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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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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음같아선 별을 백만 스물 한 개쯤 주고 싶은 책이다. 책의 초반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처참한 심경에 눈물이 흘렀고, 중후반에는 그동안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크리스쳔으로 살면서, 특히 처음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후로 딱 10년째인 지금껏 가져왔던 성경에 대한 의문들, 인간인 내게는 '모순'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크리스쳔으로써 느낀 이 악하고 추한 세상에 대한 의구심들에 대한 해소와, 신앙적으로 메말라버린 내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실 처음 이 책을 베스트셀러칸에서 보았을 때는 자아성찰적인 소설일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내 마음대로 파울로 코엘료 풍의 소설일거라고 결론지었다(물론 그의 소설이 별로라는게 아니라,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아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은 꽤 오랜 기간 동안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내 눈에 띄었고, 나는 그 때마다 무심히 이 책을 지나쳤다. 그러다가 크리스쳔인 한 친구에게 이 책의 얘기를 들었다. 친구가 잠깐 설명해 준 책의 내용은 가짜로 15년, 진짜로 10년간 크리스쳔으로 살았던 내 관념을 산산조각냈다. 하나님이 흑인 아줌마라니, 그것도 뚱뚱한데다 락밴드의 음악을 듣는다니?! 성령님이 아시아계 여인이라니?! 크리스쳔 중에서도 보수적인 편인 나는 순간적으로 '이래도 되는건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역시 궁금해져 집에 돌아오는 즉시 주문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책이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도록 다른 책들을 읽느라 이 책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던 와중에 다른 크리스쳔 친구에게 이 책을 소개하게 됐고(본인은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결국 그 친구도 그 자리에서 나와 함께 그 책을 샀고, 결국 나보다 먼저 읽고는 감격에 찬 문자를 보내왔다. 그제서야 이 책이 생각난 나도 드디어 책을 펼쳤다. 그리고 내 반응은 앞서 언급한 그대로였다. 내내 울다 웃다 하며 나는 어느새 책 속의 맥이 되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어린 막내딸을 내 실수로 잃었다는 자책감에(물론 실제로 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가 그렇게 느꼈으므로 나도 그렇게 느껴졌다)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가, 하나님께 왜 사랑하는 딸을 그렇게 잔인하게 빼앗아갔느냐는 원망도 했다가, 너무나 의외의 모습인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에 놀랐다가, 그동안 크리스쳔으로 가져왔던 의문이 풀려감에 감격했다가, '특별히'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감사의 눈물을 쏟았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이 책이 실화일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픽션이었다. 처음엔 조금 실망도 했지만, 세상에 우연은 없다. 적어도 크리스쳔인 내게는 그렇다. 모든 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운데 정교하게 맞춰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세상에 나와 우리 마음을 적셔주는 것 자체가, 이 책의 내용이 실제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쉽고 재미있게 당신의 사랑과 섭리를 알려주고 싶어 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결론은 개개인이 어떻게 믿느냐에 달려있다.
이 책을 채 덮기도 전부터 여러 권 사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줘야지 결심했었는데, 책 말미에 작가가 덧붙인 글을 보니 이 책이 처음 알려진 것 또한 읽은 사람들이 책을 한두권, 그 다음엔 대여섯권, 그 다음엔 한 박스씩 더 주문해서 지인들에게 나눠주며 결국 전세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나도 지금 이 책을 주고싶은 이들을 몇명 떠올리고 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이 책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의문들이 정리가 되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꼈듯이, 이 책을 펼치게 될 나의 사람들, 또 그들이 전해줄 그들의 사람들에게도 풍성한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 또한 두고두고 이 책을 곁에 두고 맥의 소중한 경험과 만남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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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우정 - 전신마비 백만장자와 무일푼 백수가 만드는 감동실화!
필립 포조 디 보르고 지음, 최복현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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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미 많이 알려졌듯이 '언터쳐블'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책이다. 그리고 역시 많이 알려졌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여기서 '바탕으로 했다'고 말한 이유는, 저자이자 주인공 필립 포조 디 보르고가 밝혔듯이, 백만장자 부르주아인 자신의 입장에서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압델의 이야기까지 해야 했기 때문에, 같은 사건을 두고도 두 사람은 지금껏 그들이 살아왔고,  현재도 그들 각자가 속해있는 세상 만큼이나 다르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며칠 지나지 않아 영화를 봤기 때문인지, 영화와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뒤섞여있어, 어느 것이 영화이고 어느 것이 책인지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단지, 느낌이라면 영화는 책보다 주인공 필립이 굉장히 건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책에는 주인공 필립의 고통이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되어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경험을, 죽음만큼이나 끔찍했던 고통을 쓴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책은 필립의 시점에서 쓰여있지만, 영화는 객관적이다. 오히려 드리스(압델)의 개인적인 집안 이야기와 갈등도 잘 드러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필립의 고통은 훨씬 약하고, 심지어 견딜만 해 보이는 정도로 묘사되었을 뿐이다. 물론, 내가 책을 읽었고, 비교를 해서 보았기 때문에 '비교적' 그렇게 보였을 뿐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화도 책도 어떤 분명한 결말이 있지는 않다. 눈물 쏙 빠지는 감동적인 장면도 없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게 흘러간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가공의 이야기처럼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뚜렷이 갖추고 있지 않기때문에, 독자나 관객들을 긴장시키고 기대시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실화라는걸 알기 때문인걸까? 그들은 그렇게 만났고, 조금은 특별한 우정을 쌓았고, 각자의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쩌면 시시하고 허무할 수 있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만족스럽다. 물론 영화관에서 뒷줄에 앉아있던 고등학생쯤 보이던 남학생들은 매우 불만족한 듯 보였지만 말이다. 두 사람의 우정이 그 어떤 기적보다도 놀라운 기적임을 아직 모르는 나이여서일까. 나에게 느껴진 잔잔한 감동이 그 아이들에게는 미처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자극적이지 않아도, 누군가가 죽거나 이별하지 않아도 감동스러울 수 있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감정 자체가 감동일 수 있다는 것을 나 또한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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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연습 - 서른이 넘으면 자기 마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
황상민 지음 / 생각연구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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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보면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원래 나는 심리학이라는 것은 남들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다른 사람의 행동이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인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주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심리학은 모두에게 흥미로운 분야이다. 그럼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내 안의 상처를 발견한 순간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마음, 내 심리가 궁금해졌다. 나는 왜 이렇게 자존감이 낮은걸까, 관련된 책도 읽어보고 머리를 싸매고 생각도 많이 해 보았다. 그 결과 내가 얻은 결론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받은 작은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아물지 못하고 지금의 비뚤어진 내 인격이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단지 내 추측이었다. 스스로 못났다고 자책만 하다가, 그 원인이 내가 아닌 내 가족들에게 있었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그리고 이 책을 펼쳤을 때, 내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저자는 자신의 과거에 현재를 끼워맞추지 말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 이모양 이 꼴이 된 건 옛날에 받았던 상처 때문이야' 라고 생각하지 말라는거다. 뜨끔했다. '내가 이렇게 자존감이 낮고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건 과거에 남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이야' 라고 나를 감쌌던 그럴듯 했던 포장지가, 물에 젖은 신문지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대부분의 심리학 관련 서적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저자가 지금껏 만나온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러나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고민들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했다. 저마다의 아픔이 있고 상처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해 줄 수 없다. '당신은 훌륭해요.' '지금껏 많이 힘들었군요.' '그 사람도 당신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심리학 박사는 커녕 초등학생 아이들도 해 줄 수 있을 법한 뻔한 위로 대신, 그들이 남에게 받았다고 주장하는, 표면에 드러난 상처 속으로 꽁꽁 감춘 그들 자신의 심리를 들여다보았다. '당신은 그 사람에게 이런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지만, 당신은 사실은 이러이러한 사람이군요' 하는 식이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의 행동에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괴로워하는지를 깨달으라고 말한다.
나 또한 과거나 외부로부터의 상처는 내버려두고,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의 말처럼 서른이 넘으면 내 마음에 책임 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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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부름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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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는 데에는 여러가지 기준이 있다. 베스트셀러라서, 제목이나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지인에게 추천받아서, 평점이 높아서, 작가의 전작을 재미있게 읽어서 등등. 비단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작가가 누구인가일 것이다. 어느 작가의 소설을 처음 접했는데 별로였다면, 아마 평생 그 작가의 소설을 다시는 읽으려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곤 한다. 반면에,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나는 종종, 그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좋아하는 작가'라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경우가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외수, 그리고 이 책의 작가 기욤 뮈소가 그랬다. 인간의 감정은 아주 미묘한 것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인해 이들 작가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좋아해버리게 된 것인지는 나도 알 길이 없다. 기욤 뮈소라는 이름은 언제 어느 서점을 가더라도 베스트셀러 코너에 그의 책이 빠지지 않고 들어 있어서 금새 익숙해졌다. 신작이 나와 책은 계속 바뀌는데도, 나오는 족족 베스트셀러 코너를 차지하는 그의 소설이 궁금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손을 뻗은 것은 현재까지 그의 최신작인 '천사의 부름'이었다. 표지 때문에 달달하고 가벼운 사랑 이야기로 착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스릴러, 추리, 미스터리, 러브 스토리가 모두 결합된, 그러나 결코 과하거나 잡다하지 않게 잘 버무려진 맛있는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뉴욕 JFK 공항에서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에 살고있는 셰프 조나단과, 영국 출신으로 프랑스에 살고있는 전직 형사 플로리스트 매들린의 휴대폰이 바뀌면서 시작된다. (이야기의 끝에 덧붙여진 작가의 말에서 과거에 공항에서 휴대폰이 어떤 여성과 뒤바뀌었던 경험에서 이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세계 최고의 셰프였던 조나단은 아내의 불륜으로 한순간에 가정과 명성을 잃고 뉴욕의 작은 레스토랑 주방장으로 전락했고, 전직 형사였던 매들린은 자신의 어린시절과 닮은 한 소녀의 실종사건이 소녀의 사망으로 종결되자 은퇴하고 파리로 건너와 꽃집을 차린다. 얼핏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는 이 둘은 과거의 끔찍한 상처로 인해 자살을 기도했다는 점과 3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 상처가 모두 아물지 못했다는 점이 같았다. 그러나 매들린이 지켜내지 못해 절망했던 소녀 앨리스는, 그녀의 사망이 발표된 후 6개월 뒤에 조나단과 우연히 만나 그의 자살을 막은 적이 있었고,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범인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지는 후반부는 숨 쉴 틈 없이 내달리듯 읽혔다. 그러나 마무리는 기분 좋게 책을 덮을 수 있게 알콩달콩하게 끝을 맺는다. 결국 '천사의 부름'이란 조나단과 매들린같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조나단을 위해 큰 결심을 한 전 부인 프란체스카와 조르주, 매들린이 영국에 친구 만나러 간 줄 알고 있던 약혼자 라파엘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걸까? 이 책에서 불행해진 것은 이들 셋 뿐인 듯 하다.

어쨌거나 이 책은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암시와 사건들의 연속으로 지루할 틈이 없고, 특히 후반부는 숨가쁘게 읽을 수 있는 흡인력 강한 소설이었다. 이제 확실하게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 할 수 있게 된 기욤 뮈소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옮긴이의 말대로 천사의 부름 속편도 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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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일주일
조너선 트로퍼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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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런 책은 처음 봤다. 책장이 정신없이 휙휙 넘어갈 만큼 읽기 쉬우면서도, 내용은 매우 불편하다. 결말이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빨리 읽으려고 서두르게 되지도 않는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유언이 함께 있고싶지 않은 가족들과 일주일간 집에 쳐박혀있어야 하는 것이며, 아내는 상사와 바람이 났다는, 그야말로 최악중에서도 최악인데도 웃다가도 갑자기 눈물흘릴만큼 예고없이 슬프다. 과연 이 책을 정의내릴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책을 덮은 후에 이 책의 소개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니, 모든 표현들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폭소를 터뜨리면서 읽다가도 알싸한 슬픔과 함께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보석 같은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에 익숙하거나 잘 알지도 못 할 뿐더러, 유대인들의 문화 또한 전혀 알지 못하는 내게, 어떻게 주인공 가족들이 이렇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묘사가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실감난다. 물론 콩가루집안에 하나같이 제멋대로인 이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주인공 저드는 한꺼번에 아버지와 아내와 상사와 직장과 집을 모두 잃었다. 그런데 바람난 아내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며 찾아왔다. 자기 자신이 실제보다 더 못난 놈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 힐러리는 자녀 양육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모두 그런 어머니의 덕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자랐으며, 이웃집 린다 아줌마와 연인사이다. 한마디로 양성애자인것이다. 큰형 폴은 이런 집안에서 유일하게 기대를 받고 자란 야구 유망주였지만, 대학 입학 직전에 저드를 때린 친구를 흠씬 두들겨패주러 갔다가 그 집 사냥개에게 어깨를 물려 여러번의 수술을 거치고 인생이 바뀌었다. 그리고 저드를 원망하게 된다. 그의 아내 앨리스는 저드의 첫 잠자리 상대였다. 저드의 첫 여자친구에서 형수가 된 앨리스는 불임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누나 웬디는 학창시절부터 화려한 남성편력을 자랑했고, 이웃 린다 아줌마의 아들인 호리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가 불의의 사고로 뇌에 문제가 생기면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웬디를 때리게 된 후에 그를 떠나 현재의 일벌레(지만 부자인) 남편을 만나 아이를 셋 두었다. 늦둥이 동생 필립은 제멋대로에 여성편력도 심하지만 항상 유쾌하고 때때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주는 의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사연 많고 복잡한 이들이 아버지의 추모 행사 때문에 일주일간 한 집에 갇혀 있는 것이다. 한 식탁에 둘러앉을때면 언제나 싸움이 나지만, 이들만큼 서로를 잘 아는 가족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이들이 이렇게 다투기만 하는 건, 서로를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저드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읽으면서 저드가 아내 젠에게 돌아갈지, 아니면 학창시절 좋아했던 페리에게 돌아갈지 궁금했는데, 그 둘 모두에게 갈 수 있는 갈림길에서, 저드는 그 둘 모두에게로 가지 않았다. 저드는 그 모든걸 이 소설이 끝나기 전에 결정할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도 그의 인생은 펼쳐져있고, 가능성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가족간의 사랑과 인생의 가능성. 표현이 진부하지만 언제나 옳을수밖에 없는 이 것이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아니었을까. 이 진부하고 뻔한 주제를 이렇게 재미있게, 독자들을 주물러 울리고 웃기며 표현해내 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번역에도 민감한 편인데, 거슬리는 부분 없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옮긴이의 탁월한 단어 선택과 문장력 덕분이었으리라.

끝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을 덧붙여본다.

"문제는 풀 수 있는 게 문제지." 필립이 말했다. "해답이 없다면 그건 문제가 아니야. 그러니까 이걸 문제로 보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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