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문단속이 허술한성격이라 현관문은 안 잠그고 대문만 잠갔는데 대문 또한 허술하여 밖에서 팔을 안으로 넣어 열 수 있게 되어있어 집에 들어오는 데 지장은 없었다. 그래도 시간 걸리는 외출을 하려면 문단속을 안 할 수가 없겠기에 오던길을 되짚어가서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못 찾았다. 그 후며칠은 산에 갈 때마다 발밑만 보고 걸었지만 어디 꼭꼭숨었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자식들한테 준 스페어 열쇠를 회수해서 문단속을 제대로 하게 된 후 비로소 발밑을살피는 일에서 해방이 되었다.
다시 한눈을 팔 수 있게 되었을 때 내 열쇠가 바로 길가 내 눈높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누군가가 주워서 그렇게 눈에 잘 띄게 걸어 놓았을 것이다.
그 산책 길은 나 혼자만의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길

은 내가 낸 길도 아니었다. 본디부터 있던 오솔길이었으니 누군가가 낸 길이고 누군가가 현재도 다니고 있어서그 길이 막히지 않고 온전한 것이다.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만용이었으리라. 그날 밤일이 지금 생각해도 유쾌한 건 이런 광범위한 믿음의 교감의 추억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올겨울은 눈이 많을뿐더러 추위 역시 대단했다. 우리집처럼 방이 여럿이고 방마다 연탄을 때는 집에선 매일매일 배출해내는 연탄재만 해도 엄청나다. 만일 하루 걸러 오는 청소부가 사흘이나 닷새쯤을 오지 않는다면 우리 동네는 연탄재에 묻히리라. 그러나 청소부 아저씨는어김없이 온다. 아침 기온이 영하 15도가 넘는다는 관상대(기상청 소속 기관인 ‘기상대‘의 옛 이름 - 편집자 주) 발표를듣고 나서 아저씨의 손수레 바퀴가 언 땅을 덜커덕덜커덕 구르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고맙고 안심스러울 때는없다.

현장 사무소 같았다. 일자형의 흰 건물에 함석지붕이 질고독한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아, 하고 나는 다시한번 신음했다. 나는 평생 그렇게 독하고 추악한 주황색을 본 일이 없다. 더군다나 그 주황색은 비에 젖어번들대고 있었다.
그 주황색이 내 뇌를 갈고 지나가는 듯한 충격을 나는 내 뇌수에 느끼고 진저리를 쳤다. 나는 그런 충격은청각의 자극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독한 쇳소리의 마찰음을 들었을 때 뇌속에 일어나는 미칠 듯한 경련과도 흡사한 쇼크가 시각을 통해 내 뇌 속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주황색지붕 너머로 미래의 아파트 단지의 투시도가 선명하게보였다.
비로소 문리대가 헐리고 속악하고 호사스러운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는 현실감이 나에게 왔다. 그 현실감은 고약하고 고통스럽게 왔다. 나는 지금도 그 빗속에 번들대던 주황색 지붕을 생각하면 혐오감으로 진저리가 쳐진다.
그 혐오감은 유서 깊고 자랑스럽던 대학 자리에 호화

웬일인지 이 결혼사진도 구걸 행각의 소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약고 똑똑한 생각은 안 했다. 나는 구걸하는 사람에게 베풀기에는 좀 많은 돈을 꺼내서 얼른 그사람의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남편이 알까 봐, 또 딴 승객들이 눈치챌까 봐, 나쁜 짓이라도 하듯이 몰래 재빠르게 그 짓을 하고, 하고 나서도 얼굴을 붉혔다.
아마 그날이 내 결혼기념일이어서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의문이 안 풀리는건 그가 왜 하필 결혼사진을 꺼내 보이며 구걸할 생각을했을까 하는 거다. 내가 보기엔 그게 조금도 구걸에 도움을 주는 것 같지가 않았는데 말이다. 어쩌면 결혼의 의미를 남보다 더 잘, 더 많이 알고 있었음이 아닐까.

비 오는 날 있었던 사건이랄 것도 없는 몇 가지 얘기를 적어 놓고 보니 문득 서글프다. 빗속에서 같이 받은우산이 인연으로 싹튼 로맨스가 한 컷쯤 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게 없는 걸 어찌하랴. 이래저래 40대의 비 오는 날의 사건은 재미없을 수밖에 없나보다.

딸애들이 한창 혼기에 있을 땐 어떤 사위를 얻고 싶으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친구들끼리 모여도 화제는주로 시집보낼 걱정이었다. 큰 욕심은 처음부터 안 부렸다. 보통 사람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이 쉬워 보통 사람이지 보통 사람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대라면 그때부터 차츰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우선 생활 정도는 우리 정도로 잡았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잘사는 사람도 많고 못사는 사람도 많은데 내 어림짐작으로는 우리보다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수효가 비등비등한 것 같으니 우리가 중간, 즉 보통 정도는 될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만들어본 보통 사람은대략 이러했다.
살기는 너무 부자도 아니고 너무 가난하지도 않을것, 식구끼리는 화목하되 가끔 의견 충돌쯤 있어도 무방함, 부모가 생존해 계시되 인품이 보통 정도로 무던하여자식에게 보통 정도의 예절과 공중도덕을 가르쳤을 것,
학력은 내 자식이 대학을 나왔으니 대학은 나와야겠지만 일류냐 이류냐까지는 안 따지기로 하고 그 대신 적성에 안 맞는 엉뚱한 공부를 해서 대학을 나오나마나이

면 절대로 안 되고, 용모나 키도 보통 정도만 되면 되지만 건강할 것, 돈 귀한 줄 알고 인색하지 않을 것, 등등이었다.
나는 그만하면 욕심도 너무 안 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사윗감은 쌔고 썼으려니 했다. 그러나웬걸, 막상 나서는 혼처는 하나같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보통 사람을 넘지 않으면 처졌다. 보통 사람이 그렇게귀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장 보통이라고 생각하고 내세운 조건은 어쩌면 가장 까다로운 조건인지도 몰랐다.
나는 우선 사돈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보통가정을 내 둘레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역시 귀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내 집은 남이 보기에 보통일까? 거기 생각이 미치자 그것조차 자신이 없는 게 아닌가. 우선 주부가 글을 쓴다고 툭하면 이름 석 자가 내걸리고,
살림은 건성건성 엉터리로 하는 가정이 어디 보통 가정인가. 나는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보통 사람은 나에게만 어려운 게 아닌 모양이다. <보통 사람들>이란 TV 연속극이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을때 나도 그걸 꽤 열심히 보았지만 그 사람들이 보통 사

람이라고 여겨지진 않았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란 제목은 가장 광범위한 사람에게 동류의식을 일으켰음직하다. 전형적인 보통 사람을 찾긴 힘들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고 또 그렇게 생각할 때 가장 마음이 편안한 것 같다. 그것은 아마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서를 써 오라고 할 때 생활 정도란에 거의 다 ‘중‘을 쓰는 심리와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얼마 전에 어떤 일간지에서 평균치의 한국 사람을 계산해서 거기 꼭 들어맞는 사람을 찾아내서 ‘한국의 보통사람‘이라는 이름으로 크게 보도한 적이 있다. 나는 그가 크게 웃고 있는 낙천적이고 건강한 얼굴을 보고 내가오랫동안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과 친숙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갖춘 보통 사람의 조건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보통 사람의 조건하곤 얼토당토않은것이었다.
그의 생활 정도나 학벌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보통사람을 훨씬 밑돌았지만 그는 보통 이상 날카로운 사회적 안목과 비판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보통 사람다운 점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큰 욕심 안 부리고 열

심히 노력해서 지금보다 좀더 잘살고 자식은 자기보다더 많이 가르치고 싶다는 건전하고 소박한 꿈이었다.
그러나 한편 냉정히 생각해보면 큰 욕심 안 부리고노력한 것만큼만 잘살아보겠다는 게 과연 보통 사람의경지일까? 보통 사람이란 좌절한 욕망을 한 장의 올림픽복권에 걸고 일주일 동안 행복하고 허황된 꿈을 꾸는사람이 아닐까? 보통 사람의 숨은 허욕이 없다면 주택복권이나 올림픽복권이 그렇게 큰 이익을 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풍진세상에서 노력한 만큼만 잘살기를 바라고 딴 욕심이 없다면 그건 보통 사람을 훨씬넘은 성인의 경지이다.
그럼 진짜 보통 사람은 어디 있는 것일까? 과연 있기는 있는 것일까? 보통 사람이란 평균 점수처럼 어떤 집단을 대표하고 싶어 하는 가공의 숫자일 뿐, 실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크게는 안 바라요. 그저 보통 사람이면 돼요." 가장겸손한 척 가장 욕심 없는 척 이렇게 말했지만 실은 얼마나 큰 욕심을 부렸었는지 모른다. 욕심 안 부린다는말처럼 앙큼한 위선은 없다는 것도 내 경험으로 알 것

같다. 아마 나의 가장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가장 까다로운 조건만 내세워 자식들의 배우자를 골랐더라면 생전 시집 장가 못 보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제 마음에드는 짝을 제각기 찾아내서 부모의 승낙을 받고 슬하를떠났으니 큰 효도한 셈이다. 아직도 보내야 할 자식이남아 있긴 하지만 보통 사람을 찾는 일은 그만두기로 한지 오래다.
서른둘이 되도록 시집을 안 가고 있는 딸을 둔 내 친구는 보는 사람마다 붙들고중매서라고 조르는 버릇이있다. "바지만 입었으면 돼." 그게 내 친구의 사윗감에대한 간단명료한 조건이다. 그러나 서른두 살 먹은 그처녀는 치마 입은 총각이나 나타나면 시집을 갈까, 바지입은 총각들한테는 흥미 없다는 낙천주의자다. 나는 그렇게 초조해하는 친구보다 그의 딸의 느긋한 여유가 한결 보기 좋아서 친구한테, 그 애는 결혼 안 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애니 제발 좀 내버려두라고 충고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친구는 벌컥 화를 내면서 보통사람들이 다 하는 사람 노릇도 못 하고 나서 행복 불행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렇담 내 친구는 행불행

이전의 최소한 사람 노릇을 보통 사람의 전형으로 삼고있다고도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보통 사람과도, 신문사에서 뽑은보통 사람과도 다른 또 하나의 보통 사람이었다. 내가좋아하는 보통 사람의 실체를 파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러다가는 내가 보통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정말인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모르겠다. 지금 누가 나에게 보통 사람이 누구냐고묻는다면 이마에 뿔만 안 달리면 다 보통 사람이라고 대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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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몇 가지 장면을 떠올리면서
미처 분명하게 드러내거나 인정하지 못 했던 부끄러운 판단과 선택과 무시의 말과 행동이 진열된다.....
막상, 보통이라는 단어를 내놓아도
정작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 얼마나 어려운 기준이었나 하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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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를 잡는다며 사람들이 육지에서 섬으로 왔다. 경찰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군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그들 옷에는 계급장이 없었다. 여름에서 겨울 사이 2천 명이넘는 외지인이 제주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들을 서북청년단이라고 불렀다. 나랏일 하는 높은 사람들이 보냈다는 말도 있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잡아갔다. 잡혀가지 않으려고 버티면 몽둥이를 들고 때렸다. 울던 아이들도 서북청년단이란 말을 들으면 무서워서 울음을 그치고 이불 속으로 숨었다. 식당에서 행패를 부린 이들도 서북청년단원이었다.


장동춘이 제 얼굴을 순욱의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다. 순욱은 움찔 놀랐다. 그 순간 장동춘이 우악스럽게 순욱의 손을 잡고 할머니 집으로 잡아끌었다. 부하들이 집을 에워쌌다. 순욱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장동춘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당장 그 손 놓지 못해!"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군용 트럭이 멈췄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군인들이 내렸다. 군인들이 장동춘과 부하들을 향해 총을겨눴다.
"당장 그 손 놔!"
문상길이었다. 옆에 있던 손선호가 장동춘을 향해 총을 겨눴다.
"상길 씨!"
순욱이 상길을 보며 울먹였다.
"오호라! 저 군인 양반이 남편이로구만. 그런데 빨갱이 잡아야 할 시간에 경비대가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여전히 순욱의 손을 잡은 채 장동춘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고한 사람들 괴롭히지 말라는 말 못 들었나? 너희들이해야 할 일을 똑바로 하는지 감시하는 것이 내 임무다. 당장 그손 놓고 꺼져!"

그때였다. 십여 미터 떨어진 집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정말로 집에 불을 지르는 모양이었다.
"언니, 명이 명수랑 방에 들어가 이십서 절대로 나오지말곡."
순욱은 신발까지 방안에 던져 넣었다.
"무슨 일인지만 보고 오젠 마씸. 저놈들이 행패를 부리면 상길 씨에게 알려야 되죠."
"아가씨, 가지 맙서. 아가씨!"
순욱은 진숙의 말을 듣지도 않고 집을 나섰다.
순욱은 학교 뒷담을 넘어 건물 뒤에 숨었다. 국민학교 운동장에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모여 있었다. 장동춘이 연단에 올랐다.
"지금 산속에 빨갱이들이 숨어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는데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빨갱이들이 설쳐대고 있단 말이다. 너희들이 산에 숨어있는 놈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빨갱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 적이 있는 자는 앞으로나와라, 사실대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집에 보내주겠다."

차례
총성.....… 6
밤마실 11
명령 그리고 만남.
******27
서북청년단 48
빨갱이 사냥.
남겨진 신발 한짝……85
66
횃불 113
깨지는 평화 협상이별, 그리고 - 146
또 다른 총성
작가의 말******130
170-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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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라. 먼 나라의 산불이 아니라 언제든 나와 가족이 전염병에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에 온 세계가 사로잡혔다. 
이러한 팬데믹 상황이 발생한 것은 자연에 대한 과도한 개발과 파괴로 인해 야생의 영역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연재해와 사회적 재난은 무관할 수 없고 국지적 양상을 띠지도 않는다. 
글로벌 자본주의체제가 지속되는 한, 화석연료에 의존한 성장사회를 멈추지 않는 한 
부유한 계층이 기득권과 탐욕을 내려놓지 않는 한, 
환경파괴와 노동착취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인류세‘ 논의를 주도해온 과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지구의 급박한 위기상황을 ‘연료가 바닥난 비행기, 구멍이 난 배, 불타고 있는 집‘에 비유했다. 
이 총체적 재난은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는 울리히 벡(Ulrich Beck)의 말처럼, 특정한 나라나 계층에 한정되지 않고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난의 책임과 영향은 결코 공평하지 않으며, 가장 피해를 많이 입는 것은 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이다. 
"위험분배의 역사는 부와 마찬가지로 위험이 계급 유형에 밀착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 방향은 서로 반대다.
 "부는 상층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 "
이처럼 생태문제는 정치체제나 경제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생명정치‘ 또는 ‘정치생태(학)‘라는 말이 시대적 키워드로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1년에 창간된 이래 생태 사상과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온 『녹색평론』의 글들을 일별해 보면 생태적 전환을 모색하는 범위나 접점, 문제의식 등이 계속 확대되어 온 것을 확인하게 된다. 
김종철의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서도 에콜로지가 농업, 민주주의,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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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어떤 하루
체인 케니언고독
건강한 몸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시리얼과 달콤한 우유와탐스러운 복숭아를 먹었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개를 데리고 자작나무 숲으로 올라갔다
아침 내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오후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누웠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은촛대가 놓인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그림이 걸린 방에서 잠들며
오늘 같은 내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언젠가는
그러지 못하게 되리라는 걸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파블로 네루다
어디에서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사는 것일까
어디에서 소금은
그 투명한 모습을 얻는 것일까
어디에서 석탄은 잠들었다가
검은 얼굴로 깨어나는가
젖먹이 꿀벌은 언제
꿀의 향기를 처음 맡을까
소나무는 언제
자신이 향을 퍼뜨리기로 결심했을까
오렌지는 언제
태양과 같은 믿음을 배웠을까

연기들은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을까
뿌리들은 언제 서로 이야기를 나눌까
별들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
전갈은 어떻게 독을 품게 되었고
거북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디일까
빗방울이 부르는 노래는 무슨 곡일까
새들은 어디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까
왜 나뭇잎은 초록색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 먼지만도 못하고
짐작만이 산더미 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질 뿐

사랑
사랑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거저 주는 것이지요.
--프란체스코 교황

두려워 말라. 고통을 피하고 멀리하는 사람은외톨이가 될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보다 더 외로운 사람은 없다.
내가 모든 이를 위해 내 목숨을 내놓았듯이,
네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생명을 내어준다면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될 것이다.
-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

체로키 인디언의 노래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또 한 사람의 여행자가
우리 곁에 왔네
그가 우리와 함께 지내는 날들이
웃음으로 가득하기를
따뜻한 하늘의 바람이
그의 집 위로 부드럽게 일기를
위대한 정령이 그의 집에 들어가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기를
그의 모카신 신발이
여기저기 눈 위에
행복한 발자국을 남기기를
그의 어깨 위엔늘 무지개가 뜨기를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뜨고 구름이 흘러갔다. 사람들이지나가고 바람이 불었다. 이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음을 안다.
미처 생각지 않게 우리와 함께하는 고마운 게 얼마나 많은지.
해와 달, 바람과 함께 흔들리는 풀과 나무하며 지금 옆에는없어도 참 따스한 가족과 지인들, 길과 길, 어느 순간 은총으로 바뀌는 힘든 일 등. 감사 기도를 하는 순간이다. 
힘든 일조차 고맙다는 마음과 환한 마음이 열리고, 창문이 열리고, 첫 새벽하늘이 열리고 해가 떠오른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고마‘와 ‘같습니다‘가 하나된 말이다.
고마는 땅의 신으로 우러르는 신성한 동물, 곰을 뜻한다. 
고운여자의 ‘곱다‘도 고마에서 온 거라 한다. 

말의 뿌리를 찾아가면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당신은 대지의 신처럼 은혜로운사람‘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한다. 쓸수록 나 자신도 빛나고,
‘남도 축복하는 멋진 말이니 마르고 닳도록 써도 좋으리라.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면 서로가 더 단단하게 이어진다.
나 자신이 태어나길 잘했다는 것.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미술관
로버트 해희망

캐테 콜비츠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의 아침,
젊은 남녀가 식당으로 들어선다.
여자는 아이를 안고 있고
남자는 일요일 뉴욕타임스를 들고 있다.
여자는 등받이가 높은 버드나무 의자에 앉아아이를 감싸안는다. 
남자는 쟁반 가득 신선한 과일과 빵을 가져오고, 흰 컵에 커피를 따른다. 
남자의 머리는헝클어져 있고 여자의 눈은 부석부석하다.
공기를 마시러 물 위로 솟아오른 잠수부처럼잠 속으로 내동댕이쳤다가
순식간에 끌려나온 듯하다.

남자가 아이를 받아 안는다. 여자는커피를 마시고 신문의 첫 페이지를 훑어본다.
태양 아래 조그만 그들의 자리에서
버터를 바르고 빵을 먹는다.

잠시 후, 여자가 아이를 받아 안는다.
남자는 북 리뷰를 읽으며 과일을 먹는다.
여자가 과일 먹고 담배 피우며 신문을 뒤적이는 동안
남자가 다시 아이를 받아 안는다.
서로 눈길을 자주 나누지도 않는 두 사람,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저 공평한 풍경과사랑에 빠지고 만다. 아기조차 잠에 빠져 돕고 있지 않은가.

주변엔 캐테 콜비츠의 목판화가 가득하다.
고통을 견딜 재능도 능력도 없는 얼굴들,
무감각해진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얼굴들.
배고픔, 가공할 테러.
그러나 이 젊은 부부는 햇살 아래서
일요일 신문을 읽고 있다.
아이는 잠들었고,
벗겨놓은 멜론 껍질에서 푸른 싹이 돋기 시작한다.
이제 모든 것이 가능할 것만 같다.

세수
이선영

희망어제의 나를 깨끗이 씻어낸다
오늘의 얼굴에 묻은 어제의 눈곱 어제의 잠어젯밤 어둠 어젯밤 이부자리 속의
어지러웠던 꿈 
어제가 혈기를 거둬간
얼굴의 창백함을
힘있지는 않지만 느리지는 않은
내 손길로 문질러버린다
늘 같아 보이지만 
늘 새것인 물이 얼굴에 흠뻑!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오늘엔 오늘 아침 갓 씻어낸
물방울 숭숭 맺힌 나의 얼굴이 있고
그러나 왠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지 않은가,
어제는 잔주름만 남겨놓았고
오늘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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