사정(한밤의 뜀박질)처럼 알지 못할 땐 이해하기 어렵지만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사연을 알고 난 후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더불어 산다는 건 그렇게 누군가의 사연을 들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삶은 슬플 것 같다. 이야기는 가볍지만 생각은 무거워지는 책이다.
낚시가 취미인 내 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읽을 책을 하나 달라고 하는 엄마 손에 들려주고 싶은 책.여수 태생이고 여전히 여수에 살고 계신 아빠에게조차 추천하고 싶은 책.여수로, 거문도로 당장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책.선어횟집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 이 책은 내게 그런 책이다. 서른 개의 바다 생물을 소재로 삼아 낚시, 섬 사람, 작가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덧붙여 적고 있다.
기생충 박사로만 알고 있던 서민 교수 저서의 스펙트럼이 참 다양하다. 글쓰기에 관한 책에 이어 이번엔 정치다. 나는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그가 꽤 오랜 기간 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서민적 정치>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 독서후기를 남기기 위해 서민 교수의 책을 검색해 보니 독서에 관한 책, 공저이긴 하지만 어머니에 관한 에세이 등도 있다.
어쩐지 친숙한 이름과 외모만큼이나 책이 쉽게 쑥쑥 읽힌다.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 이렇게 쉽게 읽히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서민 교수의 글이 가진 마력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권력이 장악해버린 언론, 분열을 조장하는 지역감정과 색깔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난 겨울 조 작가님이 강연 오셨을 때 그 자리에 앉아있던 부모, 교사들을 향해 마구 쏟아내던 비난의 말 그 이상의 무엇은 없었다. 왜곡된 교육 현실에 대한 해답은 강교민 같은 교사이고, 강교민의 말이 곧 자신의 말이라 했다. 질문에 대답하는 말투가 어찌나 가시같던지, 내가 질문한 사람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얼굴이 후끈거려 참기 어려웠을 것 같았다. 손자를 맞이한 후 알게 된 사교육의 실태를 바탕으로 조사하여 집필하였다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부정적 인물은 내가 지금껏 살면서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친구 사이인 엄마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질투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친구의 불행을 이야깃거리가 생겼다며 은근히 즐기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자기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 끊임없이 닥달하고 몰아 붙인다. 마치 그것이 엄마의 의무인 양. 그렇게 철저한 관리(?)를 당하는 아이들은 엄마들의 눈을 피해 딴 꿈을 꾸거나 가출을 감행한다.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는 유행어를 잔뜩 구사하면서 때로는 아이답지 않은 말들을 내뱉는 건 예삿일이다. 그나마 아빠들에 대한 시선은 좀 낫다. 평상시엔 자식 교육엔 도무지 관심을 쏟을 시간이 없는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후에는 돌변해 아내를 호통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면 여자가 마땅히 해야 할 집안 청결 관리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는 엄마들은 얼마 못 가 꼬리를 내리고 만다. 물론 처참한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친구 앞에서는 신포도를 연신 맛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현재의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건 대다수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부모와 교사들만의 책임이랴. 뒤쳐지면 비참한 삶을 감내해야 하는 부조리한 사회를 너무 잘 아는 어른들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고 아이들을 모두 공부로 떠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생을 위한 협력이 아니라 이기기 위해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치열한 경쟁이, 노오력을 하다가 지쳐 나가 떨어지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우리나라 현실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자식, 학생을 부추길 수 밖에 없이 만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궁극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은 사회 시스템과 구성원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제 역량에 맞는 역할을 하면서 그 자리에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무조건 공부, 좋은 대학, 대기업을 외치며 억지로 등떠미는 풍경은 사라지지 않을까. 조정래라는 브랜드 네임이 대단하긴 한가 보다. 출간 한달쯤 후에 산 이 책이 20쇄에 육박하고 여전히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나치게 계몽적이고 교육 문제에 대해 교조적 입장을 내세우는 이 책이 몹시 불편하다.
p. 241 중국의 역사학자 사마천이 「사기」에서 돈에 대해 이렇게 썼어. 자기보다 열 배 부자면 헐뜯고,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부러워하고, 자기보다 천 배 부자면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만 배 부자면 노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