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이야기 세트 - 전2권 - 그 여름날의 기억 + 끝나지 않은 전쟁 평화 발자국
박건웅 만화, 정은용.정구도 원작 / 보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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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전쟁의 참혹함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불과 70여 년 전 이땅 위에서 벌어졌던 6.25전쟁도 내겐 단어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았다. 노근리 이야기가 눈에 띈 것은 단순히 두께 때문이었다. 꽤나 두툼했지만 만화여서 쉽게 읽히겠거니 하고 집어들었다. 물론 노근리가 어디인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날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날이었단다. 북한군이 쳐들어왔지만 국군이 잘 싸우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은 동요하지 말고 본업을 지키라는 라디오 방송은 계속 흘러나오고 정부는 전쟁이 일어난 지 겨우 3일째 되던 날 한강 다리를 끊고 남으로 도망을 갔단다. 그렇게 피난 행렬이 시작되고, 멋모르는 시골마을 사람들까지도 떠밀려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에 피난민 대열에 합류했는데, 그때 우리를 도우러 온 미군은 삼삼오오 모여 카드를 치고 상엿집에서 상여를 들춰메고 나와 키득거리는,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려지는 행동을 하더란다. 그런 그들이 어느날 피난 갈 것을 종용하여 걷고 또 걸었는데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더란다. 쌍굴 안으로 밀어넣어 놓고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소리가 날 때마다 총을 쏘아대더란다. 굴 속에 쥐죽은 듯 있다가도 총에 맞아 죽고, 도망나갔다가 총알을 맞고, 더러는 다른 이들의 안전을 위해 죽음이 자행되는 그 속에서 생존자들은 시체로 몸을 덮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물을 마시며 그렇게 겨우 살아남았단다.

그들이 겪은 아비규환을, 살아남은 뒤의 생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만은 전쟁이 이다지도 잔인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노근리 사건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빌려왔기 때문에 좀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전쟁이란 누구나 죽고, 죽일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지만 미군은 왜 피난민들을 죽여야 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2권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백인우월주의. 멀리,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르는 작은 나라를 도우러 오긴 했지만 그들 중 일부 - 어쩌면 다수는 도와야 할 대상이 자신들과 동등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동양인을 가리키는 속어가 대한민국의 '국'에서 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물리적 전쟁은 이미 오래 전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2권의 제목이 '끝나지 않은 전쟁'인 것은 나를 슬프게 했다. 그렇지만 미국이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가 덮고 감추려고 안간힘을 써도 끝까지 대항하여 진실을 밝혀낸 정은용, 정구도 부자가 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들 부자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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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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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그 중에서 번뜩 하는 순간들을 담았다. 황당하다가 안타깝고 웃기지만 슬픈 그런 이야기들이다.

타인의 삶을 바라볼 때 그들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들의 삶을 속깊이 잘 알지 못하는 탓이다. 그러나 새벽 시간 또띠아를 대신할 밀가루 반죽을 만들다가 술병을 떨어뜨려 부모님을 깨게 한 청년이 실은 또띠아를 만들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초간단 또띠아 토스트 레시피)처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껏 불러내려 놓고 조기축구하는 모습을 보여준 남자의 속마음이 도시에 사는 친구들을 불러와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려내고 싶었던 것(말처럼 쉽지 않네)처럼, 치매 걸린 할머니가 손자를 남편으로 오해해서 밤늦은 시간 거실 이쪽 저쪽을 뛰어다니는 것을 할머니의 숙면을 위해 제지하지 않은 1302호의 사정(한밤의 뜀박질)처럼 알지 못할 땐 이해하기 어렵지만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사연을 알고 난 후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더불어 산다는 건 그렇게 누군가의 사연을 들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삶은 슬플 것 같다. 이야기는 가볍지만 생각은 무거워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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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 개정판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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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가 취미인 내 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읽을 책을 하나 달라고 하는 엄마 손에 들려주고 싶은 책.
여수 태생이고 여전히 여수에 살고 계신 아빠에게조차 추천하고 싶은 책.
여수로, 거문도로 당장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책.
선어횟집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

이 책은 내게 그런 책이다. 서른 개의 바다 생물을 소재로 삼아 낚시, 섬 사람, 작가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덧붙여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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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정치 - 좌·우파를 넘어 서민파를 위한 발칙한 통찰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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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박사로만 알고 있던 서민 교수 저서의 스펙트럼이 참 다양하다. 글쓰기에 관한 책에 이어 이번엔 정치다. 나는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그가 꽤 오랜 기간 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서민적 정치>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 독서후기를 남기기 위해 서민 교수의 책을 검색해 보니 독서에 관한 책, 공저이긴 하지만 어머니에 관한 에세이 등도 있다.

 

어쩐지 친숙한 이름과 외모만큼이나 책이 쉽게 쑥쑥 읽힌다.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 이렇게 쉽게 읽히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서민 교수의 글이 가진 마력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권력이 장악해버린 언론, 분열을 조장하는 지역감정과 색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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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도 꽃이다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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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난 겨울 조 작가님이 강연 오셨을 때 그 자리에 앉아있던 부모, 교사들을 향해 마구 쏟아내던 비난의 말 그 이상의 무엇은 없었다. 왜곡된 교육 현실에 대한 해답은 강교민 같은 교사이고, 강교민의 말이 곧 자신의 말이라 했다. 질문에 대답하는 말투가 어찌나 가시같던지, 내가 질문한 사람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얼굴이 후끈거려 참기 어려웠을 것 같았다.

손자를 맞이한 후 알게 된 사교육의 실태를 바탕으로 조사하여 집필하였다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부정적 인물은 내가 지금껏 살면서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친구 사이인 엄마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질투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친구의 불행을 이야깃거리가 생겼다며 은근히 즐기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자기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 끊임없이 닥달하고 몰아 붙인다. 마치 그것이 엄마의 의무인 양. 그렇게 철저한 관리(?)를 당하는 아이들은 엄마들의 눈을 피해 딴 꿈을 꾸거나 가출을 감행한다.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는 유행어를 잔뜩 구사하면서 때로는 아이답지 않은 말들을 내뱉는 건 예삿일이다.
그나마 아빠들에 대한 시선은 좀 낫다. 평상시엔 자식 교육엔 도무지 관심을 쏟을 시간이 없는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후에는 돌변해 아내를 호통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면 여자가 마땅히 해야 할 집안 청결 관리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는 엄마들은 얼마 못 가 꼬리를 내리고 만다. 물론 처참한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친구 앞에서는 신포도를 연신 맛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현재의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건 대다수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부모와 교사들만의 책임이랴. 뒤쳐지면 비참한 삶을 감내해야 하는 부조리한 사회를 너무 잘 아는 어른들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고 아이들을 모두 공부로 떠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생을 위한 협력이 아니라 이기기 위해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치열한 경쟁이, 노오력을 하다가 지쳐 나가 떨어지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우리나라 현실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자식, 학생을 부추길 수 밖에 없이 만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궁극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은 사회 시스템과 구성원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제 역량에 맞는 역할을 하면서 그 자리에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무조건 공부, 좋은 대학, 대기업을 외치며 억지로 등떠미는 풍경은 사라지지 않을까.

조정래라는 브랜드 네임이 대단하긴 한가 보다. 출간 한달쯤 후에 산 이 책이 20쇄에 육박하고 여전히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나치게 계몽적이고 교육 문제에 대해 교조적 입장을 내세우는 이 책이 몹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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