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 인간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
매트 헤이그 지음, 강동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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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이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 무언가였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건 뻔한 말을 하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러니까, 이것이 사랑이었다. 서로 의존하는 두 생명체. 나는 나약함을, 경멸해야 할 무언가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야 마땅했으나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인간에게는 그런 것이 아름다움인지도 몰랐다. 예쁘장한 패턴 안에 들어 있는 우연과 불완전성, 비대칭. 수학에 대한 도전.

🔖인간은 아기의 손과 발, 무한한 행복을 안고 세상에 태어난다. 그 행복은 손과 발이 자라면서 천천히 증발한다. 십 대 이후로 행복이란 언제든 놓칠 수 있는 것이 되고, 일단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질량이 붙는다. 행복을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행복을 붙드는 일을 더 어렵게 하는 것처럼.

🔖나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애절함을 깨달았다. 본질적으로 혼자이면서도 다른 이와 함께한다는 신화를 필요로 하는, 필멸하는 생명체의 비애를. 친구, 자식, 연인. 그런 건 매력적인 신화였다.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신화.

🔖나는 이소벨의 저서를 많이 읽었기에, 인간 역사 전체가 불가능한 확률에 맛서 싸워온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걸 알았다. 일부는 성공했고 대부분은 실패했다. 그래도 인간은 멈추지 않았다. 이 유인원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끈질기다는 것이다. 인간은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아아, 정말이지 희망은 있었다.

🔖나는 괴물이었고, 이제는 다른 유형의 괴물이 되었다. 언젠가 죽고 고통을 느끼겠지만, 또한 살아갈 괴물. 언젠가 행복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괴물. 이제 내게 행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상처의 뒷면에 존재한다.

💭
좋은 것은 못 참는 성격이라 결론부터 짓고 시작해야겠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았고 어쩌면 인생책이 될 것 같다. 설정만 봤을 땐 그냥 유쾌한 SF 소설이겠구나 싶었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인긴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라는 부제에 걸맞게 화자가 말하고있는 대상이자 이 책의 독자가 인간이 아닌 자신과 같은 종족, 그러니까 내겐 외계인에 속할 이들에게 보내는 지구인 연구 보고서였다. 시작부터 웃음이 터졌는데 이 때부터 이미 이 소설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던 것 같다.

화자는 지구인보다 훨씬 지적 능력이 뛰어나며 특히 수학을 숭배하다시피하는 외계 종족이다. 우주 곳곳을 감시하다가 너무 뛰어난 수학적 발견이 일어나 우주의 비밀이 풀릴 위기에 처하면 그들 중 하나를 파견해 그 사건과 해당 인물을 제거하는데, 리만 가설을 막 풀어낸 수학자가 제거되고 그를 대신해 지구에 오게 된 인물이다. 지구의 매너를 몰라서 대학 교수의 외형을 한 채 발가벗은 몸으로 활보하거나 인사의 의미로 침을 뱉거나 하는 ‘좌충우돌 지구 적응기’구나 정도로 예상했는데 웬걸!

너무나 고등해서 불합리한 감정을 느끼지 않고 오직 이성만 있으며, 따라서 가족 사랑 우정 심지어 고통과 죽음조차 초월한 존재가 어떻게 지구에 녹아들고 가족을 갖고 끝내는 그들, 지구를 사랑하게 되는지를 유려한 글솜씨로 풀어내어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후론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리고 화자가 지구와 지구인을 사랑하게 된 만큼 나 또한 얼굴도 출신도 이름도 모를 외계인인 화자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결국 지구인들이 가지는 가장 약점, 감정적이고 불완전하다는 점이 결국 인간을 가장 강하고 인간답게 만든다는 역설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져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에도, 다시 떠올리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고인다. 결국은 사랑. 이 단순한 진리가 그에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이 뒤집힐 사건이었다는 것이 안타깝고도 사랑스러웠다.

리뷰를 쓸 때면 이 책은 이런 사람에게 권하고싶다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이 책은 모든 ‘지구인’들에게 권하고싶은 책이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사실은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이었다는 것,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에 너무나 훌륭한 답이 되어주는 책이기에.

이 책의 영화화가 확정되었다니 나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영화를 사랑하게 되어버린것만 같다. 그리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곧장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 이상 이 책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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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팔을 잃은 비너스입니다
김나윤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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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책방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이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남의 시선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봐주는 일이다.

🔖“믿을 것도, 돌아올 곳도 결국은 나밖에 없잖아요.”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든 믿을 구석은 결국 나뿐이니까. 24시간, 365일 함께인 나에게 잘하고 그런 나를 끊임없이 믿어주며 그저 나아가는 수밖에요.

🔖어떤 커다란 불행이 나를 관통해 지나갈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나를 탓하거나 남을 탓한다. 물론 그런 우리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고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과거에서 답을 찾으려 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지금은 안다. 지금 주어진 삶에서 답을 찾는 것이 가장 빠르고 현명한 방법이다.

🔖내 모습을 숨기기 위해 딱딱하고 무거운 의수를 착용해 가며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게 맞을까? 남들에게 두 팔이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고 한들 내 장애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번 시작된 고민은 길어졌다. 어느 순간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그래야 진정 행복한 삶도 가능해지는 것 아닐까.

💭
이 책을 다 읽은 것이 8월 21일, 그리고 이 글을 쓰는 것이 8월 26일. 살면서 특별히 크게 다치거나 아픈 적 없이 기적적으로 30여년을 살아왔기에 스물일곱에 절단장애를 얻은 작가의 삶은 내가 감히 가늠도 할 수 없이 먼 영역이었다. 그런데 불과 5일 사이, 아주 사소한 실수로 태어나 처음 뼈에 금이 갔고 반깁스를 착용하게 되었다. 영구적인 장애에 비할 것은 절대로 못 되지만, 고작 며칠 몸이 불편해본 후에 이 책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정말로 다른 경험이었다.

지나가듯이 유튜브인지 릴스인지에서 이 책의 저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스치듯이 보고도 아! 그 사람! 하고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책 속에서 저자가 밝히듯 팔이 절단된 사람을 어떤 미디어에서도 접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손가락 혹은 다리가 절단된 경우는 들어봤어도 팔 절단 장애는 어디에서도 정보를 접할 수 없었을만큼 드물었고, 그만큼 드러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작가는 젊디젊은 나이에 장애를 얻음으로 평생의 직업까지 잃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가족까지 잃었다. 인생에서 단 한 줄기의 희망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불행이 겹쳤지만 무너지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지 감히 가늠도 되질 않는다. 사고 당시 자신을 목격하거나 도와준 이들의 트라우마까지 걱정할 수 있는 이해심과 성품이 있었기에 가능했을까?

최근 방송에서 다뤄진 개그맨 신동엽씨에 대한 일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서 아버지 월급날에만 슈크림빵을 먹을 수 있었는데, 유치원 입학이 다가오던 어느 날 월급날도 아닌데 어머니가 슈크림빵을 사주셔서 본능적으로 자신이 형편 상 유치원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속상해서 울면서도 어린 그는 생각했다고 한다. 속상함에 못이겨 눈 앞의 슈크림빵마저 잃을 것인지. 그는 슈크림빵 먹기를 선택했다. 당장 눈 앞의 슬픔 혹은 분노, 어떠한 종류든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자그마하나마 소중한 것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취할 것인가. 무엇이 이득인가 생각해보았을 때 답은 너무나 간단하지만 실제로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당했을 때 슈크림빵을 먹기를 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옳고 더 나은 선택인지 아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기꺼이 주변에 놓인 슈크림빵들을 찾아냈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기를 택했다. 의수를 끼고 장애를 감추는 대신에 자신을 드러내고 장애 인식을 개선하기를 택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힘들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힘들게 마련이다. 무게중심이 달라진 몸으로 균형을 잡고 똑바로 걷기조차 힘들던 작가는 몸을 단련했고 피트니스 선수가 되었다. 고등학교 중퇴 후 미용 한 가지 길만 걸었던 그가 장애를 얻은 후 피트니스 선수, 트레이너, 유튜버, 이제는 작가까지 여러 직업 중 어떤 걸로 자신을 소개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더 많은 길이 열린 것이다.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막혀 절망하는 사람, 몸이나 마음에 상처를 입어 삶이 바뀌어버린 사람들에게 특히 권하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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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여름
전경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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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산책방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이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삶이 깊어지면 개념은 없어진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이미 규정된 관념이 아니라 그 너머 저마다의 낯선 벼랑길을 걷는다. 그래서 생은 여전히 미확인적인 유혹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경험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일어나는 무언가로 당신이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뭔가를 원하는 순간, 의지를 갖는 순간의 긴장과 구차함이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욕망을 갖기 시작하면 하나에서 열까지 필요한 것투성이였다. 갖추려 들기 시작하면 마음은 들끓고 몸은 분주해지고 눈빛은 불안해지고, 나날은 위축되고 누추해질 것이었다.

🔖“사랑이란 동시성을 잃고 시간 밖에서 생각하다 늘 그렇듯이 의심스러운 거야. 그건 어느 시기에 두 사람의 발이 한 데 묶였던 어떤 사건일 뿐인지도 몰라.”

🔖“사랑은 말이야. 처음부터 시작돼, 탄생과 함께. 그러니까,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만날 사랑을 키우면서 성장하는 거야.“

🔖그는 나에게 꽤 많은 것을 가르쳤고 많은 것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사랑은 아니었다. 절대로.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느끼지 않겠다고, 살기 위해 아무 느낌도 없이 이 시기를 보내겠다고 결심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얼음 나라의 주민처럼 나 자신의 투명한 감시를 받으며 갇혀버렸다. 슬픔은 알려진 것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전에는 예외적인 특별한 경험만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모든 하루하루가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장 평범한 하루하루가.

💭
이 소설은 25세의 지방 방송국 라디오 작가인 화자 ‘은령‘과, 사랑에 상처받고 사랑에 빠지기를 두려워하는 시인 ’유경’, 그런 유경의 오랜 지인이자 부유한 바 사장 ‘이진‘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그 속의 사랑, 욕망, 균열을 그린 이야기이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하면서도 파국이 예정되어있는 관계들이 깊어질수록 내 숨이 턱 막힐 지경이라 가쁜 호흡으로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은령은 유경과 자연스레 이끌리며 사랑에 빠졌지만, 늘 유경의 곁에 있는 이진의 유혹에 굴복하고 그를 통해 태어나 처음으로 욕망에 눈뜬다. 겁내면서도 온 힘을 다해 자신이 가진 거의 유일하고 가장 소중한 것, 사랑을 주려 했던 유경과의 관계는 서로를 원해서 끌어당기는 자석같았다.

반면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곳까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 위한 의식주를 넘치게 채워주면서도 단 하나, 사랑만큼은 절대 주지 않는 이진과의 관계는 마치 태양과 지구를 연상케 한다. 지구를 강력한 힘으로 끌어당기며 적당한 거리에서 생명의 온기를 내주지만, 결코 가까기 다가갈수도 멀어질수도 없는 관계인 것이 그랬다. 어떻게 한 사람에게 두 개의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자력과 중력처럼 애초에 각자 다른 성질의 감정이었던 것일 수도 있었겠다.

#스포주의
은령의 행동들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마다 그가 기댈 곳 없는 25세의 젊은 여성임을 되새기면 모든 것이 납득되었다. 사랑에 방어적인 수밖에 없었던 유경은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안타까운 인물이었지만, 이진의 속내가 가장 이해되지 않아서 덩달아 답답하고 궁금했다. 그런데 그가 사랑을 ‘머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해답이 있었다. 유경의 곁에 ‘머무르려‘하는 여자들을 떠나게 만들고, 결국 상처받고 지친 유경이 ’머무를‘ 유일한 곳이 자신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작가의 의중은 알 수 없지만 독자의 권한으로 감히 상상해본다.
#스포해제

작품 속에 꾸준히 등장하는 ‘레이스’라는 소재도 눈여겨볼 만하다. 촘촘하지 못해 한없이 연약해보이지만, 위에 마지막으로 인용한 구절처럼 하루하루 묵묵히 떠내려가다보면 어느 순간 되돌아봤을 때 아름다운 하나의 작품이 되어있다는 점에서 우리 삶과 닮아있다.

표지의 석류가 인상깊어 찾아보니 보통 문학에서 석류는 유혹, 금기, 욕망을 의미한다고 한다. 성경 속 선악과라는 욕망을 알게 한 금단의 열매이자,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메타포인 듯하다.

산뜻하고 경쾌한 소나기같은 여름 책들이 조금 질렸다면, 장마처럼 끈적하고 답답해서 숨막히지만 참을 수 없이 매혹적인 이 책에 꼭 도전해보시라 추천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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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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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사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이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꽃비 내리는 이 아침, 아픈 추억도 어두운 그림자도 다 뒤로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오월 속에 있으니까요.

🔖범서야, 삶은 마치 조각 퍼즐 같아. 지금 네가 들고 있는 실망과 슬픔의 조각이 네 삶의 그림 어디에 속하는지는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단다. 지금은 조금 아파도, 남보다 조금 뒤떨어지는 것 같아도, 지금 네가 느끼는 배고픔과 어리석음이야말로 결국 네 삶을 더욱 풍부하게, 더욱 의미 있게 만들 힘이 된다는 것, 네게 꼭 말해주고 싶단다. 젊은 너는 네 삶의 배부름을 위하여, 해박함을 위하여 행할 수 있는 시간과 아름다운 용기가 있기에.

🔖문학은 ‘내가 남이 되어보는 연습’이고 남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는 마음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이라고 하신 말씀이요. 살아가면서 내가 저 사람이라면 하고 생각하는 것, 그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읽어주는 어머니나 선생님께’라는 제목으로 “여기서 꼬마 기차는 ‘그래, 난 할 수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난 할 수 있다고 생각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동에게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난 할 수 있어.”와 “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는 분명히 다르다.

🔖그만큼 내가 지금 하는 말은 그냥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갖습니다. 노래하는 마음, 시를 쓰는 마음으로 하는 말은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보석처럼 빛납니다.

🔖겨울에 죽지 않고 살아난 만물이 이제는 생명을, 희망을 말할 때입니다. 살아남은 것들은 희망을 맞이할 당당한 자격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시끄러워 소설 속으로 도망치기만 하다가, 모처럼 여유시간이 생겨 드디어 펼쳐보게 된 책이었는데 가장 먼저 만듦새가 예쁘고 (모든 책이 다 그렇겠지만) 특별히 더 신경써서 펴낸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표지에는 꽃과 풀들을 닮은 화사한 문양 속에 홀로그램으로 책 제목이 숨어있어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책배부터 책을 펼쳤을 때까지 보라색 꽃물이 들어있어 읽는 내내 책 제목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고, 레몬색 가름끈과 면지와도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책 디자인이 예쁘다는 말만 이렇게 길게 늘어놓을 수 있다니.

장영희 작가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었는데 번역가이자 영문학 박사, 대학 교수, 영어 교과서 집필자, 칼럼니스트 등등 화려한 이력에 한 번 놀라고, 2009년에 57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개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다양한 영문학 작품들을 인용한 칼럼과 서신 등 생전에 남긴 다양한 글들을 모아 엮어낸 책인데, 어렵게 느껴졌던 고전 소설이나 영문 시를 번역가의 설명과 짧은 일화들로 풀어냈다. 덕분에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수십 명의 작가와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청소년기에 한창 에세이를 좋아하다가 머리가 크고 난 뒤 멀찍해졌었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이런저런 불합리한 일들을 겪으니 나도 모르는 새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인생 선배격인 작가들이 조언이랍시고 뻔한 말로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처럼 느껴져 피로했고 무엇보다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불혹을 앞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사실은 누군가의 다정함과 친절함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비뚤게만 바라보는 눈, 불만만 늘어놓는 입은 나와 이 세상에 한 점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 이후로 각종 에세이들을 통해 현명하고 경험 많은 인생 선배들의 조언을 감사히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특별히 이 책은 지금 내가 고민중인 부분과 맞닿아있는 지점이 많아서 더 오래 곁에 두고 자주 열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다.(양장본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2부는 비극적인 작품들로 시작해서 순서대로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봄에 관한 시가 소개되며 책이 끝나는데, 작가가 바라던대로 삶이 절망스러울지라도 끝내 봄은 오고, 그러고나면 모든 게 새로 시작될거라는 희망이 자연스레 느껴져 책을 덮는 순간이 뭉클했다. 발치에 널린 세잎클로버같은 행복도 잊지 말고 돌아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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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최애 변경 허블청소년 3
범유진 지음 / 허블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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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고 주관적이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빠는 나이가 드니까 새로운 뭔가를 좋아하 거나 배우는 게 힘들어. 그런데 너희 엄마는 그렇지 않잖아. 멋있지.

🔖누군가 그랬다. 덕질은 그 사람이 필요할 때 찾아온다고. 내게 다정함이 필요했을 때 비보가 찾아왔던 걸 생각하면 딱 맞는 말이지 싶다.
그럼 엄마는 뭐가 필요했던 걸까.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한 공간. 그 공간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

🔖제아무리 거짓말쟁이라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만은 진짜라고 믿고 싶은 건. 그 마음을 의심했다가는, 내 마음까지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릴 것 같아서.

🔖나는 안다. 좋아하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마음을.

🔖나는 내 맞은편에 앉은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목덜미에 찰랑거리는 하얀 머리카락. 어떻게 봐도 엄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엄마를 몰랐다.

🔖이제까지 나는 무대 위의 엄마를, 엄마의 전부라고 착각했던 것도 같다. 엄마도 그런 착각을 할까? 엄마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람의 관계란, 착각이란 구멍에 푹푹 빠져가며 서로의 모르던 모습을 발견해가며 이루어지는 건 아닐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쭉 무언가의 덕질을 하며 살았던 내게 엄마와 딸의 덕질 이야기를 다룬 이 책에는 마치 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투영하는 거울을 보는 것 같은 특별함이 있었다.

주인공 17살 딸 수리는 답답할 정도로 소심하고도 순진했던 그때의 나와, 한편으론 두 아이의 엄마인 현재의 나는 수리의 엄마 채영과 어느 정도 맞닿아있어 양쪽 모두 이해가 가면서도 동시에 양쪽 모두가 답답하기도 했다.

내 천성이 덕후인 탓에 어쩔 수 없이 ‘덕질’이라는 키워드에 시선이 쏠리기는 하지만, 결국은 당연하게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뜨겁게 사랑하되, 상대방이나 주변 상황에 휩쓸리지 말고 두 발로 힘차게 딛고 선 단단한 사랑을 하자는 격려였다.

나이가 들수록 용기라는 단어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데, 어릴 때는 적대적인 상대에게 맞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내 편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잘못된 선택을 할 때 ‘아니‘라 할 수 있는 힘이 궁극적인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고민하고 흔들리면서도 끝내 대세와 관성을 거스른, 서로 꼭 닮은 수리와 채영같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도.

막연히 ’덕질이라는 공통점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모녀의 이야기‘이겠거니 했던 나의 예상을 멋지게 깨주었다. 그래서 감히 이 책을 한 마디로 정의해보자면, ‘용기있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고싶다. 누군가는 한심하다 비웃을지라도, 때로는 대세를 거스르는 용기가 필요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 가장 순결하고 단단한 사랑이 바로 덕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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