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각본‘을 거부하는 사람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영혼은 스스로 어울릴 사람들을 고른다"라고 쓴 바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회적 위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살고, 어떤 가정·종교·사회 계층에서태어났으며, 어떤 민족이나 인종에 속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문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속하게 된 사회 집단을 자연스럽게(혹은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향인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집단적 사고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념, 정치, 인종, 경제,
종교, 국적 같은 추상적 개념이나 출생 시 주어진 조건들로 형성된 그 어떤 집단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집단 구성원끼리 암묵적으로 합의한 기준으로 얽힌 사람들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한다는 발상 자체를, 그 집단이 다수의 눈에 아무리 권위 있어 보인다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흔히 다양한 이유(그 가운데는 충분히 타당한 이유도많다)로 이런 구속력 있는 추상적 개념들에 매달리곤 한다. 이념,
배경, 혹은 경험의 일부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에 속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관계로 이어지는 길이 열린다. 그리고 그 길은 가족이나 직장 같은 다른 뚜렷한 관계망이 없을 때 특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집단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문율을 제

공하여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피하게 해주는 동시에 모두를 규율 안에 묶어두기도 한다. 상황이 좋을 때는 이런 소속감이 공유된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누가 믿을 만한 아군이고 누가경계해야 할 적군인지를 구분하는 다소 투박한 기준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반대로 상황이 나빠지면 앞서 언급했듯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를결정하는데 집단사고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맹수나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부족의 일원이 될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인간으로사는 경험 자체를 버텨내기 위해 여전히 집단이 필요하다. 수동적으로 협력하는 일반적인 무리 동물과 달리, 인간은 다수가 같은 의견과 신념을 공유하기로 합의해 만든 관념적 실체를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군집적 사고는 경험에서 비롯된 자원을 모아 ‘집단지성‘이나 ‘공동체적 지혜‘
를 탄생시킨다. 그렇게 우리 대부분은 집단에 순응해 사는 법을배운다. 군집적 사고에 속하거나 그에 참여하는 것이 일종의 거짓된 안도감, 즉 ‘다수‘의 힘에서 나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순응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해지는데, 이는 집단의 지배에 필요한 결속을 굳건히 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속 욕구가 일단 집단 정신으로 자리 잡으면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모조리 삼켜버린다.

일반적인 공동체 지향인들에게는 이런 희생이 쉽고 본능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적 각본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의지도, 능력도 없는 이향인들은 그렇지 않다.
자기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이향인에게 사회 규벌은 순환논리로 설명된다. 사람들이 사회 규범을 따르는 이유는 이미 널리 받아들여졌기 때문이고, 널리 받아들여진 이유는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규범이자의적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이향인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무인도에 혼자 고립된다면, 지금까지 소중히여기거나 소중히 여기라고 배운 모든 것들을 여전히 가치 있게지킬 것인가? 아니면 그 판단들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만 쓸모 있고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인가?
비유하자면 소속감이 없는 사람은 외딴섬에서 혼자 살고 소속감이 있는 사람은 본토에서 사는 것과 같다. 이향인은 본토를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통용되는 규칙에 주의를 기울이고 최대한따르려 하지만, 그들은 언제까지나 그곳에 잠깐 들린 관광객일뿐이다. 그 규칙은 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향인은 단지 어떤 생각을 믿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만으로그 생각의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생각 자체다. 군집적 사고의 도구들, 예를 들어 합의, 다수결, 집단적 지혜,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경험 등은 그 생각의 바탕이

잘못되었다고 여겨지면 이향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반대로지위나 권위와 상관없이 어떤 사람이 현명한 통찰이나 발언을내놓았을 때, 그 말이 진실하다고 느껴지면 이향인은 깊이 공감한다.
아주 젊은 시절, 나는 실연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이 건네는 온갖 진부한 말들은 내게 어떤 위로도 되지못했다. 그런데 내가 자주 가던 찻집의 베두인 웨이터 와디드가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처받은 마음은 화상을 입은 것과 같답니다. 처음에는 계속 아프다가 시간이 지나면 건드릴 때만 아프고 결국에는 전혀 아프지 않게 되지요. 희미한 흉터만 남아 그사실을 기억하게 할 뿐이에요." 그 말을 들은 게 무려 45년 전이다.
그의 말은 정확했고, 나는 지금도 와디드의 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급진적이거나세상을 바꿀 만큼 독창적이거나소속감과 합의는 독창성과는 거리가 멀다. 군집적 사고에 구애받지 않는 이향인은 독창적인 사상가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똑같은 것을 보지만 집단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다른 가

능성이나 해석을 스스로 탐구할 수 있다. 또한 대중문화나 대중오락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내적 성찰과 창의성을 원동력 삼아지적 모험을 자주 떠날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집단이 놓치는 뜻밖의 통찰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종종 급진적이거나 심지어위협적인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런 일은 인류 역사상 진정한 독창성을 보여준 거의 모든 사상가가 겪은 일이다.
널리 알려진 유명 사상가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무명의사상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 Ignaz Semmelweis는 이중후자에 속한다. 1861년 그는 《산욕열의 원인, 개념 그리고 예방 TheEtiology, Concept, and Prophylaxis of Childbed Fever》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책에서 그는 오늘날 산욕열이라 불리는 질병으로 사망한 산모들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다루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던 그의결론은 의사가 분만을 돕기 전에 손을 씻기만 해도 이런 죽음을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감염을 막기 위해 반드시 멸균 상태의 청결한 환경에서 의료 행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19세기에는 세균의 존재와 세균이 감염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제멜바이스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방식으로 그 연관성을 추론해냈다. 산모들이 산욕열에 걸리는 비율이 현저히 낮은 분만 병원을 찾아가 조사했던 것이다.

이 병원에서 분만을 담당하는 산파들을 관찰한 결과, 그는단 하나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병원의 많은 의사들이 부검을 마친 직후 곧바로 분만을 맡았으나 산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부검 과정에서 의사의 손에 묻은 ‘유기물(즉, 세균과 박테리아)‘이산모에게 옮겨갔을 수도 있다고 결론짓고, 아기를 받기 전 손을철저히 씻을 것을 제안했다. 의사들은 손 씻기 같은 사소한 행동으로 결과가 눈에 띄게 달라질 리 없다고 의심했지만 결국 그의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병원의 산모 사망률은 즉시 18퍼센트에서 2퍼센트로 떨어졌다.
제멜바이스는 세균이 무엇인지, 세균이 감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단지 병원의 다른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이 하나의 통찰만으로도 감염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여성의 끔찍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혁신이 대체로 그렇듯, 동료 의사들은그의 발견을 몹시 탐탁지 않게 여겼다. 손 씻기가 사망률을 낮춘다는 사실이 명백히 입증된 뒤에도, 동료들은 왜 그런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요구했는데, 제멜바이스는 그것을 제시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의학계에서 배척당했고 임상과학술직에서도 해고되었으며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입었다. 이후동료들은 그를 정신병원에 가두었고, 그곳에서 그는 잡역부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열흘 뒤, 상처 감염 (이는 너무 가슴 아픈 아이러

니가 아닐 수 없다)에서 비롯된 패혈증으로 그는 마흔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렇듯 이향인의 마음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은 공동체적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종종 위협으로 비칠 수 있다. 명백한 증거가 이를 뒷받침하더라도 반역적이거나 이단적, 심지어는 광기로 여겨질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제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생각해보며 비정통적인 해결책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이향인의 사고방식도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공동의 기억이 아닌
개인적 여정에 집중하는 삶
군집적 사고는 주로 ‘현재‘에만 존재하며 시대에 대한 끊임없는관심을 기본 토대로 하여 움직인다. 보통 뉴스, 정치, 대중문화그리고 뜬소문 등이 사람들 사이의 ‘공유된 경험‘을 만드는 기본재료가 된다. 반대로 어제의 뉴스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하나의 집단으로서 ‘정신적 동기화 상태를 유지하려면 집단 구성원 모두가 계속해서 다음 대상으로 관심을 계속 옮
미국의 의사 하워드 마켈(Howard Markel)이 2015년 5월15일 공영방송사 PBS 웹사이트에 쓴 기사, 1850년 이그나츠제멜바이스는 세 마디 말로 생명을 구했다. 
손을 씻으시오(In 1850,
Ignaz Semmelweis Saved Lives with Three Words: Wash You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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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인은 공동체 지향인들처럼 누군가의 허락이나 승인, 인정이나 찬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결정이나 행동의 정당함을 누구에게도 설득할 필요가 없는 그들은 불필요한 대화나 방해 요소에서 자유롭다. 또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욕구에 지배받지 않기 때문에, 명확한 경계를 설정해 자신의 정신적 에너지와 시간을 지킬 수 있다. 그들은 어떤 일이 사소하고 어떤 일이 의미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두 가지 모두를 위해 시간을 낼 줄 안다.

지위란 언제나 사회적 집단 안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측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향인은 그런 집단에 매여 있지 않아서 자신의 선택이나 생활 방식, 소유물의 가치를 남과 비교해 가늠하지 않는다. 이는 곧 이향인들이 ‘소외될까 봐 두려워하는 심리없이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1장에서 언급한 십대 소년 A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라.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사회적 경험을 놓치고 있다며 지나치게 걱정했었다). 이향인의 결정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않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라서, 그들은 그 선택에 충분히 만족한다. 또한 외부의 인정 없이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집단의 찬사를 얻는 데 무관심했던 태도는 카프카가 자신의 문학적 소명을 대했던 담백한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계의 거장 중 한 명이 자신의 작품을 출판

하거나 세상에 알리는 데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는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카프카는 유언으로 자신의 글을 사후에 모두•파기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 그의 친구이자 유언 집행자였던 막스 브로트 Max Brod가 그 뜻을 거스른 것은 인류에게는 큰 공헌이었지만 카프카의 의도에는 반하는 일이었다. 카프카는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단지 쓰고 싶어서 썼을 뿐이다.

이향인은 소외 불안 심리가 없고 지위를 드러내는 표식들에도 무심한 까닭에 대체로 다른 이들의 경제적 성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과 생활 수준을 비교하며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지도 않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탐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돈을 버는 일은 안전장치, 즉 목표라기보다 삶을 편하게 만드는 수단이라서 집단과는 사뭇 다른 경제적·직업적 우선순위를 갖기도 한다. 그래서 이향인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할 경우에는 대체로 불행하고 성공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재능과 동기에 맞게 직업을 선택하면 오히려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일에서큰 만족을 얻는다. 또한 그들은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얻기위해 자신의 생활방식을 희생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향인이 반드시 금욕적이거나 검소하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명확히 구분하기 때문에 소유하는 물건의 범위가 좁고 선별적이지만, 사치를 즐기는 이향인들도 많다. 그것이 대중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수단이 된다면 특히 더 그렇다. 예컨대 내가 아는 한 이향인•은 전반적으로 소박한 생활을 하지만, 비행기를 탈 때만큼은 늘 일등석 표를 사며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가 엄청난 추가 비용을 기꺼이 내는 이유는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이나 코스 요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자기 삶의 궁극적 권위자 이향인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분야의 지식을 갖춘 전문가의 조언은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이미 필요한 정보를 모두 갖고 있기에 어떤 조언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딘가에 속하려는 우리의 욕구는 종종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고 북돋우는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으려는 욕구와 대립하곤 한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집단에 속하게 됐을 때 자신을 지워버리거나 최소한 자신의 진짜 욕망과 집단이 원하는 것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자기 삶과 인간관계를 책임지려면 집단의 필요를 고려하되, 집단의 일방적인 목소리에 휩쓸리지 않는 강한 내적 자아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과 공동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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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들어가며
무리에 속해 있지만 결코 섞일 수 없는 사람들

1부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1장공동체의 바깥에 서 있는 사람, 이향인26"왜 저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걸 하나도 안 좋아할까요?"

2장세상이 이향인을 오해하는 방식
43그들은 내향인도, 외톨이도 아닌 ‘외부인‘이다

3장온순한 저항가
58예의 바르지만 규칙을 인정하지는 않는다1919

4장가짜 외향인
67모두가 함께 모인 자리가 그들에게 지옥인 이유

5장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혁신가
74남들과는 다른 방향을 보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본다110

6장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
79진정한 공감은 타인의 시선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다요

2부 왜 세상은 ‘공동체 인간들‘을 위한 곳이 되었나
7장우리는 모두 이향인으로 태어난다
88자기중심적 인간에서 공동체적 인간으로 길러지는 과정

8장함께가 혼자보다 낫다‘는 믿음이 강요될 때
97삶에는 올바른 방식도 틀린 방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9장소속되어야 한다는 착각
115‘연결‘이 기준이 된 세상에서 나만의 고독을 지켜내는 법

3부이향인으로 산다는 것의 미덕
10장정서적인 자립
132그들은 철저한 고독 속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11장 질적으로 풍요로운 인간관계
140겉으로 친한 친구가 아닌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사람

12장삶에 대한 자신감과 만족
147외부의 인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주도권을 쥐는 법

13장집단 밖에서 생각하는 힘
157모두가 옳다고 말할 때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14장내면 세계의 풍요로움
174당신은 내면의 견고한 나침반을 가지고 있는가

4부 혼자여도 풍요로운, 행복한 이향인으로 살아가기

15장이향인 아이를 둔 부모를 위한 조언
184고치려 드는 태도를 버리고 ‘내버려두는 기술‘을 발휘하라

16장고난과 시련의 청소년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법 그들은 ‘이향인‘이기 이전에 ‘십 대‘다
201

17장이향인이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
214성향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이해와 수용의 문제다

18장소속될 수 없는 사람이 직업적으로 성공하려면그들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없는 솔리스트다223

19장그 누구도 동행할 수 없는 여정, 죽음
232인간은 누구나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나가며
함께하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조용히 나만의 삶을 꾸려가는 법

부록 이향인 테스트
감사의 말 24124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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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을 믿도록 태어나는가믿음의 본능을 실험으로 밝히다신앙에 덧씌워진 타성과 냉소를 모두 걷어내면 무엇이 드러날까?
종교는 인간의 삶을 지탱해 온 가장 오랜 지반이다.
심리학자이자 사제인 조너선 좋은 신학적 교리를 넘어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믿음의 원형을 찾아 탐험을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가?
신의 존재는 도덕적 인간을 만드는가?
누구나 죽음 앞에서 신을 찾는가?
과학의 언어로 번역된 일곱 개의 종교적 질문은시대와 장소를 막론한 종교성을 발견한다.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답하기 위해 심리학과인류학, 인지과학을 넘나들며 영국의 대도시에서시베리아의 투바까지 세계 곳곳을 횡단한다. 좋은질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상상하며, 마침내이해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믿는 존재인가?

정신분석학자(특히 프로이트 학파)는 사회심리학자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수십 년 동안 이런 종류의 일을 해 왔다. 이들은 무의식의 작용에 관한 파악하기 힘든 정보를 캐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꿈과 그림을 해석하고, 사람의 말실수를 잡아냈다. 유감스럽게도 심리측정학적 기준에서 판단했을 때 이 방법들은 모두 매우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분석가들은동일한 꿈, 그림, 말실수에서 각기 다른 것들을 발견해 내며, 이는 이후의 행동이나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그것들이 치료적 가치를 지니고 어떤 사람에게는 깊은 통찰이라는 의미 있는 느낌을 줄 수는 있겠지만 심리학자를 위한 측정 도구로서는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자기 보고를 우회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아마도 사람의 뇌를 직접 읽는 것일 테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매우 편리하겠지만 기능적 자기공명 영상 같은 신경 영상 기법을 심리학적 측정에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공상 과학의 영역에머물러 있다. 이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여전히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더 많이 알아 갈수록 우리는 뇌 기능이 얼마나 복잡한지 더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제 측정 가능한 ‘신의 영역‘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가 신을 믿을 때 뇌의 어떤 특정 부위가 ‘불을 밝히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아마 그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그것만을 위한 특정 부위는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예컨대 공포의 자리로 널리 알려진 편도체를 생각해 보심리학자는 종교를 (어떻게) 연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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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중 검증된 척도를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기존의 측정 도구가 넘쳐 남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자들은 자신만의 척도를 구성할 필요성을 느꼈다. 대부분의 경우 그럴 만한 꽤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이 그저 검증된 척도를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데,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연구 방법의 가변성은 결과가 서로일치하지 않을 때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심리학자가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해석하는 기발한기술을 고안해 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방금 설명한 심리학연구의 표준적인 방법에는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한 구석이 있다. 
적어도 성격 검사와 종교성 측정의 경우 우리는 사람들에게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믿는지, 어떻게 느끼는지를 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때때로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믿는지, 그리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우리 스스로도 모른다는 데 있다. 
우리의 자기 인식은 제한적이며 아마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그럴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자기기만에 빠지는 경향도 있다. 때로는 사회적 규범이나 여타 이유를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를 알고서 그것이 곧 우리 자신이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바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이는 자기 보고식 측정에 명백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난제에 대응하여 심리학자는 사람들에게 생각과 감정을 직접 묻지 않아도 되는 측정 방법도 개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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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틸 것인가,
뛰어오를 것인가함께할 것인가,
홀로 설 것인가이 고민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곤충도 나름의 삶을 산다.
고로 곤충도 고민한다.
작다고 가벼운 삶이 아니다.
징그럽다고 의미 없는 삶도 아니다.
가장 작은 세계에서 발견한,
가장 치열한 삶의 방식.

3초, 감정의 롤러코스터-바퀴벌레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은 인간의 기본감정으로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기쁨, 슬픔, 분노, 공포,
놀람, 혐오이다. 인간의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 감정들은 누구나 삶의 희로애락에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문화, 나이, 성별과 관계없이 보편적인 표정으로도 구별이가능하다고 한다.
곤충 중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가장 짧은 시간에 이모든 감정을 들쑤셔 놓는 존재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쳐지고 실제 모습을 보면 더욱 외면하고 싶은 바퀴벌레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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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밤. 우리 집 화장실 문을 열었다. 스위치를눌러 등을 켜자마자 바닥에 있던 검은 물체가 번개처럼움직였다. 바퀴벌레라고 인식한 순간, 그 녀석은 배수구구멍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 찰나에 내 마음에는 강렬한변화가 일어났다. 여러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소용돌이친 것이다.
예기치 못했던 순간의 공포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정체를 인식하는 순간 놀라움으로 몸은 얼음이 되었다.
그 생김새와 움직임에서 느끼는 혐오스러움이 온몸의 피부를 오그라들게 했다. ‘왜 하필 우리 집에?라는 짜증이분노의 외침으로 나타났다. ‘저렇게 보잘것없는 미물에게내가 이렇게밖에 대처할 수가 없나‘라는 무력감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시야에서 사라질 때, 안도감의기쁨이 살짝 스쳤다. 여섯 가지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시간, 불과 3초 만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처럼 생활 주변에서 마주치는 가장 불쾌한 곤충 1위라 할 수 있는 바퀴벌레는 인간의 감정을 심하게 자극한다. 주로 부정적인 감정을 더 강하게 자극하며 그중 혐오118

단하게 한마디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번식‘이다. 인간의 언어로 옮기면 조금 거칠게 들리지만, 생존의 전과정이 오로지 종족보존이라는 목표를 향한다. 곤충 중에서도 여름을 대표하는 매미는 유독 번식에 집중한다.
매미의 생존 기간은 짧게는 3년이지만, 북미의 일부 좋은17년이나 된다. 대부분의 곤충이 1년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제법 긴 편이다. 매미는 유충 상태로 땅속나무뿌리의 수액을 먹으며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성충으로 변태하는해의 여름철이 되면 지상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살아갈 수있는 시간은 대체로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시간동안 처절하게 울고 짝짓기하고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지상의삶은 오직 번식을 위한 무대였다.
누군가는 이 짧은 지상의 삶을 덧없다고 여기고, 그들을비운의 주인공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매미에게는 그여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수컷은 구애의 신호로 자신의에너지를 모두 쏟아붓는 울음소리로 짝을 찾아 번식을 완수한다. 시끄럽지만 애처롭고, 동시에 아름답다. 매미는 바로그 절정의 순간에 전부를 걸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조상들은 매미의 삶을 단순한 곤충의 일생으로만 보지 않았다. 이를 오덕(五德)으로 비유했다. 미물의 모습에서 선비의 삶을 떠올린 것이다. 문(文)·청(淸)·렴廉)·검儉)·신(信)이다. ‘문‘은 긴 입이 선비의 갓끈을 닮은 데에서,
‘청‘은 맑은이슬과나무 수액만 먹는 청결함을 뜻한다. ‘럼‘은곡식을 탐하지 않는 염치, ‘검은집도 없이 사는 검소함. ‘신‘은허물을 벗고 올 때와 갈때를 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군자의 덕목을 지녔기에 조선의 왕은 모자 뒷면에매미 날개 모양의 장식을 한 익선관(翼)을 썼다. 여기서선은 착할 선(善)이나 상징성을 나타내는 매미선(蟬)을 혼용하기도 한다. 신하들도 매미의 날개가 옆에 붙어 있는 관모를 썼는데 ‘오덕‘을 지키라는뜻이었다.
현대인에게 매미 소리는 군자의 덕목을 읊는 소리는 아닐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음이고, 누군가는 에어컨 실외기와경쟁하는 여름의 배경음쯤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땅속에서의 그 기나긴 인내를 기억한다면, 그 울음은 비명이아니라 온몸으로 써 내려간 가장 뜨거운 유서(書)와 견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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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역시 각자의 어두운 땅속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지않은가. 내일의 찬란한 여름을 위해 오늘을 인내하는 우리에게, 매미는묻고 있다.
"당신의 가장 뜨거운 순간은 언제이며, 그 절정의 순간을위해 어떻게 살았는가?"
매미는 여름을 다 쓰고 조용히 사라졌다. 대신 한번은 제대로 울었다. 절정은 기다리는 자보다 끝까지 버텨낸 자에게 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아직 울지 못했다면 아직여름이 오지 않았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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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내가 살던 동네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잘사는집의 상징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단순한 분석이 현실에서도 유효할까?
정보화시대로 넘어오면서 잘산다라는 말은 다양한 해석이 따라다닌다. 더 이상 소득이나 재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사회적 잣대보다 개인적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가치관•이나 인간관계, 정서적 안정감 등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현대인은 ‘얼마나 가지고 있나?‘보다는 ‘어떻게 살고 있나?를스스로 점검하는게 잘사는 삶의 기준이다.
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뒷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등장 곤충이 달라졌다고 한다. 원래는 베짱이가 아니라 여름철에 울어대는 매미가 주인공이었다는 것이다. 개미와 비교하며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대립 구조로 만들다 보니 억울하게도 게으르지 않은베짱이에게 전혀 다른 이미지가 덧씌워진 셈이다. 낮에 일하지 않은 게 이유였을 것이다.
이번에는 현대적 감각으로내가 이야기를 꾸며보았다. 개미와 베짱이는 한사람의 두가지 삶의 모습이다. 현대인은 때로는 개미처럼, 때로는 베짱이처럼 살아간다. 새벽부터 하루198

를 시작하는 부지런함과, 해가 중천인데도 이불 속에 있는게으른 사람은 두 사람처럼 보이지만 한 사람의 생활이 될수있다.
산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트레킹을 떠나는 친구에게 내가 물었던 말이 있었다.
"그렇게 바쁘고 일도 많다면서 또산이니?"
그의 대답은 즉흥적이었지만 오랜 시간 기억에 남기에 충분했다.
"나에게 일은 트레킹을 하기 위한 투자이고, 트레킹은 다시 일하게 하는 자산이야."
옛 선인들은 인간의 덕이 ‘중용(中庸)‘에 있다고 했다. 나는중용을 ‘치우치지 않음‘보다는 ‘적당히 부지런하게, 적당히 게으르게‘로 해석한다. 그리고 현대인의 잘사는 모습은둘사이를 자연스레 오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게으름은 부지런함을쉬게 해 주고, 부지런함은 게으름이 오래 머물지 않도록 북돋199

는다. 한 사람의 내면에서 같이 호흡할 수 있다. 게으름으로오늘의 나를 충분히 사랑하면 내일을 준비하는 부지런함의에너지가 만들어진다.
개미가 내일을 위해 고개를 숙인다면, 베짱이는 오늘의 존재를 위해 고개를 든다. 각각의 행위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다. 개미의 성실함이 우리를 살게 하고, 베짱이의 풍요로운 감성이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 두가지 삶의 모습을 꾸며낸 이 이야기는 베짱이가 남긴 마지막 말로 귀결된다.
"살아가는 것과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우리 인생에선 둘다중요한 일이야."
당신의 마음속에는 오늘 어떤 노래가 흐르고 있는가. 개미의 행진곡인가, 아니면 베짱이의 세레나데인가. 아마도 이두 선율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인생 교향곡이 완성되는 게아닐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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