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떠나기 전에 하루키가 말했다.

저녁 8시의 파라다이스 요코하마는 북적북적했다. 양철 종들의강렬한 울림, 작은 망치들이 소형 쇠 사발에 부딪치는 땡그랑 소리,
삐 소리와 다채로운 불빛의 번쩍거림, 알랑거리는 종업원들이 목이쉬도록 외치는 환영 인사로 번잡했다. 덕분에 하루키는 머릿속 고통스러운 침묵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줄줄이 늘어선 생동감넘치는 수직형 기계들 앞에 앉아 파친코를 하는 사람들의 머리위에 부연 안개처럼 자욱한 담배 연기의 소용돌이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루키가 파친코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일본인 지배인이 서둘러 다가와 차를 마시겠냐고 물었다. 보쿠 상이 지금 사무실에서 기계 영업사원을 만나고 있고 곧 내려올 거라고 했다. 매주목요일 하루키는 모자수를 데리러 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파친코장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도박으로 돈을 좀 따고 싶어서 오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이곳을 찾았다. 
인사를 건네는 이 하나 없는 으스스할 정도로 조용한 거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 
아내가 아이들과 잠드는 애정 없는 집에서 달아나고 싶은 남편들도 있었다. 
낯선 사람을 밀치는 건 허락돼도 말 거는 건 금지된 지나치게 덥고 혼잡한 퇴근 시간의 전철을 피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루키는 더 젊었을 때는파친코를 별로 하지 않았지만 요코하마로 온 후로는 이곳에서위안을 찾았다.

감사의 말

나는 1989년에 이 이야기의 착상을 얻었다.
대학교 3학년이었고 졸업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미래를 곰곰이 생각하기보다는 관심을 돌릴 거리를 찾아다녔다. 어느날 오후, 마스터스티(Master‘s Tea)라는 예일대학교의 초청 강연시리즈에 참석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강연이었다. 일본에사는 한 미국인 선교사가 식민지 시대에 이주한 조선계 일본인들과 그들의 후손을 일컫는 ‘자이니치]‘라는 용어를 설명했다.
일본에 사는 일부 조선인들은 자이니치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자이니치는 말 그대로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외국인 거주자라는 뜻이어서, 일본에서 3, 4, 5대째 살아남은 세대들에게는 이치에 맞지 않는 용어였다. 이제는 일본 국적이 된 재일조선인들도많지만, 귀화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일본인과 결혼하거나 부분

적으로 조선인 혈통인 사람들도 많다. 
안타깝게도 일본에 사는조선인들과 조선인 혈통을 일부 물려받은 사람들을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차별해온 역사가 기나길고 파란만장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조선인 혈통이라는 사실을 결코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신분증명서와 정부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면 민족 정체성이 드러나는데도 말이다.

선교사는 이런 역사를 이야기하며 조선계라는 이유로 졸업 앨범으로 괴롭힘을 당한 어느 중학생 남자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남자아이는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잊을 수 없었다.
1990년 역사학과를 졸업한 나는 로스쿨에 다녔고, 두 해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다. 변호사 일을 그만둔 후,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이미 1996년에 마음먹었다. 그리고 많은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초고를 썼지만 출판되지는 않았다. 나는 낙담했다. 

그러다가 2002년에 생일날 지문날인을 하고 외국인등록증을받는 조선계 일본인 아이를 다룬 단편소설 <모국Motherland〉이
<미주리 리뷰>에 실렸고, 후에 이 작품으로 페덴 상(Peden Prize)을받았다. 그리고 대학 시절 들은 이야기를 소설화해서 뉴욕예술재단 지원금을 받았다. 그 지원금으로 강의를 듣고 베이비시터를 구해서 글을 쓸 수 있었다. 책을 출판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걸렸기 때문에 초창기에 인정을 받았던 것이 내게는 무척 중요했다. 

게다가 뉴욕예술재단 지원금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삶에서 무시와 거부, 말살을 당했던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알

려야 한다는 내 고집스러운 믿음이 통했다고 확신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올바르게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제대로 해낼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불안한마음에 방대한 조사를 했고 조선계 일본인 공동체에 대한 소설의 초안을 썼다. 여전히 적절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2007년, 남편이 도쿄의 일자리를 제안받았고 우리는 8월에 그곳으로 옮겨 갔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 수십 명을 현장에서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고, 나는 소설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선계 일본인들이 역사의 피해자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그들을 만났을 때 누구의 삶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의 폭넓고 복잡한 인생사에 절로 고개가 숙여져서 2008년에 기존 원고를 치우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뒤로 책이 출판될 때까지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나는 거의 30여 년 동안 이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따라서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미주리 리뷰>의 스피어 모건과 에벌린 서머스는 가장 먼저 이이야기가 가치가 있다고 믿어준 이들이다. 뉴욕예술재단은 내가포기하고 싶었을 때 소설 지원금을 주었다. 감사한다.
도쿄에 살 때 많은 사람이 나를 만나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에대한 수많은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국외 거주자의삶, 국제금융, 야쿠자, 식민지 시대의 기독교 역사, 경찰 업무, 이민,
가부키초, 포커, 오사카, 도쿄 부동산 거래, 월스트리트 리더십, 유흥업, 그리고 당연하게도 파친코 산업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직접 만날 수 없을 때는 전화 통화를 하거나 이메일로 질문에 답해준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다음의 사람들에게 많은빚을 졌다. 
수전 메나듀 천, 천종문, 천지수, 정행자, 정강자, 정연원목사, 스콧 밸런, 에마 후지바야시, 스테퍼니 가이엣과 그레그 가이옛 메리 하우트, 대니 헤글린, 히데모리 겐, 팀 혼야크, 린다 리 김김명구, 알렉산더 킨몬트, 마쓰나가 다미에, 미야모토 나오키, 나카지마 리카, 박소희, 알베르토 다무라, 피터 태스커, 제인 퀸과 케빈퀸 양향, 폴 양, 사이먼 유, 윤종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많은 저자의 중요한 저술이 없었다면 이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그 저자들을 소개한다. 데이비드 채프먼, 정행자, 하루코 타야 쿡, 시어도어 F. 쿡, 에린 정, 조지 드 보스, 후쿠오카 야스노리, 한해영, 힐디강,강상준, 세라 사카에 카샤니, 재키 J. 김,
이창수, 이수임, 존 리에, 리처드 로이드 패리, 새뮤얼 페리, 소니아량, 테사 모리스-스즈키, 스티븐 머피-시게마쓰, 메리 기모토 도미타에게 깊이 감사한다. 이들의 저술에 크게 의존했지만 사실에맞지 않는 오류가 있다면 모두 내 책임이다.

일본과 한국, 미국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사랑과 믿음과 친절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책을 쓰고 수정하고 다시 쓸 수 없었을 것이다. 해리 애덤스 목사, 린 애런스,
해럴드 아우겐브라움, 캐런 그릭스비 베이츠, 디온 베넷, 스테파나바텀, 로버트 보인턴, 키티버크, 저넬 앤더버그 밸런스 캘런로런 케런드, 켄 첸, 앤드리아킹 콜리어, 제이코스그로브, 엘리자베스 커스럴, 주노 디아스, 찰스 더피, 데이비드 L. 엥, 셸리 피셔

<파친코>에 쏟아진 압도적인 찬사

회복과 연민에 대한 강력한 이야기 
버락 오바마(미국 전 대통령)

올해(2017년) 최고의 책 
록산 게이(<헝거) 작가)

20세기를 견뎌내고 번영을 이룬 재일한국인 가족의 깊고광대한 역사, 
데이비드 미첼(<클라우드 아틀라스) 작가)

다정함과 지혜로움을 보여주는 잊히지 않는 작품
사이먼 윈체스터 (교수와 광인) 작가)

터전을 찾고자 애쓰는 이민자들의 희생에 관한 강력한 명상
주노 디아스(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작가)

잊히지 않는 대서사시
 <뉴욕타임스>

역사가 의도적으로 지우려 했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풍부한현사, 
<가디언>

야심 차다. 찰스 디킨스의 맥을 잇는 사회 소설. 
《USA투데이》

계급, 종교, 소외당한 역사와 문화 등 거대한 이슈들을 담아낸 역작 
<내셔널북리뷰)

사랑, 상실, 투지, 행운, 인내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
(라이브러리저널)

진정한 집을 꾸리고자 하는 여러 세대에 걸친 본성을 정교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방대하고 몰입감 넘치는 역사 소설
(퍼블리셔스위클리>

다큐멘터리의 디테일과 뛰어난 픽션의 공감이 어우러진<작품, 
<데일리메일)

계급과 문화 차이로 씨름하는 한 가족의 다채로운 태피스트리를 능숙하게 엮어낸 걸작 
전미도서상 심사평

"이 책은 역사적 재앙에 맞선
개개인의 이야기이다"

세계를 뜨겁게 울린 한 가족의 대서사극
삶의 회복력과 존엄성,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담아낸
문화와 세대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고전의 탄생!

전 세계 33개국 번역 출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뉴욕타임스》, 《USA투데이》, 아마존, BBC ‘올해의 책‘

2017년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작

그들은 모두 가능성과 두려움, 외로움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매일 아침, 모자수와 직원들은 당첨 결과를 조작하려고 기계를 살짝 손봐서 돈을 따는 사람은 적고 잃는 사람은 많게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운아일 거라는 희망을 품고 게임을 계속했다.

어떻게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겠는가
파친코는 바보 같은 게임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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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을 책임지는 어른처럼 보였다. 하루키는 모자수가 이끄는대로 따르고 싶었다.
작업장은 여전히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아가씨들이 작업대에 까만 머리를 숙인 채 일하고 있었다. 모자수는 옷감 위로 날듯이 빠르게 움직이는 유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유미는 일에 집중하면 다른 데 정신을 팔지 않았다. 무슨 일에든 그렇게 집중했고 가만히 두면 몇 시간이라도 일을 할 수 있었다. 모자수는 자신이 종일 그렇게 조용히 있는 것을 상상도 할 수없었다. 파친코장의 웅성거림이 그리울 터였다. 모자수는 커다랗고 시끌벅적한 파친코장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아주 좋아했다.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었고, 모자수는 인생이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믿었다. 
다이얼을 돌려서 조정할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생긴 불확실성 또한 기대한다는점에서 비슷했다. 모자수는 고정돼 보이지만 무작위성과 희망의여지가 남아 있는 파친코를 왜 손님들이 계속 찾는지 이해할 수있었다.
"유미가 보여?" 모자수가 자랑스럽게 가리켰다. "저기! 네 번째책상에...."
유미상 만난적 있어. 훌륭한 재봉사야 아주 우아한 사람이지. 넌 행운아야." 하루키가 말했다. 
"일은 어때? 돈 많이 벌었어?"
"한번 들러 난 지금 파라다이스 세븐에 있어. 내일 와 유미를만나서 영어 수업에 데려다줄 때 빼고는 거의 밤낮으로 거기 있거든."

한수가 그렇게 대단하고 유명한 대학교에서 하는 경험이 어떤것인지 궁금해해서 보통 이들은 수업 이야기를 했다. 한수는 중등학교나 대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책을 보고 조선어와 일본어를읽고 쓰는 법을 혼자 익혔고, 형편이 되자마자 과외 교사들을 고용해서 어려운 일본어와 조선어 신문을 읽는 데 필요한 한자를배웠다. 한수는 부유한 사람들과 힘 있는 사람들, 용감한 사람들을 많이 알았지만 글을 잘 쓰는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제일 감명을 받았다. 뛰어난 기자들과 친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 당면한 중요 사안에 대한 잘 정리된 생각과 관점이 존경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한수는 민족주의나 종교나 심지어 사랑까지도 믿지 않았으나 교육은 믿었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믿었다. 
어떤 종류의 낭비도 혐오했고, 세 딸 모두 쓸데없는 장신구나 소문 때문에 학교를 그만뒀을 때 그렇게 내버려둔 아내를경멸하는 마음이 커졌다. 딸들이 좋은 머리와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아내는 이런 것들을 쓰레기처럼 내던지게 했다.

딸들한테는 손쓸 길이 없었지만 이제 한수에게 노아가 있었다. 노아가 영어를 그토록 유창하게 읽고 쓸 수 있다니 가슴이 설렐 정도였다. 한수는 이제 영어가 필수적임을 알고 있었다. 노아는 한수에게 책들을 추천했고 한수는 아들이 알고 있는 것을 자기도알고 싶어서 그 책들을 모두 읽었다.
이 젊은이의 뛰어난 학문적 소양은 한수가 반드시 육성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수는 노아가 졸업한 후 무엇을 하면 좋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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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
선자 - 고한수, 이삭
노아

일제강점기
한국 부산 영도와
일본 오사카에서
한국의 평범한 민중들이 어떻게
역사의 파도를 어떻게 몸을 딱 바닥에 붙이고
넘어가는가를 보여준다...

뻔한 서사에
결말을 다 아는 얘기이겠지만
다른 각도로
어색한 번역투 문장으로 더듬더듬 만나게 되는 반복되는 민초들의 삶의 연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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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넌 요새 좀 변했어.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했을 무렵부터."
"응...... 그럴지도 몰라. 아주 좋은 애거든."
"그래, 좋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구나. 그 뭐냐, 잘해줘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상처 입는 걸 겁내면 안 된다… 맞는 말이구나."
마치 아주 오랜만에 술에서 깨어난 듯한 목소리였다.
"말이 너무 심했으면 미안. 죄송해요."
"아니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지. 집안일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사나에하고 너한테 떠넘기고 난 도망치고있었어. 게다가 응모까지 그만뒀어. 네 말대로 상처 입는게 두려웠던 거야. 네 어머니를 잃고, 나한테 재능이 없다는 걸 아는 게 두려워서. 계속 도망만 쳤다."
아버지가 힘이 빠진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도 망설이다가 옆에 앉았다. 아버지도 나도 어떻게 하면좋을지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마시다 만 발포주 캔을 가볍게 쥔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부자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두 사람은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현실은 픽션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현실은 언제나 이렇게 건조하고 당황스럽다.
주저앉아 꼼짝도 못 한다.
‘그래도 현실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뭔가 먹을 걸 만들까 하고 묻자 아버지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우리는 중요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건 진보라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아버지를 정면에서 대할 것이다.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대로 그때 무슨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침묵이 이어진 끝에 아버지가 "그래, 뭣 좀 만들어줄래?"라고 말했다.
나는 얼굴을 들었다. 아버지가 서툴게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곰보 달걀이 오랜만에·· - 생각나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로, 누나가 종종 만들곤 했다. 원래는 어머니 본가에서 만들던 것이라고 한다.
13

"사나에 축하한다. 정말 축하해."
몸속 깊은 곳이 떨려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잠깐 울었다.
"누나가 집에 찾아온 것은 아쿠타가와상이 발표되고 열홀 이상 지났을 때였다.
"집이 참 깨끗하네. 우리 동생은 역시 다른걸."
며칠 전 누나에게서 또 연락이 온 뒤로 아버지는 내내들떠 있었다.
그때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이튿날 아침부터 아버지는자진해서 집안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요리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등 내게 조금씩 집안일을 배우고 있다.
오늘은 아침부터 열심히 청소하더니 저녁은 아버지가하겠다고 호언했다.
우리 집 상태에 감탄하는 누나에게 나는 말했다.
"나 혼자 청소하는 게 아냐. 아버지도 거들어주거든."
누나는 정말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가 부끄러운 듯 말을 이어받았다.
"그 뭐냐.....… 여러모로 미련이 없어졌어. 요리도 청소도해보니까 즐거운 면이 있고 말이지. 소설 쓰는 건 당분간

그만둘까 한다. 도피 수단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정면에서대하듯 소설을 대할 수 있게 되면・・・・・・ 그땐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있고, 사나에, 원하는 책이 있으면 가져가라. 초판본이든 뭐든 상관없어. 책도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니까."
누나가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가 부끄러운 듯 웃었다.
"제가………… 제가 소설을 쓰려고 한 건 아버지 영향이에요 소설을 쓴다는 행위는 아버지 덕분에 가까이에 있었어요. 그렇지만....… 처음엔 저도 그랬거든요. 지금의 자기자신한테서 도망치고 싶어서 썼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그게 아니게 된 거예요. 자기를 확장해가기 위한 걸지도모르겠다, 자기 자신의 새로운 말, 새로운 생각을 만나는장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누나의 말에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감격해서 울 것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쳐다보던 누나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명랑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네요・・・・・・ 이 집은 책이 너무 많아서 위생적으로안 좋은 면도 있었으니까 좀 가져갈까요. 그래도 돼요. 아버지?"

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어."
가미야가 잇는 슬픈 말들에 나는 머리를 숙이고 말았다.
죽다니. 그런 일 없어. 괜찮아."
"그렇지만..
"응, 알아. 하지만 인간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렇잖아, 굉장하지 않아? 공업 제품이랑은 다르다고. 거기엔 설계도도, 숙련된 작업자도 없어 어머니 배 속에서 자라서 세상에 툭 나와서, 그때부터, 아니그 전부터 살아 있지. 그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로봇처럼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든 게 아니니까 이상이 생겨도 바로 모르고 움직이지 않아도 부품을 교체해 살려낼 수 있는 것도 아냐. 어떻게 이렇게 살아 있는 건지 실은 잘 알 수 없어. 이해할 수 없고, 굉장하고, 동시에 겁나는 일이야."
가미야는 자신의 왼쪽 가슴 언저리를 바라봤다.
그때 가미야에게 무슨 말인가 할 걸 그랬다.
가미야에게 무슨 말인가 해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러지 못했다. 가미야의 말에 약간,
아주 약간,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안정했을 때 마오리가 어땠는지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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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선물

지금은 훨씬 덜해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해도 외국에 유학을 갔다 오거나 연수를 갔다 온 지식인들이 우리의 후진성을 개탄할 때마다 쓰는 상투어로 선진 외국에선 어쩌구저쩌구……… 하는 게 있었다. 물론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의 이모저모에 우리들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건 중요한 일이고, 그렇게 비춰본 우리들 모습의 초라함에 충격을 받는 것도 발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할과정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식인들의그런 말투에서 자신만은 우리 모두의 후진성이나 초라

함과 무관하다는 교만한 착각 같은 게 느껴져서 아니꼽게 들릴 때가 많다.
그래서 그랬던지 내가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 속으로 벼른 것도 많이 봐두리라는 생각보다는아무리 좋은 걸 봐도 쇼크 안 받기와 돌아와서 밖에서본 거 풍기지 않기였다.
내가 한 친구에게 나의 이런 유치한 결심을 얘기했더니 그건 외국 문화에 맹목으로 심취하는 것보다 더 나쁜열등감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막상 밖에 나간 나는 그들의 잘사는 모습에 정말 놀라지 않았다. 정말 놀랄 만한 건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문화유산이었지만 우리가 그 방면에 있어서 그들과 비교가 안 된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던 거고, 적어도 현재의사는 모습에 있어서만은 우리도 세계 수준이었기 때문에 놀랄 게 없었다. 그땐 벌써 겉으로 나타난 우리의 생활수준은 어느 선진국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었다. 그 무렵 한창 유행하던 ‘잘살아보자‘는 구호를 마침내 현실로움켜쥔 감격을 만끽하려는 듯 우리 모두가 외면치레에급급할 때였다.

그 후 다시 몇 년 후 일본 구경을 갔을 때는 열등감은커녕 그들의 사는 겉모습이 우리보다 훨씬 궁상맞음을 딱하게 여겼다. GNP 인가 뭔가 하는 게 우리의 몇 배라면서 왜 이렇게 못살까가 수상하기도 하고 우리처럼화끈하게 잘살지 못하는 그들이 딱해 보이기도 했던것이다.
재작년에 다시 일본에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의 어떤 재단의 초청이어서 보고 싶은 걸 미리 신청하면 가능한 한 다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때도 철없이여기저기 명승지만 열거하고 맨 나중에 심신장애자를위한 특수학교를 보고 싶다고 신청했다. 내 가장 친한친구가 뇌성마비 아들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고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는지 지켜보면서 같이 분통도 터뜨리고우리 사회를 원망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나라에선 그런장애자를 어떻게 돌보고 있나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쪽에선 나를 그런 특수학교에 안내하기 전에 내가신청서에 써낸 시설이 중 정도라는 단서가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나는 재단이 너무 풍부하여 호화롭게 운영하거나 너무 영세하여 궁핍하게 운영하는 시설 말고 중

간 정도의 시설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동경도내의 구마다 하나씩 있는 심신장애자 시설은 다 도립이기 때문에 각기 특성은 있지만 빈부나 우열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했다. 나는 좀 머쓱해져서 그럼 변두리의 어려운 동네에 위치한 학교를 보여 달라고 했다.
학년으로는 중고교의 과정에 해당하는 장애자 교육기관인 어느 도립 양호학교에서 나는 비로소 이게 정말잘사는 거로구나! 충격을 받았고, 감동했고, 그리고 열등감을 느꼈다. 우리의 부유층이 그들의 부유층보다 몇배 잘살고 또 스포츠로 자주 국위를 선양하고 곧 올림픽의 개최국까지 된다는 걸 아무리 상기해도 열등감은 덜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풍족하게 쓰고 있는 건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거였기 때문이다. 그 학교는 넓고밝고 세심하고, 어떤 종류의 장애자도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완벽하게 친절한데도 개선의 노력은 그치지 않고있었고, 1인 1기를 가르칠 전문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장애자를 고용함으로써 세제 혜택을 받고자 하는 기업체와 연결돼 있어서 졸업생의 장래까지도 책임지고

지고 그늘진 ‘병신‘다움이 떠올라 가슴이 저렸다. 우리의 정박아가 천사 같지 못한 게 어찌 그 부모 탓만이랴.
우리 모두의, 정말 관심 있어야 할 곳에 대한 무관심, 인간다움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대한, 내면보다는 외양에대한 열광이 남은 능히 천사 같은 인간으로 가꿀 수 있는 장애자를 ‘병신‘으로 방기한 게 아닐까.
나는 그때 선물 받은 걸 지금도 간직하고 있고, 천사의 주머니라고 부르면서 미사포 주머니로 쓰고 있다.


나는 이런 보답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외손자 사랑이 좋다.
손자야, 너는 이 할미가 너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을갚아야 할 은공으로 새겨둘 필요가 없다. 어느 화창한봄날 어떤 늙은 여자와 함께 단추만 한 민들레꽃 내음을맡은 일을 기억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건 아주 하찮은 일이다.
나는 손자에게 쏟는 나의 사랑과 정성이 갚아야 될은공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아름다운 정서로 남아 있길바랄 뿐이다. 나 또한 사랑했을 뿐 손톱만큼도 책임을느끼지 않았으므로,
내가 불태운 것만큼의 정열, 내가 잠 못 이룬 밤만큼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갚아지길 바란 이성과의 사랑,
너무도 두렵고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본능적인 사랑또한 억제해야 했던 자식 사랑………. 이런 고달픈 사랑의행로 끝에 도달한, 책임도 없고 그 대신 보답의 기대도없는 허심한 사랑의 경지는 이 아니 노후의 축복인가.


그때 그 친구의 모멸의 시선이 지금 생각해도 따갑다. 아닌게 아니라 내 애들 중 예능 방면의 천재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부모를 알량하게 만나 묻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두려움이 간혹 들긴 하지만 이다음에 ‘큰소리‘
치기 위해 지나친 극성을 떨 생각은 아예 없다.
아이들의 책가방은 무겁다. 그러나 단순히 책가방의무게만으로 한창 나이의 아이들의 어깨가 그렇게 축 처진 것일까?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 지나친 극성이 책가방의 몇 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나 아닐지.
"내가 너한테 어떤 정성을 들였다구. 아마 들인 돈만도 네 몸무게의 몇 배는 될 거다. 그런데 학교를 떨어져엄마의 평생소원을 저버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장가들자마자 네계집만 알아. 이 불효막심한 놈아."
이런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은 예쁘다. 특히 내 애들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욕심을 안 내고 바라볼수록 예쁘다.
제일 예쁜 건 아이들다운 애다. 그다음은 공부 잘하는 애지만 약은 애는 싫다. 차라리 우직하길 바란다.
활발한 건 좋지만 되바라진 애 또한 싫다.
특히 교육은 따로 못 시켰지만 애들이 자라면서 자연히 음악·미술·문학 같은 걸 이해하고 거기 깊은 애정을가져주었으면 한다.
커서 만일 부자가 되더라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 자기 생활을 조화시킬 양식을 가진 사람이되기를. 부자가 못 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
대강 이런 것들이 내가 내 아이들에게 바라는 사람됨됨이다.
그렇지만 이런 까다로운 주문을 아이들에게 말로 한

아마 세 살 때쯤일 것이다.
마주 엎드려 그림책을 보고 있는 할머니와 손녀가 있는 사진은 당연히 아름답고 평화롭다. 그런데 왜 아름다움에는 비애가 뒤따르는 걸까. 나는 그 사진을 보면서넋을 잃고 생각에 잠겼다. 그 애는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다. 훌쩍 커서 아름다운 소녀가 되었다. 지금도 예쁘지만 어릴 적 그 아이의 귀여움엔 비길 데 없는 광채 갈은 게 있다. 그 아이는 내가 아들을 잃고 난 후 1년 안에태어난 외손녀다. 아들을 잃었을 때, 내 여생에 다시는근심도 기쁨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장대 같은 아들을 잃은 지옥 같은 고통에 지쳤을 때 겨우 콩꼬투리만한 새 생명이 기적처럼 나에게 왔다. 그 새 생명을 처음대면했을 때 나는 온몸이 떨리는 듯한 기쁨을 맛보았다.
나에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예상 못 한 일이었다. 다행히 그 애를 낳은 딸네가 가까이 살고 있어서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애가 자라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비로소 마음 붙일 곳이 생긴것이다.
근심도 기쁨도 없이 목석처럼 살아낼 수 있으리라고

입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그 작은 생명에게 마음을 붙이고 울고 웃고 하였을까. 그 애의 생명력이 눈부시다면 내 생명력은 또 얼마나 징그러운가. 나는 딴 손자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 애를 얼마나 편애했던가. 그건 손자 사랑이라기보다는 마음 붙일 수 있는 걸찾아내어 놓치고 싶지 않은 자기애가 아니었을까. 그 한장의 사진은 잊고 지내던 당시의 태산 같은 고통과 함께온갖 자질구레한 기쁨과 슬픔을 불러내어 나를 부끄럽게도, 하염없게도 한다.
내 기억의 창고도 정리 안 한 사진 더미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뒤죽박죽이고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고 나라는 촉수가 닿지 않으면 영원히 무의미한 것들이다. 그중에는 나 자신도 판독 불가능한 것이 있지만 나라는 촉수가 닿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또한 행복의 절정처럼 빛나는 순간도 그걸 예비한 건 불길한 운명이었다는 게 빤히 보여서 소스라치게 되는 것도 묵은 사진첩을 이르집기 두려

운 까닭이다. 당시에는 안 보이던 사물의 이중성과 명암, 비의가 드러나는 것이야말로 묵은 사진첩을 뒤지다가 느닷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공포이자 전율이다. 나라는 촉수는 바로 현실이라는 시점이 아닐까. 이미 지나간 영상을 불러내서 상상력의 입김을 불어넣고 남의 관심까지 끌고 싶은 기억에의 애착이야말로 나의 글쓰기의 원동력이자 한계 같은 것이 아닐까, 요즈음 문득문득생각한다.

습작을 시작했다. 지독하게 열심히 했다. 밤잠을 설치고, 입맛을 놓치고, 남의 좋은 글을 읽고 샘을 내고, 발표의 가망도 없는 글을 썼다. 차차 글 쓰는 어려움에 눈 떴다. 자연히 쉽게 쓴 글이 쉽게 당선된 데서 비롯된 내심의 은밀한 오만도 숨이 죽었다.
당선작을 쓰고 나서 습작을 썼으니 순서가 거꾸로 됐지만 그 시기는 당선작을 쓴 시기보다도 훨씬 더 소중한시기였다. 글 쓰는 어려움에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으면서도 속에선 뭔가 조금씩 조금씩 살이 찌고 있는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곧 『여성동아』에서 연재의 기회를 주었고 그 후 여러 지면의 비교적 고른 혜택을 받고 보니어름어름 작가인 척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작가가 될까 말까 하던 4년 전의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다.

1931.10.20
~
2011.01.22

에세이 제목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유쾌한 오해수많은 믿음의 교감사실대의 비오는날집 없는 아이보통 사람인덕밤은내방이멜다의 구두천사의 선물넉넉하다는 말의 소중함나는 나쁜 사람일까? 좋은 사람일까?
다 지나간다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나는 누구일까생각을 바꾸니행복하게 사는 법민들레꽃을 선물받은 날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할머니와 베보자기달구경사랑의 입김내 기억의 창고새해 소망성차별을 주제로 한 자서전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
중년 여인의 허기증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나의 문학과 고향의 의미잃어버린 여행가방시간은 신이었을까내 식의 귀향때로는 죽음도 희망이 된다.
마음 붙일곳그때가 가을이었으면「노란집 열림원, 2013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문학동네,2015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세계사, 2000나의 만년필, 문학동네, 2015나를 닮은 목소리로 문학동네, 2018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 문학동네, 2015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문학동네,2015「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세계사, 2002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예수 문학동네,2015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문학동네,2015살아 있는 날의 소망, 문학동네,2015나를 닮은 목소리로, 문학동네, 2018[호미, 열림원, 2007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세계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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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세계사, 2000[세상에 예쁜 것, 마음산책, 2012「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문학동네, 2015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매수, 문학동네, 2015「살아 있는 날의 소망」, 문학동네, 2015[나의 만년필 문학동네, 2015「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세계사, 2002나를 닮은 목소리로, 문학동네, 2018『잃어버린 여행가방」, 실천문학사, 2005[세상에 예쁜 것, 마음산책, 2012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현대문학, 2010[아직 펴보지 않은 책 죽음, 신앙과 지성사, 2016[두부, 창작과비평사,2002『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세계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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