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녀의 거짓말 - 구드 학교 살인 사건
J.T. 엘리슨 지음, 민지현 옮김 / 위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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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담쟁이덩굴이 덮인 벽돌담에 둘러싸인 구드 학교는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언덕 위에 괴물 석상처럼 앉아 있다. 교정을 둘러싸고 있는 두 블록의 건물에는 레스토랑과 커피숍, 생필품 상점들이 있다. 학교건물들은 트롤리(유리와 나무로 지어진 밀폐식 다리)로 연결되어 학생들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 학교는 조용하고, 기품있으며, 고립되어 있다. 학생들도 진지하고 학구적이다. 한 마디로 '굿(good)'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좋은 학생들이다. 구드(Goode)의 학생들 앞에는 훌륭한 미래가 펼쳐져 있다. - pp. 10-11


100년 넘은 오랜 전통만큼이나 이런저런 비밀과 괴담이 공존하고 있는 명문 기숙사제 구드 학교. 그리고 어느 날 전학 온 매혹적인 여학생. 그리고 그 뒤로 하나 둘 발생하는 살인사건들... 가뜩이나 명문 기숙학교와 엄격한 커리큘럼, 그 안에서 영재들끼리 벌이는 서열다툼이나 고충에 대한 이야기라면 환장하는 내게 딱 안성맞춤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다 지나가고 있는 마당이지만 아직은 더운 이 여름에 읽기 딱좋은 소재가 아닐런지.




충격 어린 탄성과 낮은 속삭임이 으스스한 아침의 정적을 깨고 소녀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아침의 냉기 속에 소녀들은 발을 굴렀다. 뽀얀 안개 자락이 철문 기둥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소녀들은 죽은 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애쉬.

애쉬.

애쉬. - p. 12


처음 시작부터 강렬한 묘사와 함께 한 죽음을 조명하고 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과거로 되돌아가 전학생이 오게된 시점부터 다시 보여주고 있는데 전개방식은 특별한 점이 없지만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정말 있는 듯한 학교의 풍경과 기존 재학생들의 텃세가 생생한데 이 점은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 그런 것 같았다. 작가 후기를 읽어보면 J.T.엘리슨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했다고 하는데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전문직으로 일하다가 스릴러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하는 그 이력이 쟁쟁한 만큼 그 바탕이 되었을 학교시절에 생생하게 이런 경험을 한 듯 하다. 그래서 그런가 묘사는 실제 있는 곳을 그린 양 상상이 되었고 그런 만큼 푹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소설 착한 소녀의 거짓말.




그리고 10년 전 살인 사건. 비밀 클럽. 그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걸까?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을까? 그보다 더 섬뜩한 생각이 스쳤다. 나는 도대체 어떤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걸까? - pp. 82-83


제목과 카피문구에서 얼핏 짐작할 수 있듯 이 이야기는 한 소녀를 중점으로 전개되고, 학장의 시선으로 보면 그 아이는 착한 소녀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착한 소녀의 거짓말이라는 데서 예측가능한 점은 무언가는 거짓이라는 점. 이 부분이 재미있는 지점인데 처음 읽으면서는 아, 이 부분이 거짓말이군. 하고 특정 사실을 짚어내다가도 읽으면 읽을 수록 어느 부분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거짓인지가 아리송하게 뒤섞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점은 이 착한 소녀에게만 적용되는 점이 아니라서, 전학생의 룸메이트들, 그리고 비밀클럽의 멘토, 학장이며 심지어 학교에서 일하는 사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의뭉스러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두 달 안에 두 사람을 죽여야 한다. - p. 155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이 흥미진진한 가운데 계속 발행하는 살인사건들. 그리고 점점 윤곽을 드러내는 과거의 죽음들은 특정인이 범인으로 의심스럽다가도 또 다른 사람이 의심스러워지는 등 범죄실행의 가능, 불가능의 영역보다는 서술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측면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를 쫓는 형사들도 나오긴 하지만 그들보다는 학교 안의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성이 압도적으로 매력있어서 집중하게 되던 J.T.엘리슨의 착한 소녀의 거짓말.




그 애는 서로 말을 걸기 전부터 내 친구였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떨어질 수 없는 단짝이 되었다. 우리의 삶은 하나로 얽혀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우리만의 뫼비우스의 띠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애가 되고 싶었다. 그 애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 애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러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나는 그 애를 죽여야만 한다. 그 길밖에 없다. - p. 198


상류층의 자제들이 모인 학교안에서 벌어지는 시기, 질투와 모략.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재미있는 권력싸움에 흥미가 있거나 스릴러,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나와 같이 둘 모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훨씬 시너지가 좋아 정신없이 탐독하게 만드는 소설 착한 소녀의 거짓말. 개인적으로 올해 읽었던 이야기들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초반에 생각했던 점이 다시 읽으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져 조만간 한번 더 읽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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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락송 2 - 미드나잇, 마가리타
아나이 지음, 허유영 외 옮김 / 팩토리나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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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 나쁜 패를 들고 있을 때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규칙을 깨는 것이다. 

판성메이 가족의 구심점인 아빠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가족 간의 분배 법칙도 무너졌다. 아빠가 수술하던 날 판성메이는 가족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하도록 정해진 존재가 아니고 자신이 영원히 부양해야 하는 존재도 아니라는 걸 깨달아다. 그날부터 판성메이는 가족의 요구를 거절하는 법을 차츰 배웠다. - p. 142


꽤 두꺼운 책이지만 처음 펼치기가 무섭지 그 다음부터는 술술 넘어가게 되었는데, 시리즈 1권에 이어 2권으로 넘어가자 이제 연애문제 뿐만 아니라 좀 더 심각한 가족문제로 고민을 하는 환락송 아파트 22층 주민들이 나온다. 가족 병력으로 추정되어 현재 뿐 아니라 미래의 연애까지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가족 문제를 홀로 떠맡아 괴로워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등 좀 더 1권에 비해 심각한 문제로 파고드는 아나이의 환락송 2: 미드나잇, 마가리타.




달라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달라서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도 있어. - p. 154


사랑에 대부분을 의지하는 철딱서니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다양한 사건의 비중이 높아진 환락송 2: 미드나잇, 마가리타. 자신의 커리어와 관련된 전개도 펼쳐져 다양한 전개를 두루두루 즐길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사회적인 지위는 안전되고 뛰어난 성과를 얻고 있지만 가족력 덕분에 사랑이라는 분야에서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앤디, 지나친 딸 차별과 남성우대를 보여주고 있는 가정에서 자라 자기 홀로 가족 돈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대우는 받지 못한 채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판성메이, 인턴에서 정직원으로 무탈하게 진급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직장생활에서의 여러 부조리를 겪고 있는 관쥐얼, 비교적 생각이 짧고 다혈질이지만 그만큼 직선적이고 앞뒤가 같은 추잉잉, 그리고 재벌가 딸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있진 않으나 성과에 대한 욕심이 있고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관계에 있어서 실패를 믿을 수 없어하는 추샤오샤오까지 다양한 형태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우리 22층 멤버들이 있잖아. 대학 때 룸메이트와도 이렇게 친하지는 않았어. 난 우리가 가족이라고 생각해. - p. 202 


고민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파고들지 않고 겉으로만 보자면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는 이들도 각자의 고충을 안고 사는 모습을 보여줘 한층 친근하게 느껴지던 환락송 2: 미드나잇, 마가리타. 초반에는 서로 맞지 않는다며 속으로 은근히 무시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던 관계성도 점점 서로의 일에 진심으로 도움을 나누며 발전해나가는 모습이 확실히 보였는데, 도움을 주는 이웃에서 더 나아가 가족 공동체라고 보일 정도로 서로에게 기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누구나 특별한 상황은 있어요. - p. 393


중국판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말도 있다던데 성적인 고민보다는 관계성에 중점을 둬서 별다른 거부감 없이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환락송 2: 미드나잇, 마가리타. 22층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다섯 여자의 삶과 사랑의 이야기가 각자 다른 에피스드를 보여줘 어느 순간에는 공감을 자아내게 할 수 있는 소설. 현재 2권까지 나왔고 3권 출간예정에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빨리 다음 편이 읽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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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락송 1 - 늦은 밤, 피나 콜라다
아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팩토리나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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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단에서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추려내는 건 네 도움이 필요해. 자, 앤디. 거대한 막이 올랐어. 주인공은 무대의 중앙에 있어야지. 귀국하자. - p. 8


모든 계절에 그렇지만 특히나 여름엔 스릴러, 미스터리 위주로 보곤 했었는데 요즘은 로맨스 소설이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특히나 단권으로 끝나는 책 보다는 시리즈물을 긴 호흡으로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그 중 읽게 되었던 게 바로 소설 환락송 1: 늦은 밤, 피나 콜라다. 환락송은 다섯여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름이기도 한데 대체 무슨 뜻인가 하고 보니 베토벤 교향곡 합창에 등장하는 환희의 송가를 이르는 말이라고. 작품의 부제인 피나콜라타는 여성들이 좋아하는 트로피컬 칵테일 중 하나라고 하는데 알콜맛보다 코코넛과 주스가 진한 맛을 낸다고 하니 쓴 이야기보다는 달달하고 희망찬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펼친 이야기는 아니나 다를까 긍정적인 면만 담고 있진 않고 등장인물들의 고민과 아픔도 함께 담아내고 있었다.




그 남자가 떠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살기가 힘들면 누구라도 도망치려고 하는 법이니까. - p. 100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도 있을 만큼 인기가 많아 직장인의 퇴근시간을 앞당긴 드라마라고 해서 궁금했던 작품 환락송 1: 늦은 밤, 피나 콜라다 에서 환락송 아파트 22층에는 판성메이, 관쥐얼, 츄잉잉이 한 집을 빌려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셋이 살고있는 2202호 양 옆이 동시에 공사를 하게 되고. 취샤오샤오와 앤디가 각각 들어가게 되며 22층에는 총 5명의 여자가 거주하게 되는데... 이 다섯이 서로를 알아가고 또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 어떤 성향을 지니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 이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시리즈 첫 권이었다.




나의 앞길이 어두운 먹구름이어도 난 당신을 사랑할 것이니! - p. 113


아무래도 첫 권이다 보니 각자의 고충도 다르고 성격도 달라 마찰이 있을 때도 있지만 점차 서로를 알게 되며 친밀해져가는 전개가 진행된다. 비슷한 젊은 나이의 여성 다섯이 모였지만 각자 처해있는 상황도 성격도 결이 달라 등장인물이 모두 입체적이라고 보였고, 그 와중에도 여러명이라 그런가 꺼려하는 사람도 생기고. 연애만 다루지 않고 각자의 커리어와 사건사고도 함께 다루고 있어 단권이 아님에도 물리지 않고 계속 읽게 되던 환락송 1: 늦은 밤, 피나 콜라다.




연애에서 영원을 바라는 건 도박이야. 쾌락을 추구해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지. - p. 128


아무래도 초반부 이야기라 서로 친밀해지기 전 단계에서 서로에게 내보일 수 있는 건 오래 가져온 깊은 고민보다는 연애 이야기라던지 급박하게 닥친 당장의 일 정도였는데 그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며 각각의 연애관도 인생관도 다른 다섯에 대해 알게되고, 서로의 고민에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묘사들에 이입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완벽한 등장인물은 없어 각자의 단점도 분명했지만 그만큼 충분한 장점도 있었고,그래서 부딪히면서도 계속 마주하는 것 같았다.




사랑할 때는 많이 빠질수록 상처도 많이 받지. 더 슬픈 건 사랑에 얼마나 빠지느냐를 자기가 결정할 수 없다는 거야. 모든 결과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그 순간에 결정돼. 누구를 얼마나 어떻게 사랑할지는 다 운명인거야. 무슨 짓을 하던지 다 사소하고 부질없어. - p. 410


개개인이 너무 달라 틀어지려면 한없이 틀어질 수 있을 것 같고 정말 성격이 안 맞는다 싶기도 했지만 한 사람이 지적하고 조언을 해주고 거기에 마음이 상해 갈등이 생기면 다른 인물이 공감해주고 다독여줘 좋은 밸런스를 맞춰가는 것 같았던 환락송 사람들.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도시에서 이런 이웃을 만난 것도 운이 아닐지. 총 5권 예정이라는 환락송 시리즈 중 우선 첫 권을 읽었는데 두 번째 이야기도 빠르게 끝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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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자매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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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눈을 감으면 손에 든 라이플이 보인다. 작은 손과 통통한 손가락. 열한 살의 나. 이 라이플은 특별할 게 없다. 다른 레밍턴 총과 똑같아 보일 뿐이다. 하지만 이 라이플로 나는 어머니를 죽였다. - p. 9



첫 문장부터 흥미로워 단숨에 빠져들어 보게 된 카렌 디온느의 소설 사악한 자매. 자기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생각한 레이첼 커닝햄은 스스로를 벌주기 위해서 15년간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 사회 덕분에 자신의 죄를 스스로 밝히고자 하는 레이첼은 기자가 요청한 인터뷰를 수락하게 되는데요. 충격적인 기억 때문인지 사건 당시 일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레이첼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맙니다.



사람의 목숨을 직접 끊은 사람은 무너져 버린다. 아주 극미한 부분으로 조각조각 부서져 그 누구도 다시는 짜 맞출 수 없게 된다. - p. 10



한편 카렌 디온느의 소설 사악한 자매에서는 지금, 레이첼의 시점과 그 때, 레이첼의 엄마인 제니의 시점이 교차되어 서술이 되는데요. 제니는 이미 죽었으므로 당연히 현재와 과거 시점의 교차입니다. 이로 인해 점차 이 가족이 어떤 문제점을 떠안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되는데 그게 바로 딸의 이상행동이었던 것이죠. 레이첼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명의 딸은 상냥하고 다정하지만, 다른 한 명의 딸은 잔혹하고, 심지어 그 사실에 대해 죄책감조차 가지지 않습니다. 보통의 사회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 제니는 고립된 숲으로 이사를 하고 가족끼리 살며 딸에게 감정을 학습시키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죠.



나는 라이플을 들고 어머니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검시관은 딸이 라이플을 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나는 살인자인가, 아닌가. 알아낼 방법은 하나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곳으로, 가장 행복하고도 가장 끔찍한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집으로. - p. 42



레이첼이 집으로 돌아가 있던 과거의 기억을 천천히 되살리는 동시에 제니는 과거에 어떠한 잔혹한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그 노력이 얼마나 실패했는지에 대해 서술해줍니다. 소설 사악한 자매는 교차서술형식이기에 레이첼의 이야기는 제니의 이야기의 복선이 되고, 또 제니의 이야기는 레이첼이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의 구멍을 메꾸죠. 레이첼은 서서히 자신이 진범이 맞나 의심하게 되고, 드디어 사건이 일어난 현장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집으로.


언니의 가장 중점적인 질문은 과학자들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품고 있는 '어째서일까'가 아니라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어 훨씬 진부하기까지 한 '어떻게 될까?' 였다. - p. 315


집에는 레이첼의 언니 다이애나와 친척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그 현장을 돌아보게 되며 서서히 되찾아가는 기억. 그 때의 진실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잔혹했는데요. 생각지도 못한 사건순서가 반전이 되어 흥미롭더라구요. 가족 구성원 중에 사이코패스가 있다면 얼마나 삶이 힘들어지는지, 행동교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생각하게 되던 카렌 디온느의 사악한 자매. 초반 흡입력이 어마무시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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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트
델핀 베르톨롱 지음, 유정애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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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게 된 후로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 전에는 거의 생각해본 적 없는데. - p. 66


오 년 간 납치되어있던 소녀가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열 한 살의 소녀가 납치되어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인데요. 가해자나 관찰자, 혹은 사건을 쫓는 자들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것 보다는 피해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소설 형식으로 줄글로 나열되기보다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눈을 피해 쓴 일기형식으로 작성되어 있는데요. 이 일기 뿐 아니라 피해자의 어머니가 딸에게 계속 적어오던 편지, 그리고 피해자가 짝사랑하던 스타니슬라스 선생님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좀 더 사건을 다각도로 볼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사랑과 증오는 혼동하기 쉬운 감정이다. 어느 감정에도 동정심이 없으니까.  - p. 172


트위스트라는 제목의 의미가 작 중에서 여러번 언급되더라구요. 마디손이란 1960년대 미국에서 트위스트와 함께 유행한 춤인 '매디슨'의 프랑스식 발음인데요. 마디손의 할아버지가 언어유희적 별명으로 마디손에게 트위스트라고 부르곤 했거든요. 납치범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데 거부감을 느낀 마디손은 자신을 트위스트라고 칭하며 이 이름은 R이 모르니까, 하고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R은 자신의 이름도 가정사도 모두 거짓으로 마디손에게 늘어놓지만, 그 자신은 마디손에 대해 속속이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R의 착각을 거부하는 하나의 장치인 셈입니다. 일기장과 트위스트라는 별명이 무너지려 하는 심정을 계속 추스르고 꿋꿋하게 탈출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 셈이죠.


한 가지 중요한 점은, R가 나를 모른다는 거야. 그는 트위스트라는 내 이름을 알지 못해. 그래, 트위스트는 방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시 산 자들 가운데로 올라왔어. 내 말 잘 들어. 나는 여기서 나갈 거야. 언제, 어떻게 나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지금 당장 너에게 맹세할 수 있어. 나는 여기서 나갈 거야. - p. 407


니가 내 말을 듣지 않아서, 니가 조금만 더 얌전하게 굴었더라면, 조금 더 착하다면, 등의 가스라이팅을 숨쉬듯이 내뱉는 R의 세뇌에도 마디손은 영리하게 자신을 보호합니다. R의 성정을 파악하고 따끔하게 말로 혼내줄 때도 있구요. 그러다가 R의 시위와도 같은 보복을 당하기도 하지만 R이 마디손을 자신의 입맛대로 길들이려는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마디손은 결코 누그러지지 않고 그와 자신의 관계를 제대로 정의합니다. 델핀 베르톨롱의 트위스트에서는 이러한 마디손의 눈물겨운 사투 중간중간 어머니가 마디손에게 보이는 애끓는 감정과 주변 환경의 변화, 그리고 마디손의 선생님이 글쓰기에 대해 보이는 솔직한 이야기와 맞물려 찡한 감동을 보여줍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흔히 기대하는 스릴과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 곱씹어 봐도 좋을 듯한 소설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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