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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5년 7월
평점 :
🌿샘터사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이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꽃비 내리는 이 아침, 아픈 추억도 어두운 그림자도 다 뒤로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오월 속에 있으니까요.
🔖범서야, 삶은 마치 조각 퍼즐 같아. 지금 네가 들고 있는 실망과 슬픔의 조각이 네 삶의 그림 어디에 속하는지는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단다. 지금은 조금 아파도, 남보다 조금 뒤떨어지는 것 같아도, 지금 네가 느끼는 배고픔과 어리석음이야말로 결국 네 삶을 더욱 풍부하게, 더욱 의미 있게 만들 힘이 된다는 것, 네게 꼭 말해주고 싶단다. 젊은 너는 네 삶의 배부름을 위하여, 해박함을 위하여 행할 수 있는 시간과 아름다운 용기가 있기에.
🔖문학은 ‘내가 남이 되어보는 연습’이고 남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는 마음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이라고 하신 말씀이요. 살아가면서 내가 저 사람이라면 하고 생각하는 것, 그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읽어주는 어머니나 선생님께’라는 제목으로 “여기서 꼬마 기차는 ‘그래, 난 할 수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난 할 수 있다고 생각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동에게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난 할 수 있어.”와 “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는 분명히 다르다.
🔖그만큼 내가 지금 하는 말은 그냥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갖습니다. 노래하는 마음, 시를 쓰는 마음으로 하는 말은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보석처럼 빛납니다.
🔖겨울에 죽지 않고 살아난 만물이 이제는 생명을, 희망을 말할 때입니다. 살아남은 것들은 희망을 맞이할 당당한 자격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시끄러워 소설 속으로 도망치기만 하다가, 모처럼 여유시간이 생겨 드디어 펼쳐보게 된 책이었는데 가장 먼저 만듦새가 예쁘고 (모든 책이 다 그렇겠지만) 특별히 더 신경써서 펴낸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표지에는 꽃과 풀들을 닮은 화사한 문양 속에 홀로그램으로 책 제목이 숨어있어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책배부터 책을 펼쳤을 때까지 보라색 꽃물이 들어있어 읽는 내내 책 제목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고, 레몬색 가름끈과 면지와도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책 디자인이 예쁘다는 말만 이렇게 길게 늘어놓을 수 있다니.
장영희 작가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었는데 번역가이자 영문학 박사, 대학 교수, 영어 교과서 집필자, 칼럼니스트 등등 화려한 이력에 한 번 놀라고, 2009년에 57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개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다양한 영문학 작품들을 인용한 칼럼과 서신 등 생전에 남긴 다양한 글들을 모아 엮어낸 책인데, 어렵게 느껴졌던 고전 소설이나 영문 시를 번역가의 설명과 짧은 일화들로 풀어냈다. 덕분에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수십 명의 작가와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청소년기에 한창 에세이를 좋아하다가 머리가 크고 난 뒤 멀찍해졌었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이런저런 불합리한 일들을 겪으니 나도 모르는 새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인생 선배격인 작가들이 조언이랍시고 뻔한 말로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처럼 느껴져 피로했고 무엇보다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불혹을 앞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사실은 누군가의 다정함과 친절함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비뚤게만 바라보는 눈, 불만만 늘어놓는 입은 나와 이 세상에 한 점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 이후로 각종 에세이들을 통해 현명하고 경험 많은 인생 선배들의 조언을 감사히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특별히 이 책은 지금 내가 고민중인 부분과 맞닿아있는 지점이 많아서 더 오래 곁에 두고 자주 열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다.(양장본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2부는 비극적인 작품들로 시작해서 순서대로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봄에 관한 시가 소개되며 책이 끝나는데, 작가가 바라던대로 삶이 절망스러울지라도 끝내 봄은 오고, 그러고나면 모든 게 새로 시작될거라는 희망이 자연스레 느껴져 책을 덮는 순간이 뭉클했다. 발치에 널린 세잎클로버같은 행복도 잊지 말고 돌아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