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서 등골에 전율이 지나갔다" (pp. 48~49).
전율할 만큼 깊이 ‘나‘를 감동시킨 것은 노파와 여인의 기품이다. ‘살아남은 자‘는 과연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박완서만큼 집요하게 매달린 작가도 드물다. 박완서가 찾아낸 대답의 하나는 ‘긍지‘이다. 이 글 서두에서 언급된바 『나목』의 주인공 이경이 품었던 바로 그 욕망과 의지, 즉 "미치지 않을자신감을 박완서는 그의 소설 속 인물들에게 골고루 나눠 준다. 노파는 고통스럽고도 엄숙하게 자신의 업보를 감당함으로써 여인은 그런 시어머니를 "힘껏 보필하는 이의 사명감과 긍지"로써, 살아남은 자의 윤리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위엄 있는 삶의 발견은 그 자체로 ‘나‘에게 해방감을안겨준다. 이북에 노모와 아내를 남겨두고 빈털터리로 월남한무명 화가 남편, 그리고 그가 데려온 어미 없는 어린 딸을 평생사랑하고 섬기며 살아온 것이 "큰 허탕을 친 것처럼 억울하게여겨지고 "속아 산 것 같은, 헛산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던
‘나‘의 방황은 엄살일지 모른다(p. 37). 흉한 죽음이라는 역광속에서 비로소 고운 삶의 장면들이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나게되듯, 노파와 여인이 겪은 참상을 배경으로 한 넓은 화폭의 그림에서 ‘나‘의 번민은 그저 무심히 찍힌 점만큼이나 작아진다.
"너는 결코 헛살지만은 않았어. 암, 헛살지 않았고 말고"(p. 53).
「공항에서 만난 사람」의 경우에도 주인공의 기억 속 ‘무대소아줌마‘는 당당하고 위엄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루하루의답답증을 주체 못 해"(p. 57) 나선 여행길에서 ‘나‘는 6.25사변

중 알게 되었던 ‘무대소 아줌마‘를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주인공이 미군 PX 점원 노릇을 하던 그 시절 한국인 PX 점원과청소부, 순경은 한패가 되어 물건을 밖으로 빼돌려 이익을 챙기는 동족끼리의 동업에 가담한다. 그때 가공할 만큼 많은 물건을옷 속에 숨기는 능력을 지녀 ‘무대소 아줌마‘로 불렸던 여인을중년이 된 ‘내‘가 다시 만난다. 기억을 더듬던 ‘나‘는 그녀가 얼마나 ‘당당한 사람‘이었는지 새삼 떠올린다. "그녀에겐 아무도흉내 낼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위엄 같은 게 있었다. 그녀의처지로는 얼토당토않은 거였지만 묵살할 수도 없는 거였다"(p.
68).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국군이라는 말을 "매우 엄숙하고 품위 있게" (p. 70) 할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법이 없다.
이렇게 입이 걸고 안하무인인 무대소와 우리가 오래도록 거래를 계속했던 것은 물론 그녀의 무대소스러운 유능함 때문도있었지만, 그 터무니없는 당당함에 압도당한 때문도 있었다. 그무렵엔 참으로 당당한 사람이 귀했다. 그녀가 거침없이 잘난 척하는 게 밉살스럽다가도 문득 부럽고 보배로워지는 걸 어쩔 수없었다. (p.71)박완서는 이처럼 결코 ‘그럴 것 같지 않은‘ 주변적 인물, 그러니까 참척의 아픔을 겪었거나 먹고살기 위해 한평생 발버둥 쳐온 여인들에게 그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품위와 당당함을

선사한다. 그 인물들의 보배로움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어서 작가 박완서가 피로 물든 과거의 미로에서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이정표 노릇을 한다.
당당한 노인의 모습은 「환각의 나비」에서도 엿보인다. 주인공영주가 낳은 아이들을 한평생 돌본 어머니는 영주가 보기에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다. "노인에겐 그 어렵고도 장한 일을 한이의 특권이랄까, 침범할 수 없는 당당함이 있었고, 아이들하고의 자연스러움은 거의 동물적이었다" (p. 303). 젊어서 과부가된 어머니에게는 원래부터 "당신 손으로 자식을 벌어먹이기 위해 일생 서서 일하면서 터득한 당당함"이 있었던 터다. 이 "어머니만의 자존심"은 아무도 능멸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이다(p.
305). 치매를 앓으며 아들네로 딸네로 정처 없이 떠돌던 어머니가 가출을 했다가 우연히 머물게 된 절집에는 다름 아닌 자신의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처녀 보살 마금이가 살고 있다. 어머니를찾아 헤매던 영주는 절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살아온 무게나 잔재를 완전히 털어버린" (p. 338) 나비 같은가벼움과 자유로움을 발견한다. 노인의 당당함과 자유로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기쁨으로 번지는 듯 보인다.

살아 있음이라는 사건

폭우로 버스가 끊겨 ‘나‘의 집에 머물게 된 세 여인의 고백과그들에게도 결코 털어놓지 못한 ‘나‘의 비밀로 구성된 「빨갱이바이러스」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구절이 등장한다. "나는 마모도 소멸도 안 되는 것에 대한 병적이고도 비밀스러운 혐오감을갖고 있었지만" (p. 351). 이 구절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3)에서 ‘나‘가 형님에게 하는 말인 "생떼 같은 목숨도 하루아침에 간데없는 세상에 물건들의 목숨은 왜 그렇게 질긴지, 물건들이 미운 건 아마 그 질김 때문일 거예요. 생각만 해도 타지도 썩지도 않을 물건들한테 치여 죽을 것처럼 숨이 답답해지네요"라는 대사와 나란히 놓고 읽을 필요가 있다.
주인공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건은 죽지 않는다. 그래서 혐오스럽다. 반면, 썩거나 마모되거나 소멸되는 생명은 바로 그 때문에 매혹적이다. 현재 싱싱하게 살아 있는 것만이 점차 썩어갈 수 있다. ‘흉한 죽음‘의 덫에서 벗어나 긍지, 생기, 기품 등 인간의 생을 지속시키는 힘을 발견하고 관찰해온 작가 박완서는,
"살아 있음에 대한 매혹"(p. 217)에 사로잡혀 비非생명체를 혐오하는 인물을 작품에 등장시킨다.
말기 암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남편과 그를 보살피는 주인공의 마지막 1년을 기록한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그의 존재가 시간과 마찰하면서 빛을 내는 것처럼 빛나 보였다"(p. 203, 강조는 필자)라는 문장 하나만으로도 빛이 나는 작

품이다.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인 몸은 공간을 점유한 물건과 달리 시간을 산다.
시간과 마찰하는 몸은 늙고 병든다. 박완서가 노년의 삶을 반복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간과 마찰한 흔적으로서의 늙고 병든 몸이야말로 ‘흉한 죽음‘을 겪지 않아도 되었던 보배로운 생명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반복하건대 박완서 소설을통틀어 작중 인물이 겪는 가장 큰 사건은 ‘살아 있음‘이라는 사건이다. 가족과 지인이 당한 ‘흉한 죽음‘을 목격한 후 살아남은작중 인물들은 저마다 생기, 활기, 재미를 갈망한다. 물건 - 아닌 존재만이 추구하고 누릴 수 있는 생기, 활기, 재미는 변화를 그 속성으로 삼는다. 계속 활기에 차 있을 수도, 변함없이 즐거울 수도 없다. 박완서는 요컨대, 노화와 질병을 겪는다는 사실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특권이자 비할 데 없는 축복으로여겨질지 모른다는 삶의 진실을 ‘흉한 죽음‘의 역광 속에서 희미하게 그러나 매우 집요하게 드러낸 작가이다.
「해산바가지는 살아생전 치매에 걸려 주인공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시어머니가 며느리인 ‘나‘의 출산 때마다 보여주었던 경건한 의식을 ‘나‘가 생각해내면서 새삼 시어머니의 "노추한 육체에 깃들었던 "아름다운 정신"을 그리게 되는 이야기이다. 연달아 딸을 낳은 며느리를 죄인 취급하는 한 친구를 만난후 주인공은 시어머니의 해산바가지에 얽힌 오래된 추억을 떠올린다. 손녀 손자 가리지 않고 "똑같은 영접을 해주었던 시어머니는 "어디서 배운 바 없이, 또 스스로 노력한 바 없이도 저절

로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경건하게 생명을 대하던 시어머니는 비록 ‘시간과 마찰하면서‘ ‘망가진 정신, 노추한 육체" (p. 148)를 갖게 되었지만 "임종 때의 그분은 주름살까지 말끔히 가셔 평화롭고 순결하기가마치 그분이 이 세상에 갓 태어날 때의 얼굴을 보는 것 같"(p.
149)을 만큼 고요하다. 박완서가 그려내고 싶었던 ‘고운 죽음‘
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반면에 시어머니, 올케, 그리고 ‘나‘
가 모두 공범이 되어 여아 낙태를 저지른 이야기를 다룬 「꿈꾸는 인큐베이터」에는 미처 세상 빛을 보기도 전에 ‘흉한 죽음‘을당한 어린 원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박완서의 글쓰기는 이처럼 전쟁 중에, 극심한 가난 속에서, 남녀차별주의가 미만해 있는 사회에서 ‘흉한 죽음‘을 당한 생명들을 애도하는 데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애도 행위는 살아 있음이야말로 가장 큰 사건이자 축복이라는 작가의 인식과 맞닿아 있다.

소녀 가장 콤플렉스

박완서가 살아남은 자에게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또 하나의 인물 유형은 소녀 가장들이다.
「도둑맞은 가난」의 주인공은 부모와 오빠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동반 자살한 이후 홀로 살아남은 미싱사이다. 주인공의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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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과 복원의 꿈‘

손유경(문학연구자)

명랑해도 된다. 명랑하고 싶다

저는 자신을 본질적으로 명랑한 사람이라고 여겨요.

이 문장은 박완서 문학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박완서소설의 여성 주인공들은 심심한 것, 무료한 것, 지루한 것, 답답한 것을 잘 참지 못한다. 박완서 문학의 원형이라 할 법한 『나목』(1970)의 주인공 이경이 ‘죽지 못해‘ 사는 어머니의 잿빛 세계에서 벗어나 옥희도의 그림이 상징하는 채색된 세계에서 ‘사는 것처럼‘ 살고자 몸부림쳤던 것을 독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박완서는 한국전쟁 중에 오빠와 숙부를잃고, 1988년에는 남편과 아들을 차례로 떠나보낸 아픈 가족사

를 가슴에 품은 채 40여 년의 작가 생활을 지속했다. 박완서는삶이란 그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살아내야 하는‘ 과정의 연속임을 그녀의 전 생애와 문학을 통해 보여준 셈이다.
가족이나 지인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살아남은 자‘라는 정체성이 박완서의 삶과 글을 이해하는 결정적 단서라면, 그단서를 토대로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작가와 인물은 과연 ‘어떻게‘ 살아내었는가? 박완서는 생을 지속시키는 힘에 대한 탐구에 몰두한 작가이다. 생기, 재미, 활기, 위엄, 품위. 이것이 없으면 사람은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라는,
그러니까 『나목」의 어머니처럼 죽지 못해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니라는 믿음이야말로, 작가 자신이 왜 스스로를 "본질적으로 명랑한 사람"으로 규정했는지 알게 해준다. 박완서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명랑해도 된다‘고 말해준 작가이다. 왜냐하면 누구보다도 작가 자신이 평생토록 ‘명랑하고 싶었던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미치광이들의 짓이다. "아아, 전쟁은 분명 미친것들이 창안해낸 미친 짓 중에서도 으뜸가는 미친 짓이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나‘는 결코 미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경아가 추구한 생기, 재미, 활기는 바로 ‘살아남은 자의 자존심, 긍지였다.
"나의 내부에서 꿈틀대는, 재미나 하고픈, 다채로운 욕망들"을경아는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나는 미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는 내 속에 감추어진 삶의 기쁨에의 끈질긴 집념을 알고 있다"(『나목』.

‘흉한 죽음‘이라는 역광

그럼에도 박완서 소설에는 어이없을 만큼 참혹하게 죽은 이들과 그것을 목격한 인물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출몰한다. 죽음은 도처에서 이유 없이 일어난다. 처참한 죽음의 반복적 형상화는 "본질적으로 명랑한 작가 박완서를 평생 따라다닌 고통의몸피가 결코 줄어든 적 없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일깨운다. 한국전쟁 중에 억울하게 어처구니없이 죽임을 당한 민간인 이야기는 박완서 문학 전반의 어떤 공유지 역할을 한다. 「겨울 나들이」의 주인공은, "난리 통에 첫번째 아내와 생이별" (pp. 36~37)하고 월남해 자신과 재혼한 남편과, 그가 데려온 전처소생을 정성껏 돌봐온 자신의 노력이 문득 헛되고 억울한 기분이 들어 온양온천으로 겨울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우연히 들른 여관집에는 한국전쟁 당시 아들/남편을 잃은 고부가 살고 있다. 시어머니는 연신 도리질을 하고 있어 ‘나‘는 뭔가 눈치가 보여 불편하다. 그런데 며느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나‘의 모든 예상(노인이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든가, 노인이 정신을 놓쳤다든가)을 벗어난 끔찍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을 피해 처가에 몸을 숨겼던 여인의 남편은, 9.28수복을 즈음하여 전세가 바뀌자마자 참지 못하고 본가로 돌아온다. "어떻게 된게 세상은 점점 더 못되게만 돌아가 이웃끼리도친척끼리도 아무개가 반동이라고 서로 고자질하는 짓이 성행해,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일이 이 마을 저 마을에 하루도 안 일

어나는 날이 없었다. 끔찍한 나날이었다" (p. 45). 그사이 여인은시어머니에게 그 누가 아들의 거처를 묻더라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른다고 딱 잡아떼라는 교육을 철저히 시킨다. 그러던 중시어머니는 마을을 배회하던 인민군 패잔병들과 마주친다. 그녀가 덮어놓고 ‘나는 모른다‘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들이놀라 뛰어나오고, 아들은 인민군이 난사한 총에 맞아 처참히 죽고 만다. 이후 시어머니는 "치매가 된 채 허구한 날 도리질이나해대는"(p. 48) 증세를 보인다.
박완서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들이 겪었던 고초를 이렇게도묘사했다. "몇 달을 두고 전선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대로 세상도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었으니 그때마다 부역했다고 고발하고 반동했다고 고발해서 생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을 미친 듯이되풀이 했다"(「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1977). 이런 살벌한 사태를 피해 몸을 숨겼던 아들이 돌아오자마자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으니 「겨울 나들이」의 노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이상증세를 형벌처럼 평생 겪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를 구성하는 두 개의 에피소드 중 전자에 해당되는 윤 노인의 가족사 역시 위와 유사한 패턴으로 그려진다. 6.25동란 중 인민군을 피해 땅굴에 숨어 있던 윤 노인의 부친은 "저만치 국민학교 마당 깃대박이 꼭대기에서 태극기가 나부끼는 걸 보자 그만 감격에 치받쳐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날뛴 게 문제"였는데,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수수밭에 숨어 있던 인민군이 총을 난사해 그 자리에서 처참하게 숨

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선거 부정행위를 폭로하는 윤 노인의 수기를 그의 부인이 그토록 불온시하며 그것이 세상에 알려칠까 봐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것은, "시상만 바뀌었다 허면 미리설치는 건 이 집안 내력"이라는 점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p.168). 윤 노인이 어용 잡지사 수기 공모전에 당선되고도수상을 포기한 것은 이런 사정들 때문이었다.
다른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소설가 송사묵 또한 전쟁 중영문도 모른 채 사형을 당한다. "인공 치하에서 이밥 먹고산죄" (p. 180)로 밀고를 당한 ‘나‘의 숙부와, "난리통에도 숨어 있지 않고 학교에도 나가시고 문학가 동맹 사무실에도 나가" (p.
182)는 바람에 부역자로 낙인찍힌 스승 송사묵은, 9.28수복이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후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숙부와 송사묵)가 그 안(서대문형무소)에서 짐승처럼 죽어갔다면 우리는 밖에서 짐승처럼 살아남았던 것이다" (p. 184, 괄호는 필자).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못한 골육상잔의 기억" (p. 376)을 다룬 「빨갱이 바이러스」에서 주인공은 인민군이었던 삼촌의 존재가 행여나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아버지가 삼촌을 삽으로내리치는 장면을 목격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분명
"인민군에 나가 싸운 삼촌" (p. 372)의 시신이 마당에 묻혀 있을것이라 확신한다.
죽은 자도 살아남은 자도 ‘짐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 시간들을 박완서는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기록한다. 인물과 상황은

조금씩 변하지만 이 사건들을 가로지르는 본질은 단 하나다. 죽인자도, 죽은 자도, 살아남은 자도 ‘이유를 모른다‘. 도처에 널린이 죽음들의 ‘이유‘를 찾기보다는 그 허망한 죽음들을 끊임없이 기억해내고 발설하고 기록하는 과정, 그것이 박완서 글쓰기의 중핵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피로 물든 이 기억의 미로에서 박완서가 길을 잃지않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비명횡사한 아버지와 오빠의 원혼을 한참 만에야 제대로 달랠 수 있게 된 「부처님근처」(1973)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고운 죽음이 얼마나큰 축복이 될 것인지를 나는 알고 있다. 흉한 죽음이 얼마나 집요한 저주인지를 알기 때문에." 여기서 ‘내‘가 그토록 동경하는
‘고운 죽음‘이란 곧 ‘고운 삶‘, 다시 말해 늙고 병드는 인간적 삶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전쟁이나 사고로 제 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은 이들을 지척에서 보아왔기에, 작가 박완서는 늙고 병드는 과정을 겪는다는 것 자체가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축복임을 거듭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박완서 소설은 ‘고운죽음=고운 삶‘의 장면을 조명하면서도 그 피사체에 ‘흉한 죽음‘
이라는 강한 역광을 내리쪼임으로써 ‘살아 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찬란하면서도 덧없는 ‘사건‘인가를 깨우쳐준다. 기실(비명횡사가 아니라) 살아 있음이야말로 가장 큰 사건이라는 진실을 말이다.

중년 혹은 노인의 기품

박완서 소설에 등장하는 당당하고 품위 있게 늙어가는 중년혹은 노년의 여인들이 주목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겨울나들이에서 도리질하는 노파를 관찰하는 ‘나‘의 시선에 포착된 것은 그녀의 "특이한 우아함이다.
노파는 수척했으나 흰머리를 단정히 빗어 쪽찌고, 동정이 정갈한 비단 저고리에 푹신한 모직 스웨터를 걸치고 꼿꼿이 앉았는 모습에 특이한 우아함이 있었다. 그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인우아함이기도 했다. 도리질도 처음 내가 봤을 때보다 훨씬 유연해져 꼭 미풍에 살랑이는 것처럼 보였다. (pp. 42~43)노파는 난리통에 아들을 잃고는 이후 25년 동안 자는 시간만빼놓고 도리질을 한다. 얼핏 보면 우스꽝스럽고 기괴하다고까지할 수 있을 노파의 이런 행동 너머에서 어떤 ‘엄숙함을 찾아낸 것은 노파의 생을 지속시키는 힘이 다름 아닌 바로 그 도리질에 있음을 주인공이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 도리질은 광기의 표식이 아니라 광기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의 흔적이다. 노파를 극진히 봉양하는 며느리의 태도 또한 그윽하고 평온하다. "정말 대사업을 힘껏 보필하는 이의 사명감과 긍지로 아주머니의 얼굴이 은은히 빛나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어쩌면 이아주머니야말로 대사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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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그의 손을 꼬옥 붙들고 잤다. 행여 내가 잠든 사이에라도 당신의 영혼이 육신을 훌쩍 떠나가지 않도록 지키고 있다는 몸짓이었고, 그도 그걸 알아주길 바랐다.
이렇게 결코 그를 혼자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처럼 굴면서나는 뒤로 조금씩 그의 장사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와 나의 교적이 있는 본당 연령회장 댁 전화번호를 비롯해서 오랫동안 격조했지만 알려야 할 친척들의 연락처까지 수소문해서 메모해놓는가 하면, 임종의 장소를 집으로 할 것인가 병원으로 할것인가를 자식들과 수군수군 의논하기도 했다. 그리고 환갑 때 찍은 사진 중 부부의 사진을 딸을 시켜 사진관에 보내 아버지만 홀로 떼어내어 영정으로 쓰기에 적당한 크기로 확대를 해오도록 했다. 넉넉한 사랑을 받으며 나이 먹은 티가 역력한 흡족하고 평화로운 미소가 마음에 들어 골라잡은 사진이었다. 
그러나 미리 만든 영정 사진을 받아보고 나는 그만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가슴이 뜨끔하고 말았다. 장식 없는 나무들 속에 확대된 그의 미소는 암만 해도 나하고 나란히 앉아 찍은 환갑 사진 속의 그가 아니었다. 그는 내가 끊임없이 불어넣은 거짓 희망에 속아주고 있을 뿐 결코 정말 속고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엷은 미소가 감도는 눈매는 남의 속을 지그시 들여다보면서도 노염을 타거나 무안을 주려는 게 아니라 연민으로 감싸는 쏠쏠함 때문에 우는 것 같기도 하고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되레 나를 위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여덟 개나 되는 모자는 다 그가 죽음을 앞둔 마지막 1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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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야기 하나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대지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대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소유하고 있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대지의 모든 부분이 신성한 것들이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홍인(피부색이 붉은 사람, 즉 인디언)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대지를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여기가 바로 우리 홍인의 어머니 품속이기 때문이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내는 철마가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물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당신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종족들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 주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당신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들이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 주는 피와 같이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거미줄을 짜는 것이아니라 다만 그 거미줄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

우리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우리가 거•기에 동의한다면 당신네가 약속한 보호 구역을 가질 수 있어야 할것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짧은 여생을 이어갈 것이다. 마지막 홍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의 기억이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가 될 때도 이 기슭과 숲들은여전히 내 종족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마음속에 간직해 달라. 온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당신들의 아이를 위해 이 땅을 지키고사랑해 달라.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한 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아메리카 인디언 수쿠아미쉬족 추장의 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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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부산특별시>가 선사하는 웃음의 핵심도 우리나라의 서울 중심주의에 대한 반항‘입니다. 이 코너는 부산이 대한민국의 수도가 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웃음으로 만듭니다. 방송국아나운서 면접시험에 서울 출신 지원자가 등장하여 자신이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말하자 부산 출신 면접관들은 "에이! 이거 뭐꼬? 서울대 지방대 아이가?"라며 비아냥거립니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 사람들을 무시하는 현실이 이 코너에서는 완전히 뒤집힌것이죠. 여기서 커다란 웃음이 터집니다. 지역차별주의에 대한 반항이 <부산특별시>의 웃음 포인트입니다.
프로이트의 방대한 저작 중에서 직접적으로 유머와 농담을 다룬 글들이 있습니다. 그의 저서인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1905년)와 짧은 논문인 「유머」(1927년)가 그 대표작입니다. 프로이트는「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코미디(희극적인 것)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농담(조크), 코미디, 유머가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다 우리가 잃어버린 쾌락을 다시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우리가 정신적으로 발달하면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억압에 의해 쾌락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웃기는 것은 잃어버린 쾌락을 다시 얻는 것입니다. 쾌락을 얻기 위해

그러나 초자아는 유머라는 방식에 의해 자아를 위로하고 고통을막아줍니다. 이런 이유로 모든 사람이 유머러스한 태도를 지닐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태도는 드물고 귀한 재능입니다. 심지어유머를 즐길 수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유머를 구사하는사람은 앞에서 예로 든 사형수의 사례처럼 숭고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프로이트 유머론을 이해하려면 그가 세 가지 관점에서 심리적인 삶(심리 기구)을 고찰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역학적인 관점(충동론), 경제학적인 관점, 지형학적인 관점이 그것입니다.
첫째로, 역학적인 관점은 충동론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관점은심리적인 사건들을 외부 자극을 배제하고 심리적인 힘들의 놀이로 보는 관점이지요. 우선, ‘자아 충동‘과 ‘대상 충동‘이 있습니다.
이 배후에 더 기본적인 충동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에로스‘로서항상 합일을 추구하는 충동이며 다른 하나는 타나토스‘(죽음의충동)로서 살아 있는 것의 해체로 이끄는 충동입니다. 이중에서에로스적인 힘의 외화가 리비도라고 불립니다.
둘째로, 경제학적인 고찰에 따르면 충동들의 심리적인 대표자인 표상이나 감정에 특정한 양의 에너지가 투자(카텍시스)되어 고착됩니다. 심리적인 기구는 이러한 에너지의 정체나 고착을 예방

하고 그곳에 실린 자극의 총량을 가능한 한 낮게 유지하려는 경향을 갖습니다. 심리적인 사건의 과정은 쾌락 불쾌의 원칙에 의해 자동적으로 조절됩니다. 이 경우 불쾌는 어떤 식으로든 자극의 증가와 관련되고 쾌락은 그것의 절약과 연결됩니다.
셋째로, 심리 기구에 대한 지형학적인 고찰에 의하면 심리 기구는 1) 이드(Es)라는 충동 자극의 담지자. 2) 이 이드가 외부 세계에 의해 변형되어 표면화된 자아(Ich), 3) 이드에서 생겨나 자아‘를 지배하고 인간의 특징적인 충동 억제를 대표하는 ‘자아‘
(Überich)로 나눠집니다. 특히 초자아는 대단히 잔인해서 내면화된 사회적 억압의 기관인 것입니다.

웃음은 경제적인 절약이다<큰 세계>와 <부산특별시>가 프로이트가 말한 반항의 웃음‘에대한 대략적인 모델을 제시한다면, 「개그콘서트」의 <힙합의 신>은 반항의 구체적인 기술‘을 보여줍니다. 프로이트에게는 그 기술‘이 무엇인가도 중요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이 기술은 꿈의작업이나 농담의 작업으로 나타나지요. 이를 통해 그동안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이 우리의 의식에 나타나게 되지요.
프로이트에 따르면 억압된 욕망이 가는 곳이 ‘무의식‘이라는우리 마음의 창고입니다. 무의식에 쌓인 생각과 감정들의 흔적이 꿈과 말실수, 농담(초크) 속에 나타납니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농담은 뭔가 드러나지 않은 것
‘숨겨진 것‘을 끌어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는 농담의 기술을 꿈의 작업과 연결시킵니다. 그래서 그가 이어서 "농담기술의 핵심으로 인식됐던 대체물을 갖는 압축의 흥미로운 과정은 꿈-형성 과정에 주목하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동일한 심리적 과정이 꿈 형성 메커니즘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농담기술에는 자리바꿈, 사고 오류, 무의미, 간접직 표현, 반대를 통한 표현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꿈 작업에서도동일한 기술이 사용된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것입니다.
<힙합의 신>에서 개그맨 이세진 씨는 랩 배틀 도중에 자신의사업인 제과점을 홍보하고 싶은 마음에 그와 관련된 단어들을 랩에 포함하려 합니다. 하지만 다른 참가자 사회자들로부터 빵을홍보하는 단어들을 말하지 말라는 제재를 받습니다. 이에 이세진

은 어떻게 하든 제과점을 홍보하고 싶은 마음에 실수를 가장하여랩 내용에 다양한 빵의 이름을 교묘하게 배치합니다.

내 성격 알잖아? 날 고로케 (그렇게) 몰라?
내가 아팠던 만큼 너도 와플(아플 거야.
사랑이 줄어든 만큼 너의 전화도 츄러스(줄었어).
아침이 돼 해가 창 바게뜨고(창 밖에 뜨고).

내 노랠 듣고 그녀는 말했지. 너 꼭 카스테라(가수 돼라),

우거지 좀 많이 넣어주세요.

이별 앞에 선 두 연인의 심각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끼어드는 너무나 일상적인 말과 행동이 낯설게 하기‘ 기법이 적용된 사례입니다. 이로써 관객들의 감정이입은 매번 방해를 받습니다.
다시 말해서 ‘심각한 이별에 처한 삶의 비정상적인 위기‘와 ‘식당에서 주문하는 행동과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부딪힘으로인해 두 연인의 이별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이 중단됩니다. 이지점에서 웃음이 나옵니다. 몰입할 때는 심각하지만 떨어져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우리 일상에서는 많이 벌어집니다. 이 간격의 여유가 웃음의 근원입니다. 이별과 상관없이 일상적인 삶은 지속되니까요. 이별 뒤에도 밥만 잘 먹더라는 유행가 가사처럼요.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에서도 낯설게 하기 기법이 대단히 잘 드러납니다. 주인공 박성광 씨가 뜬금없이 「개그콘서트」의 연출자인 서수민 PD를 자꾸 거론합니다. 또는 출연자인 개그맨들이 연기 도중에 방청객들과 대화합니다. 또는 개그맨들이 개그 코너와 상관없는 출연자의 실제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일종의 낯설게 하기‘ 입니다. 이로 인

해 그 코너를 보는 도중에 관객들은 그 극의 감정적인 분위기나이야기 구조에 몰입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낯설게 하기‘란 관객이 감정적으로 연극에 빠져들지못하도록 연극이 현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춘향전」을 본다고 가정해 보죠. 춘향이가 옥에 갇혀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아리스토텔레스적인 연극 이론의 관점에서는 관객이 춘향이의감정에 빠져들어 함께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며 감정의 카타르시스(정화)를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브레히트는 이러한 드라마적인 극장 방식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브레히트가 연출한 「춘향전」이라면 춘향 역의 배우는드라마적인 연기를 하다가도 중간 중간에 다른 연기를 섞어야 할것입니다. 즉, 관객이 춘향이의 입장에 감정적으로 빠져들지 못하도록 관객을 낯설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울다가도 갑자기 생뚱맞게 관객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관객은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세트, 소품, 조명 등 연극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관객이 연극에 감정이입하지 못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브레히트의 최종적인 목적은, 관객이 연극의 환상에 빠지지 않고 ‘이곳은 극장이다.‘라는 사실을 깨

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브레히트는 왜 관객이 연극에 빠져드는 것을 막으려 했을까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남긴 말에 답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하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익숙하면 익숙할수록 그익숙함에 빠져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서로 상대방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을 때는 상대방의 결점 같은 것은 아예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사랑에 빠졌던 연인들도 사랑이 식고 서로를 낯설게 느끼기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상대방을 더욱 객관적으로 본다면 사랑의 감정에 빠질 수 없습니다. 
「개그콘서트」 <남자가 필요없는 이유>에서 개그맨 정승환 씨는 박소라 씨에 대해사랑의 감정을 느껴서 오두방정을 떨다가도 감정이 바뀌면 정색을 하고 박소라 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를 반복합니다. 이때 정승환씨의 유행어 대사가 바로 너, 되게 낯설다.‘ 입니다.
결국 브레히트가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 이유는, 관객들이 연극을 통해 의식 변혁을 이루기를 바란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용감한 녀석들>에서 낯설게 하기‘ 기교에 의해 개그와 현실이 접속하면서 관객은 감정이입에서 벗어나 개그가 현실이 아닌 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생각하면 그 대표적인 떠돌이 캐릭터가 삶의 집착에서 벗어난 쇼펜하우어적인 인물이죠. 그러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바보짓으로 고발하는 브레히트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낯설게 하기‘ 효과가 지닌 웃음의 미스터리는 프로이트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풀릴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프로이트는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웃음의 3가지 형태 중 ‘유머‘
의 쾌락을 절약된 감정 비용‘이라고 말했습니다. 관객은 낯설게하기 덕분에, 뭔가에 감정을 지나치게 쏟거나 투자하는 행동이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그 상태가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절약된 감정 비용‘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낯설게 하기‘로 인해슬픈 운명의 주인공에 지나치게 투자되어야 할 특정 감정의 비용이 절약됩니다. 그러면 이와 동시에 웃음이라는 생리적인 현상이일어나는 것입니다.

개그 철학 칼럼 1++
지구는 여전히돌고 있다?

역사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심지어 반대파를 숙청하는 권력자나 권력기관은 언제나 존재했다. 최근에는 대표적으로 우파 정권인 독일의나치 정권이나 한국의 박정희 정권, 좌파 독재자인 소련의 스탈린과 북한의김일성이 있었다. 과거에는 종교재판소로 악명 높은 로마 가톨릭 교황청과성리학 외에는 사문난적으로 처단한 조선 왕조가 그러했다.
브레히트의 유명한 희곡인 ‘갈릴레이의 생애는 그러한 잔인한 권력 밑에서 살아가야 하는 지식인의 고뇌와 비겁함을 그리고 있다. 동시에 역설적으로 진리를 향한 용기까지 제시하고 있다. 일종의 자기 예언적인 작품이기도하다. 1939년의 첫 판본은 갈릴레이를 종교 재판소의 압제에 맞서 싸우는용기 있는 사람처럼 그린다.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다."라는 유명한 말처럼갈릴레이는 권력자에 굴복하고 진리에 관해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연구를 계속 진행한다.
갈릴레이가 말하기를
"벨라로 추기경의 마부가 오늘 아침 선물로 여기에 갖다놓은 첼리니의시계를 좀 보시겠소? 여보시오. 예를 들어 내가 당신의 선량한 부모님께 영혼의 평안을 드리는 값으로 교황청에서는 내게 포도주를 제공하고 있어요. 그것은 당신의 부모님이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과 같은 형상대로 만들어진 고얼굴에 땀을 흘리며 짜낸 바로 그 포도주란 말이오. 혹시나 내가 침묵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천박한 용기 때문일 거요. 나 자신의 안락한생활, 박해를 받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 말이오."

주체적 인격성을 부조리와 그 부조리의 해소를 상세하게 서술하면서 완성시킵니다. 다시 말해 코미디는 비극이 끝난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즉 절대적으로 화해된 유쾌한 마음이 그것입니다.
코미디는 ‘모순의 즐거운 화해‘를 추구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체적인 만족이 핵심이 된다는 뜻입니다. 주인공이 추구한 행위의결과가 좋지 않고 비극적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다는 자기 확신이 핵심인 것이지요. 이것이 아리스토파네스가 대표하는옛 그리스 코미디의 특징입니다.
코미디의 주인공은 우선 그 자체로 우스운 면이 있어요. 그는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진지하지 않아요. 그래서 코미디의 주인공들은 더 고등하고 보편적인 관심을 갖지 않기에 실질적인 문제에서 이해관계의 갈등을 겪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과모습에 전혀 의문도 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코미디의주인공들은 대개 낮은 지위의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진지하지 않기 때문에 거꾸로 결과의 희비극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렇게 절대적인 자유정신과 사적인 평온함의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러한 자유정신의 분위기 속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네

도시국가의 신성한 신들과 동료 시민들을 풍자합니다. 특히 동료시민들의 우스꽝스러움. 다시 말하면 대중적인 어리석음, 정치가들의 정신없음과 전쟁의 부조리함 등을 폭로하는 데에 주력합니다. 빚쟁이에게 빚 갚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제의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 지하세계로 내려와 비극 작가를 육성하겠다고 결심한디오니소스신 등, 이들은 모두 처음부터 바보에 불과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생각한 과업을 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바보인 자신과 그가 생각한 과업은모순을 이루게 됩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무능해서 그 과업에 실패하더라도 자기 확신이 대단해서 절대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헤겔은 아리스토파네스가 냉담하고 악의적인 조소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그는 아리스토파네스를 동료 시민의 안녕에 관심이 있는 가장 재능이 뛰어나며가장 좋은 시민이라고 단정합니다. 반면에 앞에서 언급했듯이 플라톤은 이러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코미디를 심술궂은 시기심에의한 쾌감이라고 비판했지요.
근대 유럽의 코미디와 고대 그리스 코미디의 차이점은 다음과같습니다. 근대 코미디는 관객들에게 사적인 이해관계와 성격들

과 그와 연관된 일상적 부도덕함과 부조리함, 그리고 특이한 행동과 어리석음을 전부 제시합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러한 음모에 담긴 온갖 모순을 보고 웃게 마련입니다. 이런 식으로 아리스토파네스적인 ‘영원한 화해로서의 솔직한 유쾌함‘이 근대의 코미디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근대적인 음모의 코미디에서는 노골적인 악, 즉 교활하고 기만적인 자들의 음모, 사기, 비열함이 승리합니다. 음모에 의해 정직하지만 무기력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늘 속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근대 유럽의코미디는 헤겔이 보기에 구토가 날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유럽은 진정으로 코믹하고 진정으로시적인 코미디의 유형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한 코미디의 기조(基)는 그 모든 실패와 불운에도 불구하고 좋은 유머의 정신을보여줍니다. 좋은 유머 정신은 무관심의 확신적인 유쾌함, 그리고 기본적으로 행복한 광기와 어리석음, 마지막으로 개성의 풍부함과 대담함입니다. 이것을 헤겔은 "깊이 있고 성찰적인 유머"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셰익스피어의코미디 작품들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헤겔의 이러한 좋은 코미디의 발전과 더불어 미학의 철학적 탐구가 진정한 종결(완성)에 이른다고 봅니다. 코미디

의 유머 속에서 자유로운 절대적 주체의 낭만주의 정신의 부정적인 면이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에서 코미디는 예술의 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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