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각본‘을 거부하는 사람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영혼은 스스로 어울릴 사람들을 고른다"라고 쓴 바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회적 위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살고, 어떤 가정·종교·사회 계층에서태어났으며, 어떤 민족이나 인종에 속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문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속하게 된 사회 집단을 자연스럽게(혹은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향인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집단적 사고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념, 정치, 인종, 경제, 종교, 국적 같은 추상적 개념이나 출생 시 주어진 조건들로 형성된 그 어떤 집단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집단 구성원끼리 암묵적으로 합의한 기준으로 얽힌 사람들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한다는 발상 자체를, 그 집단이 다수의 눈에 아무리 권위 있어 보인다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흔히 다양한 이유(그 가운데는 충분히 타당한 이유도많다)로 이런 구속력 있는 추상적 개념들에 매달리곤 한다. 이념, 배경, 혹은 경험의 일부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에 속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관계로 이어지는 길이 열린다. 그리고 그 길은 가족이나 직장 같은 다른 뚜렷한 관계망이 없을 때 특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집단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문율을 제
공하여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피하게 해주는 동시에 모두를 규율 안에 묶어두기도 한다. 상황이 좋을 때는 이런 소속감이 공유된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누가 믿을 만한 아군이고 누가경계해야 할 적군인지를 구분하는 다소 투박한 기준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반대로 상황이 나빠지면 앞서 언급했듯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를결정하는데 집단사고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맹수나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부족의 일원이 될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인간으로사는 경험 자체를 버텨내기 위해 여전히 집단이 필요하다. 수동적으로 협력하는 일반적인 무리 동물과 달리, 인간은 다수가 같은 의견과 신념을 공유하기로 합의해 만든 관념적 실체를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군집적 사고는 경험에서 비롯된 자원을 모아 ‘집단지성‘이나 ‘공동체적 지혜‘ 를 탄생시킨다. 그렇게 우리 대부분은 집단에 순응해 사는 법을배운다. 군집적 사고에 속하거나 그에 참여하는 것이 일종의 거짓된 안도감, 즉 ‘다수‘의 힘에서 나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순응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해지는데, 이는 집단의 지배에 필요한 결속을 굳건히 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속 욕구가 일단 집단 정신으로 자리 잡으면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모조리 삼켜버린다.
일반적인 공동체 지향인들에게는 이런 희생이 쉽고 본능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적 각본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의지도, 능력도 없는 이향인들은 그렇지 않다. 자기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이향인에게 사회 규벌은 순환논리로 설명된다. 사람들이 사회 규범을 따르는 이유는 이미 널리 받아들여졌기 때문이고, 널리 받아들여진 이유는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규범이자의적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이향인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무인도에 혼자 고립된다면, 지금까지 소중히여기거나 소중히 여기라고 배운 모든 것들을 여전히 가치 있게지킬 것인가? 아니면 그 판단들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만 쓸모 있고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인가? 비유하자면 소속감이 없는 사람은 외딴섬에서 혼자 살고 소속감이 있는 사람은 본토에서 사는 것과 같다. 이향인은 본토를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통용되는 규칙에 주의를 기울이고 최대한따르려 하지만, 그들은 언제까지나 그곳에 잠깐 들린 관광객일뿐이다. 그 규칙은 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향인은 단지 어떤 생각을 믿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만으로그 생각의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생각 자체다. 군집적 사고의 도구들, 예를 들어 합의, 다수결, 집단적 지혜,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경험 등은 그 생각의 바탕이
잘못되었다고 여겨지면 이향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반대로지위나 권위와 상관없이 어떤 사람이 현명한 통찰이나 발언을내놓았을 때, 그 말이 진실하다고 느껴지면 이향인은 깊이 공감한다. 아주 젊은 시절, 나는 실연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이 건네는 온갖 진부한 말들은 내게 어떤 위로도 되지못했다. 그런데 내가 자주 가던 찻집의 베두인 웨이터 와디드가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처받은 마음은 화상을 입은 것과 같답니다. 처음에는 계속 아프다가 시간이 지나면 건드릴 때만 아프고 결국에는 전혀 아프지 않게 되지요. 희미한 흉터만 남아 그사실을 기억하게 할 뿐이에요." 그 말을 들은 게 무려 45년 전이다. 그의 말은 정확했고, 나는 지금도 와디드의 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급진적이거나세상을 바꿀 만큼 독창적이거나소속감과 합의는 독창성과는 거리가 멀다. 군집적 사고에 구애받지 않는 이향인은 독창적인 사상가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똑같은 것을 보지만 집단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다른 가
능성이나 해석을 스스로 탐구할 수 있다. 또한 대중문화나 대중오락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내적 성찰과 창의성을 원동력 삼아지적 모험을 자주 떠날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집단이 놓치는 뜻밖의 통찰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종종 급진적이거나 심지어위협적인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런 일은 인류 역사상 진정한 독창성을 보여준 거의 모든 사상가가 겪은 일이다. 널리 알려진 유명 사상가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무명의사상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 Ignaz Semmelweis는 이중후자에 속한다. 1861년 그는 《산욕열의 원인, 개념 그리고 예방 TheEtiology, Concept, and Prophylaxis of Childbed Fever》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책에서 그는 오늘날 산욕열이라 불리는 질병으로 사망한 산모들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다루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던 그의결론은 의사가 분만을 돕기 전에 손을 씻기만 해도 이런 죽음을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감염을 막기 위해 반드시 멸균 상태의 청결한 환경에서 의료 행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19세기에는 세균의 존재와 세균이 감염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제멜바이스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방식으로 그 연관성을 추론해냈다. 산모들이 산욕열에 걸리는 비율이 현저히 낮은 분만 병원을 찾아가 조사했던 것이다.
이 병원에서 분만을 담당하는 산파들을 관찰한 결과, 그는단 하나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병원의 많은 의사들이 부검을 마친 직후 곧바로 분만을 맡았으나 산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부검 과정에서 의사의 손에 묻은 ‘유기물(즉, 세균과 박테리아)‘이산모에게 옮겨갔을 수도 있다고 결론짓고, 아기를 받기 전 손을철저히 씻을 것을 제안했다. 의사들은 손 씻기 같은 사소한 행동으로 결과가 눈에 띄게 달라질 리 없다고 의심했지만 결국 그의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병원의 산모 사망률은 즉시 18퍼센트에서 2퍼센트로 떨어졌다. 제멜바이스는 세균이 무엇인지, 세균이 감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단지 병원의 다른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이 하나의 통찰만으로도 감염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여성의 끔찍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혁신이 대체로 그렇듯, 동료 의사들은그의 발견을 몹시 탐탁지 않게 여겼다. 손 씻기가 사망률을 낮춘다는 사실이 명백히 입증된 뒤에도, 동료들은 왜 그런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요구했는데, 제멜바이스는 그것을 제시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의학계에서 배척당했고 임상과학술직에서도 해고되었으며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입었다. 이후동료들은 그를 정신병원에 가두었고, 그곳에서 그는 잡역부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열흘 뒤, 상처 감염 (이는 너무 가슴 아픈 아이러
니가 아닐 수 없다)에서 비롯된 패혈증으로 그는 마흔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렇듯 이향인의 마음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은 공동체적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종종 위협으로 비칠 수 있다. 명백한 증거가 이를 뒷받침하더라도 반역적이거나 이단적, 심지어는 광기로 여겨질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제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생각해보며 비정통적인 해결책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이향인의 사고방식도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공동의 기억이 아닌 개인적 여정에 집중하는 삶 군집적 사고는 주로 ‘현재‘에만 존재하며 시대에 대한 끊임없는관심을 기본 토대로 하여 움직인다. 보통 뉴스, 정치, 대중문화그리고 뜬소문 등이 사람들 사이의 ‘공유된 경험‘을 만드는 기본재료가 된다. 반대로 어제의 뉴스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하나의 집단으로서 ‘정신적 동기화 상태를 유지하려면 집단 구성원 모두가 계속해서 다음 대상으로 관심을 계속 옮 미국의 의사 하워드 마켈(Howard Markel)이 2015년 5월15일 공영방송사 PBS 웹사이트에 쓴 기사, 1850년 이그나츠제멜바이스는 세 마디 말로 생명을 구했다. 손을 씻으시오(In 1850, Ignaz Semmelweis Saved Lives with Three Words: Wash You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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