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는 자기 근황도 그런 식으로 돌았을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 P92

당시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걸 감내하는 거였다. 게다가 도화는 국가가 인증하고 보증하는 시민이었다. 반면 자기는 뭐랄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성인이었다. - P99

-이수야.
-응.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돼서, 전세금을 빼가서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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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는 울고 있었다.
"네가 왜 이러는지 묻지 않을게. 알게 된다면 마음은 후련해지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니. 내가 너에게 잘못한 게 있다면,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고는 너의 자유야. 나의 잘못 때문도 아니라면, 너의 사정 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그게 무엇이든 나는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누군가의 말 때문에 날 오해했다면, 내 진심을 보지 못했다면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일일 거야."
- P172

침묵은 나의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고 싶지 않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도 한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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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정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렌즈를 통해서 더 크게 자라난다. 감정은 우리의 가슴에, 육감에, 손끝에 있다고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생각에 있으며 대개는 타인의 생각에 대한 나의 추측과 추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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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다. 그녀가 만든 서사가 가지는 흡인력을 사랑했다. 내게, 읽고 싶어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았으므로.

벌써 몇 해가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살인마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반감시켰다. 시작부터 뚜렷하게 예측할 수 있었으므로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뒤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붙긴 했지만.

나르시시스트와 그의 행복 그리고 살인, 더하여 이 소설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것일까. ‘너는 특별한 존재‘라는 주문은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돕는 주문이자 개인을 거대한 전체를 구성하는 작디 작은 하나의 부품쯤으로 치부하는 세상에 대한 외침이다. 자존감과 행복에 대한 욕구가 지나친 자기애로 이어져 위험한 나르시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을 염려할 만한 수준인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달라진 게 가장 문제적이다. 소설 속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일이 끔찍하고 뒤에 남는 여운이 길어 마음까지 함께 늪 아래로 가라앉는 것만 같은 이 느낌이 달갑지 않다. 예전엔 어떤 이들이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어쩌면 이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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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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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모 학교 독서캠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눌 책이다. 처음 받았을 때는 제목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덮고 나서 다시 보니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제목이다.

이 책은 진정한 어른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진정한 어른의 모습은 이렇다고 딱 꼬집어 말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것이 어른의 모습이 아닌지는 알 수 있다. 책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생각났다. 어른스러워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욕심을 버려야 할 것 같다.

소설 속에서는 시종일관 유쾌함이 떠나지 않는다. 더 시급한 할일을 두고도 자꾸만 이 책으로 손이 갔다.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만났다.


- 나만의 ○○주택 그려 보기
- 웃으며 화내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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