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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 인간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
매트 헤이그 지음, 강동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이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 무언가였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건 뻔한 말을 하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러니까, 이것이 사랑이었다. 서로 의존하는 두 생명체. 나는 나약함을, 경멸해야 할 무언가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야 마땅했으나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인간에게는 그런 것이 아름다움인지도 몰랐다. 예쁘장한 패턴 안에 들어 있는 우연과 불완전성, 비대칭. 수학에 대한 도전.
🔖인간은 아기의 손과 발, 무한한 행복을 안고 세상에 태어난다. 그 행복은 손과 발이 자라면서 천천히 증발한다. 십 대 이후로 행복이란 언제든 놓칠 수 있는 것이 되고, 일단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질량이 붙는다. 행복을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행복을 붙드는 일을 더 어렵게 하는 것처럼.
🔖나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애절함을 깨달았다. 본질적으로 혼자이면서도 다른 이와 함께한다는 신화를 필요로 하는, 필멸하는 생명체의 비애를. 친구, 자식, 연인. 그런 건 매력적인 신화였다.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신화.
🔖나는 이소벨의 저서를 많이 읽었기에, 인간 역사 전체가 불가능한 확률에 맛서 싸워온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걸 알았다. 일부는 성공했고 대부분은 실패했다. 그래도 인간은 멈추지 않았다. 이 유인원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끈질기다는 것이다. 인간은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아아, 정말이지 희망은 있었다.
🔖나는 괴물이었고, 이제는 다른 유형의 괴물이 되었다. 언젠가 죽고 고통을 느끼겠지만, 또한 살아갈 괴물. 언젠가 행복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괴물. 이제 내게 행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상처의 뒷면에 존재한다.
💭
좋은 것은 못 참는 성격이라 결론부터 짓고 시작해야겠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았고 어쩌면 인생책이 될 것 같다. 설정만 봤을 땐 그냥 유쾌한 SF 소설이겠구나 싶었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인긴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라는 부제에 걸맞게 화자가 말하고있는 대상이자 이 책의 독자가 인간이 아닌 자신과 같은 종족, 그러니까 내겐 외계인에 속할 이들에게 보내는 지구인 연구 보고서였다. 시작부터 웃음이 터졌는데 이 때부터 이미 이 소설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던 것 같다.
화자는 지구인보다 훨씬 지적 능력이 뛰어나며 특히 수학을 숭배하다시피하는 외계 종족이다. 우주 곳곳을 감시하다가 너무 뛰어난 수학적 발견이 일어나 우주의 비밀이 풀릴 위기에 처하면 그들 중 하나를 파견해 그 사건과 해당 인물을 제거하는데, 리만 가설을 막 풀어낸 수학자가 제거되고 그를 대신해 지구에 오게 된 인물이다. 지구의 매너를 몰라서 대학 교수의 외형을 한 채 발가벗은 몸으로 활보하거나 인사의 의미로 침을 뱉거나 하는 ‘좌충우돌 지구 적응기’구나 정도로 예상했는데 웬걸!
너무나 고등해서 불합리한 감정을 느끼지 않고 오직 이성만 있으며, 따라서 가족 사랑 우정 심지어 고통과 죽음조차 초월한 존재가 어떻게 지구에 녹아들고 가족을 갖고 끝내는 그들, 지구를 사랑하게 되는지를 유려한 글솜씨로 풀어내어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후론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리고 화자가 지구와 지구인을 사랑하게 된 만큼 나 또한 얼굴도 출신도 이름도 모를 외계인인 화자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결국 지구인들이 가지는 가장 약점, 감정적이고 불완전하다는 점이 결국 인간을 가장 강하고 인간답게 만든다는 역설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져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에도, 다시 떠올리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고인다. 결국은 사랑. 이 단순한 진리가 그에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이 뒤집힐 사건이었다는 것이 안타깝고도 사랑스러웠다.
리뷰를 쓸 때면 이 책은 이런 사람에게 권하고싶다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이 책은 모든 ‘지구인’들에게 권하고싶은 책이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사실은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이었다는 것,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에 너무나 훌륭한 답이 되어주는 책이기에.
이 책의 영화화가 확정되었다니 나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영화를 사랑하게 되어버린것만 같다. 그리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곧장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 이상 이 책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