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트
델핀 베르톨롱 지음, 유정애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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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게 된 후로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 전에는 거의 생각해본 적 없는데. - p. 66


오 년 간 납치되어있던 소녀가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열 한 살의 소녀가 납치되어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인데요. 가해자나 관찰자, 혹은 사건을 쫓는 자들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것 보다는 피해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소설 형식으로 줄글로 나열되기보다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눈을 피해 쓴 일기형식으로 작성되어 있는데요. 이 일기 뿐 아니라 피해자의 어머니가 딸에게 계속 적어오던 편지, 그리고 피해자가 짝사랑하던 스타니슬라스 선생님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좀 더 사건을 다각도로 볼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사랑과 증오는 혼동하기 쉬운 감정이다. 어느 감정에도 동정심이 없으니까.  - p. 172


트위스트라는 제목의 의미가 작 중에서 여러번 언급되더라구요. 마디손이란 1960년대 미국에서 트위스트와 함께 유행한 춤인 '매디슨'의 프랑스식 발음인데요. 마디손의 할아버지가 언어유희적 별명으로 마디손에게 트위스트라고 부르곤 했거든요. 납치범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데 거부감을 느낀 마디손은 자신을 트위스트라고 칭하며 이 이름은 R이 모르니까, 하고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R은 자신의 이름도 가정사도 모두 거짓으로 마디손에게 늘어놓지만, 그 자신은 마디손에 대해 속속이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R의 착각을 거부하는 하나의 장치인 셈입니다. 일기장과 트위스트라는 별명이 무너지려 하는 심정을 계속 추스르고 꿋꿋하게 탈출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 셈이죠.


한 가지 중요한 점은, R가 나를 모른다는 거야. 그는 트위스트라는 내 이름을 알지 못해. 그래, 트위스트는 방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시 산 자들 가운데로 올라왔어. 내 말 잘 들어. 나는 여기서 나갈 거야. 언제, 어떻게 나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지금 당장 너에게 맹세할 수 있어. 나는 여기서 나갈 거야. - p. 407


니가 내 말을 듣지 않아서, 니가 조금만 더 얌전하게 굴었더라면, 조금 더 착하다면, 등의 가스라이팅을 숨쉬듯이 내뱉는 R의 세뇌에도 마디손은 영리하게 자신을 보호합니다. R의 성정을 파악하고 따끔하게 말로 혼내줄 때도 있구요. 그러다가 R의 시위와도 같은 보복을 당하기도 하지만 R이 마디손을 자신의 입맛대로 길들이려는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마디손은 결코 누그러지지 않고 그와 자신의 관계를 제대로 정의합니다. 델핀 베르톨롱의 트위스트에서는 이러한 마디손의 눈물겨운 사투 중간중간 어머니가 마디손에게 보이는 애끓는 감정과 주변 환경의 변화, 그리고 마디손의 선생님이 글쓰기에 대해 보이는 솔직한 이야기와 맞물려 찡한 감동을 보여줍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흔히 기대하는 스릴과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 곱씹어 봐도 좋을 듯한 소설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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